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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을 만나다

Editor! 2010. 7. 9. 09:18

<기획회의> 275호에 실린 사이언스북스 한 편집자의 글, "달빛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을 5회에 걸쳐서 블로그에 올립니다. 문과 출신(!)으로 과학 편집자의 길을 걷게 된 한 편집자의 이야기, 재밌게 봐주세요. 
  • 서울문고의 추억

  • 리처드 파인만을 만나다

  • 과학해서 행복합니다 

  • 살아 있어 줘서 고마운 

  • 달이 내려다본다

"서울문고의 추억"편에 이어서...

이무렵 서울문고를 돌아다니다 집어든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솔, 1987년)도 나를 과학 편집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왜냐하면 사이언스북스에서 다시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2000년)가 나왔으니 말이다. 천재일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하고 발랄한 인간이었던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사랑, 열정에 그의 책을 읽는 누구라도 반할 법했다. 원자 폭탄을 만든 과학자면서 그림 전시회도 열고 드럼에도 조예가 깊다니! 요즘에야 아리영 정도의 드라마 주인공이라면 흔히 발휘하는 능력일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적 내가 엄청나게 감명 받은 책임에는 틀림 없다.

고등학교 1학년말, 문과반과 이과반이 나뉘고 반 배정이 이미 끝난 시점까지, 나는 주변 어른들을 덩달아 고뇌의 늪에 빠트리면서 문과와 이과 가운데 진로를 고민했다. 어느 길을 택하든 꿈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2학년 1학기 첫날이 되고 말았다. 결국 당시 즐겨 읽던 C. S. 루이스 대 콘라트 로렌츠의 대리전으로 정했는데 C. S. 루이스가 승리를 거두어 문과반에 남기로 결단을 내렸고 어른들의 인내심 시험도 (비록 당분간만이라는 여운을 남기기는 했지만 일단)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둘 사이에서 열심히 고민해 본들 나는 어차피 책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는 나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뛰어 봤자 벼룩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는 실컷 책을 읽어 댄 끝에 마침내 책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한편 앞선 대결에서 C. S. 루이스에게 밀린 콘라트 로렌츠는 입사 첫해에 다시 나의 인생에 등장했다. 옛정을 생각해서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 2006년)를 진행하겠다며 나섰지만 어렸을 적 좋아하던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오늘, 1993년)와의 괴리감에 문득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가볍지 않은 내용에 한층 덜 가벼운 무게감, 그에 따른 기다란 인명 색인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과학해서 행복합니다'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