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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29편 소설과 수학의 잘 된 만남

Editor! 2021. 11. 10. 11:35

소설 좋아하세요? 수학을 곁들인 소설은 어떤가요. “저 둘은 안돼! 잘못된 만남이야.”라고 생각하셨을 지금, 바로, 당신, 주목! 이번 고호관의 수학 에세이에서는 수학과 소설의 ‘잘’ 된 만남을 지켜봐 주세요. 주제와 배경에 수학이 녹아 들어간 자연스러운 만남부터, 최신 수학 이론을 소재로 삼고 수학자가 전면 등장하는 대담한 만남까지. 정교하고 완벽한 논리의 학문인 수학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유자재로 뛰어노는 소설의 오묘한 매력에 스며들지도 몰라요.


 

 

수학이 등장하는 이야기

 

예전에 만들었던 수학 잡지 초창기에 1년 정도 문학 작품 속의 수학을 찾아보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원래 소설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비교적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점이라면 독자층이 어린이다 보니 고를 수 있는 소설에 제약이 좀 있었다. 수학이 등장하거나 수학을 다루는 소설은 적지 않지만, 기왕이면 아이들이 찾아 읽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해야 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수학 소설은 이야기 자체보다 수학을 가르치는 게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이야기 속에서 수학 개념이나 원리 따위를 은근슬쩍 설명하는 식인데,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않거나 억지로 수학과 융합을 시키려다 이야기가 재미없어지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소설을 활용하는 접근법을 좋아하지 않지만, 실제 효과는 있는지 교육 현장에서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학을 소재로 삼은 소설

 

수학 개념이나 원리, 혹은 수학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많다. 수학을 소재로 삼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면 아마 에드윈 애벗(Edwin A. Abbott)플랫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플랫랜드는 차원을 다룬 이야기이다. 수학에서 말하는 차원은 공간 속에서 서로 직교하면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수를 말한다. 0차원은 점이다.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고, 거리나 부피 따위도 없다. 1차원은 선으로, 앞이나 뒤로 움직일 수 있다. 2차원은 면으로, 양옆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3차원은 우리가 사는 공간으로 위와 아래가 더 있다. 4차원부터는 방향이 하나씩 더 생기는데, 여기서부터는 머릿속으로 상상하기가 어렵다.

 

 

출간 당시 『플랫랜드』 표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플랫랜드2차원 세상이다. 이곳에 사는 도형들은 직선이나 다각형이다. 다각형의 변이 많을수록, 즉 원에 가까워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급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보고 구분하는지, 집의 구조는 어떤지 등을 묘사하는데, 꽤 흥미롭다.

 

그냥 이 정도로만 끝나면 교육을 위한 수학 소설에 그쳤을 법도 한데 여기에 새로운 세상(3차원)을 알리려는 주인공과 이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줄거리와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한 풍자를 가미하면서 이 소설은 오늘날 수학 소설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전이 되었다.

 

플랫랜드말고는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본명은 찰스 도지슨(Charles L. Dodgson)이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금세 떠오른다. 플랫랜드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여기에도 수학 개념에 관한 은유가 풍성하게 들어 있어 설명을 듣지 않고는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걱정스럽다면 수학 저술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주석을 단 판본으로 읽어 보는 것도 좋다.

 

또 어떤 것들이 있나 해서 찾다가 알렉스 카스만이라는 사람이 수학이 등장하거나 수학 개념을 다루는 소설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현재 1,459개 작품이 목록에 올라 있는데, 영어로 썼거나 번역된 작품 위주라 세계적으로는 빠진 것도 많을 것이다.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M. Dostoevsky)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 하워드 러브크래프트(Howard P. Lovecraft)크툴루의 부름처럼 익숙한 작가나 작품의 이름이 종종 눈에 띈다. 내가 읽어 본 것도 몇몇 있었는데, 미루어 보니 수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도 일단 목록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수학 SF는 얼마나 있을까

 

그중에서 더욱 내 관심을 끄는 건 SF. 흔히 과학 소설이라고 번역하는데,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아무래도 과학이 중심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과학이 어떻게 쓰이냐가 중요하다. 맨 앞에서 언급한 수학 소설처럼 과학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쓰는 소설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 개념을 다루면 과학 소설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 소설의 목적은 과학 지식을 알려 주거나 과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과학 소설에서 과학은 신기한 현상을 현실적으로 구축하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와 인간의 변화를 끌어내는 등 다양하게 쓰인다.

 

수학이 이런 역할을 하는 소설이 내 관심사에 더 가깝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학이 단순히 도구로 쓰이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등장인물이 덧셈, 뺄셈만 해도 어쨌든 수학을 활용하는 셈이니까. 우주여행을 하는 도중에 어디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지연이 어떻고 하는 계산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현실성을 더하기 위한 기본적인 활용에 그친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떤 수학 이론이 이야기 전체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게 플랫랜드처럼 차원을 다루는 이야기일 것이다. 일단 허버트 웰스(Herbert G. Wells)타임머신이 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타임머신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시간이 공간의 다른 세 차원(방향)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식은 시간 축을 따라 움직이고, 이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의 단편 소설 -그리고 그는 비뚤어진 집을 지었다도 차원이 주요 소재다. 어떤 건축가가 4차원 입방체(테서랙트)3차원 전개도와 같은 모습의 집을 짓는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면서 집이 접혀 버린다. 집을 보러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평소 접하던 것과 다른 이상한 공간에서 헤매다 간신히 탈출한다. 지진 때문에 전개도가 테서랙트로 접혀 버린 것이다.

 

 

테서랙트의 3차원 전개도. Ⓒ Robert Webb.

 

 

이처럼 차원을 소재로 삼는 이야기는 SF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보다 고차원에 사는 생명체를 등장시켜 우리를 3차원 생명체를 만나 어리둥절한 2차원 생명체와 같은 꼴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최신 수학을 소재로 삼은 수학 소설

 

대중적으로는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지만, 수학의 최전선에 있는 이론을 소재로 삼은 소설도 종종 찾을 수 있다.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 소설 영으로 나누면이 그런 이야기다.

 

 

다비트 힐베르트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독일의 수학자다.

 

 

저명한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1900년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해결 문제 23가지를 제시했다. 이 목록에 두 번째에 올라가 있는 건 산술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30여 년 뒤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다. 이 정리에 따르면 산술의 공리로는 스스로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영으로 나누면에는 산술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낸 수학자가 등장한다. 그 예로 12, 혹은 어떤 임의의 두 수를 골라도 그 둘이 같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수학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 사람은 혼란에 빠지고 제정신마저 잃을 정도다.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수학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이상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울 방법은 없어 보인다.

 

가상의 이론을 도입할 때도 많다. SF 작가는 흔히 실제가 아닌 가상의 과학을 만들어 사용한다. 타임머신, 초공간을 통한 워프 항법, 물질 이동 같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과학 기술 같은 게 여기에 해당한다. SF 소설을 읽다 보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표현으로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이 만들고, 다른 여러 작가가 가져다 써 유명해진 초광속 통신 장비인 앤서블도 가상의 새로운 수학을 바탕으로 만든 장치다. 따지고 보면, 어떤 새로운 과학 기술이든 바탕에 수학이 없을 수는 없으니 가상의 수학이 깔려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만든 가상의 학문인 심리역사학도 유명하다. 이름만 보면 수학과 관련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는 사회학과 역사, 수리 통계학을 융합해 인류의 집단적인 행동을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사실 더 많은 사례를 들고 싶은데, 읽어 본 작품 중에서만 고르다 보니 본격적으로 소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수학자이자 SF 작가인 루디 러커(Rudy V. B. Rucker)나 하드 SF로 유명한 그렉 이건(Greg Egan)의 몇몇 작품이 수학 이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찾아서 읽어본 뒤에 기회가 되면 소개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건 SF가 상상력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듯이 수학을 다룬 소설이 수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다. 과학과 달리 첨단 수학의 영역은 일반인이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기자, 수학동아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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