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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 교수의 CERN 탐방기 ① CERN으로 떠난 스파이?! 본문

완결된 연재/(完) 불멸의 원자를 좇는 모험

이강영 교수의 CERN 탐방기 ① CERN으로 떠난 스파이?!

Editor! 2015. 11. 18. 10:23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의 저자 이강영 경상 대학교 교수님이 지난 7월 제네바 근교에 있는 CERN을 다녀오셨습니다. CERN이 새로 기획하고 있는 실험에 한국 물리학자들을 참가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죠. 이번 회의에서 숨겨진 기본 입자를 찾는 CERN의 미래 실험에 한국 물리학자들이 정식으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희소식을 알려오셨습니다.

(주)사이언스북스에서는 이강영 교수님이 번역하신 리사 랜들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의 출간을 앞두고, 이강영 교수님의 이번 CERN 출장 이야기를 사진과 엮어 탐방기 형식으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현대 물리학 연구의 최전선이자 중심지로서 활약하고 있는 CERN의 공기를 한국 독자 여러분도 만끽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모두 3회에 걸쳐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① CERN으로 떠난 스파이?! 

나는 새벽에 낯선 공항에 도착하는 게 좋다. 세상은 어둠 속에 잠겨 있고, 무심한 불빛만 비행기를 비추는 시간. 상점들은 대부분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에 기대어 있다. 빛나는 것은 게이트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뿐. 졸음을 쫓으려 진한 커피를 마시며 간혹 어둠을 뚫고 이륙하는 비행기를 창을 통해 본다. 전성기를 지난 스파이가 뭔가 절망적인 임무를 받아서 떠나는 데 어울리는 풍경.



하도 그 분위기가 좋아서 이런 분위기를 잘 묘사한 장면을 예전에 소설이든 영화든 본 적이 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아직 떠오르질 않는다.

이건 낯선 공항은 아니고 인천 공항이다. 출발은 새벽 1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새벽 5시 19분.



동이 튼다. 아침노을이 참 아름답다. 

대부분의 상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졸리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자기 게이트를 찾아갈 뿐. 

스키폴은 크고 깨끗하고 편리하고 비싸다. 이색적인 거라면 공항 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꽃집이 곳곳에 있다는 거.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다. 심지어 여행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도 튤립의 구근을 팔고 있다. 

오늘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다. 제네바 행 비행기는 6시 20분에 출발한다.

제네바 도착. 오전 8시 30분.



제네바 공항은 익숙하다. 예전에는 CERN에 가느라, 최근 몇 년간 모리온드 컨퍼런스를 참가하느라 자주 지나다녔다. 올해는 두 번째로 왔다. 

공항에 연결된 기차역으로 내려갔다. 미그로(MIGRO, 스위스의 슈퍼마켓 체인)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사서,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으며 동행하는 CERN으로 함께 갈 K 교수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의 공항과 역은 활기차지만 붐비지 않고 상쾌하다. 

내가 LEP 실험에 참가해서 CERN에 머물렀던 것은 1993년이니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 후에 제네바에 다시 온 것은 2005년 CERN의 이론 물리학부에 방문했을 때였다. 12년 만에 왔어도 제네바도 CERN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이후 제네바는 지나가는 길에 여러 차례 들렸어도 CERN을 방문한 적은 없다. 올해 다시 CERN에 왔으니 또다시 10년 만이다.  

버스 라인을 보니 공항에서 직접 가는 Y번이 생겼다. 버스가 아니라 트램(노면 전차)이다. 공항에서 CERN까지 바로 가는 게 아니고 살짝 CERN 남쪽으로 낯선 지역을 돌아간다. CERN을 지나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 생 제니까지 가는 노선이다. 생 제니는 국경에 인접한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데, 프랑스 물가가 스위스보다 상대적으로 싸다 보니 CERN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예전에 나도 생 제니에 살았다.    



오른쪽에 거대한 글로브가 보인다. CERN에 도착. 

글로브는 THE GLOBE OF SCIENCE AND INNOVATION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건물로  CERN에서 수행되는 첨단 연구를 일반 방문객들에게 소개하는 공간이다. 높이 27미터, 폭 40미터의 목조 건물로 과학과 첨단 기술의 혁신적 성과를 보여 주는 전시회가 개최되고는 한다.




입구에서 출입 카드를 발급받았다. 



왜 아이디카드의 사진은 다 범죄자 스타일인 거냐. 하긴 오펜하이머도 페르미도 별 수 없더라. 로스앨러모스 시절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카드 사진들을 보면. (다음 사진들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것이다.)



역시 다들 수배자 같지?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 도시인 괴팅겐에 가면 곳곳에 괴팅겐을 거쳐 간 과학자와 수학자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CERN 역시 길에다 모두 과학자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러면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이름은 누굴까? 바로 볼프강 파울리다.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물리학 바깥세상에 파울리를 소개할 때는 원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타 원리를 발견해서 노벨상을 받았고, 날카로운 비판으로 양자 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중성미자를 예견했다는 정도를 언급하게 되는데, 알면 알수록 이런 정도의 소개는 파울리의 존재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전에 파울리는 현대 물리학 전반을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서 그 시대의 물리학을 대표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주위 사람들도 그랬고 본인 스스로도 그랬던 것 같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1955년 아인슈타인이 죽은 해에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1945년에 내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가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에서 나를 위해 한 이야기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왕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나를 일종의 ‘선택된 아들’이자 후계자로 임명하는 것 같았다.” 


이 연설에서 대체 아인슈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너무도 궁금해서 직접 읽고 싶은데 아무래도 연설문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파울리는 물리학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다지 논문을 많이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동료들과 물리학을 논의하는 편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겼다. 이메일도 인터넷도 없던 그 시대에는 연구자들이 서로 편지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파울리가 남긴 편지는 그 양과 질에서 압도적이다. 그 편지 속에는 20세기 전반부 이론 물리학의 풍부한 역사가 가득 담겨 있다.  

파울리는 1958년에 죽었으니 1954년에 설립된 CERN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1946년 이후 파울리는 같은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ETH 교수로 재직했었으니 와 본 적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파울리와 CERN의 본격적인 인연은 파울리 사후에 시작된다. 

미망인 프랑카 파울리(Franca Pauli) 여사는 마지막 조수였던 카를레스 엔츠(Charles Enz)와 파울리가 남긴 자료들을 정리했다. 당연히 파울리에게는 그가 받은 편지만 있고 보낸 편지는 없었으므로, 이전에 파울리의 조수를 지낸 빅토르 바이스코프(Victor F. Weisskopf)와 랄프 크로니히(Ralph de Laer Kronig) 등도 가세해서 일일이 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파울리가 쓴 편지의 사본을 받았다. 닐스 보어와 오펜하이머 등도 이 힘든 작업을 도왔다. 

프랑카 여사는 이렇게 모은 자료 중 일부를 1960년 8월 25일에 CERN에 기증했다. 마침 1961년부터 바이스코프가 CERN의 소장이 되어 파울리의 유산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65년 바이스코프가 임기를 마치면서, 파울리의 자료를 관리하기 위한 파울리 위원회가 발족했고, 새 소장인 베르나르트 그레고리(Bernard Gregory)가 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위원회는 CERN의 소장을 비롯한 관계자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1971년 11월 5일 프랑카 여사는 두 번째로 파울리의 자료를 CERN에 기증했다. 1987년 여사가 사망한 후에는 파울리의 과학적 유산의 모든 권리를 CERN이 공식적으로 상속했다. CERN의 본부 건물 2층에 파울리의 자료를 모아놓은 파울리실이 있다. 여기. 

   


정문으로 들어와서 첫 번째로 갈라지는 길은 아인슈타인 길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미국에서 1955년에 사망했고, 1954년 9월에 설립된 CERN에는 온 적도 없다.



보통 CERN이라 하면 아래 그림 아래쪽의 메랭 사이트(Site de Meyrin)을 가리키는데, 사실 그림 중앙에 보면 프랑스 지역에 프레베생 사이트(Site de Prevessin)도 있다. 프레베생 사이트가 생겨난 연원 및 CERN의 전반적인 역사는 졸저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증보판, 사이언스북스, 2014)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CERN의 중심부라 할 메랭 사이트는 아래 그림처럼 쐐기꼴이고 연구소의 중앙을 스위스-프랑스 국경이 가로지르고 있다. 대략 오른쪽이 스위스, 뾰족한 왼쪽이 프랑스다. 중간의 커다란 원형 구역은 1959년에 만들어진 PS 가속기다. 그 이후의 가속기는 너무 커져서 위의 그림처럼 연구소 부지를 벗어나게 된다. 오른편에 까만 표지는 입구를 가리키는데, 왼쪽 표시가 가리키는 곳이 정문이다. 



오른쪽 끝에 있는 파란색의 복잡한 모양의 건물이 본부 건물로, 대강당, 도서관, 주 식당, 소장실 등이 있다. 사실 나 같은 이론 쪽 사람은 거의 이 근처에서만 얼쩡거리게 된다. 이론 물리학부도 다 이 근처다. 나머지 지역의 많은 건물들은 거의 다 실험을 위한 시설들이다.   

이번에 CERN에 온 목적은 CERN에서 수행하려고 하는 새로운 실험인 SHiP(Search for Hidden Particle)의 정기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SHiP은 CERN에서 두 번째로 큰 가속기인 SPS의 빔을 고정 표적에 충돌시키고, 여기서 나온 입자들을 다음과 같은 검출기를 통해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입자를 찾고자 하는 실험이다. SHiP의 이름에 나오는 Hidden Particle이란 그냥은 보이지 않는 입자를 가리킨다. 그냥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보통 물질과는 거의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실험은 LHC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검증하기 위한, LHC와는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는 실험이다. 실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언젠가 다른 곳에서 하겠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을 위해 실험 그룹 홈페이지를 남긴다.   

http://ship.web.cern.ch/ship/ (위의 그림도 여기서 가져왔다.)

SHiP 실험의 회의에 참가하는 이유는 이 실험에 한국 그룹이 정식으로 참가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SHiP 실험은 부분적으로 이탈리아의 그랑사소 연구소에서 수행되었던 중성미자 검출 실험인 OPERA 실험의 후속 프로그램으로서, OPERA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참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OPERA 실험에 참여하신 분들이 있는데, 한국 그룹의 대표였던 분이 우리 학교의 Y 교수님이다. 그래서 Y 교수님을 중심으로  SHiP 실험에 참여하는 한국 그룹이 결성되었고, 나도 권유를 받아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배(SHiP)를 탈 것을 결정하러 온 거다.

이번 회의에는 실험에 관련된 내용을 논의하는 세 차례의 그룹 내부 회의, 그룹 바깥에 공개되는 오픈 심포지엄, 그리고 한국 그룹 참여와 같은 그룹 내부의 일을 논의하는 CRB 회의가 진행된다.    

본부 건물에 도착했다. 더 깨끗해진 듯하다. 



일단 도착했으니 점심을 먹어야지. 본부 건물 1층의 CERN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식사. LHC 탓인지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하긴 10년 만이니, 변했다는 말을 하는 게 우습다.



오늘 회의가 열리는 40번 건물은 카페테리아 마당에서 바로 잔디밭 건너 보이는 건물이다. 20년 전에는 확실히 없던 건물인데 10년 전에는 있었는지 어떤지 기억이 안 난다. 4개의 사각 기둥 가운데 원통이 있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인데, 입자 검출기 모양을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 



4개의 윙은 각각 A, B, C, D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각각 연구실과 세미나실, 사무실 등이 있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의 원통 부분은 위까지 뚫려 있는 커다란 홀이다. 스낵과 커피를 파는 작은 매점과 커피를 마시는 라운지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떠들고 있다. 

각 윙의 지하에는 작은 강당이 하나씩 있는데 회의가 열리는 곳은 그 강당이다. 첫 회의는 B 윙 지하의 보어 방(Salle Bohr). 



이런, 내 모습도 나왔네.

맞은편 A 윙의 강당은 앤더슨 방(Salle Anderson)이었다. 



칼 앤더슨(Carl David Anderson, 1905∼1991년)은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1932년 우주선 (cosmic ray)에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positron)을 발견해서 1936년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노벨상을 받은 해에는 뮤온도 발견했으므로, 사실 노벨상을 하나쯤 더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이다. 1991년까지 살았으니 충분히 오래 살기도 했는데.

양전자의 발견은 과학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이로써 인류는 반물질의 존재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반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얼마 전에 발표된 디랙의 방정식에서 예견되고는 있었지만, 사실 정말로 그런 입자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예견되었다기보다는 양(+)전하를 가지는 전자라는 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몰라서 다들 어리둥절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실험 물리학자였던 앤더슨은 아예 그런 답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실험적으로 양전자의 존재는 명확했다. 전자의 질량에 양성자의 전하를 가진 입자의 흔적. 

아래 사진이 앤더슨의 논문에 실린 양전자 관측 사진.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가는 선이 양전자의 궤적이다.



말이 나온 김에 앞질러 말하자면 다음 날의 회의는 C 윙의 퀴리 방(Salle Curie)에서 열렸다. 



응? A 윙에 앤더슨(Anderson), B 윙에 보어(Bohr), C 윙에 퀴리(Curie)라니? 그런 거였군. 그럼 D 윙은? K 교수와 나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디랙(Dirac)!"

그리고 예상대로,



회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강영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 물리학 이론을 전공해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물질의 근본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힉스 입자, 여분 차원, 중성미자, 암흑 물질 등에 관련된 현상을 연구해 오고 있으며, 대칭성의 양자 역학적 근본 구조 및 확장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Direct search for heavy gauge bosons at the LHC in the nonuniversal SU(2) model”(2014) 등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 『파이온에서 힉스 입자까지』 등을 썼으며, 『이것이 힉스다』를 옮겼다. 현재 경상 대학교 물리 교육과 조교수다.


‘[불멸의 원자를 좇는 모험] 이강영 교수의 CERN 탐방기’는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1. CERN으로 떠난 스파이?! 

2. ‘천사와 악마’의 연구소에서 [바로가기]

3. 배를 탈 시간이다 [바로가기]



■ 빌 클린턴과 리처드 도킨스가 동시에 추천하는 단 하나의 물리학 책 


"21세기는 리사 랜들의 세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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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