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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편 50파운드 지폐로 알아보는 튜링의 생애와 업적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23편 50파운드 지폐로 알아보는 튜링의 생애와 업적

Editor! 2021. 6. 23. 17:54

오늘, 6월 23일은 천재 수학자로 유명한 앨런 매시슨 튜링의 생일입니다. 110년 전인 1912년에 태어났죠. 튜링 선생님의 탄신일을 기념해 수요 수학 에세이는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룹니다. 마침, 영국의 50파운드 지폐도 튜링의 초상을 삽입했다고 하는군요. 함께 읽어 보시죠.


오늘부터 영국에서는 새로운 50파운드 지폐가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5만 원권 지폐를 만들 때 그 안에 어떤 인물을 넣을지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그 나라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인 셈이니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국은 새 50파운드 지폐에 누구의 얼굴을 새겼을까? 바로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앨런 튜링은 뛰어난 업적에 더해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 해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이력과 비극적인 죽음으로 널리 알려진 수학자다. 2014년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앨런 튜링 역할을 맡아 연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나오기도 해 교과서에 나오는 옛날 수학자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튜링 테스트같은 용어를 통해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러다 2012년에 수학자 앨런 튜링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나는 출장으로 유럽에서 체류하고 있었다. 때마침 2012년은 앨런 튜링의 탄생 100주년이었고, 영국을 중심으로 앨런 튜링에 관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언제나 기사 아이템을 생각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일단 50주년, 100주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유혹에 저항하기 어렵다. 하물며 앨런 튜링? 오히려 기사를 안 하고 넘어가기가 어려운 사람 아닌가? 마침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나는 튜링이 활동했던 연구소와 대학 등을 탐방하고, 각종 행사 현장을 돌아보고, 튜링의 제자와 친척을 인터뷰하는 등 다양하게 취재해서 특집 기사를 쓸 수 있었다.

 

1928년경 앨런 매시슨 튜링의 모습. 위키피디아에서.

 

튜링의 생애

 

튜링은 1912623일에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 줄리어스 매티슨 튜링(Julius Mathison Turing)과 어머니 에설 사라 튜링(Ethel Sara Turing) 사이에서 태어났다. 앨런 튜링의 사후 사라 튜링이 쓴 아들의 전기가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12년에 새로운 판본이 발간되었는데, 이 책을 보면 튜링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를 볼 수 있다. 나도 구경 삼아 들어갔던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한 권 구입했다.

 

앨런 튜링의 부계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부인 존 로버트 튜링(John Robert Turing)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졸업 시험인 수학 트라이포스에서 2등급 학위 중 11위를 기록했다. 재미있게도, 존 튜링의 아들, 즉 앨런 튜링의 아버지는 수학적 재능이 전혀 없었다. -11을 곱하면 +1이 나온다는 정도의 내용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인 사라 튜링은 엔지니어의 딸로 대학 교육까지 받았고, 부모님을 따라 인도 마드라스로 떠나기 전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사라 튜링에 따르면, 튜링은 어린 시절부터 영민함을 드러냈다. 아주 영리했고, 새로운 단어를 잘 기억했으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똑바로 말을 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아들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아마 커서 발명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사라 튜링만이 아니었다. 어린 앨런 튜링을 돌봤던 유모도 훗날 튜링은 함께 놀다가 은근슬쩍 져주면 금세 눈치를 챘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학생 시절의 앨런 튜링에 대한 사라 튜링의 이야기를 보면 독창적이라거나 독립적이라는 식의 묘사를 흔히 볼 수 있다. 열다섯 살 때는 어머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책을 읽고 요약본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이때도 단순 요약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적었다. 이 일화는 10대의 튜링이 과학자와 수학자들의 연구에 놀랍도록 해박했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어려운 수학에 몰입해 있으나 그 나이 때 해야 할 기초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몇몇 교사의 평가와도 맞아떨어진다.

 

물론 어린 시절에 영재였다가 혹은 영재라고 부모가 착각했다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이 역시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회고인 만큼 살짝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훗날의 업적을 보면 튜링이 어려서부터 영리했던 건 사실인 것 같다.

 

 

블레츨리 파크에서 튜링이 사용했던 사무실을 보존해 놓았다. 튜링은 자신의 머그 컵을 난방기에 쇠사슬로 묶어 놓는 기벽이 있었다. 사진: Ⓒ 고호관.

 

케임브리지에 진학하고 성인이 된 뒤 튜링의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36년에는 컴퓨터의 기본 원리가 된 개념이 담긴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고, 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할 방법을 연구해 암호 해독기를 만들었다. 전후에는 런던의 국립 물리학 연구소에서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라는 컴퓨터를 설계했고, 맨체스터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생물의 형태에 관해 연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에 불법이었던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호르몬 요법을 받다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튜링이 연구한 생명체의 패턴 형성을 알기 쉽게 해설한 필립 볼의  『자연의 패턴』. 사진:  Ⓒ㈜사이언스북스

 

 

지폐로 기념하는 수학자 튜링

 

튜링 사망 55년 뒤인 2009년 영국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앨런 튜링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뒤인 지금은 지폐에 얼굴을 새겨 기념하기로 했다. 튜링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는 튜링의 생일인 623일부터 쓰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직접 손에 넣을 수는 없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견본을 볼 수 있다. 지폐에는 튜링의 얼굴이 있는 건 당연하고, 이곳저곳에 튜링과 관련된 도안이 있다. 이를 통해 영국이 튜링의 어떤 업적을 기렸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먼저 지폐 한가운데에는 앨런 튜링의 초상이 담겨 있다. 튜링을 찾아보았을 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 바로 옆에는 의미를 알기 어려운 기호로 만든 표가 있다. 이 표는 튜링이 1936년에 발표한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나온 것이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따온 것인지 알아보려고 논문을 찾아보았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인지라 논문의 의미 정도만 살펴보는 게 나을 듯하다.

 

1928년 독일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결정 문제라는 것을 제시했다.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때 이 문제를 푸는 알고리듬이 있으면 이 문제는 결정 가능하다고 한다. 힐베르트는 수학의 형식 체계 안에서 모든 문제는 결정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튜링은 이 논문에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 증명 과정에서 튜링이 알고리듬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계산을 할 수 있는 자동 기계라는 가상의 장치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흔히 튜링 기계혹은 튜링 머신이라고 불린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배경에 놓인 기계는 튜링이 국립 물리학 연구소에서 설계한 컴퓨터 ACE. ACE는 튜링 머신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로,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과 달리 프로그램 내장형이다.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고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배경에 언뜻 보이는 도안은 독일군 암호 해독에 쓰인 (Bombe)’의 개념도다.

 

 

현재는 박물관이 된 블레츨리 파크에 있는 암호 해독기 ‘봄’.  사진:  Ⓒ고호관.

 

튜링의 오른쪽 어깨 부분에는 물결치는 종이 테이프 같은 곳에 2진수로 된 수가 쓰여 있다. 2진수를 10진수로 바꾸면 19120623이 된다. 튜링의 생년월일이다. , 가슴 부분에는 튜링의 서명과 1949년에 타임스와 인터뷰하며 했던 말이 쓰여 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일의 맛보기에 불과하며 미래의 그림자일 뿐이다.” 앞으로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 거라는 이야기다.

 

반대편에는 여왕의 초상이 있다. 그리고 한쪽 옆에 재질은 알 수 없지만, 금색으로 된 회로 같은 문양이 있다. 이것은 마이크로칩을 나타낸다. 튜링이 컴퓨터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나타낸 듯하다. 그리고 마이크로칩의 위와 아래에는 해바라기 모양의 패턴이 보이는데, 이는 튜링이 수리생물학에 관심을 갖고 생물의 형태 발생을 연구했던 사실을 상징한다.

 

앨런 튜링의 초상이 들어갈 영국의 50 파운드 지폐 도안. 출처: Bank of England.

 

우리나라 수학자가 지폐에 들어갈 날은?

 

남의 나라 돈이라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쓸 일은 없겠지만,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상징을 찾아보니 재미가 있다. 호기심에 영국의 다른 지폐에는 어떤 인물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정치가 윈스턴 처칠, 작가 제인 오스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증기 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 등 다양한 인물이 있었다.

 

우리나라 지폐를 장식한 인물 역시 뛰어난 위인이지만, 두 명은 유학자에 한 명은 왕, 나머지 한 명은 예술가다. 물론 세종 대왕은 왕이었지만, 과학과 수학의 발전에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 상당한 소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 대왕의 초상이 담긴 1만 원짜리 지폐에 혼천의나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과학 유물이 도안으로 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폐에도 근현대의 과학자나 수학자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렇게 되려면 물론 온 국민이 인정할 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나와야 한다. 혹시나 해서 다른 나라에는 수학자가 새겨진 지폐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과거 독일은 프리드리히 가우스를 10마르크 지폐에 쓴 적이 있고, 스위스에서는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10스위스프랑에 사용했다. 아이작 뉴턴 역시 1970~1980년대에 영국의 1파운드 지폐에 쓰였다. 이라크는 이븐 알하이삼을, 프랑스에서는 르네 데카르트와 블레즈 파스칼을 넣었다.

 

아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력이 역사상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굳이 수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다면, 우리나라 지폐에 들어가는 인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초상이 담긴 독일의 10마르크 지폐.  www.worldbanknotescoins.com에서.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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