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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22편 수학을 잘 보여 주는 법

Editor! 2021. 6. 9. 16:53

수학은 추상적인 공부입니다. 그런데 추상적인 개념들을 다루는 능력은 적절한 교육과 꾸준한 훈련이 없으면 기르기 좀 힘듭니다. 물론, 추상 개념을 잘 다루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죠. 그래서 수학을 교양 수준에서 다루는 책들을 보면 그림이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넣는 것에도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죠. 추상 개념을 구체적 형상과 매칭시키는 예술적 직관이 필요하죠. 그래서 교양 수학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독특한 전문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이번 편은 이 전문성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는가 하는 조금은 유니크한 문제를, 조금은 직업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다양한 프랙털 이미지도 예술 작품으로, 수학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로 널리 쓰인다. 사실 이 프랙털 이미지는 숫자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이번 글은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다. 2009년 어느 날 취재를 갔다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새로 창간하는 수학 잡지로 발령을 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수학이라고는 학교를 졸업하고 손 놓아 버린 지 오래였는데, 갑자기 수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팀을 구성해 수학동아창간 작업에 들어갔다. 수학 학습지가 아닌 대중 수학 잡지를 만드는 게 의도였는데, 다들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수학을 다룬 교양 서적이야 있었지만, 그런 콘텐츠를 매달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잡지를 만드는 건 (내가 아는 한) 처음이었다. 그래도 지금도 계속 잘 나오고 있으니 처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달 수학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나는 창간 뒤 첫 1년 동안을 그곳에서 기자로 일했고, 몇 년 뒤에는 편집장으로 돌아와 거의 4년을 더 만들었다. 5년 동안 수학에 관한 대중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과학 잡지를 만들 때도 당연히 하는 고민이기는 하지만, 체감상 수학은 좀 달랐다.

 

 

대중을 위한 수학 교양 잡지를 표방한 《수학동아》의 창간호.  ⓒ동아사이언스.

 

 

저 수학 잘 모르는데요~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수학은 다른 과학과 비교해 사람들의 거부감 내지는 두려움이 더 컸다. 편집장으로 있을 때는 다른 팀 기자를 데려오며 면담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저 수학 잘 모르는데요.”였다. 하도 듣다 보니 나중에는 살짝 발끈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 물리학은 잘 알아서? 생물학은 잘 알아서? 기계 공학은 잘 알아서? 어차피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취재하고 공부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왜 유독 수학이라고만 하면 잘 모른다고 빼는 걸까?

 

물론 그런 두려움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보통 과학 콘텐츠를 만들 때는 새로운 소식이나 연구 결과를 다루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중력파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거나 어디선가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원인을 파악했다거나 성질이 아주 특이한 물질을 만들어냈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 소식과 함께 원리, 의미 등을 담아 전달한다. 아무리 간단히 설명해도 비전공자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발견의 의미나 미래 전망 같은 내용을 곁들이면 어떻게든 쓸 수 있다.

 

하지만 수학으로 오면 이렇게 흔히 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현대 수학자들의 최신 연구 결과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과학 분야라고 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순수 수학 연구는 정말 무엇에 관한 연구인지도 알기가 어렵다. 수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우리 같은 비전문가에게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그걸 우리가 알아듣는 건 더욱 힘들다. 필즈상이나 아벨상 수상자를 소개할 때도 그 사람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 어쩌다 실생활과 관련이 있는 분야라 비교적 쉽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개 순수 수학 연구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실생활의 소재나 수학이 중요하게 쓰이는 다른 과학 분야와 엮어서 콘텐츠를 만든다. 여러 분야에서 수학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 즉 수학의 유용함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희한하게도 과학을 다룰 때는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나부터도 수학을 다룰 때는 유용함을 알리는 데 집중하게 됐다. 아무래도 수학이 우리 생활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고, 실제로 내가 만난 많은 수학 교사와 수학자가 그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 이제는 수학이 실생활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굳이 유용함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문제는 매번 하는 이야기가 비슷비슷해진다는 점이다. 원리까지 곁들여 설명할 수 있는 소재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떤 기술에 수학이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는 식의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 현상이나 생태계에 관한 새로운 연구도 수학 모형을 사용해 예측했다.”는 정도밖에는 쓸 수 없을 때가 많아서 아쉬웠다. 매달 뭐라도 새롭고 흥미로운 걸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배달 경로를 수학으로 최적화하는 내용을 다룬다면,  배달과 관련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

 

 

 

수학 시각화로 눈길을 끌자

 

그래도 몇 년 동안 수학 잡지를 만들면서 많은 콘텐츠를 새로 발굴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는 함께 일했던 기자들과 도와주신 많은 분 덕이지만.

 

콘텐츠는 어찌어찌 찾아낸다고 해도 그다음 문제가 생긴다. 편집 디자인이다. 우리는 학술지가 아니고 대중 잡지였다. 게다가 대상도 일반 성인이 아닌 청소년이었다. 수학을 학습의 대상만이 아니라 교양이나 취미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편집도 그에 걸맞게 해야 했다.

 

잡지 지면은 글과 각종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언제나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눈길을 확 끄는 좋은 이미지를 욕심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를 사진과 그림으로 붙잡으려면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수학은 과학보다 활용할 수 있는 사진이 부족하다는 점이 작업을 어렵게 했다. 과학의 경우에는 내용과 관련된 실험 장치나 실생활 대상을 담은 사진이 왕왕 있고, 우주나 자연 환경 같은 소재를 다룰 때는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을 활용해 꾸밀 수 있었다.

 

 

시각화 사례를 소개하는 콘텐츠는 우리의 시각화 고민을 해소하는 방편이 된다. 《수학동아》  지면.

 

 

수학은 쓸 수 있는 사진이 부족하다 보니 삽화를 많이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것도 자유롭지는 않았다. 돈이 있어서 그린다고 해도 다루는 내용이 추상적이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가지 해결책은 보여 주기가 비교적 쉬운 소재를 찾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생활이나 다른 과학 분야와 연관된 수학을 다룬다면, 적당한 사진을 찾아서 쓰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우주와 수학이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면 멋진 우주 사진을 마음껏 쓸 수 있다!

 

 

수식을 텍스트로만 나타내면 딱딱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림 형식으로 만들어서 썼다. 《수학동아》  지면 .

 

 

아니면 수학 중에서도 시각화가 가능한 소재를 다루거나 국내외의 수학 시각화 성과 사례를 소개할 수 있었다. 집합에 관해 배울 때,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도 간혹 사용하는 벤 다이어그램이 그런 사례다. 집합의 포함 관계를 나타내는 벤 다이어그램을 우리는 동그라미 두 개 또는 세 개가 겹쳐 있는 모습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집합의 수가 많아질수록 모양이 매우 복잡해진다. 집합의 수가 많으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대칭이 되게 그린 벤 다이어그램은 생각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집합 7개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벤 다이어그램.

 

 

그래프를 이용해 멋진 그림을 그린 사례도 있었다. 그래프를 그려 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원하는 그림이 나오는 식을 만드는 것이다. 또는, 선이나 도형, 수학적인 패턴을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례도 있다. 이런 시각화 작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수학적이면서도 결과물이 그럴싸해 콘텐츠로 만들기에 좋다. 한 가지 단점은 기하학이 아니면 이런 방법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학 난제는 디자인도 난제

 

실생활 소재와 딱히 연관이 없는 수학 이론은 글을 쓰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편집 디자인에서도 난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그 증명 과정을 설명하면서 도대체 무슨 이미지를 쓸 것인가? 수학 잡지를 만드는 동안 이미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고 나름대로 몇 가지 수를 생각해 내야 했다.

 

수학이다 보니 본문에 수식이나 그래프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초창기에는 수식을 단순히 텍스트로, 그래프는 무미건조한 선으로 그려 넣곤 했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나 학습지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어 나중에는 수식과 그래프를 예쁘게(?) 그려서 눈길을 끌 겸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려고 시도했다. 별것 아니어 보여도 검은 선으로 긋기만 한 것보다는 지면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그래프를 실사 사진과 어울리게 배치하거나 합성해서 하나의 볼거리로 구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적당한 배경 및 사람과 합성하는 식이다. 딱 맞는 자세를 취한 사람의 사진을 찾는 게 조금 어렵지만, 여차하면 직접 촬영해도 된다. 제대로 된다면 그래프가 주는 딱딱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다.

 

 

미적분을 설명하기 위한 그래프를 그릴 때 야구공이라는 실물을 곁들여 사진으로 꾸몄다. 《수학동아》  지면.

 

 

이도 저도 안 되는 추상적인 내용이라면 사실 방법이 없다.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독자의 거부감을 줄여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내용을 만화 형식으로 풀어서 설명한다거나 증명이 이루어진 상황을 담은 삽화를 그려서 부담 없는 지면으로 보이게 꾸민다. 지면 구석구석에 수학적인 코드를 담는 것도 일상이다. 기하학적 패턴이나 도형, 수식을 적절히 배치하면 눈길을 끄는 사진이나 삽화가 없어도 어느 정도 수학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

 

만약 이런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수학 잡지의 지면은 여느 학습지와 별 차이 없었을 것이고 주 독자층인 청소년의 눈에 들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잡지가 10년 넘게 꾸준히 나올 수 있었다는 건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내 멋대로) 생각해 본다. 물론 수학을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편집장을 그만둘 때까지도 여전히 정답을 찾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잡지 지면을 만들던 입장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나 책을 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 수학을 전달하는 교과서의 디자인이 좀 덜 딱딱하다면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잡지와는 내용이 또 달라 보여 주기가 더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이런 쪽으로도 고민을 더 많이 해 보면 좋겠다.

 

 

주제가 소수라면 경우 딱히 지면에 배치할 주요 이미지가 없다. 이 경우에는 소수를 이용해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프라임은 소수를 뜻하는 영단어이기도 하다.)을 그린 사례를 찾아 시선을 끄는 이미지로 활용했다. 《수학동아》  지면.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기자, 수학동아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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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수학』 [도서정보]

대한수학회 수학 달력 × 네이버 지식백과 365일 수학을 한 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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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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