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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경제학과 진화론의 ‘케미’는?

Editor! 2018. 1. 23. 10:46

진화 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2017년에 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에서 경제학자들과 만나며 진화론과 경제학의 융합을 모색하는 자신을 세계의 운명을 가르는 ‘반지 전쟁’ 속으로 원정을 떠나는 “유순한 호빗 프로도”에 비유했다. 그만큼 경제학의 세계가 낯설고, 혼란스럽고, 도전적이었기 때문이다. 윌슨은 책에서 기존의 경제학이 “수학 근본주의”에 기울어 있어 실제로 일어나는 인간의 경제적 행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201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탈러(로버트 세일러)의 행동 경제학까지 “진화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을 연구하겠다고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라고까지 비판한다. 너무 가혹한가? 그러나 이러한 가혹한 비판은 새로운 융합을 낳는 양분이 된다. 경제학자로는 한국 최초로 《사이언스》에서 논문을 펴낸 바 있는 최정규 경제 통상학부 교수가 책의 서평을 보내왔다. 《조선일보》의 “파워 이코노미스트”로 꼽히기도 했고, 집단 이타성, 행동 경제학 연구 권위자이기도 한 최정규 교수가 경제학과 진화론의 ‘케미’를 캐묻는다.



가뭄 때 단비 같은 존재였던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신작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하 D. S. 윌슨)의 『네이버후드 프로젝트: 문화와 유전자 사이에서』(황연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7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책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필자가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 분의 글을 참으로 많이 읽고 또 많이 의지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이타성의 진화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그중 한 챕터에서 D. S. 윌슨의 집단 선택 모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었다. 필자의 지도 교수였던 새뮤얼 볼스(Samuel Bowles, 현재 애머스트 소재 매사추세츠 대학교 명예 교수)는 적어도 인류 사회에서 이타성의 진화를 다루는 데에는 집단 선택이 유효할 수 있다고 믿었던 분이었고, 그래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집단 선택에 관한 진화 생물학 문헌을 찾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애를 썼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집단 선택이 왜 유효한 이론이 아닌지를 말해 주는 논의들은 많았지만 집단 선택이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와 가능한 조건 등을 긍정적으로 보여 주는 글들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내게 D. S. 윌슨은 가뭄 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 당시 그가 엘리엇 소버(Elliott Sober)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 교수와 함께 쓴 『타자 되기: 비이기적 행동의 진화와 심리(Unto Others: The Evolution and Psychology of Unselfish Behavior)』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또 그가 쓴 수십 편의 논문들을 열심히 읽어 나가던 기억이 난다.


이타성에 대한 연구에서 진화 생물학계의 한 축을 이루는 집단 선택론으로 진화학계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진화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의 연계를 모색하는 책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를 펴내 국내외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 출처: evolution-institute.org.


이 책이 궁금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그의 생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도시를 이해하고, 쇠락하는 도시를 부흥시키는 야심찬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쇠락하는 도시를 다시금 생기 넘기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진행했다는 것도 무척이나 관심을 끌었다. 진화 생물학자가 도시를 이해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궁금했고, 진화론에 입각해서 공동체를 살려내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면 그 모습은 어떨지가 또 궁금했다.



도시 부흥과 진화 생물학의 관계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며, 이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그 첫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사회가 인간의 본성과 잘 들어맞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D. S. 윌슨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자 했고, 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그가 사는 인구 5만의 도시 빙엄턴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고 싶었고, 이들을 더 좋은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는 소금쟁이 사례를 통해 경쟁을 이야기하고 말벌의 사례를 통해 협동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도시가 소금쟁이의 사례보다 말벌의 사례에 더 가깝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첫 번째로 착수한 것은 빙엄턴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도덕성에 관한 대규모 설문 작업과 실험을 결합시키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사회적 성향과 도덕성 데이터를 얻은 후, 이를 기초로 지리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GIS 기법을 이용하여 도시의 도덕성 등고선 지도를 만들어 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도덕성 지도가 도덕적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무작위적으로 펴져 있는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국지적으로 뭉쳐 마치 우리가 통상적인 등고선 지도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을 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그 비율이 낮은 곳은 어떤 곳일까? 그는 이러한 차이를 빚어낼 수 있는 각 지역 간의 환경적 차이에 주목했다. 그리고 각각 지역마다의 문화와 그곳에서 지켜지고 있는(혹은 다른 곳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크고 작은 규범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교육에 주목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학적, 심리학적 연구결과들을 접목시키고 이를 사례를 통해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각 지역의 생활 환경을 인간의 본성에 특히 도덕적인 본성에 어울리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빙엄턴의 친사회성을 나타낸 GIS 지도. 사진 출처: evolution-institute.org.


책의 후반부에서도 제법 비중을 갖고 다뤄지고 있지만, 이러한 그의 접근은 많은 측면에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아시다시피 2009년 공유지 관리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분이다.)의 공유지 관리 혹은 공동체 질서론과도 많이 닮았다. 오스트롬 교수도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사라들에게서 이기적이지만은 아닌 협력적 본성을 찾아냈으며,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자발적으로 규제하면서 만들어 낸 규범적 질서에서 새로운 전망을 찾아냈다. D.S. 윌슨의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 관리론의 도시로의 확장 버전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양자는 친화성이 있다.


이 책에는 곳곳에 진화에 관련된 이야기가 가득하다. 소금쟁이의 경쟁, 말벌의 협력으로부터 시작하여, 도시의 발전과 그 역사를 진화라는 틀로 재조명한다. 한편으로는 유전자 결정론의 오류를 경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를 진화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어떤 것으로 보려는 견해의 오류를 지적한다. 면역계가 기생충과 질병으로부터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모습으로부터 인간 집단의 문제 해결 방식과의 유사성을 찾아내며, 까마귀의 행동으로부터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맞물림을 이야기한다. 



경제학과 진화론의 ‘케미’는?

D. S. 윌슨은 대표적인 집단 선택론자이다. 이타성과 같이, 개체에게는 손해가 되지만 다른 개체에게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속성이 진화할 수 있는 하나의 유효한 경로로 집단 간의 경쟁을 든다. 이에 따르면 이타주의적 개체가 많이 포함된 집단에 속한 이타적 개체가 그렇지 못한 집단에 속한 비이타적 개체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D. S. 윌슨은 악명 높은 마법사 같은 존재로 여겨져 왔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집단에 의거하지 않고도 개체 차원으로도 이러한 진화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고, 또 D. S. 윌슨이 내세운 집단 선택의 조건이 실제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엄격하고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진화학자로서의 D. S. 윌슨의 모습이 부각될 뿐, 그에게 붙은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집단 선택론자로서의 모습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혹시 집단 선택 이론 때문에 책을 집기가 꺼려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런데 과연 이 책을 통해 진화 생물학자로서의 모습이 얼마나 일관되게 나타나는지는 보는 이들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정한 진화 생물학자의 모습이 뭔지에 대해서는 사실 필자가 이렇다 저렇다, 라고 답을 내릴 처지는 아니지만, 그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환경적 요인 그리고 문화와의 공진화를 강조하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진화주의적’ 사고와 일관될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평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책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도시 부흥의 아이디어 속에서 얼마나 체현되어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계속된 논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최정규 경제 통상학부 교수. 지도 교수였던 새뮤얼 볼스 교수와 함께 수만 년 전 20개 부족인 진화하는 가상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이타성과 자기 집단 중심주의가 결합한 ‘자기 집단 중심적 이타성’을 가진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는 것을 증명했다.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2018.


필자는 D. S. 윌슨이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는 경제학과 진화론의 결합 프로젝트인 에보노믹스(Evonomics)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한 챕터가 이에 할애되어 있다. 이 책에서 경제학의 모습이 너무 틀에 박힌 채 표현되고 있는 것은 다소 아쉽다. 경제학에서도 진화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는 흐름을 무시할 수 없으며,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새뮤얼 볼스, 허버트 긴티스(Herbert Gintis)뿐 아니라 아서 롭슨(Arthur J. Robson), 케네스 빈모어(Kenneth Binmore), 래리 새뮤얼슨(Larry Samuelson), 그리고 예르엔 베이불(Jörgen W. Weibull) 등 꽤 영향력 있는 분들이 진화론에 입각한 경제 이론을 구축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리고 이들의 시도에 대해서 가치를 인정하는 경제학자들이 적지는 않다. 이러한 노력들이 경제학의 한계를 얼마나 넘어설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새로운 대안 이론을 구축해 낼 수 있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진진한 일일 것이다.



최정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진화 게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경제학자. 경제학, 정치학, 진화 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제도와 규범, 인간 행동을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설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화 게임 이론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회를, 그리고 불확실한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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