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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회학자 김명진, 실험실에서 나온 과학을 타박하다! 본문

책 이야기

과학 사회학자 김명진, 실험실에서 나온 과학을 타박하다!

Editor! 2010. 6. 9. 20:27
이번 포스트는 <불확실한 세상> 저자 강연회 두번째 발표자이신 김명진 선생님의 발표 녹취록과 팟캐스트입니다. 팟캐스트의 경우, 녹음상태가 좋지 못해 듣기 불편하실 수 있는데,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팟캐스트 주소 : http://nemo.podics.com/127648360503

이권우 선생님(사회): 네, 역시 정치가 주제가 되다 보니 밤을 새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 김명진 선생님은 PT 자료를 준비하셨나 봅니다.

김명진 선생님 : 네, 제가 맡은 내용은 훨씬 재미가 없는 과학 이야기입니다. 물론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일 중에 과학과 관련된 일들이 많지만, 다른 분들이 준비한 내용은 특정 사례, 예컨대 지구 온난화나 광우병과 관련된 얘기라면 저는 약간 이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과학이 실험실을 벗어나서 일반인들의 일상과 연관을 맺게 되었을 때, 정치나 기술에 응용되었을 때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발표할 내용은 책에 있는 내용을 부분적으로 요약한 것일 테니까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요.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보통, 과학이라는 것은 다른 학문들에 비해 훨씬 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지식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컨대 이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일어나는 일을 기술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고 달이나 화성에서도 성립하는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80년대 이후에 사회구성주의, 또는 과학지식사회학(SSK)이라는 분야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과학이 정말 확실한 지식을 제공하는가에 대해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실험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공식화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과 숙련에 의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실험실에 가 보면 ‘마이더스의 손’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실험을 하면 안 되는데 그 사람이 하면 잘 되더라, 이런 사람들이 암묵적 지식과 숙련을 타고난 사람들이죠. 똑같은 매뉴얼을 읽고 실험을 해도 이 사람들이 하면 실험이 더 잘 돼요. 여기서 어떤 함의를 얻어낼 수 있냐면, 실험 결과라는 것이 확실한 결과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험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애초의 실험이 잘못된 건지 실험자가 잘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실험자가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실험 결과를 두고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고 해석의 유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SSK 학자들은 과학적 논쟁의 종식에 ‘사회적 요인’이 기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식의 과학적 불확실성이 좁은 과학계 내부를 벗어나 사회 바깥으로 나오게 되면 더 커지게 됩니다. 예컨대 과학이 정책 결정의 근거로 이용된다든지 할 때입니다. 사실 과학자들이 실제로 하는 일들은 아주 전문적이고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 여지가 적어요. 하지만 과학 내용이 실험실을 벗어났을 때, 예를 들어 GM 식품을 먹어도 안전한가라든지, 광우병, 지구 온난화 문제가 향후 50년 이후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가를 알아야 할 때, 또는 과학이 공학적으로 응용되어 새로운 기계나 설비를 사회에 내놓을 때, 이럴 때 불확실성은 증폭됩니다.

이렇게 과학 실험의 경우도 불확실성이 있는데 또 실험실 바깥으로 나오면 더욱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다 보니까, 일반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보편적이고 확실한 지식으로서의 과학의 이미지와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일반 사람들이 대개 접하는 과학이란 밑에 있는 확실한 지식으로서의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왜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GM 식품을 먹으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 그런 것도 몰라?’ 할 때, 실제로 과학자들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A는 쥐에게 먹였더니 안전하다고 하는 반면 B는 반박한다든지, 누구는 배경에 어느 기업, 또는 환경 단체가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얘기가 번져가게 되죠. 이렇게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인들의 기대와 충돌이 빚어집니다.

그래서 과학의 이런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 앨빈 와인버그라는 사람은 1972년에 trans-science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이 용어를 ‘초과학’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도 같고, 과학을 벗어난 영역의 문제를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와인버그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과학에 물어볼 수는 있지만 정작 과학에 의해 답변될 수 없는 문제들을 말합니다. 과학자가 답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돈이 많이 들 때, 가령 방사능이 나쁜 건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방사능을 아주 약간씩 오래 쬐었을 때-핵발전소 옆에 30년 쯤 산다든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우리는 잘 모릅니다. 위험한 지 그렇지 않은 지 어느 쪽도 확실한 증거가 없어요. 동물실험을 할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30년 동안 동물실험을 할 사람도 없겠죠. 그래서 이런 문제는 과학자가 답하기 힘든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와인버그의 선구적인 문제의식을 받아 1980년대에는 다양한 개념들이 발전했습니다. 정책 관련 과학, 지시된 과학, 규제 과학 등이 이런 것이죠. 그러다가 실라 자사노프라는 학자가 1990년대에 규제 과학과 연구 과학과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규명했습니다. 규제 과학이란 과학이 정책 결정에 반영될 때의 그런 과학을 말하고, 연구 과학, research science라고 하는 과학은 과학자들이 보통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행하는 과학을 의미합니다. 이 표를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으실 텐데, 제일 큰 차이는 책임의 대상과 시간입니다. 규제 과학은 위험에 대한 결정 등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연구 과학처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기 보다는 기존 지식을 종합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또 연구 과학에서처럼 과학자들이 상아탑, 대학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FDA 같은 정부 기관이나 몬산토 같은 기업체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임의 대상도, 연구 과학의 경우는 자신의 연구가 틀렸다고 판명돼도 동료 과학자들에게만 책임을 지면 됩니다. 하지만 규제 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은 의회, 법정, 언론, 일반 대중들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시간인데, 연구 과학은 거의 무제한적이라면-태양계의 기원 같은 문제들- 규제 과학은 정책 결정의 시간 틀에 의존하며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엔지니어링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사회에 도입되는 새로운 기술의 모든 세부사항이 모두 남김없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실패의 가능성이 있고 사전 검사나 시뮬레이션에도 한계가 있지요. 예컨대 CFC라는 물질은 1930년대에 유독성 물질로 변화할 가능성도 없고 안전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이후에 대기권 중에 200년 이상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유해한 물질임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공학은 불확실성을 내포한 상태에서 부분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만 사회에 내보낼 수 있는, 와인버그 식으로 말하자면 초과학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크 마틴이나 로날드 신진저 같은 사람들은 엔지니어링은 인간 대상을 그 속에 포함하는 사회적 규모의 실험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만, 브라이언 윈에 따르면 불확실성, 즉 위험과 확률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위험, 불확실성, 무지, 미결정성으로 나뉜다는 것이죠. 위험이란 우리가 확률을 아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비해 불확실성은 지구 온난화처럼, 문제의 일반적인 변수들만 알고 확률은 모르는 경우를 말합니다. 또 윈에 의하면 심지어 무지의 영역도 존재합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로,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괄호를 쳐 버리고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결정성이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열려있는 영역입니다. 지구 온난화, 광우병, GM 식품 같은 사례들의 위험은 이처럼 불확실성, 무지, 미결정성이 뒤섞인 형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과학 지식에 대해 과도하게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정 기술의 수용 여부에 대해 대중적 합의를 거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에 의하면 위험한 기술은 세 가지로 구별되는데,-자세한 내용은 책의 마지막 부분을 참고하시고요- 그 중 마지막 세 번째 범주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기술은 실패로부터 배우기도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죠. 예컨대 핵발전소 같은 기술은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는 실패가 일어나야 하는데 체르노빌 사고처럼 그 실패가 너무 파멸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과학자들에 앞서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기술을 용인할 수 있을 지 논의해봐야 합니다. 그 기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런 논의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팟캐스트 시작 기념으로 <불확실한 세상> 저자 강연회 팟캐스트를 들으시고 블로그에 덧글이나 트랙백으로 의견, 질문을 남겨주신 분들 중 두 분을 추첨하여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