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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①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본문

완결된 연재/(完) 에너지 Talk Talk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①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Editor! 2015. 7. 23. 16:22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19세기 초와 20세기 초에 비견할 만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질 ‘대전환의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21세기 거대한 전환을 이끌 새로운 에너지, 고도의 기술 문명과 지구 환경 모두를 뒷받침해주는 에너지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 답을 과학과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의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이 7월 23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석유 고갈, 기후 변화, 핵 발전, 재생 에너지 등의 에너지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가진 에너지 문제에 대한 여러 오해와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값싼 석유 시대?


다시 값싼 석유 시대가 온 것일까? 국제 석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미국 서부 텍사스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의 가격만 놓고 보면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지난 10년간의 가격 변동 추이를 살폈더니 유가는 2008년 7월 14일에 배럴당 145.16달러로 정점을 찍고서 2015년 7월 22일 현재 50.36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일이 유가를 예측하는 일이다. 더 바보 같은 일은 하루에도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이런 유가의 변화를 놓고서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석유는 에너지 자원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사고파는, 심지어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0년간의 석유 가격 변화(WTI 기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2008년 7월에 정점을 찍었던 유가는 불과 6개월 만인 2009년 2월 16일 35.38달러로 하락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을 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자산 가치가 곤두박질쳤고, 석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나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시장에 엄청난 규모의 돈을 푸는 등 위기를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유가는 2년 만에 다시 113.93달러(2011년 4월 29일)까지 치솟았다. 그러다 4년 만에 다시 43.46달러로 떨어졌다(2015년 3월 17일). 이처럼 석유 가격은 여러 이유로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단순히 석유가 싸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에너지 자원으로서 석유를 둘러싼 사정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단견이다. 석유가 ‘유한한’ 지하자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석유 시대의 종말’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skeeze/pixabay




석유인 듯 석유 아닌 석유


기왕 유가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 몇 년간 뉴스의 중심에 선 ‘셰일 오일’ 얘기도 해 보자. 왜냐하면, 셰일 오일 즉 셰일 석유야말로 유가가 만들어 낸 석유이기 때문이다. 사실 셰일 오일 혹은 셰일 가스는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에도 퇴적암의 한 종류인 혈암, 즉 셰일(shale) 안에 석유나 천연가스가 포함된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석유나 천연가스를 캐내는 과정은 매장 지역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시작한다. 석유나 천연가스는 땅속에 고여 있는 동안 높은 압력을 받았던 터라서, 이렇게 구멍을 뚫어 주기만 해도 지상으로 치솟기 마련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2008년)는 이런 석유 시추 과정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아들과 함께 미국 서부를 돌아다니며 금을 캐는 광부인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우물처럼 판 구덩이에서 석유가 솟아나는 행운을 겪는다. 땅으로부터 솟는 석유는 영화 제목에서 말했듯, ‘검은 피’처럼 보인다.

그런데 셰일에 포함된 석유나 가스는 달랐다. 이들은 한곳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캐려면 시추공을 수 킬로미터 깊이로 뚫고 들어가 셰일을 깨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새어 나오는 석유나 가스를 다시 지상으로 뽑아 올리는 복잡한 작업이 뒤따른다.

당연히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려면 많은 돈과 더 중요한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유가가 쌀 때는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유가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비싸게 캐내도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절묘하게도 1998년에 미국의 조지 미첼이 셰일에 포함된 석유나 가스를 캐내는 수압 파쇄법(hydraulic fracking)을 고안했다. 이 방법은 셰일 층까지 구멍을 뚫고서 모래와 화학 물질이 첨가된 물을 높은 압력으로 분사해 셰일 암반을 깨트린 다음에 그 안에 갇힌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통해서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러니까 유가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자 미국이 주도적으로 셰일에서 가스, 그리고 나중엔 석유를 뽑아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셰일 쇼크’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유가가 하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경제 공황이었다면, 최근의 유가 하락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셰일 쇼크다. 석유 먹는 하마인 미국이 생산한 셰일 오일이 산유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던 석유를 대체하면서,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이 늘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 변화에 국운이 달린 중동의 산유국들이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셰일 쇼크에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가격 하락을 무릅쓰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중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된 데다, 셰일 석유 때문에 가뜩이나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이 늘어난 마당에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유가 하락을 무릅쓰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석유 가격을 떨어뜨려야 다시 셰일 오일이 수지가 안 맞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통화 기금(IMF)이나 한국은행 등의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의 유가 급락을 놓고서 미국 등의 비전통적인 원유 생산 증가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시장 점유율 확보 전략에 따른 공급 요인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한다.


에너지 팁팁(TipTip)

☞ 유가, 떨어지는 게 좋을까?

여기서 유가와 경제 사이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최근 세계 경제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환율 전쟁이다. 금리 인하 등의 방법을 통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핸드폰이나 자동차 같은 수출 상품의 국제 가격이 떨어져서 중국산이나 독일산과의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대신에) 수입 상품의 가격은 오른다. 우리나라처럼 원자재의 상당 부분, 심지어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일이다. 최근의 유가 하락은 바로 이런 부분을 상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최근의 낮은 유가가 환율 전쟁을 받쳐 주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석유로 경제를 지탱하던 나라들이 휘청대고 있다. 이 나라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중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만약 이들의 경제가 무너진다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 경제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셰일 오일 채굴 설비  Joshua Doubek/wikipedia




셰일 오일의 미래


그렇다면, 셰일 오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저유가로 셰일 오일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사실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2015년 6월 2일)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미국 내 석유 굴착 시설의 개수는 646곳으로, 지난해 말 1536곳에 비해 58퍼센트가 감소했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 12개 회원국은 2015년 6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현재 하루 3000만 배럴의 생산량을 다음 회의가 열리는 오는 2015년 12월 4일까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저유가를 좀 더 용인하더라도, 이참에 미국 셰일 오일을 더욱더 압박해 석유 시장에서 중동 산유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채굴 기술이 배럴당 생산 원가를 낮춘 탓에 중동 산유국과 미국 사이의 ‘유가 전쟁’의 승부는 쉽게 가려지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의 셰일 오일 채굴 건수는 급감했지만 생산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5월 중순 기준으로 하루 960만 배럴로 197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오히려 셰일 오일의 문제는 따로 있다. 우선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 킬로미터 지하에 산, 방부제, 겔화제, 마찰 감소제 등의 화학 물질을 섞은 엄청난 양의 물을 분사하는 과정에서 지하수 오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채굴에 필요한 물, 화학 물질을 운반하는 수많은 트럭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을 놓고도 지역 사회의 원성이 자자하다. 교통 혼잡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지진 유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온실 기체 배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함께 나오는 탄화수소가 대기 중의 온실 기체의 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온실 기체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땅 속에 갇혀 있던 온실 기체를 대기 중으로 내놓는 상황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수압 파쇄법의 주인공인 물의 부족이다. 수압 파쇄법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시추공 1개에 물 1400만 톤이 들어가는데, 이는 인구 5만 명의 1일 물 소비량과 맞먹는다. 미국 서부나 중국 서부처럼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할 물도 부족한 곳에서 석유나 가스를 캐내는 데 과연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셰일 오일과 같이 언급되는 오일 샌드(타르 오일)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캐나다 중서부 앨버타 주에서 나오는 오일 샌드는 말 그대로 석유가 끈적끈적 묻어 있는 모래다. 오일 샌드도 유가가 쌀 때는 거들떠보는 이들이 없었다. 모래를 씻어서 석유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돈, 즉 에너지가 들 뿐만 아니라, 부산물로 나오는 오염된 물이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가 오르면서 1875년에 발견되고 나서 거의 100년 넘게 잊혔던 이 오일 샌드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모래에서 뽑아낸 비싼 석유로도 이문을 낳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2008년까지 유가가 한창 오를 때, 캐나다에 돈이 돌았던 것도 바로 이 모래 속에 숨은 석유인 듯 석유 아닌 석유 때문이었다. (전 세계 오일 샌드의 3분의 2가 캐나다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실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 그리고 오일 샌드는 에너지로서의 가치만 놓고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석유 1리터를 생산하는 데 석유 2리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든다면 그것이 에너지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셰일 오일, 셰일 가스, 그리고 오일 샌드가 과연 투입된 만큼의 에너지 이상의 가치를 가질까?

물론 이런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캘 수 있는 석유나 가스를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횡재한 셈이다. 앞으로 얘기할 석유 고갈 사태가 실제로 닥치더라도 당장은 석유 시대를 지탱할 수 있는 자원이 땅 밑에 비축되어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결국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는 석유 고갈 시대를 대비하는 비상용 자원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곰곰이 따져볼 일이 있다. 애초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함으로써 셰일 쇼크를 가능케 했던 미국 정부가 새삼 수압 파쇄법의 환경 오염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이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오히려 국내의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를 비축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값싼 석유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비상용 자원을 낭비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PublicDomainPictures/pixabay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편 「석유 시대의 종말?!」로 이어집니다.





 

강양구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으며, 2003년부터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으며,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1, 2』,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등을 저술했다.



※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필자와 당사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1.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2. 석유 시대의 종말?! [바로가기]

3.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알리는 전주곡 [바로가기]

4. 기후 변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바로가기]

5. 원자력 르네상스는 없다 [바로가기]

6. 원자력 제국의 희생자들 [바로가기]

7. 후쿠시마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바로가기]

8. ​후쿠시마 산 먹거리는 괜찮을까?

9. 핵 폐기물은 어디로​ 가는가?​

​10. 태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에 대한 오해

11. 똥의 재발견

12. 수소 에너지와 핵융합 에너지의 진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시사통」에서 3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강양구 기자가 직접 방송에 참여한 「환경통」과 함께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관련 링크: 1편 「피크 오일의 진실」[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