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불교와 과학의 대화 (2/5)] 불교가 과학에게 바라는 것들 본문

책 이야기

[불교와 과학의 대화 (2/5)] 불교가 과학에게 바라는 것들

Editor! 2011. 8. 14. 15:45

불교와 과학의 대화, 연속 강연

종교와 과학, 과학과 종교는 만날 수 없는 것일까?

불교와 과학의 대화에서 길을 찾는다!


5회의 연속 강연 중 그 첫 번째 강연 "왜 과학과 불교인가?"(8/4)에 이어 두 번째 강연이 8월 11일(목), 봉은사 내 봉은선원에서 있었습니다. 1회 강연 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셨는데, 강연 장소의 문제로 모든 분들을 다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은 종림 스님의 강연으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강연 시작 전, 다음 3회 강연(과학이 불교에 바라는 것들) 때 함께 하실 장대익 교수님과 종림 스님의 대화가...


강연 시작 전 이미 빈 자리가 없게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7시가 넘어서 오신 분들은 자리가 없어서 제일 뒤쪽 좁은 공간에서 불편을 감수하시면서 강연을 열심히 들으셨답니다.


 

사회를 맡으신 김윤성 교수님이 1회 강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시고 2회 강연회를 시작해 주셨습니다.


대장경의 디지털화 사업을 진행하셨던 종림 스님의 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3. 불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종림

기존 불교계가 과학을 어떻게 봐 왔는지, 그리고 현재 불교는 과학에 무엇을 바라는지, 과학과 불교의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강연 초입부에 종교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도킨스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에 와~ 했는데, 나중엔 좀 더 센 발언을... '윤회'를 믿지 않는다고 하시기까지...^^


지난 첫 번째 강연에도 참석하셨던 우희종 교수님이 종림 스님에 이어 강연을 하셨습니다.

강연 4. 과학과 불교는 만날 수 있는가?-우희종



"과학이나 종교, 모두 인간을 전제로 하며, 결국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며, 어느 쪽이건 인간이 출발점이다."


과학과 불교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인간과 삶의 모습, 그리고 과학과 불교의 모습, 그리고 어떻게 과학과 불료가 어떻게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종교가 존재와 삶의 의미를 준다고 할 때 현실에서는 종교 장사로의 자본주의적 물신화되는 모습이 있다. 과학이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줄 때, 안락과 풍요로 포장한 자본주의적 폭력과 결탁한 모습 역시 존재한다."

"불교는 관념적 깨달음(悟)의 장사 행위가 아닌 일상적 삶의 깨어있음(覚)을 말해야 한다. 제도화된 불교와 닫힌 과학을 넘어 불교와 과학은 만날수 있고, 만나야 한다."



그리고 두 분의 강연이 끝나고 대담 시간. 강연자 두 분의 서로 간의 질문과 참석자분들의 질문 시간으로 이날의 강연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강연 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마지막 질문 하나까지 더


사이언스북스 트위터로 간략하게나마 강연 도중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불교와과학의대화 를 클릭해 보시면 강연장의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서는 강연 내용은 사진 위주로 간략히 분위기만 느껴주세요. ^^ 나중에 이 강연 내용들은 책으로 엮여져 나올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

다음 강연은 8월 18일(목)에 있고, 주제 및 강연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많이 신청해 주세요! ^^ 2회차 강연은 15일(월)까지 신청 받습니다. 신청 페이지 가기


8월 18일 : 세 번째 화두: 과학이 불교에 바라는 것들

강연 5. 과학과 불교의 통섭은 가능한가?-장대익

불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룬 국내외 논의들을 개괄하고, 그 문제점을 짚는다. 서구 진화 생물학계/무신론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학과 종교 관련 논의를 불교와 과학 관련 논의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불교와 과학의 관계 대한 비판적 논의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강연 4에 대한 비판적 논의 포함)

강연 6. 불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종림

일반인, 또는 비불교신자들이 불교에 대해 가지게 되는 중요한 오해들이 무엇인지 짚어 보고, 기존의 불교계에서는 이 오해를 어떤 식으로 풀어 왔는지를 개관. 그리고 기존의 오해와 이에 대한 이해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검토한다. (강연 4와 5에 대한 비판적 논찬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