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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협력의 공식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1화 마치 누군가 설계한 듯한

Editor! 2016.01.20 10:15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국내 손꼽히는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님께서 《과학동아》 2016년 신년호부터 새로운 연재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뵙습니다. 「협력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이번 글은 찰스 다윈 이래 수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달라붙어 비밀을 밝히고자 애썼던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의 문제를 다룹니다. 《과학동아》에 글이 게재가 된 후 《과학동아》 글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도 연재되고 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타성은 인간의 본능인가?

용담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제주 밤바다는 아름답다. 달빛이 조용히 바다에 내린다. 어선들은 멀리서 집어등을 밝힌다. 지난해 9월 어느 새벽, 단짝 친구인 이승준 씨와 강동호 씨는 편의점 앞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적막이 깨졌다. “누구 없어요?”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졌다. 이를 목격한 행인 세 명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이승준 씨가 바다에 먼저 뛰어들었다. 술 취한 남자를 붙잡았다. 바닷속 바위에 함께 매달렸다. 바다는 얼음처럼 찼다. 남자는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강동호 씨도 합류했다. 둘이서 힘을 합쳐 남자를 바위 위로 간신히 밀어 올렸다. 행인들이 119에 신고했고 잠시 후 구조대원이 도착했다. 차갑고 어두운 밤바다에 휩쓸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두 청년은 생전 본 적조차 없는 남자의 목숨을 구했다. 

나중에 신문기자가 이승준 씨에게 무슨 생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물었다. 이승준 씨는 한 일이 없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강동호 씨가 대신 답했다. “승준이가 굉장히 이타심이 강해요. 아무 생각 없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제주 소방서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금전적 보상은 없었다. 그래도 두 이는 귀한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각주:1]


ⓒ DonkeyHotey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자연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비정한 정글인가, 아니면 모든 생명이 서로 돕고 나누는 공동체인가? 침몰하는 세월호를 먼저 탈출하여 304명의 무고한 승객들을 희생시킨 이준석 선장과 선원 15명을 보면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인명 구조에 따르는 이해타산을 머리로 저울질하지 않고서 곧바로 몸을 바닷속으로 던진 두 청년을 보면 이타성도 인간의 본능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연재는 이기성과 이타성을 진화의 관점에서 살핀다. 오늘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협력과 갈등을 하나의 단일한 이론 틀로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이 1963년에 제안한 이른바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다. 앗, 해밀턴이나 포괄 적합도 이론이 낯설게 들린다고 인상을 쓰진 마시라. 지금은 그냥 이 이론이 우리나라에서도 늘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낳은 든든한 배경이라는 것만 듣고 넘어가면 된다. 『이기적 유전자』도 처음 들어보셨다고요? 뭐, 괜찮다. 어쨌든 우리는 해밀턴이라는 사람이 만든 과학 이론이 어떻게 부모의 자식 사랑, 남아 혹은 여아 선호, 형제간의 다툼, 조부모의 손주 챙기기, 비친족 간의 협력, 영웅적인 자기희생, 어른이 되어 분가할 때의 이주 패턴,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잘 설명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협력과 이타성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설명하는 책들이 최근 쏟아져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연재는 그들과 다르다 (달라야 원고료 주는 보람이 있을 테니 과학동아 입장에선 다행이다.).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석학 에드워드 윌슨은 최근 펴낸 책 『지구의 정복자』에서 해밀턴의 이론과 그 이론의 확장판이라고 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짓밟으며 집단 선택만이 길이요 진리임을 주장했다. 윌슨에 따르면, 포괄 적합도 이론은 “한 번도 제대로 들어맞은 적이 없었고, 이제 무너져 버렸다.” (『지구의 정복자』, 70쪽)[각주:2] 이론생물학자 마틴 노왁도 『초협력자』라는 책에서 포괄 적합도 이론은 피붙이간의 이타적 행동만 설명할 수 있을 뿐, 집단에 대한 헌신이나 비친족에 대한 도움 등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라고 질타했다.[각주:3]

대다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은 윌슨과 노왁의 주장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난 50여 년 동안, 포괄 적합도 이론은 이타성이 왜 진화했는지 깔끔하게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여전히 학계의 중추이고 앞으로도 중추로 활약할 이론이 몇몇 과학대중서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옛날에 무너진 구닥다리로 인식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연재는 포괄 적합도 이론의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그 첫걸음을 아쿠아리움에서 내딛는다.




풀잎 해룡을 찾아라!

얼마 전 롯데월드몰 아쿠아리움을 7살 난 아들과 함께 방문했다. 깊고 드넓은 해양 생태계의 경이로움을 아이가 직접 체험하게 해주려는 의도는……별로 없었다. 아쿠아리움 방문고객은 주차요금을 크게 할인해 준다기에 아쿠아리움을 후딱 둘러보고 남은 시간 동안 쇼핑몰을 즐길 심산이었다. 아,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다. 풀잎 해룡(Weedy seadragon)이었다. “하준아, 저것 봐. 해초랑 똑같이 생겼지? 저렇게 모양과 색깔이 해초를 빼닮아서 남들에게 잡혀먹히지 않으려는 거야.” 그런데 풀잎 해룡이 해초들 사이에 있으니 정말로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이는 끝내 해룡을 찾지 못했다. “아빠,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풀잎 해룡 ⓒ Richard Ling


풀잎 해룡은 마치 조각가가 해초를 본떠서 정교하게 빚어놓은 걸작품 같다. 조각가가 실제로 있을 리 만무하다. 어쨌든 그가 그렇게 빚은 ‘목적’은 주변 해초를 흉내 내서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함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계의 생물들을 찬찬히 뜯어 보면, 어떤 목적을 잘 달성하게끔 정교하게 계획된 특질, 곧 적응(adaptation)을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날개는 하늘을 날기 위함이다. 눈은 세상을 보기 위함이다. 심장은 혈액을 내보내기 위함이다. 눈, 귀, 팔, 다리, 심장, 날개, 더듬이, 아가미, 뿌리, 열매처럼 분명한 기능을 수행하게끔 설계된 생물학적 적응들은 우리 주변에 널렸다. 너무 흔한 나머지 우리는 그것들이 얼마나 탁월하게 설계되었는지 그 진가를 종종 잊는다. 

일례로 손을 살펴보자. 그리스의 의사였던 갈레노스는 사람의 손은 사물을 조작하는 도구로 그야말로 완벽하게 설계되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마법처럼, 손은 쉴 새 없이 변신한다. 갈고리 모양 손잡이 (들통을 들 때), 가위 모양 손잡이 (담배를 쥘 때), 다섯 가락 집게 (잔 받침을 잡을 때), 세 가락 집게 (연필을 쥘 때), 조임 손잡이 (망치를 쥘 때), 원형 손잡이 (병뚜껑을 열 때), 그리고 구형 손잡이 (공을 집을 때)로 손은 현란하게 탈바꿈한다.[각주:4] 바구니 안에 있는 날달걀을 하나 집어서 다른 바구니로 옮겨야 한다고 하자. 사람에겐 식은 죽 먹기다. 로봇에겐 끔찍한 난제다. 너무 세게 잡으면 달걀을 깨뜨린다. 너무 살살 잡으면 달걀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달걀을 손가락으로 잡기 전에 어느 정도의 강도로 잡을지 이미 결정을 해야 한다! 이처럼 공학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과제를 우리의 손은 별다른 노력 없이 척척 해낸다. 다시는 손을 무시하지 마시라.


ⓒ BenGrantham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적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1858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다. ‘다윈의 불도그’를 자처하며 평생 다윈을 열렬히 지지했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는 일찍이 자연 선택 이론을 처음 듣고서 “이런 바보 같으니! 왜 나는 이 쉬운 이론을 여태 생각해내지 못했을까?”라고 탄식한 바 있다. 솔직히, 맞는 말이다. 자연 선택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일어나는 극히 단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조건은 이렇다. 첫째, 변이(variation)다. 한 종에 속한 개체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나는 내 가족들, 내 이웃들, 다른 나라 사람들과 키, 성격, 지능, 다리 길이 등에서 다르다. 둘째, 유전(inheritance)이다. 변이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해진다. 셋째, 차별적인 번식(differential reproduction)이다. 개체들이 후대에 남기는 자식 수는 각기 다르다. 이 셋만 성립하면 자연 선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어난다. 예외는 없다. 그저 논리적인 귀결이다. 개체의 번식 성공도(평생 낳는 자식 수, 이를 ‘적합도(fitness)’라 한다)를 높여주는 유전적 변이가 개체군 내에 점차 흔해지는 과정,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다. 예컨대 어떤 종의 생태적 환경에서 먹이를 잘 찾게 하거나, 포식자를 잘 피하게 하거나, 전염병에 잘 안 걸리게 하는 등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형질은 점차 개체군 내에 널리 퍼지게 된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핏(fit)이 좋다고 흔히 표현하지 않는가. 바로 그거다. 유전적 변이들 가운데 개체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변이만을 여러 세대에 걸쳐 우직하게 골라내는 자연 선택 과정이 결국 그 종이 계속 접해온 환경에 딱 맞는, 핏한 개체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사자는 황량한 사막이나 빽빽한 열대 정글에 적응하지 않았다. 사자의 형태와 습성은 탁 트인 아프리카 초원에 딱 들어맞는다. 요약하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꼭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생물학적 적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잘 설명해준다. 




다윈과 멘델의 의기투합

주위를 둘러보라. 확실히 자식은 부모를 닮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키, 성격, 언행 등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았다. 자연 선택이 작동하려면 변이가 유전되어야 한다는 두 번째 전제는 따라서 신빙성 있다. 그러나 이 자체는 왜 자식이 부모를 닮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한다. 1858년 다윈과 월리스가 영국의 린네 학회에서 논문을 각자 발표한 지 8년 후에야, 수도승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수도원 정원에서 기른 완두콩들로부터 유전 법칙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멘델에 따르면, 유전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일종의 입자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일어난다. 이렇게 유전되는 입자를 오늘날 우리는 ‘유전자(gene)’라 한다. 한 유전자는 자신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전해지든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섞이는 일은 없다. 이를테면, 완두콩 색깔을 지정하는 유전자는 노란 유전자와 푸른 유전자다. 그래서 노란 콩 아니면 푸른 콩만 있다. 누르께한 푸른 콩은 있을 수 없다.


ⓒ pixabay


멘델의 유전학은 완전히 묻혀 있다가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몇몇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에서 빠져 있던 퍼즐 한 조각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진화학자들이 새로 등장한 유전학자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맞이했을까? 그렇지 않다. 다윈은 키, 몸무게, 지능처럼 물 흐르듯 연속적인 변이를 강조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변이들이 충분히 있어야 자연이 이 중에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멘델이 주로 연구한 변이는 콩 색깔(노랑, 푸름), 콩의 껍질(둥금, 주름), 꽃의 색(흰색, 붉은색)처럼 단속적이고 불연속적인 변이었다. 

초창기 멘델 유전학자들은 돌연변이가 한 유전자를 다른 유전자로 일거에 바꿈에 따라 진화가 된다고 생각했다. 즉, 진화는 돌연변이가 성큼성큼 내딛는 도약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연속적인 변이에 자연 선택이 작동해 가랑비에 옷깃 젖듯 서서히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발상은 당치 않다며 비웃었다. 다윈을 떠받들던 진화학자들이 발끈한 건 당연하다. 20세기 초반 유전학자들과 진화학자들은 서로 치고받으며 무려 30년을 싸웠다.

1930년대 초반 로널드 피셔(Ronald Fisher), 슈얼 라이트(Sewall Wright), J.B.S. 할데인(Haldane) 세 사람이 다윈과 멘델의 대화합을 끌어냈다. 단단한 입자 같은 유전자들이 키, 몸무게 같은 연속적인 변이도 만들며, 여기에 자연 선택이 작동함이 수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자연 선택은 개체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며 점차 흔해지는 과정이다. 즉, 다윈 당시에는 없었던 유전학적 토대를 드디어 진화론이 얻게 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진화 이론의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라 한다.

혹시 여러분이 멘델의 법칙이나 완두콩 껍질만 들어도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면, 위에서 한 말은 지금 즉시 잊어도 좋다. 오늘 기억해야 할 사항은 딱 하나다. (밑줄 칠 준비가 되셨는지?) 자연 선택이 복잡한 적응을 만든다. 달리 말하면, 자연 선택은 개체의 번식 성공도(=적합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왜 이 결론을 다음 달까지 기억해야 하나면, 이 명제는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대해서는 완전히 틀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뭐라고?

(2화는 2월 셋째주 수요일인 2월 17일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연장통』

『욕망의 진화 
















  1. “구해? 말아?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겨레신문, 2015년 11월 28일. [본문으로]
  2. Wilson, E. O. (2012). The social conquest of earth (1st ed.). New York: Liveright Pub. Corporation. [이한음 역, 2013, 사이언스북스, 서울]. [본문으로]
  3. Nowak, M. A., & Highfield, R. (2011). SuperCooperators: Altruism, evolution, and why we need each other to succeed. New York: Simon and Schuster. [본문으로]
  4. Pinker, S. (1997). How the mind works. New York, NY: W. W. Norton & Company.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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