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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 누가 수학 좀 대신해 줬으면!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8편 누가 수학 좀 대신해 줬으면!

Editor! 2021. 1. 27. 17:16

인공 지능과 로봇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사람처럼 걷고 뛰는 로봇을 만드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현대자동차가 사들였다는 기사부터 삼성, KT 같은 유슈의 기업들이 특급 인공 지능 인재들을 채용하기 바쁘다는 기사까지. 이런 기사를 보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래도 인간의 창의성이 인공 지능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을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어 보기도 합니다. 그 지푸라기 중 하나가 수학입니다. 수학적 창의성 측면에서 인공 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요? 물론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패배시키기 전까지 우리는 바둑에 희망을 걸고 있었지요. 19세기, 한 수학자의 좀 더 편해지려는 생각에서 시작된 컴퓨터가 어느새 이 수준까지 왔습니다. 수요 수학 에세이에서 그 역사와 미래를 읽어 보시죠.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18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8편 누가 수학 좀 대신해 줬으면!

 

 

내 일을 누군가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게 힘든 일이어서일 때도 있지만, 쉬운 일이라고 해도 그게 지겹거나 귀찮을 때는 남이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가령 마음먹고 하면 15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설거지도 누가 대신해 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특히 그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이라면 더 그렇다. 예전에 회사에서 만든 책의 가격표가 잘못되어 있어서 창고에서 책 몇천 권에 일일이 새로 만든 스티커 가격표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멋진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지루한 일, 이른바 노가다를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면 참으로 나는 어디? 여긴 누구?’ 같은 감상에 젖으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학도 공장처럼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도 그런 생각을 했다. 배비지는 영국 왕립 천문학회의 의뢰로 수학 표를 제작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수학 테이블이란 계산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로그 함수, 삼각 함수, 제곱근 등의 각종 수치를 미리 계산해서 표로 만들어 놓는 것으로, 수학, 천문학, 항해와 같은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었다. 배비지 혼자서 모든 계산을 다 한 건 아니지만, 다른 계산사들의 작업을 감독하고 비교하는 일이 너무 지겨운 나머지 이 작업을 증기 기관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투덜거리는 데서 그친 건 아니다. 배비지는 정말 기계를 이용해 계산한다는 아이디어를 계속 밀고 나갔다. 그러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일단 분업이었다. 수학 테이블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계산을 여럿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효율을 높이듯이 계산도 나누어서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배비지는 당시 쓰이던 차분법에 주목했다. 수학 테이블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다항식의 계차를 이용해 계산을 작은 단위로 쪼개는 방식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단순 덧셈만 반복해서 원하는 다항식의 값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이 단순해지면 기계가 할 수 있게 된다. 공장에서 분업이 이루어지면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가 하게 되었듯이 배비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계산을 기계로 하려고 했다. 인간 수학자가 문제를 잘게 분해해 기계에게 전달하면 기계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덧셈을 대신해 줄 수 있었다. 그런 목적으로 설계한 장치가 바로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이다. 끝내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배비지는 컴퓨터의 역사에서 첫머리를 장식하게 되었다.

 

계산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차분 기관으로 발전했다! 찰스 배비지와 그의 차분 기관

 

기계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단순 계산을 할 수 있다. 지치지도 않고 실수를 하지도 않는다. 계산기만 완성한다면, 드디어 지겨운 계산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만세!

 

그런데 배비지의 목적이 정말 이렇게 일차원적이었을까?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 편해지려고? 그렇지는 않았다. 배비지는 계산이라는 단순하고 지루한 지적 노동에서 벗어나 여유가 생긴 인간은 더욱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단순 덧셈보다 더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좀 더 많은 지적 노동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은 더욱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기계가 대체하는 지적 노동의 수준을 차차 높여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창조적인 일만 할 수 있게 되는 게 배비지의 꿈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배비지는 인간의 지적 노동을 어느 수준까지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를 노리는 인공 지능

 

배비지의 꿈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123×456 같은 계산을 굳이 직접 하지 않는다. 누구든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학생이 공부하는 게 아닌 한 크게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니고 자칫하다가는 실수로 틀린 답을 내기 십상이다. 배비지 말마따나 정신적인 낭비다. 이런 건 계산기로 얼마든지 쉽고 빠르게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미 계산에 국한해서는 기계가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다.

 

요즘에는 수학 문제를 풀어 주는 스마트폰 앱도 나와 있다. 책에 실린 문제나 손으로 쓴 문제를 사진으로 찍으면 인식해서 답을 알려주는 앱이다. 사칙연산은 물론 간단한 1차 방정식도 풀어서 답을 보여 준다. 호기심에 설치해서 사용해 보니 정말 광고처럼 문제를 대신 풀어 주었다. 원하면 풀이 과정까지 볼 수 있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는 모양인데, 나 역시 이게 수학 공부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한 수학 문제 풀어 주는 앱에 고등학교 수학 문제 하나를 입력했더니 오른쪽처럼 정답을 구했다. 사진 제공: 고호관.


이런 앱에도 당연히 한계는 있다. 고등학교 수학 문제 몇 개를 가지고 시험해 보니 수식이 복잡하면 잘 풀지 못했다. 아마도 문자 인식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수식으로 된 문제만 풀 수 있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접하는 수학 문제는 대부분 수식 외에도 설명이 많다. 상황을 글로 설명하는 문장제 문제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을 나열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게 많다.

 

수학 문제 풀이는 이렇게 다양한 형식으로 된 문제를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식을 세운 뒤 계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앞부분이고, 일단 수식을 세운 뒤 계산하는 건 비교적 단순한 기술이다. 따라서 수학 문제를 풀어 준다는 앱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다면 결국 계산기 수준을 크게 뛰어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지만, 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보다 더 야심 찬 시도가 있다. 그중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원인 대니얼 셀샘(Daniel Selsam)이 만든 IMO 그랜드 챌린지(IMO Grand Challenge). 이 계획의 목표는 인공 지능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IMO)에 참가시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는 전 세계의 수학 영재가 겨루는 대회로, 여러 필즈상 수상자가 이 대회 출신일 정도로 우수한 수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오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빠른 계산 실력보다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중요하다. 게다가 일단 문제 자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인공 지능이 이를 해낼 수 있다면, 정말 사람처럼 수학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 얼마나 진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2020년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다음 대회 때는 정말로 대회에 참가해 전 세계의 수학 영재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을까? 만약 참가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시험을 치러야 할까? 시험 시간도 인간 참가자와 똑같이 주어야 할까? 만약 인공 지능이 금메달을 딴다면, 수학자를 꿈꾸는 영재들의 사기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원인 대니얼 셀샘이 만든 IMO 그랜드 챌린지의 홈페이지. 인공 지능과 인류의 수학 대결을 부추기는 사이트인가?

 

인공 지능이 수학을 대신해 주면 좋을까?

 

컴퓨터와 인공 지능은 전문 수학자의 영역에도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 컴퓨터를 이용해 증명한 4색 문제나 케플러의 추측 같은 사례는 이미 전에 이야기한 바 있다. 증명 과정에서 생기는 길고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로 처리하면 인력으로는 수백 년이 걸릴 일도 금세 마칠 수 있다. , 컴퓨터는 수학자가 완성한 복잡한 증명 과정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도 쓰인다. 물론 누누이 이야기하듯이 계산을 빨리 하는 것과 오류를 확인하는 정도로는 수학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요즘에는 인공 지능을 훈련시켜 수학 정리를 증명하는 연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에는 구글에서 만든 인공 지능이 1,200개가 넘는 수학 정리를 증명해 냈다는 소식도 나왔다. 수많은 수학 정리를 입력해 인공 지능을 학습시킨 뒤 새로운 정리를 주고 증명해 보게 했더니 꽤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직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겠지만, 낙관적인 사람들의 예측처럼 인공 지능이 계속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사람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문제를 인공 지능이 먼저 증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어떤 문제를 풀지도 스스로 정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만나 본 많은 수학자는 문제를 푸는 것 못지않게 문제를 만드는 능력이 수학자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인공 지능이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드디어 제대로 된 인공 지능 수학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배비지는 원래 지루한 정신 노동은 기계에게 맡기고 자신은 창조적인 일에만 몰두하려고 생각했다. 그건 컴퓨터가 인간의 수준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정도에만 머물러야 가능한 일이다. 컴퓨터가 인간과 동등해지거나 인간을 뛰어넘는다면, 그 창조적인 일까지 모두 기계에게 빼앗겨 버릴 공산이 크다. 그러면 인간 수학자에게 남는 일은 인공 지능이 연구한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점점 발전하는 인공 지능 수학자는 수학이 인간에게서 아예 멀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이미 전문 수학자의 연구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마찬가지로 종국에는 아무리 뛰어난 인간 수학자라고 해도 인공 지능의 연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특이점이 오는 것이다. 귀찮을 일 좀 맡기려고 계산하는 기계를 구상했던 배비지의 의도를 굉장히 많이 넘어선 결과다. 배비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어렵고 복잡한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할까, 아니면 재미있는 일을 빼앗겼다며 슬퍼할까?

 

 

컴퓨터가 인간과 동등해지거나 인간을 뛰어넘는다면, 그 창조적인 일까지 모두 기계에게 빼앗겨 버릴 공산이 크다. 그러면 인간 수학자에게 남는 일은 인공 지능이 연구한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https://imo-grand-challenge.github.io/

https://www.quantamagazine.org/at-the-international-mathematical-olympiad-artificial-intelligence-prepares-to-go-for-the-gold-20200921/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2200707-google-has-created-a-maths-ai-that-has-already-proved-1200-theorems/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기자, 수학동아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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