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35편 외계인이 수학을 한다면?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35편 외계인이 수학을 한다면?

Editor! 2022. 4. 20. 10:59

2019년 11월에 시작했던 고호관의 수학 에세이가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너무 아쉽다고요? 걱정 마세요. 지난 에세이들을 모두 모아 더 알차고 재밌는 구성으로 엮은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편의 주제는 “외계인”입니다. SF 작가이기도 한 고호관 선생님은 외계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요. 외계인이 있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데, 외계인이 수학까지 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함께 읽어 볼까요?


외계인이 수학을 한다면 인간의 수학과는 얼마나 다를까?

 

SF를 쓰거나 읽다 보면 외계인에 관해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즐기는 입장에서는 외계인이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등장하면 재미가 없다. 아무래도 외계인이 인간과 비슷하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그렇게 나온다면 그건 작가가 외계인 창조에 별로 공을 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창작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그럴듯한 외계인을 창조해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생김새부터 사는 환경, 나아가서는 생화학적 기반까지도 어느 정도 생각해야 하며, 인간과 교류하게 하려면 생각할 게 참 많아진다.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감각 기관은 어떤 게 있는지, 번식은 어떻게 하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윤리를 가지고 있는지 등등. 한 예로 나는 예전에 동족을 죽여서 먹는 게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외계인을 만들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써 본 적이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모든 것이 외계인에게는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만약 수학 개발한 외계인이 있다면 그 수학은 어떤 모습일까?

 

 

외계인은 우리와 다른 숫자와 수학 기호, 그리고 표기법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표현하는 방법만 다를 뿐 수학은 같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해 본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도서관에서 론 허버드(L. Ron Hubbard)라는 SF 작가의 배틀필드 어스(Battlefield Earth)라는 소설을 빌려 읽었다.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로도 나왔다가 폭삭 망했다.) 외계인이 점령한 지구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가 반란을 일으키며 다시 일어서는 내용이었는데, 중간 어디쯤 주인공이 외계인의 기술을 훔쳐 배우는 장면이 있다. 그때 이 외계인의 수학은 11진법 기반이라는 말이 나온다. 손가락이 양쪽을 합해 11개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10진법 수 체계를 쓴다. 과거 어떤 곳에서는 12진법이나 60진법을 쓰기도 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건 10진법이다. 흔히 우리가 10진법을 쓰는 건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숫자 세기를 처음 배울 때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아 가며 배우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이야기다. 따라서 손가락이 11개인 외계인이라면 11진법을 쓰리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외계인도 피타고라스 정리를 알까?

 

그런데 진법이 다르다고 수학이 크게 다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헷갈리기야 하겠지만, 달라지는 것 기껏해야 산수 정도가 아닐까? 십진법으로 쓴 피타고라스 정리의 하나인 3^2+4^2=5^2를 이진법으로 바꾸어 11^10+100^10=101^10라고 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직각 삼각형의 빗변 길이의 제곱은 짧은 두 변의 길이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내용 자체는 그대로다. 단지 어떻게 표현하는지만 다를 뿐이다.

 

외계인이라면 당연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숫자, 수학 기호를 쓸 것이다. 우리도 근현대를 거치며 표기법이 통일되어서 그렇지, 예전에는 서로 다른 숫자와 기호를 썼다. 그러니까 외계인의 수학이 어떻게 다를 것이냐는 질문은 기호나 표기법에 관한 게 아니라 그 내용에 관한 것이다. 외계인이 어떤 진법을 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이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학이 발견이냐 발명이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그 답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방금 예로 든 피타고라스 정리의 경우 그 내용은 우리 인류의 존재와 무관하다. 인류가 없었을 때도 직각 삼각형의 빗변 길이의 제곱은 짧은 두 변의 길이 제곱의 합과 같았고, 인류가 멸망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각 삼각형을 안드로메다 은하로 가져가도 여전히 성립한다.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표현을 어떻게 하든 우리가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부르는 내용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평면 위에 있는 직각 삼각형의 본래 성질인 것이다.

 

이와 같은 수학, 본래 존재하는 성질을 우리가 찾아서 우리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용하는 수학이라면 외계인이 쓴다고 해서 달라질 이유는 없다. 만약 어떤 외계인이 직각 삼각형의 성질을 연구해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알아냈다면, 겉모습은 달라도 우리가 아는 수학이다. 만나서 , 너도 그거 알아?”라고 하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수학이다. 그와 비슷한 다른 공식, 혹은 소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수의 성질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외계인이 살고 있는 행성과 환경에 따라 그들의 수학은 인간의 수학과 완전히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라고 해도 외계인과 인간의 수학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환경이나 역사의 발전 방향, 어떤 우연한 계기 등의 이유로 본래 존재하는 수학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발견하고 활용하는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외계인은 상당히 오랫동안 직각 삼각형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마찬가지로 역사가 지금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면, 지금 우리가 배우고 연구하는 수학도 얼마든지 달라졌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수학은 자연에 널려 있는 수많은 규칙 중에서 어쩌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알게 된 것에 불과하다.

 

한편 그렇지 않아 보이는 내용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에는 여러 도구가 있는데, 그중에는 인류가 발명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로그(log)는 큰 수를 쉽게 나타내기 위해 만든 도구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꼭 쓰지 않아도 된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외계인은 로그를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와 외계인이 이런 도구를 제각기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면, 단순히 기호와 표현법만 번역해서는 상대방의 수학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도구까지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수학의 가능성

 

이것도 우리와 외계인이 어느 정도 비슷한 존재, 말은 통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생각을 공유할 수조차 없는 외계인이라면 어떨까? 아까 손가락 수와 진법 이야기를 했는데, 만약 손가락이 아예 없는 외계인이라면 어떤 진법을 쓸까? 손가락만이 아니라 몸에 수를 세는 데 쓸 수 있는 부속지가 전혀 없는 무정형의 아메바 같은 외계인이라면? 어떤 진법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변의 물체를 이용해 수 세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 같다.

 
 
SF 소설 『솔라리스』에는 행성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바다가 지적 생명체로 나온다.

 

그보다 더 이질적인 외계인을 생각해 보자. 사는 환경이나 생리가 완전히 다른 외계인을. 폴란드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솔라리스(Solaris)에는 행성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바다가 등장한다. 이 바다는 사실 지적 생명체다. 인류의 탐사대는 이 바다와 의사소통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 어떤 공통분모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이런 거대한 바다 형태의 생명체가 수학을 발전시켰다면, 그 수학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어찌어찌 말이 통했다고 해도 솔라리스의 바다와 인류는 1, 2, 3부터 시작하는 기본적인 수학 개념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SF 작가들이 상상한 외계 생명체는 종종 이처럼 매우 기괴하다.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성간 가스에서 태어나 자란 생명체는 어떤 수학을 발전시켰을까? 우리보다 훨씬 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수학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지만, 타원 기하학과 쌍곡 기하학에서는 이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 수학은 특정 공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공리는 증명할 필요 없이 참으로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명제를 말한다. 공리가 바뀌면 수학의 내용도 바뀔 수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참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타원 기하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와 보고 느끼는 게 전혀 다른 외계인이라면 우리와 전혀 다른 공리에 바탕을 둔 수학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을 만났을 때 소통하기에 가장 좋은 언어는 수학이라는 말이 있다. 수학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수학이 우리의 수학과 전혀 다르다면 수학으로 소통한다는 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 이해하기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쩌면 아예 이해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수학으로는 전달할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다. 수학을 이용해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 같은 일반인은 아마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먹고 사나요?”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을 텐데, 그건 수학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수학자는 수학을 하는 외계인을 만나면 대단히 흥분할 게 분명하다. 새로운 수학을 접할 수 있어서, 행여나 인류가 풀지 못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실마리나 해답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신이 날 것이다.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도 사실 살짝 궁금하긴 하다.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기자, 수학동아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등을 옮겼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수학이 나를 불렀다』 [도서 정보]

인도의 수학 천재 라마누잔

 

『365 수학』 [도서정보]

대한수학회 수학 달력 × 네이버 지식백과 365일 수학을 한 권에!

 

『자연의 패턴』 [도서정보]
우리 시대의 과학 큐레이터가 엄선한 형태학 미술관을 탐험하라

 

『생명의 수학』 [도서 정보]

수학과 생물학의 황홀한 크로스오버!

 

『세상 모든 비밀을 푸는 수학』 [도서정보]
재난 예측에서 온라인 광고까지 미래 수학의 신세계

 

『수학의 파노라마』 [도서정보]
수학을 다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비주얼 가이드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도서정보]
위대한 방정식에 담긴 영감과 통찰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