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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데이터가 온다: 『숫자 한국』 박한슬 작가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고생 끝에 데이터가 온다: 『숫자 한국』 박한슬 작가 편 ①

Editor! 2025. 2. 21. 11:55

포스트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한때 미세 먼지가 사회적 이슈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때 미세 먼지는 중국에서 온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생선을 밀폐 공간에서 구워 댄 탓이었을까요? 최근 강력 사건만 발생했다 하면 “조현병 환자”라는 단어가 법칙처럼 등장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학 병원 약사 출신으로 통계학을 전공한 “글 짓는 약사” 박한슬 작가님의 신간 『숫자 한국』에 그 답이 있습니다. 미세 먼지 지수, 노조 조직률, 합계 출산율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20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숫자의 힘과 숫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말하는 책입니다. 이번 과학+책+수다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큰 변화를 앞둔 지금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박한슬 작가님께 더 자세하게 들어 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모두 2편으로 발행됩니다.


과학++수다

고생 끝에 데이터가 온다

숫자 한국박한슬 작가 편

 

사이언스북스(이하 SB): 과학++수다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숫자 한국의 저자 박한슬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에서 약의 작용 원리를 쉽게 풀어 설명하셨고, 바이오 투자의 정석에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이오 산업을 분석하셨습니다. 또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에서는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다루셨는데요. 이번 숫자 한국은 이전 저서와는 다소 결이 달라 보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숫자 한국』 출간 기념 인터뷰 중인 박한슬 작가.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박한슬: 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지만, 꼭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 주제들을 책으로 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는 약의 작용 원리를 좀 쉽게 써서 알리려 했고, 바이오 투자의 정석은 당시 신라젠 사태가 터지면서 많은 개인 투자자가 바이오 주식으로 손해를 보았던 일을 계기로, 바이오 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쓴 책입니다.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2020년 의사 파업을 겪을 때 왜 의사들이 저렇게 분노하는지를 비()의료계 시민들이 잘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저 사람들 돈 잘 버는 직업인데 왜 파업하지?” 그래서 그 행동 배경에 단순한 이익 문제가 아니라 우리 노후의 의료 지형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쓴 거였고요.

제가 사실 약사 출신이지만, 통계학으로 석사를 했습니다. 꽤 드문 이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왜 통계학으로 석사를 했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게 숫자는 평생 동안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많은 숫자가 사용되고 중요하게 취급되는데도 정작 숫자를 정확하게 읽고 그 맥락을 해석하는 법을 알려 주는 사람이 드문 것 같더라고요. 숫자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요즘, 우리 사회가 숫자 읽는 법을 알게 되면 소모적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숫자 한국을 쓰게 됐습니다.

SB: 숫자 한국이 원래 중앙일보》 「박한슬의 숫자 읽기연재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네요. 그때도 담당 기자님과 방향을 미리 정하고 시작하신 건가요?

 

박한슬: 박한슬의 숫자 읽기연재를 시작할 때는 신문 하단의 가장 작은 지면 중 하나를 주시며 그림이 포함된 짧은 칼럼으로, 그림은 저자가 직접 준비해 주시면 좋겠다.” 정도로만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다루는 칼럼에는 그림보다 그래프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직접 만들어 드렸죠. 그랬더니 중앙일보측에서 회사 원칙상 외부 제작 그래프는 게재할 수 없고, 대신 엑셀 파일이나 원자료를 제공하면 내부에서 직접 그래프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자료를 드리면 매번 만들어 주실 수 있겠냐고 하니 OK 하셔서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연재된 모든 칼럼이 책에 실린 건 아닙니다. 연재 당시 시의성에 초점을 맞춘 칼럼 중 지금은 시효가 지난 것들은 제외했습니다. 대신 이번 책에는 연재 당시보다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를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SB: 책 특성상 내용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핵심인데, 연재나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특히 중점을 두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한슬: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자료 찾기였습니다. 아무런 자료 제시 없이 단순히 가능성의 영역이라든지, 아니면 제 생각에 형식 논리적으로 맞는 것들에 기반해서 글을 쓴다면 거침없이 쭉쭉 써 내려갈 수 있으니까 굉장히 쉽죠. 하지만 근거 없는 주장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사회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쓸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해 포기한 적이 많았습니다. 통계 자체가 집계되지 않았거나, 독점적 정보라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할 때는 그 칼럼을 포기하고 다른 주제로 갈아타기도 했습니다. 또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통계라도 사회적 담론화 과정에서 그 해석이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과는 좀 거리가 멀 때도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재해석 과정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칼럼보다 글의 분량이 짧아도 자료 조사와 검증에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SB: 여기서 잠깐 책 홍보를 덧붙이자면,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찾은 데이터들이 숫자 한국에서는 인포그래픽과 원자료가 함께 실리면서 시각적으로도 통일되어 있죠. 완성된 책을 보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박한슬: 이건 편집자님이 앞에 계셔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꼼꼼하게 확인해 주셨어요. 초고 단계에서 제가 놓친 자료 출처까지 모두 잡아 주셔서 특히 감사했습니다. 인포그래픽을 펼침면으로 구성하겠다고 하셨을 때도 솔직히 처음에는 회의적이었거든요. 최종 결과물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인포그래픽이 깔끔하고 직관적으로 나온 모습을 보니까 정말 예쁘더라고요. “맡기기를 참 잘했다!”라고 느꼈습니다.

 

펼침면 구성으로 인포그래픽과 원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숫자 한국』 162~163쪽.

 

 

숫자로 그린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SB: 책을 가장 처음 읽은 독자로서 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미세 먼지에 한국의 지분이 상당했다는 사실이나, 정신 질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이 거꾸로 그들을 교도소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꾸로 선생님에게 여쭈어보려 합니다. 집필 과정에서 어떤 데이터가 가장 놀라우셨나요?

 

박한슬: 사실 저도 책에 담은 자료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중 하나만 꼽자면 난자 동결 보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35세 이전 여성과 35세 이후 여성의 난자로 시도한 인공 수정 성공률이 차이 난다는 사실을 정말 많은 분이 모르시더라고요. 저도 차이가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고 예상보다 큰 격차에 놀랐습니다. 주변에 알렸을 때도 다들 경악했어요. “얼려만 두면 언제든 임신할 수 있는 줄 알았다.”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그동안 저출산 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책이 많이 나왔고, 개중에는 가임기 여성 전국 지도를 만든다는 조금 황당한 사례도 있었죠. 저는 그런 단순한 대책보다 정확한 정보 전달이 저출산 해결에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 더 꼽자면 송전 데이터입니다. 우리나라의 송전 현황이 제대로 확인이 안 되더라고요. 자료가 없어서 숫자 한국에는 지역별 전력 자급률이라는 형태로 간접적으로만 담았는데,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그 전기를 받아서 소비하는 지역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 있죠. 발전은 주로 지방에서 많이 하고, 전력 사용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그 전기를 이송하는 송전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 전력에 문의하고 한국 전력 거래소에 정보 공개 청구까지 했는데도 자료가 없다고 안 주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참 아쉬웠는데, 간접적으로만 봐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결국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수도권 시설을 분산하거나 송전 시설을 확충하지 않으면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전기차, AI, 데이터 센터 등을 다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큽니다.

SB: 정보 공개 청구까지 하셨는데 그런 결과라니 아쉽네요.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근거에 대한 설명은 있었나요?

 

박한슬: 계산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이냐면 가령 A 지역과 B 지역을 잇는 전선이 뭐 두께가 이 정도 된다면 거기 맞게 어느 전압으로 송전할 때 송전 용량이 정해지는 식이어서, 송전 경로와 전압, 전선 두께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내부 데이터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송전 업무 자체를 이어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내부 관계자가 아닌 비전공자에게는 노출을 좀 꺼리는 분위기여서 주요 공공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현실이 아쉬웠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정치권이나 공공 기관이 이 같은 핵심 데이터를 더 투명하게 확인하고 국민에게 알려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B: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구한 놀라운 데이터를 가지고 숫자 한국에서 저희가 미처 몰랐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제가 오늘의 데이터에서 내일의 대한민국 읽기인 만큼, 작가님께서 현실을 분석하시면서 숫자로 읽어 본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예상이라고 해야 할지……. 한번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박한슬: 책에서 저는 인구 변화와 사회, 인공 지능과 경제, 기후 변화와 환경, 마지막에 규제와 정책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 보았습니다. 책 구성을 이렇게 잡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인구 구조와 사회 변화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핵심 요인입니다. 노년 부양비 증가와 경제 활동 인구 감소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며, 한국 또한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특히 청년 세대와 단기 노동자 수 감소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왔던 일상의 풍경을 크게 바꿀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꼽자면 과거에는 24시간 음식점이나 심야 술집이 흔했는데, 코로나19 범유행을 계기로 많이 바뀌었죠. 물론 당시에 규제책이 나와서 그런 부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은 인건비 상승이나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젊은 인구 자체의 감소가 변화를 주도한 원인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미래 사회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았고, 그다음으로는 우리 사회에 인공 지능이 끼칠 영향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2부에 두었습니다. 모든 분야에 AI가 도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편집하시면서 조금 섬뜩함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책에서 AI로 대체할 수 있는 출판사 편집자의 직무가 50퍼센트 정도라고 했으니까요. 그 이야기는 현재 인력의 절반만으로 똑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러나 저는 이런 변화는 디지털화되지 않거나 기계화하기 어려운 분야의 수요를 오히려 증가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로봇이나 드론이 많이 개발되어서 그만큼 수요를 채우겠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이 창의성과 감성이 필요한 고급 노동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지금까지 조금 가까운 미래 이야기를 했다면, 거시적 관점에서 중요한 주제는 역시 기후 변화겠죠. 기후 변화가 식량 위기를 초래하리라는 이야기는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AI 도입으로 효율이 높아지더라도 인구가 줄고, 노동력이 감소하고, 식량 생산이 줄어든다면 어떤 미래가 올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규제와 정책이 필요하고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4부에 쓰면서 책을 완결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책을 결정할 때 우리나라 정치권이나 행정 영역에서 데이터를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죠. 중앙 부처에서 오래 일한 한 공무원의 저서인데, 여기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예를 들어 정책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면피하기 위해 국책 연구소에 보고서를 의뢰하는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예단을 가지고 하는 관행을 바꾸려면 데이터 기반의 정책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부나 공무원만의 역할이 아닙니다. 시민 전체가 데이터 문해력을 갖추고, 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근거에 기반한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숫자 한국을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으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숫자 한국』 출간 기념 인터뷰 중인 박한슬 작가. 사진: ⓒ ㈜사이언스북스.


박한슬

글 짓는 약사. 숫자가 담긴 글 쓰는 일을 한다. 약학 대학 졸업 후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외국계 제약 회사에서 메디컬 라이터로 일한다. 중앙일보》 「박한슬의 숫자읽기월간조선》 「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을 연재하고 있으며, KBS 1라디오에서 매주 의료 서비스와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약의 작용 원리를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와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제약 산업 개론서인 바이오 투자의 정석,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살핀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를 썼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R 통계의 정석』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지금 다시 계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