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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대담 (4) 물리학계의 두 천재,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파인만!> vs. <스트레인지 뷰티> 본문
'책 대 책' 대담 (4) 물리학계의 두 천재,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파인만!> vs. <스트레인지 뷰티>
Editor! 2012. 1. 2. 13:29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네 번째 대담회가 지난 12월 20일(화) 저녁 7시 민음사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20세기 제일가는 천재로 꼽히며 수학자 마크 카츠로부터는 “마법사”라고까지 칭송되었던 양자전기역학의 아버지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과 11살 차이가 났지만 그와 친구이자 경쟁자이자 앙숙이었고, 양자색역학과 복잡계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초석을 닦은 또 다른 천재 머리 겔만.
<책 대 책>에서는 이 두 과학계의 거인을 비교 조망하기 위해 파인만의 자서전적 기록물 『파인만!』과 저자가 5년 동안이나 겔만과 함께하면서 그의 복잡한 인격과 인생사를 풀어낸『스트레인지 뷰티』를 각각 선정, 대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홍승우 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에너지과학과 교수님께서 『파인만!』, 고중숙 순천 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교수님께서 『스트레인지 뷰티』로 12월 1일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이화 여자대학교 물리학과의 김찬주 교수님이 사회를 맡으셨습니다.
세 분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파인만과 겔만에 대해서 두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과학자, 파인만
홍승우(파인만!): 제가 생각하는 파인만은 한 마디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과학자.’ 또는 ‘미국이 자랑하는 물리학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냐면 파인만 이전에는 물리학자라면 일단 유럽으로 유학을 가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은 전부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자체적으로 대학과 박사 학위와 모든 연구를 해서 노벨상을 받은 격이죠. 미국 사람들이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자랑하는 학자입니다. 이론 물리학자고, 중산층 유대 인 집안이었고, 특별히 유복했던 가정은 아니었죠. 아버지가 한 회사의 세일즈 담당이셨다고 해요. 그 아버지의 영향이 대단히 컸고 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과학자가 된,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동생도 역시 물리학자가 된, 그런 과학자 집안입니다. 결국 물리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들을 하신 행복한 과학자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타고난 천재, 겔만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저는 사실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화학과 교수입니다. 그런데 전공이 레이저 분광학이라서 화학을 하다가 물리학을 건드렸죠. 그러다 수학까지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겔만을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한 셈이었죠.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아주 흥미로운 인간이에요. 파인만하고 대조적이고, 굉장히 특이하고, 개성이 아주 강하고, 미국적이고.
겔만은 1929년에 태어나 40살 되는 1969년에 노벨상을 받습니다. 파인만하고 대조적인 게 겔만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인가 그때 대학에 들어가거든요. 대학은 정상적으로 졸업을 했는데 박사과정을 또 2년 만에 마치고. 그래서 대학 한참 다닐 시기인 21살에 박사가 됩니다.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방금 홍승우 교수님이 파인만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셨지만 겔만도 사실 굉장히 부러운 인생입니다. 파인만하고 대조적인 점도 있지만 보면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에서 함께 지내면서 바로 옆방에 살면서 경쟁하고 협조하고 그런 관계예요.
김찬주(사회자): 일단 두 분의 업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알아야 두 분이 왜 위대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들어가겠습니다. 어떤 업적이 있는지 소개를 부탁합니다.
홍승우(파인만!): 파인만의 업적을 우리말로 하면 재규격화라고 합니다. 실험을 통해서 얻은 관측 가능한 물리량을 질량이 얼마다 전하량이 얼마다 이론적으로 계산하려 할 때 사용하는 방식 중에 양자장론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자장론을 사용하다 보면 질량이나 진폭 같은 것들이 무한대가 나오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재규격화라는 방법을 당시에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 리처드 파인만 세 분이 똑같이 독립적으로 제시하면서 같이 노벨상을 타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파인만은 시각적인 요소를 굉장히 강조했거든요. 그래서 재규격화 계산을 할 때 시각화하는 도표를 발견…… 아니 만듭니다. 오늘날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안 쓰고 계산하는 물리학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은 이것만 해도 노벨상 감이죠. 완전히 그분 자신의 새로운 시각으로 양자역학이라고 하는 집을 새롭게 지은 거예요. 자기의 체계를 만들었거든요. 그런 업적이 있습니다.
김찬주(사회자): 제가 보기에는 겔만의 업적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은데요. 말씀해 주시죠.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겔만의 가장 큰 업적은 쿼크의 발견이죠.
고대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시작해서 발전한 원자론이 맨 처음에는 전자, 중성자, 양성자 이 세 가지만으로 설명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파고드니 그다음부터 입자들이 굉장히 많이 발견되어서 몇백 가지, 제가 조사한 바로는 한 800가지가 나왔거든요. 이게 말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겔만을 위시해 수많은 사람이 어떤 근본적인 단위가 있을 거라고 죽 조사를 해서 나온 게 쿼크입니다. 쿼크하고 전자하고 섞어서 계산하면 그 800가지 입자들이 다 설명이 돼요. 기가 막힌 일이죠. 다만, 전자라든지 양성자는 전하가 –1이나 +1처럼 정수 전하였거든요. 쿼크는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맞지 않아요. +1/3이라든지 -1/3 같은 식으로 전하가 되어야 이론 체계가 맞아간다 이겁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이거 참 희한한 놈들이라는 뜻에서 quirk. 쿼크라고 불렀는데 그걸로 이름을 삼기는 좀 곤란하죠. ‘이상한 놈’ 이럴 수는 없잖아요. 발음을 먼저 정하고서 이름을 좋은 걸 찾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라는 책에서 Three quarks for Muster Mark라는 구절을 보고 ‘아 바로 이거다.’ 해서 quark라고 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쿼크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 겔만의 가장 유명한 업적입니다.
쿼크를 겔만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기는 하지만, 그는 쿼크 이전에 스트레인지니스라는 양자수와 팔중도라는 분류 체계도 개발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다 말씀은 못 드립니다만 노벨상을 받은 문구를 봐도 ‘소립자 물리학에 대한 그동안의 기여에 대해서 노벨상을 준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겔만은 21살부터 정식으로 연구를 한 셈인데 쿼크가 64년에 나왔으니까 그때는 35살이죠. 대략 15년의 업적을 총체적으로 평가받아 노벨상을 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질문자1: 쿼크를 관찰할 수 있는지요?
홍승우(파인만!): 전자 같은 경우에는 점입자에 적용하는 디랙 방정식이라고 있는데요. 그 디랙 방정식 가지고 전자가 기가 막히게 설명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점이라고 보는 거죠. 쿼크도 좀 비슷하게 이론으로 완벽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일단 현재로서는 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자2: 여기서 저만 모르는 질문일 수 있는데요. 그렇게 작은 단위까지 쪼개서 연구한다는 게 어떤 중요성이 있는 건지. 어떤 가능성이 숨겨져 있기에 그렇게까지 쪼개서 연구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홍승우(파인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학 하는 사람들은 우주의, 또는 자연의 궁극적인 가장 절대적인 원리가 뭐냐. 그걸 찾는 것이거든요. 가장 맨 밑바닥에 있는 게 뭐냐.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을 찾는데 아까 입자들이 800개 있더라 그러셨잖아요?
그건 아닐 거다. 우주는 가장 아름다운 대칭성을 가지고 만들어졌…… 는지는 사실 모르겠는데 그랬으면 좋겠다는 게 많은 물리학자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마음속에 갖고 그런 대칭성이 과연 있을까 하고 찾는 게 물리학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놀라운 것은, 찾아보면 그게 나와요. 왜 놀랍냐면 우리가 쓰는 수학은 어디까지나 자연을 표현하려고 사람들이 생각해서 만든 언어거든요. 자연이 이렇게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만든 체계에요. 그 수학을 가지고 물리학 하는 사람들은 수학을 언어로 자연을 이해해서 정량적인 분석을 하거든요. 이론하는 사람들도 계산해서 결국 궁극적으로 숫자를 내고, 실험하는 사람들도 결국 궁극적으로 길이 재 가지고 무슨 물리량의 숫자를 재고.
그런데 이런 실험의 결과를 비교해서 맞춰 보면 소수점 여섯 자리, 일곱 자리까지 기가 막히게 맞습니다. 그게 다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과 논리와 그다음에 무엇보다도 자연이 이렇게 되어 있지 않겠느냐 하는 희망과 기대거든요. 아무렇게나 자연이 만들어져 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죠.
어느 누구도 자연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미리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백 년 동안 과학자들이 밝히고 밝히면서 이해를 하다 보니까 자연이라는 게 놀랍게도 이런 몇 가지 굉장히 기본적인 대칭성에서부터 출발했구나. 이런 걸 알게 되는 게 1960년대, 1970년대입니다. 그리고 이게 지금까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목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마어마한 돈을 쓰거든요. cern에 있는 LHC는 10조 원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먹고사는 것 하고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데도요. 10년 20년 후에는 관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건 호기심 때문에 하는 것이거든요. 심하게 나쁘게 말하면 순수과학 하는 사람들은 취미 생활 하는 겁니다. 취미 생활하면서 월급 받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다 보면 거기에 답이 있어요. 그게 참 이 자연의 놀라운 점입니다.
김찬주(사회자): 지금까지 두 분의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 알아보았고요. 이제 두 사람의 관계를 언급하려다 보니까 성격도 나오게 되는데요. 파인만은 어떤 성격이었나요? 과학할 때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다른 걸 할 때라든지.
오직 과학만
홍승우(파인만!): 파인만을 직접 만나 보진 못해서…….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이 뭐였느냐면 파인만의 목소리에요. 왜냐면 겔만 책은 전기 작가가 쓴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지만 목소리는 안 담겨 있거든요. 물론 중간중간에 따옴표 해서 겔만의 말이 들어 있죠.
파인만의 이야기는 자기 영웅담이다 보니까 거의 파인만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그걸 제가 어떻게 번역을 할 수가 없더군요. 살려서 번역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게 참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파인만은 평생을 사실 어쩌면 게임하듯이 장난치듯이 그렇게 살았거든요. 책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다 그랬던 것은 아니고 굉장히 진지한 면도 많이 있었고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있었고. 그분의 경우에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이 굉장히 많은데, 제가 서평에서도 그걸 강조했는데 겔만의 아버지하고 굉장히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겔만하고 파인만 사이에는 큰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데요. 공통점은 둘 다 유대 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중산층이고 부모님께서 교육을 굉장히 중요시하셨어요. 양쪽 다 과학을 중요시한 가정이죠.
차이점은 겔만은 타고난 천재에요. 타고난 천재라서 그냥 스스로 다 알아요. 그런데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다 재능이 나타납니다. 파인만은 한쪽에만 편향이 되어 있죠. 파인만의 경우에는 과학만 알았고, 수학을 포함해서. 수학과 과학만 알았고 그 외에 다른 건 모두 다 좀 무시했습니다. 예술 의미가 없는 것. 문학? 글? 철자 틀리면 어때? 결국, 사람들끼리 한 약속일뿐인데. 그런 식이었거든요. 오직 과학만 했어요.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게 파인만의 목소리로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파인만의 경우에는 아버지에 의해서 어떻게 보면 만들어진 과학자인 면이 있고 겔만은 그냥 천재로서 과학자인 그런 큰 차이점이 있다고 봅니다.
김찬주(사회자): 겔만이 방금 천재라고 그러셨는데 어떤 식으로 천재인가요?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겔만은 이야기를 보면 첫 말문을 틀 때가 두 살 때인가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말문이 트이는 건 빨랐는데 첫 단어가 ‘the light of Babylon’ 그래서 바빌론의 등불. 그러니까 한 구절을 ‘엄마’, ‘아빠’ 이렇게 한 게 아니라 통째로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고 나옵니다.
하여간 타고난 천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상당히 극성인 성격으로 나오거든요. 겔만이 학교 다닐 때 너무나 심심해하고 배운 게 없다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사립학교를 죽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입학할 때 어머니는 중간에 빠지고 겔만의 담임선생님이 어디 학교에 가서 교장 선생님하고 얘를 좀 받아 달라 둘이 이야기할 때 겔만은 벽에 죽 걸려 있는 곤충인가 새인가 이름을 외우는데 그 이름을 학명으로 라틴어 학명으로 그냥 줄줄이 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파인만은 아주 뛰어난 천재라기보다는 점점 발전하는 천재. 겔만은 하여간 타고난 천재 그런 특성이 좀 강한 것 같아요. 겔만은 관심의 폭이 굉장히 넓다는 게 또 특이합니다. 겔만은 형하고 뉴욕 센트럴 파크 돌아다니면서 새 이름 꽃 이름 이런 걸 다 파악을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게 나중에 물리학에서 업적을 발휘하는 데 굉장히 좋은 영향을 준 걸로 나옵니다. 800개나 되는 입자가 발견이 되어서 그것을 분류하는 데 겔만이 어렸을 때 수많은 대상을 보면서 거기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 굉장히 큰 도움을 주지 않았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파인만은 집중력이 아주 뛰어난 것 같아요. 파인만 책 서문을 프리먼 다이슨이 쓴 것을 보면 아인슈타인에 비유했습니다. 제가 우연찮게 아인슈타인 책 세 권을 번역하다 보니까 많이 알게 되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집중력이 매우 강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마칠 무렵에는 너무너무 완전히 탈진해 가지고 옆에서 보살펴 주지 않으면 혼자 거동도 못할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하여간 프리먼 다이슨이 파인만의 집중력을 그렇게 칭찬합니다. 우리가 파인만의 책을 보면 매일 그냥 농땡이 부리고 놀다가 어느 날 열심히 해서 업적이 나온 걸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이겁니다. 문제가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물고 늘어져서 기어코 얻어내는 그런 대목이 나오거든요. 그 점은 또 겔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겔만도 쿼크 이론을 만들어서 노벨상 받을 때까지도 남들이 쿼크가 입자입니까 기호입니까. 즉 단순히 수학적 기호입니까 아니면 수소나 산소나 이런 것처럼 실제적인 입자입니까를 물을 때 겔만은 끝까지 모르겠다고 하거든요? 나중에 실험으로 확증이 돼서야 비로소 확인해 주고. 그래서 저는 겔만은 펼치면서 나중에 집중을 해 나가는 스타일이지만 파인만은 하나를 물고 늘어져서 깊이 파고드는 천재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김찬주(사회자): 결국 두 분 다 굉장한 천재인데 약간 다른 천재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보통 천재 하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천재는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를 못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요.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이어질 것 같습니다. 파인만이 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한 게 있나요?
홍승우(파인만!): 다른 사람 교육에 대해서는 파인만이 별로 이야기를 안 한 것 같고요. 자기 아버지에게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그게 많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이야기를 제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런 거지요. 과학이라는 것은 과학 지식의 습득이 아니고 과학 지식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분은 그런 식으로 표현은 안 하셨지만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예로 드는 게 아버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면서 이파리에 벌레 먹은 자리 같은 걸 보면서 그냥 그거만 보고 이 벌레가 점점 자라서 먹은 흔적이 점점 더 커졌고 맨 마지막에 뭐가 되어서 날아갔군. 이런 식으로 추론하거든요. 그 과정,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게 사실이라는 면에선 틀린 것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 논리가 참 자기로서는 재밌었다. 파인만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가 과학자가 되었다. 도대체 아버지께서 어디서 과학을 배워 오셔서 나를 그렇게 가르쳤을까? 그걸 궁금해하거든요. 자기는 과학을 업으로 해서 이걸 깨달았는데 아버지는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 저걸 깨달으셔서 자길 가르치셨지? 그렇게 감탄할 정도로. 모든 아버지가 다 그렇게 하나보다. 라고까지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고 그에 반해서 겔만은 굉장히 엄한 아버지 밑에서 맞춤법 야단맞아 가면서 언제나 글 제대로 쓰는지 감시받는. 그런 차이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파인만 자신은 자기 아이들에게는 전혀 그렇게 안 했거든요. 아이들이 대학 가서 공부하겠다고 그러니까 아니 그냥 밖에 나가서 장사하고 잘 살지 힘들게 왜 그러느냐.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김찬주(사회자): 그럼 이제 파인만과 겔만으로 이렇게 <책 대 책>이 열린 까닭은 두 사람의 인생에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 같거든요.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는지 혹시 말씀해 주실 분 계신가요?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겔만이 대학을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MIT)를 갔거든요. MIT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알아보는데 하도 천재라는 평판이 자자해 가지고 여러 곳에서 영입 제의를 합니다. 이때 겔만이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 파인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요. 혹시 거기 자리 없냐. 겔만이 파인만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같이 연구하고 싶어서 시카고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에서도 돈을 많이 주겠다 했지만 다 제껴 놓고 칼텍으로 갑니다. 둘이 나이 차이가 우리나라로 보면 거의 띠동갑이죠.
김찬주(사회자): 파인만 전기에도 겔만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 있나요?
홍승우(파인만!): 사실 파인만의 이야기에서는 겔만이 거의 언급이 안 됩니다. ‘복도에 같이 사무실 있는 친구.’ 이런 정도? 마치 ‘얘는 나보다 한수 아래다’ 이런 느낌을 줍니다. 책에 나온 걸로는 일을 하나 같이 하는데 양력에 대한 이론인데요. 양력에 대한 이론을 겔만하고 같이 해서 밝혀내지요. 그것이 『파인만!』에 두 번 언급됩니다.
김찬주(사회자): 겔만 책에는 언급되어 있나요?
친구이자 경쟁자, 그리고 앙숙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겔만은 파인만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써놓은 걸로 제가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홍승우 교수님께서 파인만이 겔만을 한 수 아래로 보지 않았을까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상당히 인정을 해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겔만하고 파인만하고 공동 논문을 두 개인가 세 개인가 쓴 걸로 기억을 합니다. 겔만은 협동연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앉아서 막 이렇게 연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돌아다니고 이야기하고 상호작용을 굉장히 좋아했지요.
겔만 파인만을 쿼크 연구에 끌어들이려고 여러 번 노력을 하는데 파인만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발 물러나요. 논문의 초안에는 이름을 같이 올렸는데 교정을 내릴 때 아 나는 관여를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이러면서 물러나거든요. 이유는 자세히 안 써 있는데 그렇게 돼요. 막상 나중에 그걸로 노벨상을 받으니까 파인만이 ‘아 내가 언제 들으니까 거기 나온 데이터가 엉망이라더라.’ 농담 삼아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면 겔만이 또 화가 나 가지고 반응하고요. 보면 파인만은 겔만을 자꾸 놀려요. 짖궂게. 약을 올리면 겔만은 또 화를 내고.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는 그런 게 하여간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김찬주(사회자): 시간이 한 시간 반이 지나서 거의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이 책이 과학자에 대한 건데 과학 업적 관련이 되어 있는 거지만 결국 전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얻고자 하는 게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질문 삼아서요. 이 책을 번역하신 분으로서 이 책을 독자들이 읽으면서 이런 점을 주의 깊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던가 혹시 이런 것이 있으면 마지막 답변 겸해서 말씀해 주시죠.
홍승우(파인만!): 파인만의 이야기 중에 우주왕복선의 폭발 사건 조사위를 맡으면서 과학을 하려고 하는데 대형 사업, 대형 과제에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돈이 필요해지고 정치적인 다른 이유로 과학적인 참 목적이 변질되는 것을 아쉬워하는 그런 대목이 있거든요. 그다음에 과학의 가치라는 글이 에필로그로 있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뭐냐면 그분이 하는 이야기인데 누가 이제 새로운 발견을 했어요. 그러면 신문 기자들이 그걸로 기사를 쓰는데 이 새로운 발견은 이러이러해서 인간의 삶에 혹은 어떤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끝난다는 거죠. 왜 기자들이 항상 그렇게 끝내는가. 이 발견은 과학적인 발견이고 과학 자체로서 가치 있는 건데 그걸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왜 꼭 써야 하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자체로서 소중한 거고 우리 인류에게 시사하는 것, 즉 우리 인간이 하는 굉장히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 중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지고한 활동 중의 하나가 이런 순수한 과학, 진리 추구라고 볼 수 있는데 왜 그 자체는 덮어두고 그게 어디 쓰이는지만 이야기를 하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진짜 과학적인 가치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있다. 그런 걸 강조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남들도 다 할 수 있지만 파인만이 하면 끄덕끄덕하더라고요.
고중숙(스트레인지 뷰티): 저는 겔만의 책을 번역하면서 2차 대전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과학에 미친 영향을 새롭게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을 계기로 해서 과학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오거든요. 어떤 사람은 아인슈타인을 히틀러가 미국에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오늘날 최고의 물리학자를 꼽으라면 노벨상 못 받은 사람으로는 호킹을, 노벨상 받은 사람으로는 파인만, 겔만, 스티븐 와인버그를 꼽는데 다 철학을 싫어하고 종교도 싫어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미국으로 옮겨가서 과학은 크게 발전했지만, 미국은 실용주의 경향이 너무 강한 탓에 돈 되는 게 아니면 먹히지가 않습니다. 홍승우 교수님도 지적했다시피 과학자들이 과학에 정신을 쏟지 못하고 연구비를 따야만 하고요. 그런데 연구비를 딸 때 어필할 것은 이걸로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이게 중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과학이 점점 메마르고, 삭막해집니다. 일반인이 과학자를 객관적, 논리적,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게 좋은 말 같지만 뒤집어 보면 인간미가 없다는 뜻도 됩니다. 저는 아인슈타인을 최후의 철학자로 봐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이 끊어지고 그걸 미국에 건너갔는데 미국에서 철학적 토양을 일구지 못하고 실의에 젖어서 돌아가신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겔만하고 파인만 모두 아주 대단한 분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분들이 개인적으로 철학이나 종교가 싫은 면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우리가 결국 인문학자든 자연과학자든 근본적으로 갖는 최종 목표는 우주론, 인생론 이것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학을 하더라도 철학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어요. 흔히 과학자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 합리적인 최종 결론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런 거고 막상 실제로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좌절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고 오죽했으면 『스트레인지 뷰티』에서도 겔만 우리 그 이론이 잘못된 것으로 나오면 일본행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버리자 그런 이야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과학이 좀 인간적인 학문이 되어야겠다. 결국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삶이고 철학인데 그런 쪽이 앞으로 가미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김찬주(사회자): 예. 두 분 다 좋은 마무리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대담은 이걸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학원의 이름으로까지 사용될 정도로 대중에게 천재로 인식되어 있는 파인만과 그에 버금갈 정도의 천재성을 자랑했던 겔만 두 과학자가 주제였던 만큼 대담회의 참여자는 고등학생에서 동화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대담이 끝난 뒤에도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대담자 세 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오갔습니다.
‘발견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았던 행복한 과학자 파인만과 ‘기이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소립자와 복잡계의 세계를 탐험했던 겔만. 이번 대담회는 서로 닮았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또 매우 달랐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자란, 천재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순수 물리학을 하시는 홍승우 교수님과 과학 교육에 몸담으신 고중숙 교수님, 두 대담자가 바라는 과학의 참모습 간에 나타나는 차이와 공통점을 파인만과 겔만을 통해서 들어보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은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씀하셨지만)세 대담자 분에게도 인생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 ‘과학 하는 재미’를 더 많은 이가 맛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대담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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