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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②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②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Editor! 2015. 4. 6. 11:00



과학+책+수다 두 번째 이야기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책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밌어지는 이야기! 한 권의 책을 놓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두 번째로 ‘과학+책+수다’에 오른 책은, 2010년 처음 출간된 이후 한국에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오래된 연장통』!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진화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거머쥐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진화 심리학의 뜨거운 이슈들을 전하고 계신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모시고 수다를 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과학+책+수다’는 몇 개월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만 담당 편집자의 갑작스러운 공석으로 정리가 늦어졌습니다. 전중환 교수와 담당 편집자의 오랜 인연으로 시작해 알려지지 않은 전중환 교수의 과거까지 샅샅이 파고드는 ‘수다’에 독자 여러분들도 즐겁게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➁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편집자: 최재천 교수님께서 서울대로 오신 게 94년인가요? 


전중환: 94년 2학기에 부임하셨죠. 처음에 최재천 교수님께서 오셨을 때에는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지도 저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선배들한테 들어서 알았죠. 그러니까 사실 처음엔 교수님께 관심이 없었어요. (웃음) 그러다 함께 채집 여행을 갔는데 곤충을 딱 잡으면 교수님께서 그 곤충의 행동과 생태에 대해 정말 쭉 이야기를 푸시는 거예요. ‘와, 정말 아는 게 많으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채집 여행 가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다 같이 모여 앉아 술자리를 갖고 그러거든요. 그때 최재천 교수님 곁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죠. 교수님께서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동물 행동학이나 행동 생태학으로 학위를 받고 심리학과나 생물학과, 인류학과 등등에 자리를 잡은 얘기도 해 주셨죠, 그때.



(좌) 에드워드 윌슨 (우) 최재천 교수


편집자: 그때 낚이신 거군요? (웃음)


전중환: 교수님 연구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당시 행동 생태학 연구실에 지원하려던 친한 동기가 저보다 학점이 높았던 거예요. ‘아, 큰일 났다.’ (웃음) 한 연구실마다 소속돼서 졸업 논문을 쓰는 학부생이 최대 3명이고, 석사 과정 입학생도 3명이 한도였는데 당시에 4명이 최재천 교수님 연구실에 지원할 마음을 먹었어요. 다행히 한 명이 다른 방으로 가기로 했더라고요. 


편집자: 정말 다행이었네요.

 

전중환: 채집 여행 다녀온 후에, 그러니까 94년 겨울쯤 최재천 교수님을 찾아가서 사회 생물학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때는 물론 저도 사회 생물학에 대해 잘 몰랐어요. 이병훈 선생님께서 소개하시는 걸 보고 뭔가 사회 생물학이 유전 공학, 분자 생물학 못지않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최첨단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어요.


편집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정말로? (웃음)


전중환: 당시에는 ‘최첨단의 과학이고 논쟁적인 주제다.’ 이런 식으로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분자 생물학 같은 학문들이 부상하면서, (조금 옛날 학문으로 격하되던 분류학을 전공하시던) 이병훈 선생님께서 인간 사회를, 예를 들어 이타성의 기원 같은 걸 밝혀 줄 수 있는 이런 학문들도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편집자: 생물학으로 좀 더 거시적인 것도 다룰 수 있다?





전중환: 최재천 교수님께 가서 사회 생물학을 공부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도덕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라고 말씀을 드렸죠. 교수님께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덕적 동물』 원서도 보여 주시고. 리처드 알렉산더나 데이비드 버스, 로라 벳직 등등 미시간 대학교 등지에서 함께 있었던 동료들 얘기도 해 주시고요. 

그런데 일단은 생물학적인 진화에 대한 기초를 탄탄히 쌓는 게 중요하니까 석사 때는 인간이 아닌 동물로 연구를 하고, 그리고 박사에 가서 원하는 대로 사람을 하라고 하셨죠. 


편집자: 리처드 알렉산더라면 ‘벌거숭이두더지쥐(naked morelat)’ 연구로 유명한 그 알렉산더? 


전중환: 그렇죠. 리처드 알렉산더는 원래 사람 연구로 굉장히 유명합니다. 에드워드 윌슨과 쌍벽을 이루죠. 

최재천 교수님께서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 진화 심리학에 대한 것들도 넣으셔서 귀동냥으로 좀 들으면서 학부 졸업 논문으로 ‘상호 이타성’에 관해 썼었죠.  


편집자: ‘이타성’을 주제로 학부 논문을 쓰셨다고요? 와, 대단하신데요? 


전중환: 아니, 뭐 그렇게 신선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이타성에 관해 연구한 것들을 리뷰한 건데, 나름 새로운 분류법을 제안하려고 했었죠. 


편집자: 당시에 ‘상호 이타성’이나 ‘도덕’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다니 선구적이신데요. 


전중환: 진화 이론의 기초적인 토대에 관련된 것들을 공부하고 싶어서 4학년 때 몇 명이 모여 스터디 그룹을 짰어요. 최재천 교수님을 찾아뵙고 『사회 생물학』으로 공부를 하려 한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그 책 대신 『적응과 자연 선택』을 제시해 주셨죠. 4~5명이 같이 공부했는데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웃음)




편집자: 조지 윌리엄스 책을 그때 접하셨군요.(전중환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적응과 자연 선택』 한국어판이 2013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전중환: 제일 처음, 구체적으로 ‘진화 심리학이란 이런 학문이구나.’ 하고 알 게 된 건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을 석사 1학년 때 읽으면서였습니다. 그 책의 후반부 한 장(章) 정도에 제롬 바코(Jerome Barkow), 리다 커스미디즈(Leda Cosmides), 존 투비(John Tooby)가 편저한 『적응된 마음(The Adapted Mind)』이 등장하죠.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이 책이랑 『도덕적 동물』을 원서로 사서 읽었고요. 

여기서 잠깐 진화 심리학의 초창기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에드워드 윌슨 판의 ‘사회 생물학’으로 실제로 제대로 인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윌슨의 제자들조차도 말이지요. 1975년에 ‘사회 생물학 파동’이 일어난 이후 꾸준히 인간에 대해서 진화 생물학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리처드 알렉산더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최적 섭식 이론(Optimal foraging theory, 동물들이 먹이를 찾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는 모델)’ 같은 진화 생물학 모델을 가지고 야외에서 동물을 연구하듯이 오지에 가서 인간을 연구했던 거지요. 인류학적인 사람들이었어요, 사실은. 

그러다 존 투비와 레다 코스미디즈가 등장하면서 리처드 알렉산더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편집자: 어떤 논쟁이죠? 존 투비와 레다 코스미디즈는 어떤 점을 비판한 건가요? 


전중환: 사람의 자식 수를 세는 건 쓸데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두뇌가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귀신같이 자식 수를 최대화하게끔 설계된 게 아니니까.

특정한 행동이 높은 빈도로 드러날 때,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핀다.’라고 할 때 ‘담배를 피는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지 번식에 도움이 될 거다.’라고 주장하며 흡연자들의 자식 수를 조사해 보고 비흡연자보다 자식 수가 더 많으면 따라서 담배를 피는 건 적응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아주 단순하고 약간의 왜곡까지 더해진 거죠. 그런데 자식 수를 백 년 세어 봐도 적응을 제대로 입증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죠. 투비와 코스미디즈는 적응은 ‘설계상의 특징(design feature)’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죠.  





전중환: 『적응과 자연 선택』에도 나오는 얘기인데요, 조지 윌리엄스나 리처드 도킨스가 강조하는 것처럼 진화 생물학에 대한 엄밀한 개념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 게 투비와 커스미디즈 측이었습니다. 그게 진화 심리학의 시작이었죠. 

이런 얘기도 당시에 최재천 교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그러니까 인간을 똑같이 생물학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진화 생물학을 가지고 기존의 인류학적 방식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자식 수, 번식상의 이점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건가요?


전중환: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다윈 인류학 대 진화 심리학, 이런 식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지금은 사실 학회에서 서로 잘 지내고 그렇습니다. (웃음)

하지만 딱히 다윈 인류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인류학적인 방법을 차용하기는 했지만 이 사람들은 자신은 그냥 진화 생물학자라고 생각하거든요. 


편집자: 그냥 연구하는 종이 사람일 뿐이고.


전중환: 리처드 알렉산더가 기본적으로 그런 입장입니다. 이 분들을 ‘인간 사회 생물학자’라고 칭하면 싫어합니다. 진화 생물학자라고 생각하니까요. 유일한 예외가 『어머니의 탄생』을 쓴 새러 블래퍼 허디입니다. 본인 스스로 사회 생물학자라고 얘기하지요. 

최근엔 인간 행동 생태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정확한 용어는 아닙니다. 행동 생태학은 동물의 진화적인/적응적인 생태를 연구하는 분야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행동 생태학은 진화 심리학과 동일한 것이라고 투비와 커스미디즈는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요즘에 와서는 서로서로 크게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이 연구하고 학회에도 참석하고 그렇습니다.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에서 계속..)



▶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바로가기

▶ 『어머니의 탄생』 [도서정보] 바로가기



과학+책+수다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욕망의 진화』로 시작된 인연 (바로가기)

②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③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바로가기)

④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