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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다윈의 동행 :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 본문
예수와 다윈의 동행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
21세기 진화 신학의 새로운 제안
종교와 과학이 어우러진 생각의 지도
말 그대로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법정에서는 법의학자와 과학 수사 담당관의 소견이 절대적인 증거로 채택되며, 백화점의 상품 판매나 주식 투자도 행동 과학이나 통계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계획조차 짜지 못한다. 소비자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은 각 기업의 CEO들은 뇌과학자의 연구실 문을 두들기며, 제약 및 식품 회사의 신제품 개발자들은 식물학자, 동물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뒤적인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온 종교는 자신의 설 자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신학자이자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오랫동안 고민하며 종교와 과학,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 온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는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예수와 다윈의 동행: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에서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과학, 진화론의 성과를 읽고 받아들여 종교, 그리스도교 신학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초자연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우주와 생명의 진화와 현재를 설명해 온 대폭발 우주론과 다윈주의적 진화 생물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식 교수는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 속에서 “신학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상황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워져야 했”다고 전제하며 “과거의 지식에 근거한 신학이나 설교를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오해와 불신과 적대감”만을 낳으며 “한국 교회 전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성장을 멈춘” 아주 중요한 이유가 바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 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는 비지성주의와 반과학주의”라고 일갈한다.
신재식 교수는, “종교의 유통 기한”은 이제 끝났다며 종교의 한계와 과학의 부상을 주장한 진화 생물학자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와, 종교 역시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며 종교학이라는 섬세한 메스를 든 김윤성 한신대학교 교수와 함께, 21세기의 종교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고,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의 종교 분석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모색하는 『종교 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사이언스북스, 2009년)를 출간한 바 있다. 세 젊은 지식인의 뜨거운 열정과 과감한 통찰이 크로스오버하는 『종교 전쟁』은 한국 지식 사회와 독서계에 놀라운 대화의 전범을 제시한 책으로 평가를 받았다. 신재식 교수는 이 『종교 전쟁』의 후속작이라 할 이번 『예수와 다윈의 동행』에서 『종교 전쟁』 속에서 펼쳤던 주장과 통찰을 다듬고, 그 주장과 통찰의 역사적, 구체적 근거들을 한데 엮으며, 진화론을 받아들인 신학, 즉 진화 신학을 펼쳐 보인다.
종교와 과학은 생명 세계를 함께 걸어 온 동행입니다
“두 가지 진리가 서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에, 현명한 해석자의 과제는 성스러운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확실하게 생각하고 분명한 관찰이나 필연적인 증명을 통해 확신하는 물리적 결론들에 의심 없이 일치할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본문에서
이 책에서 신재식 교수는 한국 개신교계의 최대 금기에 도전한다. 초대형 입자 가속기와 초거대 우주 망원경으로 대폭발 이론이 소수점 아래 수십 자리 단위로 정밀하게 검증되고, 분자 생물학과 유전 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진화 생물학의 자연 선택 이론이 분자 단위로 정확하게 증명된 21세기에도 그리스도교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으며 신도들에게 그렇게 믿기를 요구하며, 창조 과학 유의 주장이 득세하는 한국 개신교계에 있어, 신재식 교수의 진화 신학 주장은 도발일 것이다. 그러나 신재식 교수는 굽히지 않는다.
신학자로서,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그 누구보다도 한국 교회의 완고한 반과학주의를 잘 아는 신재식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 교회의 반지성주의, 반과학주의의 뿌리를 치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 추적은 19세기 미국의 코넬 대학교로, 다윈의 시대 영국으로, 뉴턴의 시대 케임브리지로, 갈릴레오의 시대 로마 종교 재판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재식 교수는 갈릴레오 재판, 뉴턴의 숨겨진 연금술 및 신학 관련 수고, 다윈의 신앙으로 충만했던 대학 시절 등을 꼼꼼히 되짚으며, 종교와 과학이 결별하고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한 시대로 기억되며, 과학주의자들에게는 과학이 종교와 단절하고 승리한 시대로, 종교인들에게는 과학이 영성, 심지어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대로 기억되는 과학 혁명의 시대가 실제로는 종교와 과학이 뜨겁게 대화하며 동행하는 시대였음을 밝혀낸다. 갈릴레오 재판에서 펼쳐졌던 로마 교황청과 갈릴레오의 치열한 논쟁이 과학 논쟁인 동시에 신학 논쟁이었음을, 뉴턴의 만유인력과 빛에 대한 과학 연구가 실은 신이 자연과 인간의 역사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연금술적, 신학적, 신비주의적 연구의 일환이었음을, 생명의 역사에서 초자연적 존재의 섭리를 몰아낸 다윈이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 신학』으로 대표되는 영국 자연 신학 전통의 일부였음을 드러내면서 종교와 과학이 단 한 번도 동행을 멈춘 적이 없음을 증명해 보인다.
또 종교와 과학에 대한 연구의 역사, 영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다윈주의 진화론 수용의 역사를 살피며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갈등이니, 전쟁이니 하는 선입관이나, 복음주의 개신교계의 비지성주의적, 반과학주의적 태도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종교와 과학이 어우러져 온 지식 사회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신과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독해가 낳은 폐해가 합쳐 한국 개신교계의 비지성주의와 반과학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성서적, 과학적 문자주의
신재식 교수는 현대 신학자, 현대 사회의 기독교인은 진화 생물학을 공부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교가 처해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재식 교수는 한국의 기독교인이 오해하고 있는 진화 생물학의 세계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찰스 다윈의 인생과 그의 대표 저작인 『종의 기원』의 출간을 둘러싼 과학사적 일화들, 현대 진화 생물학의 핵심 원리들(사실로서의 진화, 공통 유래 이론, 종 분화 이론, 점진주의 이론, 자연 선택 이론), 진화 생물학 내부의 지적 지형과 대표적 연구자들, 그리고 그 연구자들의 논쟁사까지 진화 생물학이 다윈 이후 150여 년간 발전시켜 놓은 담론 세계를 소개한다. 심지어는 2001년 9/11 이후 영미 진화 생물학계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진화 과학자들의 종교 연구를 상세하게 소개한다. 종교를 진화 과정의 부산물로 보는 리처드 도킨스와 파스칼 보이어 등의 진화 심리학적 이론은 물론이고, 종교를 일종의 종족 간 전쟁 무기 또는 생존 경쟁의 도구로 보는 에드워드 윌슨과 데이비드 슬론 윌슨 등의 사회 생물학적 이론까지 신앙심 깊은 종교인들이 본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현대 과학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물론이고 종교의 기원조차 밝히고자 기세를 올리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맹위에 눌린 종교인들의 대응,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반응 또는 대응에 대해서도 신재식 교수는 눈을 돌린다. 다윈 이후, 미국에서 전개된 반진화론 운동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창조 과학 운동, 그리고 창조 과학 운동에 과학적 분장을 입힌 지적 설계론 운동까지 그 역사와 주역들, 그리고 그 논리를 신랄하게 파헤치면서 그리스도교계의 반진화론 운동이 결국 과학적으로 파탄이 났으며, 신학적으로도 모순에 처해 심지어 그리스도교적으로도 이단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음을 조목조목 보여 준다.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에 근거해 진화론과 현대 과학의 위세를 꺾고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위상을 제고하려던 반진화론 운동가들이 오히려 종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을 왜곡하고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오히려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신재식 교수는 창조 과학 운동 같은 반진화론 운동이 “종교 언어와 과학 언어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오류”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하고 “진화론을 선택하는 순간 신앙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과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임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과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반진화론 운동의 기독교인들이 범한 ‘문자주의적’ 오류를 다시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신재식 교수는 우주와 생명과 인간에 대한 과학의 설명만이 유일하며, 우월하며, 절대적이라는 주장은 다른 설명을 배격하는 “환원주의이며 독단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신재식 교수는 책 후반부에서 “과학이 사물과 생명에 대한 여러 설명 중에 강력하고 유효한 것 가운데 하라나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과학의 특권을 주장하는 도킨스를 비판한다. 성서적 문자주의를 버려야 하는 것처럼 과학적 문자주의 역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종의 기원』을
신재식 교수는 종교와 과학을 “인류의 생존 메커니즘”으로 본다. 인간이 생명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여러 생존 메커니즘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위계 관계도, 배척 관계도 없으며 오히려 때로는 경쟁적이지만 서로 보완하면서 인류의 생존을 돕는 생존 메커니즘이라는 주장이다. 신재식 교수는 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지도 비유, 즉 안나푸르나 산군에 대한 문화 지도와 실측 지도의 관계에 비유한다.
저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가 생명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기 다른 관심에 따라 다르게 만든 두 개의 지도와 같습니다. 실측 지도와 문화 지도가 동일한 대상을 나타내지만 그 표현이 다르듯이, 종교와 과학도 생명 세계라는 같은 대상을 목적에 따라 달리 만든 두 개의 지도입니다. 과학은 사실성과 객관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지도이며, 종교는 의미와 주관성이라는 문화적 측면을 강조한 지도입니다.
과학이 그린 지도를 보면 생명 세계의 모든 공간이 동일하고 균질합니다. 자연 과학의 법칙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산이나 강이나 정상이나 계곡이나 다리나 가게나 경찰서나 사원이나 어떠한 예외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종교가 그린 지도에서 공간은 균질하지 않습니다. 성(聖)스러운 공간과 속(俗)된 공간이 구별됩니다. 더 소중하고 귀한 공간, 시간이 의미를 갖게 됩니다. -본문에서
종교와 과학은 안나푸르나 산군을 그린 문화 지도와 실측 지도처럼 서로 겹치고 중복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이 제시하는 설명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생명 세계의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 낸다. 신재식 교수는 이런 서로 다른 설명이 다층적이며 중복적인 계층 구조를 이루며 세계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 가는 방식을 “설명의 다원주의(explanatory pluralism)”으로 개념화해 이해한다. 신재식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적 설명이나 과학적 설명은 이런 설명의 계층 구조에서 하나의 수준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수준에서 하나의 설명으로 기능하면서 다른 설명을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또 배타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문자주의자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들처럼 자신의 설명이 전부이고 유일한 대답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설명의 다원주의는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나 근본주의 그리스도인이 주장하는 종교적 환원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됩니다. -본문에서
문자주의의 극복, 단 하나의 독법 또는 설명에 특권을 부여하는 태도의 페기는 어떤 의미에서 갈릴레오가 이야기했던 ‘두 권의 책’ 전통의 복원을 의미한다. 신재식 교수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단절을 대화로 돌리고, 과학적 문자주의자들이 폐기하기 원하는 “신이 우주가 엄청나게 창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를 원한다는” 신학적 설명을 되살리며, 신학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까자 읽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출발점은 설명의 다원주의를 포함한 진화 신학임을 역설한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가톨릭은 230년, 개신교는 130년이다. 이 오랜 시간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교는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된 지 오래이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종교적 다원주의를 거부하며 다른 종교와 문화에 배타적이고, 비지성적이고 반과학주의적인 태도를 지속하는 한 그 수명과 세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한국 개신교계, 아니 그리스도교계 전체에 보내는 한 진화 신학자의 제안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종교적 상상력을, 자연의 상상력을, 별의 상상력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직접 자연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례를 떠납니다. 21세기 과학 문화 시대를 살아가지만, 최초의 근원적인 종교적 상상력을 경험하기 위해서 길을 떠납니다.
인류가 별은 보면서 가졌던 ‘종교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이 함께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책은 종교와 과학이 함께 걸었던 동행의 길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진화론은 여전히 ‘금기’이며 기피 대상인 까닭입니다. 이 책이 그 금기를 넘어서는 첫 발자국이기를 희망합니다.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은 더 이상 금기나 기피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대화하고 함께 가야 할 길벗입니다. 이 책은 ‘종교와 과학’의 유쾌한 동행을 모색합니다.
지난 500년간 종교와 과학이 걸어온 동행의 길은 평지보다는 고개와 골짜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굽이굽이 곡절이 많았던 길을 다시 돌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을 그 길의 길벗으로 초대합니다. -본문에서
차례
저자 :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 서울 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 대학원을 거쳐 미국 드루(Drew)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템플턴 재단의 '종교와 과학 교과 프로그램(Religion and Science Coursework Program)' 수상자(1999년)이며, 미국 국무성 초청 풀브라이트 방문 교수(2004년)를 지냈다.
조직 신학 전반을 가르치며, 특별히 생태 신학, 종교(기독교)와 과학의 관계 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21세기 과학 문화와 한국의 종교 다원주의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성찰하고 한국적 신학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 사상 연구회를 통해 학제 간의 대화를 이끌고 있으며, 한국 오이코스 신학 운동(Oikos Theology Movement in Korea)에서 생명․정의․평화를 위한 신학을 모색하고 있다.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으며, 티베트와 네팔의 히말라야 산군을 주기적으로 순례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종교 전쟁』(공저)이 있고, 번역서로 『 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근대 신학의 이해』 등이 있다. 논문으로 「'과학적 문자주의'와 '종교적 문자주의'를 넘어서」, 「‘유전자’와 ‘밈' 사이에서: 도킨스의 종교 담론」, 「함석헌과 종교 다원주의」, 「한국 사회의 종교 갈등의 현황과 구조 탐구: 개신교 요인을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의 현재와 미래」 등이 있다.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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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서점 등록되는 대로 링크 추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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