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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뇌 속의 우주, 우주 속의 뇌 본문

완결된 연재/(完)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10강)뇌 속의 우주, 우주 속의 뇌

Editor! 2016. 12. 15. 14:11

올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뛰어난 천문학자이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세계적인 과학자 칼 세이건. 앞으로 13주 동안 진행될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그의 과학과 사상, 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진행자 원종우 대표가 메인 호스트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서브 호스트로 참여해 매회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번 행사는 9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를 한 편씩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과학의 힘

추위가 점점 기세를 더하는 중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더 이상 추위가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제 추위라는 감각으로 그동안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나눈 여러 이야기들을 떠올립니다. 빙하를 녹이는 온실 기체, 태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융합, 끓는 행성 금성과 완전히 베일을 벗지 않은 목성, 사건의 지평선과 암흑 물질, 창백한 푸른 점 지구까지, 바뀌는 계절 안에서 우주와 지구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주를 둘러싼 과학 지식을 발견한 멋진 과학자들과 인류의 업적에 다시 한 번 감탄합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열 번째 시간은 「코스모스」 ‘세상을 바꾸는 힘(The Electric Boy)’을 시청하며 시작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도 물론 위대한 과학자가 등장합니다.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했던 전기를 치열하게 연구해 인류 문명의 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제본소에서 일하던 마이클 패러데이.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이끈 우연한 삶의 인연은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험프리 데이비의 조수가 되어 본격적인 과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이지요. 상황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고군분투 덕분에 우리는 전기를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기난로, 노트북, 오디오와 스탠드, 지금 곁에 있는 전기를 이용한 필수품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마이클 패러데이. 

뿐만 아닙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앞장 선 사람입니다. 그 자신이 대중 과학 강연에 감화되어 과학을 시작했던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26년부터 시작된 영국 왕립 학회의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회’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마이클 패러데이지요. 이 강연회는 지금까지도 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도 모두 이 강연을 빛낸 과학자들입니다.



12월 2일 있었던 ‘칼 세이건 살롱 2016’ 열 번째 시간에는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 공학과 정재승 교수님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코스모스」를 감상한 정재승 교수님은 “과목, 분야로 나뉘어 있던 지식이 하나로 이어져 내 삶과 연결되고 나아가 그것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주는 게 다큐멘터리 혹은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더불어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명현 박사님은 “이런 다큐멘터리를 국내에서 만드는 건 너무나 큰 꿈이지만 정말 필요한 요소가 있는데요. 앤 드루얀이에요. 과학 바깥에 있는 사람이 과학을 습득해서 다시 내뿜는 거죠. 요즘은 정재승 교수님처럼 좋은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과학자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다른 분야에서 진입해 오시는 기획자들, 프로듀서들, 이런 분들이 굉장히 필요한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늙은 우주에 사는 어린 인류의 뇌’라는 제목으로 아주 흥미로운 뇌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인간 뇌의 놀라운 신비와 인공 지능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커다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과학 강연을 영화처럼 즐기는 그날까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별로 칼 세이건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뜻밖의 고백이었습니다. 심지어 『코스모스』를 여러 번 읽었다고 하면서도 칼 세이건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거듭 말한 정재승 교수님은 그 이유를 “방송에 나와 과학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칼 세이건의 모습은 자신이 선망하던 과학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짓궂게도 삶의 우연은 정재승 교수님을 칼 세이건과 유사한 길로 이끕니다. 『과학 콘서트』 이야기입니다.


“자꾸 글을 쓸 기회가 생기고, 책을 내면 이상하게 잘 팔리고, 방송에 나가면 자꾸 불러요.(웃음) 마음속에는 불편함이 있었죠. 그 전에도 방송에 나오는 훌륭한 과학자 분들이 국내 과학계에서 별로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고 ‘저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인데요. 한편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는 동안 제가 하던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여자 친구는 몰랐어요. 무슨 연구를 하는지 제 여자 친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글을 썼죠. 그 묶음이 『과학 콘서트』예요. 책 제목을 출판사에서 정해 주셨는데요. 제목을 듣고 제가 한 얘기는 ‘이 제목으로 한국에서 책을 내면 직장을 갖기 어렵다.’였어요. 그 정도로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였던 거예요.”


일명 ‘칼 세이건 이펙트’였습니다. “대중적 관계 맺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의 학문적 성취를 잘 모르는” 혹은 학문적 성취가 가려지는 효과입니다. 칼 세이건의 학문적 성취는 그의 대중성에 못지않습니다. 뛰어난 학자임에도 학계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칼 세이건. 정재승 교수님 역시 『과학 콘서트』가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좋은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 지식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크게 느끼게 되고, 칼 세이건을 다시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코스모스」도 보면 앤 드루얀이 쓴 글,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을 건드리잖아요. 그런 영롱한 문장으로 누군가와 과학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코스모스」는 그것의 결정판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점점 칼 세이건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다른 과학자들을 너무 편애했다는(어린 시절에는 아인슈타인 파였고요. 대학에 가서 보니 스티븐 호킹 파와 리처드 파인만 파가 있었는데, 저는 리처드 파인만 파였어요.) 것에 대해 반성도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웃음)”


정재승 교수님의 두 번째 고백은 “과학의 대중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과학의 대중화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어렵거든요. 그것을 쉽고 재미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으로 여러분과 대화하려는 이유는 과학은 어렵지만 그 어려운 걸 잘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누구나 다 과학을 잘하기는 힘들다는 걸 모두가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거예요. 그 힘겨운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격려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요. 또 과학은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야 하지만 결국 도달하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인류 모두가 경험해야 할 경이로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1905년”이 아니라 “시간과 우주 공간의 상대성,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는 걸 인류 전체가 이해한 순간”이 진정한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한다는 정재승 교수님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과학자가 발견한 세상의 진실이 실험실과 논문 안에만 존재한다면 그 과학에 생생함이란 없을 겁니다. 반쪽짜리 과학에 불과하겠지요. 과학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인류의 진보라는 정재승 교수님의 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우주의 작은 진실, 경이로움의 빛 하나를 본 사람들이 그걸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고, 강연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쓰는 거죠. 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그것을 인지하는 인간은 작은 먼지 이상의 존재다, 라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과학의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겁니다.”


마이클 패러데이의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회’를 “과학 강연의 정수”라고 말하는 정재승 교수님은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을 보듯 과학자의 강연을 듣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사회에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과학자가 온전히 호기심이라는 자발적 동기에 이끌려 우주의 경이로움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부럽고, 이런 과학자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왔으면 좋겠고, 저도 이런 과학자가 되고 싶고, 그런 마음입니다.”




과거의 뇌: 끊임없이 진화하는 뇌

정재승 교수님은 칼 세이건의 저서 『에덴의 용』을 살피며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어요. 우주가 자신을 알아주는 지적 존재를 세상에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우주인 나를 드러내려고 했다는 거예요. 인류가 존재하는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는 거죠. 지적 생명체로서의 인류를 상정했던 거예요.”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 이전에 『브로카의 뇌』라는 책을 썼습니다. 프랑스 신경학자 파울 브로카는 뇌의 왼쪽 측두엽 특정 영역이 망가지면 언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뇌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발견으로, 브로카의 발견을 통해 인류는 처음으로 “뇌의 특정 영역이 인간 행동과 사고에 특정한 기능을 담당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연구자 사이에 뇌 기능에 관한 연구가 크게 유행한 것은 물론입니다.



“파울 브로카의 뇌가 유리병에 보관되어 있어요. 칼 세이건이 저 뇌는 파울 브로카인가, 저 뇌가 저 사람인가, 뇌의 생물학적 기작만으로 인간의 모든 지적인 사고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브로카의 뇌』에서 던졌어요. 답은 ‘가능하다, 나는 나의 뇌다’였습니다.”


이후 『에덴의 용』을 펴낸 칼 세이건은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라고 『에덴의 용』을 거듭 강력 추천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용은 제대로 인간이 되기 전의 모습, 에덴은 인류 최초의 환경을 말하는 거죠. 용이 에덴을 나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되었는가에 관한 인간 지성 진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코스믹 캘린더’가 처음 소개된 것 역시 『에덴의 용』이지요. 「코스모스」에도 여러 번 등장한 바로 그 우주력입니다.


“인간은 12월 31일, 그러니까 1년의 마지막 날 밤 10시 24분에 등장했다는 거예요. 이 우주는 너무나 오래된, 나이 든 우주이고요. 인간은 너무나 어린, 나이 어린 뇌를 가진 존재인 거죠. 어린 뇌를 가진 인간이 이 오래된 우주를 탐구하는 일들을 지금까지 해 온 건데요. 그럼에도 어린 뇌의 인간이 이 우주가 얼마나 오래됐고 우리가 언제 생겨났으며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얼추 알아낸 놀라운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이 책이 굉장히 가슴 뛰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코스믹 캘린더(출처: 칼 세이건, 『에덴의 용』,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25~27쪽) 


『에덴의 용』은 특히 이 ‘어린 뇌’의 정체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인류는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의 발명 덕분에 “뇌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그 사람이 기능을 수행하는 동안 측정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뇌의 구조는 파악했으나 뇌의 기능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기술의 한계는 이렇게 깨집니다. 다만 fMRI 발명 이전에 쓰인 『에덴의 용』은 그 이전 성과를 중심으로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신경학자 폴 매클린이 제안한 개념, ‘세 종류의 뇌’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개념”이라고 부연한 정재승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파충류의 뇌가 공포에 민감하고, 원하는 보상에 대한 욕망을 갖는 원초적 뇌를 형성하고요. 그것을 둘러싼 포유류의 뇌, 그걸 넘어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전전두엽의 뇌를 보여 주고 있는 거죠. 『에덴의 용』은 그렇게 진화론적 연구 결과를 보여 주면서 인류 지성의 출현과 진화를 굉장히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전에 발달한 부위(R 복합체)는 안쪽에, 가장 최근에 발달한 부위(신피질)는 바깥쪽에 있다. (출처: 칼 세이건, 『에덴의 용』,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74쪽)


유인원의 진화와 뇌 크기의 변화를 살피는 대목 역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300만 년이 넘는 동안 600cc 정도 되었던 유인원의 뇌”의 크기는 계속해서 커졌습니다. 다음 그래프를 보겠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뇌 무게 대 몸무게 산포도 (출처: 칼 세이건, 『에덴의 용』,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53쪽)


“X축에는 몸무게, Y축에는 뇌의 무게를 놓았어요. 우리보다 뇌 무게가 더 큰 코끼리는 왜 대개의 인간보다 머리가 나쁜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뇌가 크다고 지능이 높은 게 아닙니다. 먹는 음식의 에너지 상당 부분이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되면 뇌로 가는 에너지양이 줄면서 뇌가 설령 크더라도 지적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거죠.”


그렇다면 잠깐 재미있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라면 뇌가 클수록 지능이 높을까요? 정재승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의 뇌가 여자의 뇌보다 큽니다. 남자는 1,400cc, 여자는 1,200cc 정도 되는데요. 평균 지능은 여성이 조금 더 높습니다. 상관관계가 없는 건데요. 남자끼리 비교하면 뇌가 클수록 지능이 조금 더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상관관계가 강력하진 않지만요. 물론 얼굴이 크다고 뇌가 큰 것은 아닙니다.(웃음)”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 봅니다. 인간의 강하지 않은 턱과 무딘 치아, 하관이 보입니다. 뇌로 보낼 에너지를 생각하면 하관은 더 발달해야 할 겁니다. 저작을 더 많이 해서 에너지 섭취를 높여야 하겠지요. 그러나 인간의 하관은 부실합니다. 굳이 악어, 사자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렇습니다. 같은 유인원인 고릴라나 침팬지의 하관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 하관의 허약함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고기를 불에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하관이 부실해도 더 많이 먹고, 더 빨리 잘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요. 고기가 불에 익으면 맛있잖아요. 그러니까 더 많이 먹게 된 거죠. 때문에 소화 기관의 무게는 줄어들고 그 무게가 고스란히 뇌로 갑니다. 하관은 약해졌지만 뇌는 커지면서 얼굴 전체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된 거고요. 다시 말하면 출산할 때 여성의 신체에 주는 부담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뇌가 커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겁니다.” 




현재의 뇌: 사회적 연결을 추구하는 뇌

로빈 던바의 ‘The Social Cortex’는 뇌의 크기와 사회 집단의 규모 간 상관관계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영역에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피질 부피와 사회 집단 규모 간의 상관관계 (출처: Robin I. M. Dunbar, 「The Social Brain Hypothesis and Human Evolution」)


“우정이라는 건 굉장히 독특한, 인간에게만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우정을 나누지 않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그런 일이 없다는 거예요.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들은 혈연관계이거나 사냥을 위해 전략적 제휴를 하는 관계입니다. 우정이라는 건 딱히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데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죠. 사실 많은 친구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웃음) 이득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맺기 하는 동물을 아직 많이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대뇌 피질의 크기도 크고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 친구의 규모가 상당해요.”


이해관계를 제외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람의 규모는 최대 150명이라고 합니다. 잠시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 이전 어떤 동물들보다 가장 사회적 행위를 많이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의 근거가 뇌에 있다니 재미있습니다. 득실을 따지지 않는 관계 맺기, 우리는 어떤 행동들로 관계를 유지할까요. 구체적인 사회적 행위로는 ‘험담’이 있습니다.


“험담, 이른바 뒷담화가 저희 연구실의 연구 주제입니다. 이 행동은 굉장히 독특한 행동입니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대화의 65퍼센트가 뒷담화입니다. 뒷담화란 반드시 욕이 아니더라도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할까요.”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뒷담화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과 각자의 사회적 지위를 측정하는 장치가 된다는 이론입니다.


“첫 번째 이론은,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면서 둘 사이 관계가 친밀해진다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이런 겁니다. ‘내가 그 사람 만나 봐서 아는데’라고 하면 갑자기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잖아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과 배타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도록 사용됩니다. 이런 것들이 나를 근사하게 보이게 하거나 상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라는 게 중요한 가설이었어요.”


앞서 보았던 ‘The Social Cortex’ 그래프의 로빈 던바는 이 질문에 새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뒷담화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게 하는 충동을 억제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너무 착한 일은 가십으로 나누지 않잖아요. 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뒷담화를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회는 소문이 날까봐 그 행동을 못하거나 쉬쉬하도록 해서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다소 벗어난 행동이라고 간주되는 행동들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가설이 등장했어요. 이런 사회에서 사회 규범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남의 가십을 열심히 퍼뜨리겠죠. 그러나 그것이 뭐가 중요해, 라고 하는 개인주의적 생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남의 가십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을 거고요. 그래서 저희 연구실에서는 SNS에서 대규모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가십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가 평소 사회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집단주의적 사고를 하는지 개인주의적 사고를 하는지, 그럴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뇌: 기적의 미래를 만드는 뇌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 낸 놀라운 기계, 컴퓨터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컴퓨터 이전의 모든 기계들은 특별히 수행하는 목적과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다릅니다. 거의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 완결성, 즉 알고리즘을 가진 프로그램만 넣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컴퓨터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이것이 “컴퓨터가 가진 성취이자 한계”라고 말합니다.


“너무 뛰어난 수학자가 컴퓨터를 디자인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수행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완결된 구조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은 수학적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건 수학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법칙을 많이 넣는다고 해도 완벽하게 구별하는 일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거죠. 인간이 그런 방식으로 남녀를 구별하는 것도 아니고요.”



한편 인간의 뇌는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성별, 나이, 심지어 직업까지 구분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뮤지션이라도 어떤 악기를 다루느냐에 따라 뇌 구조가 다르게 생겼다.”라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나 컴퓨터는 그렇지 않지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분리되어 있으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구조를 바꾸어 가며 기능이 더해지는 구조”가 바로 인간의 놀라운 뇌입니다.


“하나의 뉴런이 정보도 처리하고, 기억도 저장하고, 이런 일들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굉장히 효율적으로 빠르게 수행하는 거죠. 뇌가 1시간에 쓰는 에너지가 형광등 2~3개 정도의 에너지와 같습니다. 그 정도로 이런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데요. 컴퓨터에게 그것을 시키면 형광등 10억 개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fMRI의 발명이 엄청난 뇌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앞서 나눴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뇌 과학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재승 교수님이 소개한 뇌 과학 연구는 마치 상상했던 세계가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있는 잭 갤런트 교수의 연구입니다.


“fMRI 기계 장치 안에 사람을 눕혀 놓고 동영상을 보여 줘요. 사람이 동영상을 보는 동안 그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시각 피질을 촬영합니다.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 사람이 무슨 동영상을 보았는지 뇌 활동만으로 영상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꿈을 저장하는 상상, 이것은 더 이상 상상에 머물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꿈에 관한 연구의 지평을 열 것”이라는 사실은 흥분해도 좋을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몇 가지 소설과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장된 꿈을 재생할 수 있는 세상은 소설의 그곳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겠지요. 

잭 갤런트 교수는 지난 4월, 또 하나의 놀라운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어쩐지 상상이 꽤 빨리 현실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고해상도의 fMRI에 사람을 눕히고 이번에는 라디오를 들려주는 겁니다. 소설을 읽어 줘요. 말을 듣는 동안 뇌를 계속 모니터링합니다. 가령 ‘그는 칼 세이건의 진정한 팬은 아니었다.’라는 문장을 들려줬더니 ‘칼 세이건’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특정 영역이 갑자기 활발한 반응을 보여요. 그렇다면 ‘칼 세이건’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에게는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고 간주할 수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단어가 뇌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는지 지도를 그려 본 거예요.”



이를 통해 우리는 쓰거나 타자를 치지 않고도 글을 쓰고 생각이 바로 글이 되도록 할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단어 지도를 잘 분석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정재승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성공한 생각만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실험은 또 어떤가요. “앞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움직이는 기계가 등장”하리라는 전망도 가능해졌습니다. 정말이지 큰 도약입니다. 

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는 일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 문 뒤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강한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뚜벅뚜벅 긴 길을 걸어 드디어 문 앞에 선 인류. 저 너머의 세상에서 아련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정재승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에덴의 용』의 한 문장을 소개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어김없이 인류의 업적에 또 감탄합니다. 

 

“인간의 뇌와 마음은 빅뱅 이래 시작된 장대한 물질 진화의 산물이며 뇌와 마음이 단일한 원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인 유예를 가진 다양한 충동과 논리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 낸 복합적 과정이다.”





질의응답

영화 같은 이야기들, 다양한 가능성을 살피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장치를 통해 뇌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기억이나 뇌에 새겨진 성향 등도 삭제가 가능할까요? 동시에 꿈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정재승(이하 ‘정’): 지금 기술로는 아직 어렵지만 원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뇌에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대략 알고 있고요. 어떻게 개념, 에피소드 등이 저장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죠. 그런데 기억이나 꿈을 조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동안 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록할 수는 있는데 그 기록을 통해 꿈이 어떤 이야기인가를 유추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뇌 과학 지식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 와중에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 「인셉션」처럼 조작을 하려면 상당히 많은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죠. 


뜻을 지닌 단어 지도를 넘어 음절이나 음소 단위의 지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까요?

정: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을 조금 바꿔서 영어로 개념을 담고 있는 경우와 우리나라처럼 음소의 이어짐으로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 경우 언어 지도가 유사할 것인가,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이런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고요. 굉장히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자유 의지는 존재할까요?

정: 자유 의지를 믿습니까?(웃음) 자유 의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해요. 어떤 사람이 의사 결정을 했는데 결정 1초 전에 어떤 결정을 할지 뇌 활동만으로 알 수 있다면 자유 의지가 있는 건가요? 만약 1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면 어떨까요. 현재는 10초 전에 예측을 했거든요. 그러면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도 가능해요. 여러분이 지나가는 길에 오만 원짜리 지폐를 놔둬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저는 여러분이 오만 원을 가져갈 거라고 예측해요. 대개의 경우 오만 원을 가져가겠죠? 그래서 제가 굉장히 예측을 잘 한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자유 의지가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어요. 즉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데요. 그게 자유 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생물학적 뇌의 조작이 먼저 일어났고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뇌 활동을 조작하면 자유 의지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행동조차도 조작할 수 있다, 고 하는 상황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자유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는 정도로 옮겨 오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윤리적 질문과 맞물려 있습니다. 살인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생물학적 결함 때문에 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따라서 이것은 과학자들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소수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알파고’ 때 많이 나왔던 말이 ‘직관’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직관은 딱 보면 아는 거예요. 현재는 인공 지능이 갖고 있지 않은 기능입니다. 인공 지능은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보고 개라고 아는 것을 컴퓨터는 개 사진 100만 장을 학습해야 겨우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뇌에 비해 알고리즘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요. 빅 데이터 시대가 와서 인공 지능이 발달하고 있다는 의미는 인공 지능이 아직 인간을 따라오려면 멀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인공 지능이 빅 데이터로 하는 일을 인간은 어떻게 스몰 데이터로 하는가, 심지어 원샷러닝(one-shot learning), 딱 보면 아는 게 가능한가, 라고 해서 직관을 인간 고유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간주한 건데요. 그런데 빅 데이터를 빨리 계산한다면, 그것을 딱 보면 아는 상황과 구분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질문이 되어 버렸어요. 컴퓨터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면서 마치 직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된 거죠.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직관도 혹시 계산의 결과물 아닐까 하는 문제 제기를 알파고 덕분에 새롭게 하게 된 거예요. 


‘강인공 지능(Strong AI)’의 출현이 가능할까요?

이명현(이하 ‘이’): 컴퓨터와 뇌는 다르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것이 컴퓨터고 뇌는 그냥 뇌잖아요. 그런 차이 때문에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에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형태의 사이보그라면 결코 인간을 따라올 수 없으니 강인공 지능 같은 사이보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근 알려진 것처럼 인간의 뇌를 닮은 칩을 만든다면 가능하겠죠. 어느 순간 강인공 지능이 그런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 봐요. 

정: 인간이 의식과 감정, 욕구를 가지는 방식을 이해해서 그것을 컴퓨터 혹은 인공 지능 시스템에 넣어 주는 것은 원리적으로 가능할 것 같아요. 아니면 하늘을 날기 위해 펄럭이는 날개를 모사하지 않고 비행기를 만들었듯 인간의 의식과 욕망이 작동하는 원리와 상관없는 알고리즘으로 부여하는 방법이 있죠. 후자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과 구별이 어려운 감정과 욕구를 가져야 하는데요.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언제쯤 이게 가능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요. 그나마 가능한 건 전자죠.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의식과 감정, 욕구를 가졌는지는 너무나 고급 기능이어서 인간조차 어떻게 그 기능을 수행하는지 모릅니다. 컴퓨터에 넣은 기능은 언어나 수학, 다시 말해 최근 1만 년간 발달한 뇌 기능인데요. 이것은 최신 기능이기 때문에 잘 이해되고 있는 걸 컴퓨터에 넣은 거예요. 그런데 의식과 감정은 진화적으로 몇 십만 년 동안 서서히 뇌를 바꿔 가며 만든 거라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너무 고등한, 짐작조차 못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살아생전에 그 기능이 이해돼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상황이 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강인공 지능이 우리를 위협할 불안 때문에 인공 지능 시대를 불안해하는 건 너무 과한 반응 같고요. 오히려 인공 지능이 시키면 웬만한 일 다 하는 시대에 왜 학교는 우리를 자꾸 인공 지능 수준으로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넣어 주려고 하는지, 인공 지능에 우리 뇌를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인공 지능 대하듯 우리 뇌를 인공 지능화하는지,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명현 박사님은 한국의 칼 세이건 같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 없습니다.(웃음) 정재승 교수님도 말씀하셨는데 저도 과학의 대중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모든 사람이 하늘을 봐야 한다든가 모든 사람이 빅뱅 우주론을 알아야 한다,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저는 정말 재미있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몇 분이라도 공감을 한다면 평생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칼 세이건은 왜 그런 일을 한 걸까요? 

: 두 가지 같아요. 하나는 그 자신이 굉장히 인정 욕구가 강한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이분이 살았던 시절 때문인 것 같아요. 계몽적으로 지식을 퍼뜨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거기에 칼 세이건의 인정 욕구나 재능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칼 세이건은 멋진 사람이지만 또한 어떤 면에서 냉전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칼 세이건 같은 사람은 다시 나타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요. 지금 시대는 오히려 닐 타이슨이나 앤 드루얀처럼 편안함, 다양함에 대한 지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12강 ‘지구의 메시지(The World Set Free)’는 12월 16일 금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13강 '창백한 푸른 점(Unafraid of the Dark)'은 12월 20일 화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이날 「코스모스: 스페이스 타임 오디세이」(2014년)의 저술가이자 제작자인 앤 드루얀의 전화 인터뷰가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글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 정재승 교수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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