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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Editor! 2013.10.17 12:54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작년 말 연재가 중단됐었습니다만, 이제 다시 연재 재개합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에 이어...


제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 서번트 신드롬의 천재 의사, 굿 닥터!


 

그는 의사다. 한창 바쁘다는 레지던트 1년차다.

그러나 병원에서 날밤을 새는 대신 6시가 되면 칼퇴근을 하고

담당 환아를 돌보느라 허리가 휘는 대신 보호자들의 항의를 피해가기 바쁘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부족하다거나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는 두꺼운 의학서적을 줄줄 외워대는 걸어 다니는 의학사전이며

인간의 몸속을 머릿속에서 3D로 구현해내는 특별한 능력도 갖고 있다.

덕분에 연륜 있는 외과의사도 진단하기 힘든 병명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환자에게 마술 같은 치료법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그가 의사가 될 자격은 늘 심판대에 오르며 일거수일투족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야심이 있거나 금품을 밝히거나 농땡이를 피우지도 않는다.

그는 거의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다.

냉장고를 열면 몇 종류의 삼각 김밥이 가지런히 줄 세워져 있고

병원 식당에서는 늘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장에 든 돈이 백만 원이 넘는다는데 만족하며

치료를 맡은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정의롭다.

그는 생명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한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거짓말을 한다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직장에서는 늘 잘릴 위기에 처해있다.

이 모든 장점들로도 커버할 수 없는 한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타인의 마음에 무지하며 사회적인 규칙에 둔감한 ‘공감제로’라는 사실이다.


   위에서 묘사한 인물은 얼마 전 종영한 인기드라마 「굿닥터」의 주인공 박시온이다. 과거에 그는 자폐3급과 서번트 증후군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현재 자폐증은 완치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는데 말과 행동의 반복, 부자연스럽게 고정된 자세(움츠러든 목과 치켜 올라간 한 쪽 어깨), 자신만의 규칙을 고수하는 태도(매일 같은 종류의 식사, 어떤 상황에서도 수술과 치료를 강행할 것을 주장)는 아직 그에게 자폐성향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다행히도 자폐 성향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암기력과 공간 지각력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병명 진단에서 누구보다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며 마치 인간의 몸속을 직접 들여다보듯 머릿속에 그려내며 1mm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외과수술에 크게 일조한다. 하지만 의사란 살아있는 생명을 직접 마주해야하는 일, 자폐적인 성향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가로막아 그가 환자와 교감하고 보호자를 응대하며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타인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와 기분에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공감’이라고 한다. 박시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공감’이다. 물론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래서 세상에는 그렇게도 많은 심리 서적들이 존재하며 동네 골목골목마다 점집과 철학관들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것이 가능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공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거나 공감 능력의 일부가 영원히 훼손된 사람들도 존재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신 병리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은 이런 사람들을 ‘공감제로’로 분류한다. 그는 공감 능력을 정도에 따라 여러 레벨로 구분하고, 공감 능력이 극단적으로 낮은 사람들이 0레벨, 공감 제로에 속한다고 제시한다. 드라마 초반에 나타나는 박시온의 모습은 바로 이 ‘공감제로’에 해당된다.

   공감제로의 대표적인 부류는 사이코패스다. 흔히 사이코패스는 양심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그들의 공감 능력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기에 자신의 욕망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에 대해 상대방에게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이상 그다지 후회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강간, 폭행, 연쇄살인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을 착취하여 큰 이익을 얻기도 한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이용 대상일 뿐이며 물건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대개 낮은 공감 능력은 문제성을 띠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박시온은 어떨까?

   박시온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극 초반에는 그렇다. 그럼에도 그가 사이코패스와 같은 부류로 묶인다는 데에는 어쩐지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환자를 외면하지 못하고 ‘수술해야 합니다. 빨리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를 외치는 박시온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와 같은 부류라니. 어딘가 석연치 않다. 박시온과 사이코패스는 둘 다 공감 능력이 0레벨이지만 공감 능력이 손상된 부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공감의 정의에 따르면 공감은 두 단계 - 타인의 마음에 대한 인지와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타인의 감정과 정서를 파악하는 것을 인지적 공감이라고 하며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정서적 공감이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들은 정서적 공감에 문제가 있다. 즉, 상대방의 생각과 기분에 대해 적절한 정서적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봐도 연민을 느끼지 않고 무심한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는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또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굿닥터의 박시온은 정서적 공감은 온전하나 인지적 공감이 손상된 경우다. 고기능 자폐증 환자나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낮은 사회적 지능으로 인해 그들은 사회생활을 어려워한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논리적인 사고가 결여된 목적 없는 잡담과 사교성 멘트는 그들에게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듯 아득하게 들릴 뿐이다. 농담이나 하얀 거짓말처럼 대인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느끼는 그대로 말하고 사실에 근거해 얘기한다.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사람들 사이에 정착하지 못한 채 혼자 떠돈다. 그럴지라도 사이코패스들처럼 범죄를 저지르거나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입히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거나 잘못된 사회문제를 바로 잡는데 남다른 정의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거리에 버려진 동물들을 외면하지 못하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한다. 비리가 존재하는 것을 인지했거나 주변에서 뭔가 옳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서 문제를 시정할 것을 촉구한다. 박시온이 아픈 환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병원 내 서열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수술을 감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고기능 자폐증 환자는 캐릭터가 지닌 매력 때문에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해왔다. 올해 초 방영된 국내 드라마 ‘출생의 비밀’에서는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였다. 한 번 본 것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와 뛰어난 두뇌를 가진 그는 유전학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여 굉장한 연구 성과를 이룬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직설적인 말투와 낮은 사회성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연구 결과가 사장되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이나 말아톤의 초원이 역시 고기능 자폐증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공감 능력이 낮은 대신 그들의 체계화 능력은 보통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발달한 경우가 많다. 암기력, 공간지각력, 예술적 재능, 논리적 추론 능력 등 뛰어난 체계화 능력을 활용하여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그래서 사이먼 배런코언은 이들을 긍정적인 공감제로라고 부른다.


‘인간사진기’라 불리는 스티븐 월트셔

3세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그는 한번 본 것을 사진처럼 기억해 두었다가 초정밀 풍경화로 그려내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공감 능력의 저하가 뛰어난 체계화 능력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그럼에도 그들의 낮은 공감 능력은 높은 체계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데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한다. 굿닥터에서 박시온이 그랬던 것처럼, 출생의 비밀에서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능력도 사회와 동떨어져 꽃피기는 힘들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지내야하는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런 수고를 감내해가면서까지 긍정적인 공감제로를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집단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혼자서 활동이 가능한 분야라면 모르겠지만 굿닥터의 박시온처럼 직업 자체가 사람을 대해야하는 업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사장되기엔 그들이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깝다. 자기 집 침실에서 펜타곤을 해킹한 게리 매키넌의 경우를 들어보자. 그의 컴퓨터 실력은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펜타곤을 해킹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그는 자신의 행동이 처벌받을 짓이라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세상의 규칙에 어두운 순진한 청년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이 청년이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서 좀 더 일찍 발휘할 수 있었다면 보안 시스템이나 프로그래밍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저서 ‘공감제로’에서 사이먼 배런코언은 이 같은 사람들에게 사회가 연민과 이해를 보이며 도움을 제공해야 하며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직업을 제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이 가진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공동체가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컴퓨터 해커 게리 매키넌

부모님 집의 자기 침실에서 펜타곤을 해킹한 케리 매키넌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 받았다.


   굿닥터는 결국 의사가 되고 싶은 청년이 공감제로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어엿한 외과의사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포용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와 병원 동료들,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공존하는 것을 방해했던 것은 자폐라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였다. 이야기를 보다 쉽게 풀어나가기 위해서 드라마에서는 그의 자폐 성향이 상당부분 치유된 것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그의 사회성이 일반 성인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폐증 환자가 맞나 싶게 사회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는 한다. 원장 의사의 말처럼 그것이 사회 규칙들을 통째로 외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암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환자들, 심지어는 동물들과도 소통하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공감제로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 자폐는 치료하기 쉽지 않은 질환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드라마로써의 극적 설정을 감안하고 봐야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자폐인이 타고난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는 스토리를 그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가 마침내 정식 레지던트로서 인정받고, 그토록 버거워하던 긴장감을 떨치고 수술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집념과 용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 뒤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 도움이 있었다. 자폐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끌어준 원장, 의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옆에서 챙겨준 펠로우 선생, 그가 의사로서 지닌 장점을 부각시키고 수술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수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엔딩은 해피해질 수 있었다. 다소 식상한 얘기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공감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감하려는 노력, 공감제로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감의 힘 말이다. 


굿 닥터 홈페이지 : http://www.kbs.co.kr/drama/gooddoctor/

사이먼 배런코언, 『공감 제로 : 분노와 폭력, 사이코패스의 뇌 과학』 http://sciencebooks.tistory.com/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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