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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학자 이기화 편] ① 과연,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인가? 본문
과학+책+수다 네 번째 이야기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이기화 편
세 번째 [과학+책+수다] 연재의 초대 손님은 9월에 출간된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의 저자인 이기화 서울 대학교 명예 교수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진학 박사로 한반도의 지각 구조 규명과 한반도 지진 연구로 방대한 연구 성과를 남겼고, 지진 관측망 구축, 지진 재해 대책 마련 등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련 국가 정책이 마련되는 데 기초를 마련한 대학자입니다.
이기화 명예 교수님의 역작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는 지진학의 개론에서부터 지진 재해 대책까지 지진학의 방대한 연구 성과를 오롯이 담아 놓은 책입니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 상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 [과학+책+수다 지진학자 이기화 편]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한반도가 과연 지진 안전 지대인가 하는 지진 안정성 문제는 물론이고, 지진학이 제주도 생수 산업 발전에 놀라운 기여를 했다는 생소한 이야기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근처에 몰려 있는 양산 단층의 활성 단층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이면까지 현장에서 연구에 매진해 온 원로 학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를 이미 구입해서 읽은 독자든, 앞으로 읽을 독자든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 교수.
사이언스북스 편집부(SB 편집부): 저희 [과학+책+수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출간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네요. 옛날 같으면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뒤풀이 자리일 텐데, 이렇게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예전에는 책 열심히 만들어서 출간하고 서점들에 배본하면 모든 일이 끝났는데 요새는 출판 시장 환경이 완전히 변해 그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만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앙 일간지 중 하나라도 큼지막하게 실리거나 지상파 방송 같은 데 한번 나오기만 해도 책은 알아서 팔려 나갔는데,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종이보다 디지털이, 웹보다 모바일이 중심인 시대가 된 거죠. 생산자 우위의 시대가 끝나고 소비자 우위의 시대가 온 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희 같은 전통적인 출판사들에서도 책 외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서비스해야 합니다. 책이 나왔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의미의 책인지, 잘 설명해 줘야 하는 거죠.
저희가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출간 전후로 저희 불로그나 페이스북 등에서 연재했던 「그림으로 보는 지진 이야기」나 이번 인터뷰 역시 이런 취지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그림으로 보는 지진 이야기」 연재가 끝나고 나면 오늘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선생님의 저서인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의 인터뷰를 내보내 볼까 합니다.
이기화: 괜찮습니다. 사실 책 나오고 나서 친구들이나 후배 교수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신문에 제 책 소개 나왔다고. 저희 세대야 아직 종이 신문을 많이 보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종이 신문이 훨씬 좋습니다. 신문을 펼쳐 보면 어떤 게 중요한 거고, 또 어떤 게 중요하지 않는 거라는 게 일목요연하게 보이니까요. 헤드라인들 쭉 보면서 어떤 것을 좀 깊이 읽고, 어떤 것은 대충 읽어도 되는지 잘 알 수 있죠.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 사이에서 어떤 게 저한테 필요한 건지 신문을 보면 고를 수가 있지요. 하지만 온라인 신문이나 페이스북 같은 걸 보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 잘 알 수가 없죠.
SB 편집부: 그렇지요. 워낙 낚시성 제목이 많아 기사의 정보 가치를 평가하려면 일단 클릭하고 들어가 끝까지 읽어야 하죠.
이기화: 필요하지도 않은 걸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거죠. SNS는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블랙홀 같습니다. (웃음)
SB 편집부: 맞습니다. 저희부터도 페이스북이나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초대형 IT 기업이 제공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노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기화: 그렇지요.
SB 편집부: 그래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야겠지요. 미래의 출판과 관련해서 출판 산업의 종사자들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희는 전자책 사업부터 본격적으로 해야겠지요.
이기화: 이 책도 전자책으로 나오게 되나요?
SB 편집부: 선생님 책을 포함해서 연말, 연초 사이에 전자책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다만 본문에 있는 삽화나 사진 같은 도판 때문에 전자책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을지 몰라 기술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기화: 그렇군요.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기대가 됩니다.
SB 편집부: 저희 푸념 때문에 서두가 너무 길어진 듯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먼저 이 책,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출간과 관련된 소회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기화: 그렇게 하지요. 제 책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뭐하지만, 이 책은 지진에 관한 것이라면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진학의 기본 이론에서부터 지진 재해 대처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진학에 대해서 거의 배우지 않는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지진학의 기본은 거의 다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대학에서 지진학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자신들이 대학에서 못 배운 새로운 관점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지진학이 저한테서 시작되었고, 저와 함께 우리나라 지진학의 역사가 쭉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 후배나 제자들,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나라 지진과 관련해서 책을 쓴다고 하면 제 책을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은 상당한 생명력을 가지리라고 봐요.
SB 편집부: 선생님, 자화자찬이 너무 심하십니다. (웃음)
이기화: 하하하. 이 책의 수명을 한 50년 보는데 이건 과욕인가요? (웃음)
SB 편집부: 아닙니다. (웃음) 지진학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더 오랫동안 읽힐 수 있도록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중인 이기화 교수.
지구 상에 지진 안전 지대는 없다!
SB 편집부: 그런데 이 책이 오래 읽히려면 우선 지진과 지진학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선생님. 이 책의 띠지에도 카피로 사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습니까,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인가요?’
이기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시니 저도 한마디로 대답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구상 그 어디에도 지진 안전 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요. 상대적으로 얼마나 큰 지진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아니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는 거죠. 우리나라도, 한반도도 지진이 계속 해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본이나 칠레, 히말라야처럼 판 경계에 있는 나라보다는 지진 활동의 정도가 많이 낮을 뿐이죠.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진을 구글 맵 등에 표시해 주는 유럽-지중해 지진학 센터(EMSC)의 웹 페이지 (http://www.emsc-csem.org/Earthquake/Map/gmap.php)
규모 2.5 이상의 지진을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미국 지질 조사국의 웹 페이지 (http://earthquake.usgs.gov/earthquakes/map/)
전 세계적으로 지진의 한 98퍼센트 정도가 지구조판들이 맞붙어 있는 판 경계선에서 일어납니다. 나머지 2퍼센트가 판 내부에서 일어나는 판 내부 지진이지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일본 해구 바로 위에 있는 일본이라든가 나스카판과 남아메리카판이 만나는 섭입대 위에 있는 칠레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판 경계 지진이라고 하죠.
우리나라나 중국 허베이 지역처럼 판 안쪽에 있는 지역에서 나는 지진을 판 내부 지진이라고 합니다. 같은 지진이라고 해도 판 내부 지진은 매우 불규칙하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지진 자료를 보더라도 15세기부터 18세기가지는 지진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는 적었고, 그 후로도 적었지요. 한 1,000년 정도를 간격으로 아주 불규칙하게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칠레나 일본보다는 지진 활동 빈도가 낮지만 완벽한 안전 지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1976년에 중국에서 일어난 탕산 지진 있지 않습니까. 이게 판 내부 지진인데 규모가 7.6이었고, 사망자만 25만 명 정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반도하고 이 탕산 지역이 하나의 지괴로 지질학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지질학적 환경으로 볼 때 탕산 지역이나 우리나라나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죠.
한반도 주변의 지구조적 환경. 한반도는 1976년에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허베이 지방과 마찬가지로 북중국 지괴에 속한다.
SB 편집부: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도 탕산 지진 같은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기화: 그렇지요.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요. 다만, 우리나라의 역사 지진 기록을 볼 때 그렇게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좀 낮다고 봐요. 그러지 않으리라 봐요. 역사 기록상으로는 6.7 정도가 가장 큰 지진이었죠. 규모 7 정도 되는 지진은 좀 어렵지 않느냐 하고 봐요. 판 내부 지진의 원인은 사실 판 경계에서 발생한 응력인데, 이 응력이 판을 따라 전파되면서 판 내부에서도 지진들을 일으키지요. 그러면서 약해져요. 그런데 한반도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판 경계인 히말라야나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히말라야 인근 판 경계에서 발생한 응력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오면서 중국 각지에서 지진을 일으키지요. 그렇게 지진들을 일으키면서 거의 다 소모가 되어 버려요. 그래서 유라시아판의 끝에 있는 한반도에서는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보는 거지요.
SB 편집부: 하지만 또 다른 판 경계인 일본 해구는 가까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그렇게 많은 지진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잘 일어나지 않지 않습니까?
이기화: 한반도는 실제로 인도판하고 유라시아판의 경계인 히말라야와, 이쪽 태평양판하고 유라시아판의 경계인 일본 해구 -그 중간쯤 있습니다. 일본 해구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섭입하는 일본 해구의 구조가 복잡해서 그곳에서 발생한 응력이 일본 열도를 넘어서 효과적으로 전파가 안 됩니다. 그래서 좀 낮은 편이에요.
SB 편집부: 응력(應力)이라는 게 어떤 물체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에 저항해서 원래 형태를 지키려고 하는 힘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러시아워 때 만원 열차에서 사람들이 서로 밀치는데 구겨지지 않으려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유라시아판이 인도판과 태평양판의 힘에 버티기 위해 반발할 때 생기는 힘이라고 이해하면 되겠군요. 이 책 3장 「갈라진 대지의 틈: 지진 발생 메커니즘」에서 말씀하신 탄성 반발설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한반도는 지구조판의 구조상 이 응력들이 지진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작용을 하기가 애매한 지점에 딱 있는 셈이군요.
이기화: 그렇지요. 히말라야에서 생긴 응력은 중국 땅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지진들을 유발하며 약해지고,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내려가는 일본 해구는 지질학적 구조가 복잡해 가지고 효과적으로 응력이 전파되지 않아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거지요. 지진학적으로 아주 좋은 지질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웃음)
SB 편집부: 지정학적으로는 미·일·중·러 강대국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한반도가 지구 물리학적으로는, 아니 지진학적으로는 굉장히 신묘한 위치에 있는 셈이군요. (웃음)
한반도의 지진학적 위치를 표시한 이기화 교수의 손 그림.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응력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도달하기 전에 거의 다 소모되고, 일본 해구에서 발생하는 응력은 그 복잡한 지질학적 구조 때문에 한반도까지 효과적으로 전파되지 못한다.
지진학이 없었다면 제주 삼〇수도 없었다!?
SB 편집부: 한반도의 지진 안정성 문제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좀 더 일반적인, 지진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부터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군요. 지진학이 어떤 학문인지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대학 신입생들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시고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기화: 지진학은 지진과 이에 연관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진은 인류에 가공할 만한 지진 재해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지진 연구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지진학은 매우 젊은 학문으로서 지진파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진계가 발명된 19세기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구 내부 구조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지진파를 분석하여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지구 내부를 통과하는 지진파에 이러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의사가 진맥을 통하여 환자의 병리 현상을 파악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순수 과학적 측면에서 지진학은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지구 내부가 지각, 맨틀, 외핵과 내핵의 층상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냈고 또 20세기 지구 과학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불러온 판구조론의 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응용 과학적 측면에서는 지구 내부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지진학의 기법은 석유나 주요 지하 자원의 탐사에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 어느 지역의 지진 활동은 그 지역 건조물의 가공할 만한 지진 재해를 경감하기 위한 내진 설계에 기본 자료가 됩니다.
SB 편집부: 지진학이 실제로 가 보기 어려운 지구의 내부 구조를 파헤치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는 지진 현상과 관련해서 많은 성과를 내는 학문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 모두에 걸쳐 있는 중요한 과학이군요. 그리고 지진학이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인지는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만하도록 하죠. 하지만 지구 내부 구조 문제나 한반도에서처럼 1,00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 지진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있어 실생활과 큰 상관없는 문제처럼 여겨질 것 같습니다. 혹시 지진학이 일상 생활과 어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 같은 건 없을까요?
이기화: 혹시 삼〇수 아십니까?
SB 편집부: 삼〇수요?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취수하는 생수 말씀하시는 거지요.
이기화: 저의 지진학 연구가 없었다면 제주도 생수 사업은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SB 편집부: 제주 삼〇수 하면 처음에는 지금 생수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생수 아닙니까.
이기화: 아마 그럴 겁니다. 지진학의 이론이라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구 물리학의 이론을 응용해서 1992년과 1993년에 한 연구인데, 제주도의 민물 지하수 대수층의 체적을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추정하고 그것을 야외 전기탐사를 통하여 실험적으로 입증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제주도에 지하수가 많다는 사실이 제 연구로써 밝혀졌지요.
인터뷰 중인 이기화 교수.
SB 편집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울 때 제주도는 구멍이 많은 화산암으로 되어 있어 수자원이 부족하고, 그래서 논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는 제주도가 물 부족 섬이라는 인상이 박혀 있었는데, 제주 삼〇수를 대량으로 팔고 심지어 중국 수출까지 시도하는 것을 보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저 많은 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심지어 제주도의 자연을 외지 기업과 외지인 들이 착취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사실 제주도는 지하수가 많은 섬이었군요. 혹시 제주도의 생수 사업이 본격화된 게 선생님의 연구 논문이 나오고 나서였는지요?
이기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제가 이론적으로 예측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의 담수인 지하수의 총량을 몰랐을 테니까요. 저는 제주도 지하수 대수층의 체적을 유체 동역학적 평형 이론으로 분석했습니다.
SB 편집부: 유체 동역학적 평형 이론이요?
이기화: 말이 좀 어렵지요.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제주도의 지하수는 빗물에서 온 것입니다. 제주도에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은 흙속으로 스며들겠지요. 그 물은 흙 속으로 깊이깊이 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제주도 지하에 스며들어 있는 바닷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뜹니다. 바닷물이 민물보다 비중이 높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비중이 낮은 민물이 비중이 높은 바닷물 위에 떠 있게 됩니다. 서로 섞이지 않고요. 마치 기름이 물위에 떨어지면 렌즈처럼 방울로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담수와 해수의 유체 동역학적 평형 상태라고 합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제주도의 지하수면과 해수면 경계의 모양을 결정하여 담수 대수층의 부피를 추정하고 이로부터 담수의 총량을 아마 200∼300세제곱킬로미터 정도로 추정했을 겁니다. 제주도에 개발이 충분한 민물 지하수가 존재함을 밝힌 거죠. 또 심부 전기 탐사를 실시하여 실제로 지하수가 대체로 이론에서 예측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제주도 지하수에 포함되어 있는 민물과 바닷물의 유체 동역학적 평형 상태를 설명한 손 그림.
SB 편집부: 심부 전기 분석이라는 게 이 책에서 지진 예측을 할 때 언급되던 전기 비저항 탐사와 비슷한 건가요?
이기화: 그렇습니다. 지표에서 인공적으로 전기를 지하에 공급하여 전류가 흐르게 하고 여러 지점에서 전위차를 측정하여 지층에서의 수직 또는 수평 비저항의 분포를 결정하는 것이 비저항 탐사입니다. 심부 전기 탐사는 지하 깊은 지층에서도 전류가 흐르도록 많은 전기를 공급하여 심부 지층의 비저항 분포를 분석하는 탐사입니다.
SB 편집부: 건강 검진 같은 걸 할 때 쓰는 체지방 검사기와 비슷한 원리군요. 근육과 지방은 포함된 물의 양이 달라 전기를 흘리면 저항값이 달라지는데, 이것을 이용해 체지방을 계산해 내는 것 말입니다. 지진학의 탐사 방법이 이렇게 다이어트용 체지방 측정 저울과도 연관되는군요.
이기화: 원래 지하수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지진과 지구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물에 대해서도 알게 됐죠. 결국 이런 연구 아이디어로 이어졌죠. 하하하. (웃음)
SB 편집부: 지하수 하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책에서 인공 지진 이야기를 하시면서 미국에서 지하수를 인공적으로 넣었다 뺐더니 지진이 유발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제주 삼〇수 사업권을 광〇제약에 뺏긴 농〇 사에서 백두산에서 지하수를 뽑아 ‘백〇수’라는 상표로 팔고 있는데, 이게 백두산에서 지진 또는 더 나아가 분화까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북한의 지하 핵실험이 안 그래도 불안정한 백두산의 화산 분화를 앞당길 수 있는데, 어쩌면 농〇 사의 백〇수 취수가 백두산 폭발을 앞당기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는 없겠습니까? (웃음)
이기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하수와 지진 발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단층이 쪼개지면서 지진이 나지 않습니까?
SB 편집부: 그렇지요.
이기화: 그런데 단층에 물이 들어가면 훨씬 쉽게 깨져요, 이렇게. 물이 마치 윤활유처럼 작용해서 지진이 나기에 조금 부족한 단층이라도 보다 쉽게 깨지도록 만드는 거지요. 물이 들어가면서 마찰력이 약해지는 거지요. 판 경계의 섭입대 같은 곳에서도 판이 다른 판 아래로 내려가면서 바닷물도 함께 끌고 내려가는데, 이것 때문에 지진이 더 잘 일어나게 되지요.
SB 편집부: 그렇게 되는군요. 지진학, 정말로 흥미로운 학문이군요.
(다음 편에서 계속)
(이기화 교수의 제주도 담수층 분석 연구 성과는 다음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Kiehwa Lee, “On the hydrodynamic balance of fresh and salt waters in the Cheju Island”, 《지질학회지》, 28권 6호, p. 649-664. 1992; Kiehwa Lee, Hyoungsoo Kim, “Deep electrical soundings in the Cheju Island”, 《지질학회지》, 29권 1호, p. 30-38. 1993.)
이기화 교수의 연구 논문을 촬영한 사진.
이기화
1963년에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캐나다 빅토리아 지구 물리학 연구소(Canada Victoria Geophysical Observatory)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78 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울 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1978년에 일어난 홍성 지진 이후 관심이 커진 첨단 지진학 연구 성과를 활용해 한반도의 지각 구조를 규명하고, 원자력 발전소 등 한국의 기반 산업 시설이 몰려 있는 양산 단층이 활 성 단층임을 발견하는 등 한국 지진학과 지구 물리학의 역사를 이끌어 온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대한지구물리학회 1, 2 대 회장, 명예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명예 회장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상, 3・1 문화상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질학(Geology of Korea)』(공저), 『한국의 제4기 환경』(공저) 등이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바로가기]
‘[과학+책+수다 지진학자 이기화 편]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1. 과연,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인가?
2. 지구 과학 혁명의 현장에서 보낸 유학 시절
3. 대한민국의 1호 지진학 박사, 이기화
4. 지진 예보,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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