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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협력의 공식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6화 사회성의 진화 이론

Editor! 2016.06.24 10:03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국내 손꼽히는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님께서 《과학동아》 2016년 신년호부터 새로운 연재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뵙습니다. 「협력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이번 글은 찰스 다윈 이래 수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달라붙어 비밀을 밝히고자 애썼던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의 문제를 다룹니다. 《과학동아》에 글이 게재가 된 후 《과학동아》 글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도 연재되고 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윌리엄 해밀턴의 첫 논문은 1963년에 나왔다. “이타적 행동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학술지 [아메리칸 내츄럴리스트]에 실린 단 3쪽짜리 논문이었다.[각주:1] 먼저 출간되긴 했지만, 이 소논문은 이듬해 [이론 생물학 저널]에 실린 두 논문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 I, II”보다 나중에 쓰여졌다. 해밀턴은 3년여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긴 논문을 먼저 써서 [이론 생물학 저널]에 투고했지만, 심사위원들로부터 글이 너무 장황하니 둘로 나누어서 다시 투고하라는 결정을 받았다. 심사위원 입맛대로 고치려면 또 긴 세월이 걸릴 터였다.    

해밀턴은 그동안 헛수고를 하지 않았음을 급히 입증하고자 했다. 긴 논문의 요약본에 해당하는 글을 부랴부랴 써서 [네이처]에 보냈다. 이 소논문은 거의 발송하자마자 [네이처] 편집장으로부터 게재 불가판정을 받았다. 편집장은 논문의 주제를 감안해 볼 때 ‘심리학이나 사회학 학술지’에 투고하는 게 낫겠다고 친절하게(?) 조언해주었다. 결국 이 소논문은 1963년 [아메리칸 내츄럴리스트]에 실렸다. 다음 해 [이론 생물학 저널]에 실린 두 논문과 함께, 진화생물학에 새로운 혁명의 도래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자.




사회적 행동은 네 가지가 있다

생물학에도 근본적인 법칙이 있는가? 흔히 논쟁이 벌어지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로널드 피셔의 답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물론이지. 내가 발견했잖아.” 피셔는 “자연 선택은 각 개체의 적합도(평생 낳는 자식수)를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자연 선택의 근본정리’라고 명했다. 피셔는 이 정리가 생명 과학에서 최상의 위치를 차지하며 가히 열역학 제2법칙에 비견할만하다고 주장했다.[각주:2]


로널드 피셔 (출처: 42evolution)


아시다시피, 피셔의 극성팬을 자처했던 해밀턴은 근본정리가 유독 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는 성립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달리 말하면, 해밀턴이 스스로 부여한 사명은 피셔의 근본정리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진화 이론은 개체의 적합도를 늘리는데 기여하는 유전자가 항상 선택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개체의 적합도를 낮추는 이타적 행동이 선택된 걸까? 유전자가 사회적 행동을 만들건 아니면 다른 형질을 만들건 간에, 자연선택은 개체의 “이것”을 일편단심 증가시키려 한다는 일반 법칙을 우리가 내놓을 수 있을까?

우선 사회적 행동을 분류하고 넘어가자. 사회적 행동은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적합도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적합도에도 영향을 끼치는 행동으로 정의된다. 적합도를 증가 또는 감소시키느냐에 따라 해밀턴은 사회적 행동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표 1).[각주:3]


표 1. 사회적 행동의 분류. 협력(cooperation)은 상호이득과 이타성을 포괄하는 용어다.


첫째, 당사자의 적합도와 상대방의 적합도를 모두 높이는(+/+) 행동은 ‘상리적(mutually beneficial)’인 행동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들은 여럿이 힘을 합쳐 먹이를 사냥한 다음에 획득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둘째, 당사자의 적합도를 높이면서 상대방의 적합도를 낮추는(+/-) 행동은 ‘이기적(selfish)’인 행동이다. 셋째, 당사자의 적합도를 낮추면서 상대방의 적합도를 높이는(-/+) 행동은 ‘이타적(altruistic)’인 행동이다. 넷째, 당사자와 상대방의 적합도를 모두 낮추는(-/-) 행동은 ‘악의적(spiteful)’인 행동이다. 악의적인 행동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기꺼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남에게 해코지를 하는 행동이다. 앙심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뻔한 분류체계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분류체계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행동이 이로운지 혹은 해로운지를 판가름하는 잣대는 개체가 ‘평생 동안’ 낳은 자식 수(적합도)에 그 행동이 끼친 영향임을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친족끼리 “내가 널 도와줄게, 다음엔 네가 날 도와다오.”라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성(reciprocity)은 이타적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내가 남을 도와줄 땐 일시적으로 잠깐 손해를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둘 다 평생 낳는 자식 수를 증가시킨다. 따라서 상호성에 의한 친절은 이타적 행동이 아니라 상리적 행동이다.

물론 어떤 개체가 남을 도와줄 때 그 당사자의 적합도가 증가하는지 감소하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벨딩 땅다람쥐(Belding’s ground squirrels)는 포식자가 나타나면 경고음을 내서 다른 개체들이 피신하게끔 도와준다. 모두 혼비백산하는 난장판을 연출해서 포식자를 혼란 시켜 결국 경고음을 낸 개체도 이득을 보는지, 아니면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바람에 더 잡아먹히는 손해를 보는지는 1977년에 동물행동학자 폴 셔먼이 이 행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 수수께끼였다. 이제 당사자의 적합도가 증가하건 감소하건 간에, 상대방의 적합도를 높여주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행동을 ‘협력적(cooperative)’인 행동이라고 부르자. 그것이 이타적 협력(-/+)인지 상리적 협력(+/+)인지 대개 나중에서야 알 수 있다. 요컨대, 오늘날 진화생물학자들은 이타성과 상호이득을 묶어서 어쨌든 다른 개체의 적합도를 높여주게끔 진화한 행동을 ‘협력(cooperation)’이라고 부른다.


먹이를 먹고 있는 침팬지 (출처: wikimedia)


벨딩 땅다람쥐 (출처: wikimedia)




자연 선택은 개체의 포괄 적합도를 증가시킨다

해밀턴의 목표는 피셔의 근본정리를 사회적 행동의 진화도 잘 설명하게끔 확장시키는 것이었음은 1963년 논문의 첫 단락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연 선택의 고전적] 이론은 동물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자기의 직계 자손이 아닌 동종의 다른 개체에게 이득을 주게끔 행동하는 경우를 설명할 수 없다.”[각주:4] 이러한 이타적 행동을 잘 설명한다고 그동안 믿어져 온 집단 선택은 “수식 모델로 지지되지 않는다.”[각주:5] 집단 선택과 단칼에 결별한 다음, 해밀턴은 말한다. “그러나, 고전적 이론을 확장시켜……부모의 자식 돌보기와 무관한 이타적 행동의 진화도 설명할 수 있도록……일반화할 수 있다.”[각주:6]

어떻게? 자연 선택은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는 유전자의 빈도가 흔해지는 과정임을 되새기면 된다. 사회적 행동을 만드는 유전자는, 그 유전자가 실제로 어떠한 경로를 거쳤건 간에, 어쨌든 다음 세대에 자신의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기만 한다면 선택될 수 있다. 


한 쌍의 대립유전자 G와 g를 상상해 보자. G는 이타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반면, g에 의한 영향은 없다. ‘최적자 생존’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G가 전파될지 아닐지 결정짓는 궁극의 기준은 그 이타적 행동이 행동한 당사자에게 이득이 되는가가 아니라 유전자 G에게 이득이 되느냐이다. (해밀턴, 1963년, 352쪽).[각주:7]


갑돌이 몸속에 들어앉아서 사회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유전자가 정말로 의도나 목적을 지닌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다음 세대에 전파되기 위해 이 유전자가 택할 수 있는 한 가지 경로는 갑돌이가 자식을 많이 얻게끔 돕는 것이다. 이를테면, 을돌이로부터 호빵을 탈취해서 갑돌이가 먹게끔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로도 있다. 만약 을돌이의 몸속에도 이 유전자의 복제본이 들어 있을 확률이 있다면, 을돌이가 자식을 많이 얻게끔 도와줌으로써 갑돌이 안의 유전자는 간접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파될 수 있다. 어차피 유전자의 지상목표는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많이 남기는 것이므로 꼭 현재 들어 앉아 있는 갑돌이에게만 집착할 이유는 없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복제본만 많이 남기면 그만이다.

우리는 방금 고전적 진화 이론을 사회적 행동도 설명하게끔 확장시켰다. 사회적 행동에 관한 한, 자연 선택은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자식 수(직접 적합도(direct fitness), 즉 고전적 의미의 적합도)를 신경 쓸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일으킨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있는 상대방의 자식 수에 끼친 영향의 일부분(간접 적합도(indirect fitness))도 마치 자기 것인 양 신경을 쓰게끔 작용한다. 직접 적합도와 간접 적합도를 합하면 바로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가 된다. 

    

포괄 적합도 = 직접 적합도 + 간접 적합도

   

해밀턴은 1964년 논문에서 사회적 행동의 경우 자연 선택은 각 개체의 포괄 적합도를─고전적인 의미의 직접 적합도가 아니라!─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함을 입증했다. 눈의 시력을 좋게 해서 야밤에 절벽에서 추락하지 않게 해주는 형질처럼, 사회적 행동과 상관 없이 당사자의 적합도에만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의 경우는 상대방과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0인 특수한 상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밀턴은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래 가장 중요한 혁명을 이룩했다. 자연선택은 개체의 적합도를 최대화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개체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한다.


(출처: Johnathon Nguyen)




‘유전자의 눈’ 관점(Gene’s eye view)의 씨앗을 심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개체가 무엇을 최대화하게끔 행동하게 만드는가? 해밀턴이 찾은 정답은 포괄 적합도, 즉 어떤 행동이 당사자의 적합도에 끼친 영향뿐만 아니라 그 유전자를 공유할지도 모르는 다른 개체의 적합도에 끼친 영향의 일부분도 포괄하는 척도였다. 이처럼 포괄 적합도는 어디까지나 개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념이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해밀턴의 초창기 논문들에서 ‘유전자의 눈’ 관점도 엿볼 수 있다.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제본을 남기려는 의도와 목표를 지니며,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분투하는 유전자 말이다. 이러한 은유는 해밀턴의 1972년 논문에서 한층 더 명확히 드러난다. “개체의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유전자에게 일시적으로 지능을 허락하고 어느 정도 선택의 자유도 부여함으로써 논의를 좀더 생생하게 만들어 보자.”[각주:8] 두말할 필요 없이, 이러한 ‘유전자의 눈’ 관점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크게 발전하여 행동생태학의 전분야를 통합하는 중심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공정하게 말하면 이렇다. 해밀턴이 ‘유전자의 눈’ 관점의 씨앗을 심었다면, 도킨스는 이를 거목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해밀턴, 트리버스, 윌리엄스, 메이나드 스미스 등 기존 학자들의 연구를 알기 쉽게 포장한 과학 대중서에 불과하다는 폄하를 국내에서도 종종 접하는 것은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7화는 7월 20일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연장통』

『욕망의 진화 













  1. Hamilton, W. D. (1963). The evolution of altruistic behaviour. American Naturalist, 97, 354-356. [본문으로]
  2. Fisher, R. A. (1930). 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p. 35). 자연선택의 근본정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어떤 시점에 어떤 개체의 적합도가 증가하는 속도는 그 시점에서 적합도의 유전적 분산과 같다.” 이 문장만 봐도 피셔의 책은 대단히 읽기 어려움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본문으로]
  3. Hamilton, W. D. (1964).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 I & II.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7(1), 1-52. West, S. A., Griffin, A. S., & Gardner, A. (2007). Social semantics: altruism, cooperation, mutualism, strong reciprocity and group selection. Journal of Evolutionary Biology, 20(2), 415-432. [본문으로]
  4. Hamilton, W. D. (1963). 여기서 고전적 이론은 피셔의 근본정리, 즉 자연 선택은 개체의 적합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현대적 종합의 핵심명제를 말한다. [본문으로]
  5. Hamilton, W. D. (1963) [본문으로]
  6. Hamilton, W. D. (1963) [본문으로]
  7. Hamilton, W. D. (1963) [본문으로]
  8. Hamilton, W. D. (1972). Altruism and related phenomena, mainly in social insects. Annual Review of Ecology and systematics, 3, 193-2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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