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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⑤ 원자력 르네상스는 없다 본문

완결된 연재/(完) 에너지 Talk Talk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⑤ 원자력 르네상스는 없다

Editor! 2015. 8. 19. 18:06

최근 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화력 발전소 4기 대신 원자력 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원자력 발전, 즉 핵 발전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원전 수출을 이끄는 신성장 동력,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 생산 단가가 저렴한 경제적 에너지 등 원자력 에너지에 투사된 장밋빛 전망은 언론에서 자주 접해 익숙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공개적으로 검증하여 밝히는 자리는 의외로 별로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1세기 ‘대전환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인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연재 게시물입니다. 지난 시간의 「기후 변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석유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 문제의 대안으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그 정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원자력 에너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환경 친화적이고, 경제적이며, 안전한 에너지로 각광 받고 있는 원자력 에너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요? 진정 원자력 에너지가 미래의 모든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인지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원자력, 진실 혹은 거짓


앞의 연재에서 석유 고갈과 기후 변화 이야기를 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원자력 에너지’다.

예를 들어,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났을 때 한 고등학생 친구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지금은 서울의 한 공과 대학으로 진학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언급하겠지만, 이 친구는 풍력 발전을 공부할 계획이다.) 많은 독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질 것 같아서, 이 친구의 이메일을 그대로 옮긴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다 주말에 기자님의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저는 더 우울해졌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이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이거든요.

이미 한국은 전기의 30퍼센트 정도를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를 포기한다면, 그만큼의 전기는 어떻게 생산하나요? 더구나 기후 변화를 막고자 온실 기체를 줄일 수밖에 없다면,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 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가요?

저 역시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는 싫어요.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한, 원자력 에너지는 필요악(必要惡) 아닐까요?"


사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이 친구뿐만이 아닐 것이다. 핵 발전소를 한반도에 짓는 것도 모자라 세계 곳곳으로 수출하는 데 앞장섰던 이명박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핵 발전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 한국 시민 대다수가 이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자력뿐이야. 다른 대안은 없어!'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혹시 이런 생각이야말로 신화가 아닐까?




그들이 말하는 ‘원자력’ 성적표: 2.3 혹은 30


사람들과 핵에너지를 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사람들이 핵에너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있다. 자,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다음 질문에 한번 답해 보길 바란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중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이런 질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한 30~40퍼센트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정답은 이렇다. 세계 금융 위기 직전에 에너지 수요가 가장 높았던 2007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의 난방, 수송, 전기 등에 소비되는 전체 에너지 중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3퍼센트'에 불과했다. 전 세계의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7퍼센트’에 불과했다. [관련 사이트 바로가기]

우리나라는 어떨까? 에너지 경제 연구원에서 2014년에 발간한 「에너지 통계 연보」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4퍼센트 정도였다. 고작 10퍼센트?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 박힌 ‘30퍼센트’ 따위의 숫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같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발전량 중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6.8퍼센트로 대략 30퍼센트다. (핵 발전소는 전기만 만드니까!) [보고서 보러가기]

2.3, 13.7, 10.4, …. 이 숫자들을 기억하면서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핵 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몇 개나 될까요?”

이 질문에도 대개는 “한 100개국 아닌가요?” 이렇게 답한다. 역시 정답과는 큰 차이가 난다. 2015년 8월 18일 기준으로, 전 세계 438기의 핵 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고작 30개국뿐이다.[관련 사이트 바로가기] 이것이 바로 영국에서 1956년에 처음으로 상업 발전을 시작한 핵에너지의 초라한 성적표다. (전기를 생산한 세계 최초의 핵 발전소는 1954년에 가동된 (구)소련의 오브닌스크 핵 발전소로 발전 용량이 작아 연구용으로만 활용되었다.)

그나마 미국 99기, 프랑스 58기, 일본 43기, 러시아 34기, 중국 28기, 우리나라 24기, 인도 21기, 캐나다 19기, 영국 16기, 우크라이나 15기 등 상위 열 나라의 핵 발전소가 총 357기로 거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나마 이 핵 발전소들의 대부분은 지어진 지 30년이 가깝거나 넘은 노후 핵 발전소다.

이래도 핵에너지가 ‘대세’라는 생각이 드는가?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인 영국의 콜더 홀 원자력 발전소 United States Department of Energy/wiki


에너지 톡톡!

☞원자력 에너지? 핵에너지? 어떤 말을 써야 할까?

눈치 빠른 독자는 내가 ‘원자력 발전소’ 또는 ‘원자력 에너지’ 대신에 ‘핵 발전소’ 또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원자력 발전소’나 ‘원자력 에너지’보다는 ‘핵 발전소’나 ‘핵에너지’ 같은 용어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에너지’라는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 핵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 핵폭탄이나 원자 폭탄……. 모두 한 가지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 뿌리는 모두 핵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잠시, 고등학교 수준을 과학 지식을 떠올려보자.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는 ‘양(+)전기’를 띤 원자핵과 그 주위에 ‘음(-)전기’를 띤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원자핵의 본질은 양전기를 띤 입자(양성자)들이 전기를 띠지 않은 중성자와 함께 결합력으로 뭉쳐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핵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이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들 사이의 결합력이다. 그 결합력을 일컫는 용어가 바로 ‘핵력’이다. 그리고 그 핵력이 깨질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바로 핵 발전소나 핵폭탄의 원천인 핵에너지다.

예를 들어, 핵 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 235는 원자 번호가 92번이다. 이 원자 번호는 바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개수를 의미한다. 즉 원자 번호가 92번이면 양전기를 가진 양성자가 92개 뭉쳐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 143개가 붙어서 원자핵을 구성한다. (참고로 우라늄 뒤에 붙은 숫자인 235는 질량수로 양성자 개수(92개)에 중성자 개수(143개)를 더한 값이다.) 이 우라늄이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쳐 있는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바로 핵에너지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흔히 쓰는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라 ‘핵에너지’가 맞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원자력’은 ‘원자력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소’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핵’은 ‘핵무기’나 ‘핵폭탄’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인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는 정확하게 ‘핵 발전소’ ‘핵에너지’라고 부르기로 하자.


우라늄 235의 핵 분열로 생기는 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것이 핵 발전이다. Stefan-Xp/wiki




원자력이 기후 변화의 해결사?


그런데 희한하게도, 몇 년 전부터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핵에너지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의 복수』에서 "지구가 열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핵 발전소를 더 짓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러브록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었던 터라서, 이런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핵은 죽음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핵 운동에 앞장서 온 환경 운동가 가운데 일부도 핵에너지에 대한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마크 라이너스, 조지 몬비오,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환경 담당 기자인) 프레드 피어스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앞의 연재에서 소개한 나오미 오레스케스도 핵에너지에 호의적이다.

자, 그렇다면 열 받은 지구를 핵에너지로 식히는 것이 가능할까?

핵에너지가 이런 역할을 하려면 우선 전 세계 소비 에너지의 11.6퍼센트, 전기 에너지의 67.8퍼센트를 차지하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를 아주 빠른 시간, 즉 최소한 50년 안에 대체해야 한다. 화석 연료가 전력(온실 기체의 21퍼센트), 산업(17퍼센트), 수송(14퍼센트) 등에 쓰이면서 배출하는 온실 기체가 인간이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지금 핵에너지가 전 세계 소비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2.3퍼센트)은 정말로 보잘것없다. 핵 발전소를 가동하는 나라도 적다(30개국). 더구나 지금 가동 중인 438기 핵 발전소의 평균 운영 기간은 25년이다. 핵 발전소의 수명을 길게 잡아 40년으로 가정하더라도, 앞으로 15년 안에 이 핵 발전소들은 폐쇄될 운명이다.

이렇게 조만간 폐쇄할 수밖에 없는 핵 발전소가 많은 탓에 2030년까지 약 200기의 핵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도 전체 에너지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기는커녕 지금 수준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그렇다면, 러브록 같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하려면 얼마나 많은 핵 발전소를 지어야 할까?

앞으로 50년간 영광, 울진의 핵 발전소(1000메가와트) 2000~3000기를 전 세계 곳곳에 지어야 한다!

앞으로 50년간 2500기의 핵 발전소를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1년에 50기씩, 1주일에 하나씩 핵 발전소를 인구 밀집 지역인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 집중적으로 지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핵 발전소를 1주일에 하나씩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비교적 핵에너지에 호의적이었던 지난 50년간 지어져 가동 중인 핵 발전소 숫자를 떠올려 보라!

2015년 8월 18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짓고 있는 핵 발전소의 숫자는 67기다. 그나마 중국(24기), 러시아(9기), 인도(6기), 미국(5기), 우리나라(4기)에서 짓는 발전소가 전체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나마 그중에서도 미국의 핵 발전소는 공사가 중단된 상황인 것도 많다. 막대한 건설비와 적자가 뻔한 운영비 때문에 추진력이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러브록의 바람대로, 기적적으로 수천 개의 핵 발전소를 짓더라도 온실 기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화석 연료는 전기 생산뿐만 아니라 산업(17퍼센트), 수송(14퍼센트) 등에 쓰이면서 적지 않은 온실 기체를 배출한다. 당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온실 기체의 절반은 자동차(40퍼센트), 비행기(6퍼센트)에서 나온다.

핵 발전소에서 아무리 전기를 생산한들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 비행기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널리 보급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자, 이래도 핵 발전소가 러브록의 말처럼 '기후 변화의 해결사'인가? 혹시 우리는 열 받는 지구의 미래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원자력 신화'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가동된 상업 발전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맨 오른쪽)가 가동 37년 만에 폐로가 결정되었다. 102orion/wiki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다음 시간에는 6편 「원전의 희생자들」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핵에너지의 성적표가 이토록 초라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핵 발전의 장밋빛 전망 아래 감춰진 사회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강양구(프리랜서 기자 및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6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프레시안》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서 메르스 사태, 황우석 사태, 광우병 사태 등을 보도했고, 앰네스티 언론상(2005년), 녹색 언론인상(2006년)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전2권, 공저) 등이 있다. 지식 큐레이터로서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팟캐스트 「과학 수다 시즌 2」, 「책걸상」을 진행하고, 교통방송(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서 매일 뉴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필자와 당사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1.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바로가기]

2. 석유 시대의 종말?! [바로가기]

3.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알리는 전주곡 [바로가기]

4. 기후 변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바로가기]

5. 원자력 르네상스는 없다

6. 원자력 제국의 희생자들 [바로가기]

7. 후쿠시마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바로가기]

8. ​후쿠시마 산 먹거리는 괜찮을까?

9. 핵 폐기물은 어디로​ 가는가?​

​10. 태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에 대한 오해

11. 똥의 재발견

12. 수소 에너지와 핵융합 에너지의 진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시사통」에서 3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강양구 기자가 직접 방송에 참여한 「환경통」과 함께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관련 링크: 3편 「원전의 희생자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