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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편 물고 뜯기는 수학계 라이벌 싸움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32편 물고 뜯기는 수학계 라이벌 싸움

Editor! 2022. 1. 26. 16:33

세상에는 수많은 라이벌 관계가 있습니다. 만화 영화 속 톰과 제리, 음악계에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축구계에서는 메시와 호날두, 연예계에서는 유재석과 강호동까지. 각 분야마다 서로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경쟁 구도가 존재하는데요. 이번 고호관의 수학 에세이는 수학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라이벌 수학자들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수학의 세계는 냉혹했다. 원조 싸움은 물론 시기와 질투, 배신과 비난이 난무하는 살벌한 세계 속에서 수학자들은 자신의 이론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각축전을 벌여 왔다.

 

지난 에세이(9수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링크)에서 요즘 수학은 보통 팀플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으면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경쟁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경쟁은 그 분야의 발전에 도움이 되며 바깥에서 관찰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사실 경쟁이 있는 편이 더 재미있다. 메시와 호날두가 있어서 재미있는 것처럼.

 

물론 경쟁도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독이 될 때도 있다. 동료 수학자들의 공격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수학자 역시 사람인지라 갈등의 양상은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중요한 내용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놓고 다투기도 하고, 어떤 내용에 관해 의견이 서로 달라 치고받기도 한다. 아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싸우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둘러싼 대결

 

수학사에서 유명한 갈등 사례를 찾아보자. 일단 타르탈리아(Tartaglia)’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니콜라 폰타나(Nicola Fontana)와 지롤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가 있다. 두 사람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폰타나는 어린 시절에 프랑스 병사의 칼에 맞아 턱에 부상을 입어 죽을 뻔했다.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후유증으로 평생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학자끼리 서로 문제를 내면서 대결하는 일이 많았다. 이기면 자신의 수학 실력을 만천하에 알려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출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타르탈리아와 카르다노의 갈등은 대략 다음과 같다.

 

(왼쪽)타르탈리아와 (오른쪽)카르다노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살았던 수학자이다.

 

당시에는 3차 방정식을 푸는 게 쉽지 않은 문제였는데, 타르탈리아는 그 해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역시 해법을 알고 있던 수학자 스키피오네 델 페로(Scipione del Ferro)의 제자와 대결을 벌여 승리했다. 이 일로 아마 명성을 꽤 얻었을 것이다. 그러자 지롤라로 카르다노가 찾아와 그 해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타르탈리아는 비밀로 한다는 조건으로 카르다노에게 해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몇 년 뒤 카르다노는 페로의 해법을 접하게 되었고, 그게 타르탈리아의 해법보다 더 빨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타르탈리아와 한 약속을 깨고 그 내용을 책으로 내 버렸다. 타르탈리아는 이에 분노하며 카르다노를 비난했고, 카르다노는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Lodovico Ferrari)를 대신 내세워 타르탈리아와 수학 결투를 벌였다. 그 결과 페라리가 승리하면서 카르다노는 명성과 수입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자세한 정황을 알기는 어렵지만, 이런 싸움 끝에 결국 일반적인 3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지금 보면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다. 어떤 진전이 있으면 결투보다는 논문 등으로 서로 결과를 공유하고 거기서 발전하는 요즘이었다면, 과정이 훨씬 더 평화롭지 않았을까?

 

 

수학사를 바꾼 자존심 싸움

 

이보다 좀 더 유명한 사례로는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과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있다. 두 사람은 독자적으로 미적분을 만들었는데,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영국과 대륙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상당히 오랫동안 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니 앞선 타르탈리아와 카르다노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다.

 

(왼쪽)아이작 뉴턴과 (오른쪽)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각자 다른 방식을 사용해 미적분법을 개발했다.

 

 

미적분을 먼저 개발한 건 뉴턴이었다. 뉴턴은 1666년경에 미적분을 만들었고, 라이프니츠는 그보다 약 10년 뒤에 만들었다. 하지만 출판은 라이프니츠가 빨랐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든 미적분의 방식이 서로 달랐다. 뉴턴은 운동 개념을 이용했다면, 라이프니츠는 함수를 이용했다.

 

이후 뉴턴을 지지하는 영국 수학자와 라이프니츠를 지지하는 유럽 대륙의 수학자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다. 문제는 영국에 있었다. 대륙의 수학자들이 미적분을 점점 정교하게 발전시켰던 반면 영국 수학자들은 예전처럼 기하학과 엮어 설명하기를 고집했다. 그 결과 뉴턴의 업적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했고, 영국 수학계가 오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그 세월이 거의 150년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영국에서도 라이프니츠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젊은 수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적극적으로 대륙의 수학을 받아들였다. 예전에 대학원에서 수학사를 전공하던 한 선배가 이 일을 가지고 그때 영국 수학은 미개했다.”라며 고개를 젓던 일이 떠오른다. 자존심 싸움으로 한 나라의 수학이 100년 이상 뒤처지는 일이 생겼으니 상당히 무거운 결과를 낳았던 갈등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유독 질투심이 많았던 수학자로는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가 떠오른다. 이쪽은 잘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예 가족과 갈등을 빚었던 사례다. 베르누이 가문은 스위스의 수학 명가다. 17~18세기에 3대에 걸쳐 수학자 8명을 배출했고,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베르누이라는 이름이 붙은 개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수학자가 된 세대는 야코프 베르누이(Jakob Bernoulli)와 요한 베르누이 형제다. 야코프 베르누이는 요한보다 10살 이상 많은 형으로 먼저 수학자가 되었고, 동생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런데 요한이 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요한이 형의 지위를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왼쪽)야코프 베르누이와 (가운데)요한 베르누이는 10살 차이나는 형제였고, (오른쪽)다니엘 베르누이는 요한의 아들이었지만, 요한은 두 사람 모두에게 질투와 시기를 느꼈다.

 

이후 둘은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특히 최단 강하 곡선 문제를 풀면서 큰 갈등을 겪었다. 최단 강하 곡선 문제란 곡선 경사로를 따라 공을 굴릴 때 가장 먼저 바닥에 도착하는 경사로를 찾는 문제다. 언뜻 생각하면 거리가 가장 짧은 직선 경사로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답은 사이클로이드(cycloid)라고 하는 곡선이다. 둘 다 답은 맞았지만, 푸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게다가 요한은 야코프의 식을 도용하기도 했다.

 

갈등을 야코프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종종 있는 형제들 사이의 질투심이니 하겠는데, 형이 죽은 이후 요한의 질투 대상은 제 아들인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에게 돌아갔다. 비슷한 시기에 아들이 자신과 같은 분야의 연구 결과를 내놓자 자신이 몇 년 더 먼저 한 것처럼 날짜를 위조해 공로를 독차지하려 했다고 한다. 아들에게까지 이럴 정도면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핍박받는 설움

 

1845년에 태어난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는 다른 수학자들의 공격을 받아 정신 질환까지 앓았다. 공격의 대상은 칸토어가 주장한 무한 개념이었다. 칸토어는 집합론이라는 분야를 통해 무한을 이야기했는데, 그 당시에는 아주 파격적이었다. 사실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금 봐도 꽤 놀랍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배운 무한만 알고 있다가 무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고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자연수의 집합과 짝수의 집합은 둘 다 무한하다. 그런데 만약 이 둘의 크기를 비유한다면 어떨까? 자연수에는 홀수도 있으니 자연수 집합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잠깐. 그런데 둘 다 끝없이 뻗어 나가니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어떤 무한 집합보다 큰 무한 집합의 개념을 주장해 당대 많은 수학자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칸토어는 자연수 집합과 짝수 집합의 크기가 같다는 사실을 보였다. 자연수의 수와 짝수의 수는 같다는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자연수와 유리수의 수도 같다. 하지만 유리수와 무리수로 이루어진 실수는 자연수보다 많다. 똑같이 무한하다 해도 실수 집합이 자연수 집합보다 더 크다. 그러니까 어떤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크다는 소리다. 칸토어는 어떤 무한 집합이 있어도 더 큰 무한 집합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당대의 다른 수학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쥘앙리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 같은 저명한 수학자도 그랬고, 심지어는 칸토어의 스승인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조차 자신과 철학이 달라 대놓고 비난했다. 스승이라는 사람이 제자를 가리켜 협잡꾼이라느니 타락했다느니 하면서 비난하고 대학교에 자리를 잡는 일까지 방해하니 칸토어의 마음이 좋았을 리가 있을까. 결국 칸토어는 우울증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하기를 반복했고, 말년에는 망상에 집착하는 모습까지 보이다가 세상을 떠났다.

 

현대 수학계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학계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여전히 경쟁은 존재할 것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Andrew Wiles)도 자신이 그 연구를 한다는 걸 숨겼다고 하지 않은가. 아마 시간이 지나면 수학사 연구자들이 어떤 협력과 경쟁이 있었는지 정리해서 보여 줄 것이다. 단지 협력과 경쟁 모두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니만큼 어느 쪽이든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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