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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 진화론 시대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클래식

『빈 서판』, 진화론 시대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Editor! 2018.08.01 18:37

삼복염천(三伏炎天)의 찜통 더위를 어떻게들 보내고 계신가요? 정조 대왕은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이 더위를 과학책을 펼쳐 잊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사이언스북스에서는 8월부터 매달 한 권씩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의 책들을 도서 평론가 이권우 선생님과 함께 읽어 나가려고 합니다. “책꽂이에 꽂아만 둔 책들”으로, 또는 장식용 소품으로 삭아만 가는 여러분의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보고자 합니다. 

「사이언스-오픈-북-클래식 편」이라는 타이틀로 여러분을 찾아갈 이권우 선생님의 새로운 연재는 글과 팟캐스트가 결합된 복합 미디어 콘텐츠입니다. 책에 눈멀어 책만 보며 먹고사는 ‘호모 부커스’ 이권우의 애정 가득한 서평과, 그 서평을 출발점 삼아 이권우 선생님과 관련 분야 전문가가 나눈 좌담을 녹음한 팟캐스트가 「사이언스 클래식」의 꽉 잠겨 있던 책장을 활짝 열어 줄 것입니다. 


첫 번째 오픈-북은 소설가 장강명이 “벽돌책 유행의 선구자요 개척자”라고 했던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입니다. (「장강명의 벽돌책」 1회) 계몽 시대 이후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빈 서판주의’를 산산조각낸 20세기 최고의 과학 고전입니다. 또 팟캐스트에는 한국 대표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경희 대학교 교수가 출연해 주셨습니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빈 서판』의 비밀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독서로 극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스티븐 핑커의 책들





사이언스-오픈-북-클래식 1

『빈 서판』, 진화론 시대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빈 서판』은 제목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하면 뜬금없는 소리라 여길 테다. 이런 흰소리를 맨 앞에 늘어놓은 것은, 이 책이 과학과 지성의 법정에 올린 긴 변론이어서다. 이 말 하면 퍼뜩 떠오를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될성싶다. 


흔히 진화 심리학이라 부르는 영역에서 도발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왔고, 이에 대한 비판의 반응도 ‘어마무시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78년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연례 회의장에서 하버드 대학교 교수 에드워드 윌슨이 반대자들한테 물벼락을 맞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흥미로운 것은 일군의 동료 과학자들이 비판의 선두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그 공격은 집요했고 과격했으며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인문학자들은 아예 진화 심리학자들이 철이 덜 든 무리인 양 취급했다. 전반적으로 보수 우파적 정치 성향이 과학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한쪽에서만 공격을 받은 게 아니다. 창조론을 지적 설계론으로 탈바꿈한 기독교계의 공격도 대단했다. 궁지에 몰린 셈이다.


그래서 나섰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유명한 스티븐 핑커가 말이다. 그가 모욕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자 한 이들은 『사회 생물학』의 윌슨,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 『강간의 자연사』의 랜디 손힐 등속이다. 이른바 여론에 몰려 벼랑 끝에 선 간판스타를 구하겠다고 나섰으니, 그의 변론이 얼마나 치밀하고 전문적인지 눈치챌 터이다. 그러니, 서둘러 진영을 나누어 누구 편에 서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다. 일단 그냥 들어보아야 한다. 핑커의 개인기를 만끽하고 나서 반박해도 늦지 않다. 너무 빨리 반박하면 그의 지적 향연을 즐길 도리가 없지 않은가. 



2016년 서울을 찾은 스티븐 핑커 하버드 대학교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그저 놀랍다. 도대체 얼마나 깊고 넓게 공부해야 이런 부류의 책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이해하고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보노라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진화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사람들을 옹호하다 보니 그만큼 온갖 것들을 꿰뚫지 않고서는 어차피 쓸 수 없는 책이다. 일방적 옹호라는 한계는 있지만(정치적으로 말하면 진영 논리에 충실하지만), 철학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정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르네상스적 인물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궁지에 몰린 진화 심리학 진영을 구한 ‘슈퍼 히어로’, 스티븐 핑커

기실 변론은 이렇게 해야 마땅하다. 명백하게 정치적 관점을 내세우는 사람이 들어도 수긍할만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자기 진영에서 지나치게 선을 넘은 이론은 적당한 수준으로 끌어들이고, 상대방의 공격을 외려 지렛대로 삼아 역공을 펼친다. 아하, 이건 권투다. 피가 튀기지는 않지만 자신의 힘을 제대로 실어 상대방에 한 방 먹이고, 상대방의 허점을 발견해 구석을 찌른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 것은 페어플레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상대방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가겠다는. 


그러다 보니 책이 두껍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테다. 아, 제발 그러지 말기를. 끝까지 읽어 보라 그래야 진면목을 발견할 테니.



로크-루소-라일의 빈 서판주의 연맹 대 홉스-핑커 반 빈 서판주의 연합의 한판 승부 

첫 전선은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에 들어는 보았을 사회 계약론에서 시작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불세출의 정치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시민과 권력자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보았다. 놀라운 일이다. 중세에는 신의 권위가 주어졌던 권력자 아니었던가. 본디 철학사에는 홉스, 로크, 루소 순으로 나온다. 핑커는 이 순서를 뒤집고 로크, 루소 ,홉스 순으로 설명하는데, 로크와 루소가 한편이고 홉스가 다른 편이다. 


사회 계약설을 이해하려면 자연 상태라는 말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국가가 탄생하기 전의 인간 상태를 가리킨다. 홉스는 이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보았다.


토머스 홉스. 


“사람들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없이 생활하는 동안에는 전쟁이라 부르는 상태에 있다. 이러한 전쟁은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에 대한 전쟁이다. 전쟁은 전투나 투쟁 행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투를 통해 싸우고자 하는 의사가 충분히 엿보이는 기간을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같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들은 적이 된다. 그들은 목표(그것은 주로 자기 보존이지만 때로는 쾌락일 뿐인 경우도 있다.)에 이르는 도중에 상대를 죽이거나 굴복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유명한 『리바이어던』에 나온 말이다. 알다시피 홉스는 절대 왕정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비판하고 부르주아적 통치 체제를 옹호한 것이 바로 로크와 루소다. 그 와중에 로크가 『인간 오성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터트렸다.


“이제 마음이 가령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 개념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어떻게 채워지는가? 그 종이는 어떻게 인간의 분주하고 무한한 공상에 의해 거의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게 그려지는 광대한 내용을 획득하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한마디로, ‘경험으로부터’라는 것이다. 


빈 서판(Blank slate). 깨끗이 닦아낸 서판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 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에서 비롯했다. 이 낱말에 담긴 가치를 누구보다 더 정확히 설명한 이는 바로 핑커다.


존 로크.


“로크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인간이 수학적 이상, 영원한 진리, 신의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본유 관념 이론이었다. ……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의 토대를 침식시켰다.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로 출발했다면 왕과 귀족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타고난 지혜나 미덕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 빈 서판은 …… 인종, 인종 집단, 성, 개인들 간의 어떤 차이도 선천적 체질 차이가 아니라 경험상의 차이에서 발생 …… 개인의 경험을 바꾸면, 그 개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등 사회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철학적 토대가 되는 말이다. 문제 될 리 없다. 그런데 근대의 출발점에서 빈 서판은 다른 이론과 결합하여 만세반석의 이론을 형성한다. 서둘러 말하면, 핑커는 오늘의 과학이 밝혀낸 인간 본성이 근대 초기에 형성된 빈 서판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고, 이른바 ‘빈 서판주의자’들이 오늘의 과학적 발견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경험론이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빈 서판의 강력한 우군으로 나선 이는 루소였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와 정반대의 것을 가정했으니, 이른바 ‘고상한 야만인’ 이론이다.


장자크 루소.


“우리가 그 상태에 대해 깊이 숙고할수록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은, 그 원시 상태야말로 어떤 혁명도 필요치 않은 상태, 즉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였다는 사실과, 만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어떤 치명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어떤 것도 인간을 그 상태에서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상태로 발견된 야만인들의 예는 인간이 영원히 그런 상태로 남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 상태가 세계의 진정한 유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진보가 겉으로는 개인의 완성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의 노쇠를 향한 걸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욕심이 없고, 평화롭다고 했다. 탐욕, 근심, 폭력은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 한마디로 낭만주의적 관점이라 보면 되겠다. 로크도 그런 점에서는 루소와 유사했다. 자연 상태를 “평화, 선의, 상호 부조 및 보존의 상태”라 했으니 말이다.


빈 서판 이론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것은 길버트 라일의 ‘기계 속의 유령론’이다.“인간의 육체는 공간 속에 존재하며,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물체를 지배하는 기계적 법칙에 종속된다. …… 그러나 마음은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고, 그 작용도 기계적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른바 이원론이다. 이 이론을 심화한 이는 데카르트다. 그는 마음이 물리 원리에 따라 작동할 리 없고, 마음은 육체와 다른 종류의 것이라 믿었다. 


이로써 빈 서판은 성삼위일체의 후광을 얻게 된다. 이 성삼위일체의 목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구적인 인간 본성은 없다(빈 서판), 이기적 본능이나 악한 본능은 없다(고상한 야만인), 더 나은 사회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우리(기계 속의 유령)이다.


『빈 서판』의 앞 대목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변명』에서 자기의 죄목에 대한 항변보다 이른바 오래된 고발, 그러니까 아테네 사람들에게 퍼져 있던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해명하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른바 인간 본성이 비판받는 데는 일단 오래된 성삼위일체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보고, 이를 논박하고 있다. 빈 서판의 삼각편대가 맹폭하는 인간 본성은 어떻게 해서 발생했을까? 이제, 과학적 발견의 대반격을 지켜보자.



빈 서판 성삼위일체에 대한 핑커의 대반격

핑커는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식의 해일이 빈 서판이라는 강고한 방파제를 타고 넘는다고 말한다. 오늘의 과학이 일구어낸 성과로 무장한 대항군은. 인지 과학, 신경학, 행동학, 진화 심리학의 연합군이다.


먼저 인지 과학에서 일어난 혁명을 살펴보자. 핑커는 다섯 가지 개념으로 인지 혁명을 정리했다. 제1개념은 정신 세계는 정보, 연산, 되먹임의 개념을 통해 물리적 토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인간이 만든 정보 처리 장치를 동일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2개념은 마음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습을 위한 선천적 회로가 없으면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제3개념은 “마음속의 유한한 조합 프로그램에 의해 무한한 행동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단어 배열들을 척척 만들어 내는 생성 문법”을 떠올리면 된다. 제4개념은 다양한 문화에 산재하는 피상적 차이 밑에는 보편적인 정신 메커니즘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개별 언어들의 생성 문법은 촘스키가 보편 문법이라고 이름 지은 공통적인 하나의 패턴을 따르는 다양한 변이체라는 말을 기억하면 된다. 제5개념은 마음은 상호 작용하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라는 것이다. 다섯 가지 개념을 합치면 다음과 같은 판단이 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에는 무제한적인 생각과 행동을 생성할 수 있는 조합 소프트웨어가 갖추어져 있다. 행동은 문화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생성하는 정신 프로그램들의 설계는 다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적 행동을 성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은 그 학습을 수행하는 선천적 체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빈 서판에 전쟁 선포를 한 셈이다.


신경학은 먼저 기계 속의 유령을 몰아낸다. “지각, 인지, 언어, 감정이 뇌에서 비롯”하고 “자아 역시 뇌의 체계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네트워크일 뿐”임을 밝혀냈다. 다음으로는 고상한 야만인도 저격한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우둔해지거나 행동 레퍼터리가 줄고 공격적 행동이 분출된다. 이제 빈 서판도 무너뜨린다.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뇌를 연구해 보았더니, 전두엽을 구성하는 회색질의 양적 차이가 유전적 영향에서 비롯하고, 지능 차이에도 큰 관련이 있다고 밝혀졌다. 그러니까 “지능, 과학적 천재성, 성적 성향, 폭력적 충동 등의 차이”가 학습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행동 유전학은 유전자의 작은 차이가 행동에 큰 차이를 불러오는 부분에 주목한다. 특히 일 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빈 서판의 성채를 무너뜨린다.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도 측정 가능한 거의 모든 특성이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정신병질이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어린 시절의 뇌 손상 탓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전적 소질 때문이라 여긴다.


마지막은 진화 심리학. 오랫동안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익숙했던 사람에게 진화 심리학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 우리의 몸뚱어리는 진화의 결과라 치자. 그래도, 마음은 마땅히 자연 선택에서 벗어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터다. 마음이 빈 서판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다움이란 것은 무엇인가 반론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진화 심리학은 이런 고정 관념을 부숴 버린다. “마음은 다윈주의적 경쟁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활발치 못한 수단은 높은 기술-예리한 인지 체계, 재치 있는 문제 해결사, 교활한 전략가, 민감한 되먹임 회로 등-을 갖춘 경쟁자들에게 패했을 것”이란다. 한마디로 줄여 표현하자면 “인간이 자연 선택으로부터 보편적인 복잡한 마음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한데, 도킨스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다음 세대가 발현하기 위한 유전자의 경쟁 구도에서 고상한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사회적 동기가 자신의 복제를 최대화하려는 유전자들의 적응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그러한 투쟁에서 경쟁자들을 이기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론이 등장했다. 


여기에 따른 논란은 차치하고 다시 논의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루소인가, 아니면 홉스인가. 핑커는 단호하다. “홉스가 옳고 루소가 틀렸다.”


“홉스가 옳고 루소가 틀렸다.”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 중 일부. 



히틀러도 스탈린도 빈 서판주의자였다. 그러나……

『빈 서판』에는 핑커가 급진적 과학자라는 딱지를 붙인 반대자들의 비판과 이에 대한 재반론이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사회 생물학 논쟁에서 들어본 이야기의 집대성이라 보면 된다. 기실 이 부분에서 핑커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자기 진영을 편들고, 본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일반 독자 수준에서 보더라도 억지인 면이 있다.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있었고, 그 논쟁의 도가니를 통과했기에 좀 더 수용 가능한 이론이 되었다. 사회 생물학이라는 용어가 진화 심리학으로 바뀐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논쟁은 중요하다. 특히 기존의 통념을 우상으로 여기고 이성의 지평을 다시 열고자 할 때는 감수해야 할 과정이다. 중세 신학의 자리를 오늘날 과학이 대체하고 있는 현상을 본다면, 그러니까 과학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본다면, 진화 생물학 진영이 진저리치도록 미워하는 것으로 보이는 굴드나 르원틴의 공은 크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균형 잡힌 시선을 확보하지 못했을 터다.


핑커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결정론과 환원주의라는 말로 상징된다 했다. 결정론은 유전자가 행동을 100퍼센트 확실하게 유발한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말에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고, 환원주의는 모든 특성에는 그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 경향을 가리킨다. 진화 생물학이 비판자한테 인종 차별, 성차별, 사회 다윈주의적 속성이 있다는 공격을 받은 것도 이 관점에서 비롯한다고 보아도 된다. 핑커 스스로 요약한 비판 내용을 보면, 이렇다.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부도덕하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무익할 것이다.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 의지는 신화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252쪽)


인간 본성은 차별이나 불평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로 작용한다는 비판이다. 특히, 여성과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문제에서 기득권의 편을 들고 있다고 보는 셈이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한 핑커의 재반론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행동의 어떤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이 행동의 모든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은 아니다.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를 결정한다는 믿음은 아니다. 선천적 차이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요소일 가능성이 유일한 요소를 뜻하는 바는 아니다.” (268쪽)


유전적 재능에 따른 성공이 도덕적 의미에서 당연하지는 않다. 


“진화가 우리에게 도덕 관념을 부여했고, 역사의 흐름에서 이성(우리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함), 지식(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협동의 장점을 깨달음), 공감(경험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느낌)을 통해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335쪽)



빈 서판을 넘어서

이 문제적 저서를 읽고 나서 느낀 점을 밝혀야 할 때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반복하거니와, 핑커가 선보인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면모에 혀를 내둘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 본성을 지지하면서 지나치게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간 본성이 홉스적 자연 상태와 일치하는 의견을 냈다는 점은, 핑커 식의 인간 본성론도 당대 정치 질서의 기득권을 옹호한다는 점을 예상하게 한다. 홉스는 절대 왕정을 지지했다. 인간 본성론은 결국에는 우파적 시장주의를 옹호한다. 인간 본성론이 왜 이런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그것은 『공격성에 대하여』를 쓴 콘라트 로렌츠에서 비롯한 숙명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폭력성을 내세워 나치에 부역했던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했던 한 동물 행동학자의 정치적 무의식이 이 분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월슨이나 도킨스가 애당초 핑커와 같은 개방적인 태도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웠다면, 논쟁의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철부지처럼 설레발 친 면이 있고, 그것이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과학적 지지가 되고 말았다. 책의 전반부에서 무척 유연한 태도를 보였던 핑커도 후반부 특히 「5부 주요 쟁점들」에서는 비판자들이 지적했던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미국의 건국자들이 공들여 세운 제도가 인간 본성과 맞닿는 면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이론에 따라 사회 제도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치적 욕망도 드러낸다. 핑커가 포스트 모던을 비판한 것도, 빈 서판을 대체할 인간 본성의 계몽주의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빈 서판이 인류에 끼친 해악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개조의 열망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결국은 빈 서판주의자다. 이 점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본성의 문제점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은 핑커처럼 롤스를 끌어들여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인간 본성과 사회 계약론의 연관성을 톺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롤스도 사회 계약론의 후예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를 사회가 어떻게 해결해야 평등성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했어야 했다. 무지의 베일을 바탕으로 차등 원칙, 그러니까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한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하는 데 이르렀어야 한다. 과학 중심의 통섭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정의를 세우려는 통섭이어야 했다.


스티븐 핑커. Ⓒ (주)사이언스북스


내내 불편했던 점은, 지금까지 과학 발견을 지나치게 ’론‘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본성이 확고부동하며 불변의 진리인 양 나부대는 태도는 지극히 비과학적이다. 핑커와 그의 친구들은 인간 본성을 론이 아니라 설로, 그러니까 임시적이며 가설적인 것으로 내세우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쌓이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는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참이지 않을 수 있다는 ’무지(無知)의 지(知)‘ 정신에서 혁명적인 발전을 하게 마련이다. 인간 본성은 가장 과학적인 주장인 척하면서 정작 과학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핑커의 변론을 지켜본 한 배심원으로서 크게 감동한 대목이 있다. 과연 인간 본성이 이 약속을 지켜낼지는 모른다. 나는 아직도 굴드적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평가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서 이런 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 나은 인류 공동체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억압, 폭력, 탐욕으로 몰아넣는 반동적 교의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굶주림이나 질병 같은 불행의 요소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인간의 해로운 행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와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포함된 성가신 사실들을 부인하려만 하지 말고, 그것을 좋은 사실들과 대립시켜야 한다.” 






이권우

경희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서평 전문 잡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정리했다. 도서 평론가로 활동하며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글쓰기 강연을 업으로 삼고 있다.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죽도록 책만 읽는』,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 『여행자의 서재』 등을 저술했다.



◆ 관련 도서 


빈 서판 (사이언스 클래식 2) [도서정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사이언스 클래식 24)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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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오픈-북-클래식] 『빈 서판』, 진화론 시대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권우와 전중환의 과학책 토크!

계몽 시대 이후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빈 서판주의’를 산산조각낸 20세기 최고의 과학 고전, 『빈 서판』. 이 책은 21세기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책에 눈먼 호모 부커스 이권우 도서 평론가와 한국 대표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교수가 펼치는 경이로운 과학책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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