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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우리를 음모론에서 자유롭게 하리라: 『숫자 한국』 박한슬 작가 편 ② 본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한때 미세 먼지가 사회적 이슈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때 미세 먼지는 중국에서 온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생선을 밀폐 공간에서 구워 댄 탓이었을까요? 최근 강력 사건만 발생했다 하면 “조현병 환자”라는 단어가 법칙처럼 등장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학 병원 약사 출신으로 통계학을 전공한 “글 짓는 약사” 박한슬 작가님의 신간 『숫자 한국』에 그 답이 있습니다. 미세 먼지 지수, 노조 조직률, 합계 출산율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20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숫자의 힘과 숫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말하는 책입니다. 이번 과학+책+수다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큰 변화를 앞둔 지금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박한슬 작가님께 더 자세하게 들어 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지난주에 발행한 1편에 이어지는 2편입니다.
「과학+책+수다」
AI가 우리를 음모론에서 자유롭게 하리라
『숫자 한국』 박한슬 작가 편 ②
(①에서 이어집니다.)
사이언스북스(이하 SB): 이제까지 ‘숫자와 데이터로 확인한 현실’을 다루었다면, 지금부터는 다음 단계인 ‘대안과 변화의 고민’을 살펴보려 합니다. 마침 『숫자 한국』 4부에 이와 관련된 부분이 있었지요. 노인이 소외되지 않는 키오스크를 보급하기 위해서 노인 100명한테 이것을 직접 사용시켜 보고 문제가 없으면 허가해 주자는 제안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궁금하면서 신선한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천사를 써 주셨던 김정인 어피티 CCO께서도 ‘사람들이 통계를 수월하게 찾아보고 숫자를 해석할 줄 알아서 갈등의 규모가 줄어드는 세상’을 언급하셨는데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이나 해결 방안이 필요할까요?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주신다면요?
박한슬: 최근 중국산 AI ‘딥시크(DeepSeek)’가 큰 화제가 되었죠. 기존에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엄청난 투자로 만든 AI가 시장을 주도하지 않았습니까? 딥시크는 그에 견줄 만한 성능을 굉장히 저비용으로 구현해 주목받았습니다. 중국이 AI 분야에서는 후발 주자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그걸 따라잡고 이만큼 성능을 내는 것을 만들어 냈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에 저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딥시크 관련 뉴스를 찾아보면 두 가지가 가장 눈에 띄더라고요. 첫 번째는 ‘저비용 AI, 우리도 희망을 갖자.’라는 긍정론, 그다음은 ‘중국 서버를 통한 보안 위협.’이라는 우려론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우리 부서는 딥시크 사용을 차단하겠다, 접속을 막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는 이게 AI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피상적 대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AI를 우리가 정신적 내지 소프트웨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AI는 물리적 기반, 특히 데이터 센터와 결합해야만 실제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오픈AI 사의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 같은 모델은 내부 구조는 철저히 비공개인 채로 요청에 대한 응답만 서비스 형태로 제공합니다. 내가 그 회사의 데이터 센터에 접속해서 무언가 요청하면 원하는 내용물을 보내 주긴 하죠. 그런데 그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식당에서 메뉴를 시켰더니 원하는 요리가 맛있게 나오는데, 레시피는 며느리도 모르는 상황인 거죠.
반면 딥시크는 핵심 모델 자체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데이터 센터에 설치해 독립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딥시크는 레시피까지 공개한 유명 요리와 같습니다. 만약 현지 식당의 위생이나 신뢰 문제를 이유로 그 요리를 거부한다면, 똑같은 레시피로 우리가 직접 안전한 식당에서 만들어 먹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이 그저 중국산이라 위험하니까 차단한다! 저비용으로 저런 대단한 AI를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 저는 데이터만이 아니라 AI 산업에 대한 이해도 같이 높여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산 AI 차단’이라는 피상적 대응보다, 이러한 오픈 모델을 정부가 직접 도입해 전자 정부 시스템에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자 정부를 도입하면서 아주 큰 혁신을 이루었죠. 주민 센터에 가지 않고도 서류를 발급받는 것부터 행정 전산망 통합으로 웬만한 일을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음에 올 정부 ― 전자 정부 2.0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차세대 전자 정부라고 해야 할까요? ― 에서 저는 딥시크 같은 대형 AI 모형으로 훨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정책 방향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정치인의 몫인데, 지금은 “위험한 중국산 차단.” 아니면 “국산 AI 응원.” 이런 구호만 난무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SB: 본문 마지막에 말씀하신 “단순한 일은 하나도 없다. 세심하게 숫자를 보며 부작용과 효과를 저울질해야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와 부합하는 이야기군요. 저는 이 문장이 「닫는 글」에서 강조하신 “숫자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때는 바르게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닌, 이런 숫자를 누가 어떤 의도로 생산한 것인지도 한 번 정도는 고민해 봐야 한다.”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의도가 담긴 숫자로 대중을 오도했거나, 오도하려 한 사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한슬: 숫자가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사용된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닫는 글」에서도 말했던 필립 모리스의 흡연 관련 보고서입니다. 흡연으로 사람들이 빨리 죽으면 연금 및 의료 비용이 절감되어 사회에 이롭다는 이 다국적 담배 회사의 황당한 보고서는 인간 생명을 경제적 수치로만 계산해, 비윤리적인 주장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게 통계를 악용한 사례였죠. 숫자가 사실을 말하지만, 해석이 의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비슷한 일을 어업과 기후 변화를 둘러싼 오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태 어획량 감소가 어민들의 남획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금어기를 안 지키고 명태 새끼를 “노가리”라 부르며 너무 많이 잡아서 그렇다는 식의 비난이 많았죠. 최근에는 오징어 어획량 감소도 비슷한 프레임으로 흘러갔습니다. 오징어 새끼를 “총알오징어”라 부르면서 남획한 탓이라는 식인데, 장기적 데이터로 보면 두 주장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남획이 아니라 수온 변화의 영향을 받은 어족 자원의 이동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방어 어획량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거든요. 오징어나 명태는 어장이 북상해 북한이라든지 아니면 러시아 연해주 쪽에서 많이 잡히고 있고요. 그걸 두고 “무식하다.”든지 “탐욕스럽다.”라는 식의 도덕적 비난이 어민들에게 쏟아져서 그분들만 더 힘들게 되었죠. 이처럼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살펴봐도 충분히 통찰을 얻을 수 있는데 거기에 인간의 악의(惡意)라든지 아니면 다른 미시적인 원인을 덧씌워서 엉뚱한 사람을 때리는 데 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 것들은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고, 이 책에 싣지 않았지만 숫자와 의도가 결합해 더 큰 비극을 만든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바로 미국에 일어난 펜타닐 사태와 맥킨지(McKinsey) 사의 역할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펜타닐 같은 마약성 진통제(opioid) 과다 복용으로 매년 수만 명이 사망하고 일을 못 하게 된 사람이 600만 명일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총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그야말로 ‘침묵의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냐면, 제약 회사들이 마약성 진통제 매출 증대 방안을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10년 동안 자문을 해 줬대요. 마약성 진통제를 대용량 제품으로 팔고,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른 회사와 연합하라는 식으로요. 매출 수치만을 올릴 전략을 ‘숫자’로 증명하며 한 제안을 그대로 따른 결과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거라서 우리가 데이터와 함께 그 뒤에 숨겨진 의도와 맥락을 잘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숫자로 싸우는 시대, 우리의 무기는?
SB: 우리가 그런 선동에 잘 휘둘리는 이유에는 「닫는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 대항하는 통계를 만들 시간과 돈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작가님은 어떻게 길을 찾으셨나요?
박한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필요성을 못 느껴서 잘 시도되지 않는 것 중 하나인데요. 바로 협회나 협동 조합 차원의 연구입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는 어민이나 농민 협동 조합 같은 협회들이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회원들이 회비를 각출해서 거두면 꽤 큰 재정이 마련될 것 아닙니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에 그 돈으로 용역을 맡겨 필요한 자료를 만들게 해서 그렇게 협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뜻있는 개인이나 작은 단체 차원에서는 비용과 전문성 부족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협회가 공동 재정을 바탕으로 해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만약 협회를 만들 여건조차 부족하다면, 그런 연구를 수행할 학자들을 길러낼 수 있도록 연구비를 잘 지원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원래 보건 분야에서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학문인 ‘역학(epidemiology)’을 사회 구조와 건강의 관계로 확장한 것이 사회 역학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시는 이분들은 예전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있었던 백혈병 사건에 정말로 인과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조사에 참여하시기도 합니다. 또 김승섭 교수님이라고 서울 대학교 보건 대학원에 계시는 분이 있는데,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같은 것들을 하십니다. 그런 연구는 정부에서 통계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서 돈을 투입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런데 연구팀에서 직접 하니까 자료가 나오고, 그러면 그 자료를 토대로 성 소수자 집단이 이러한 문제점을 겪고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 더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나라에 요구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단계적으로 밟아 갈 수 있도록 로드맵을 짜는, 그러니까 첫발을 딛는 게 제일 중요한 거고요. 사실은 그런 것들이 원래 정치권의 일이잖아요. 국회의원실이나 정당 연구소 같은 창구에 상황을 이야기해서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그렇게라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SB: 개인으로서는 역시 『숫자 한국』을 먼저 읽고, 숫자를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네요. (웃음) 최근 여론 조사 결과들이 크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며, 숫자 속에 담긴 의도와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숫자에 담긴 의도를 전부 파악하기는 쉽지 않죠. 작가님은 이런 의도적인 숫자들 속에서 어떻게 진실을 찾으셨나요? 조금이라도 더 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독자가 참고할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박한슬: 어떤 숫자를 그 자체로만 볼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런 과정을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나 자료가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 여론 조사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결과를 보여 논란이 크죠. 이런 결과를 이해하고 판단하려면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봐야 하거든요.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여론 조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직접 조사원이 전화를 받아서 육성으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여론 조사 업체 아무개입니다.”라는 식으로 대면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있고요.
두 번째는 자동 응답(ARS)이라고 “안녕하십니까, ○○리서치 여론 조사 기관입니다. 본 조사는 사회 현안 및 여론 조사를 목적으로 무작위로 선정된 대상자분께…….”라고 기계음으로 안내하는 이런 전화 많이 받으셨을 거예요. 계속 받으면 “자신의 연령이 몇 번에 해당하는지 눌러 주십시오. 20대는 2번, 30대는 3번…….” 이런 식으로 설문이 진행되는데, ARS가 오염되기 더 쉽죠. 왜냐하면 자동 응답으로는 내가 누군지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60대 할아버지가 20대 청년에 표시해도 걸러 낼 방법이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죠. 그런 오염이 가능한 방식으로 했는지? 아니면 이런 사람을 전화 면접에서 조사원이 잘 걸렀는지를 생각하면 어느 여론 조사를 신뢰할지 가닥을 잡기가 더 쉬우실 거고요.
그다음으로 여론 조사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전제를 하나 깔고 있습니다. 정치 성향이 달라도 여론 조사 응답률이 모두 같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진행하는 거예요. 보수 성향인 사람도 전화를 걸었을 때 한 10퍼센트 정도는 전화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진보 성향 분들도 전화를 한 10퍼센트 정도는 받아 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확률이 비슷해야지 불특정 다수에게 걸었는데 이 사람이 보수든 진보든 무당층이든 중도든 그 응답률이 똑같아서 데이터를 다 모았을 때는 우리가 여론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요즘은 정치 성향에 따라 응답률이 바뀌었다는 징후가 좀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 성향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응답하면 당연히 조사 결과가 실제 민심보다 보수 쪽에 치우치게 됩니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이해하셔야지 ‘있는 그대로, 숫자니까 믿자.’ 이런 태도는 속기 쉽습니다. 그래서 역시…… 『숫자 한국』 같은 책을 잘 읽어 주시면 더 좋겠네요. (웃음)
SB: 의도가 숨겨진 숫자들을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보도 자료에도 썼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비상 계엄 사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020년 부정 선거 음모론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음모론은 사전 투표 평균 득표율이 같았다는 숫자를 근거로 하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관리 위원회 해명 자료를 통해 이 숫자의 일치가 단순한 우연조차 아니라 의도적으로 숫자를 뭉뚱그려 조작한 허위임이 밝혀졌죠. 이전까지 이야기한 사례들이 ‘숫자에 의도를 담아 해석하는’ 편법이라면, 지금은 결이 아예 다른, 그러니까 ‘의도에 맞추기 위해 숫자 자체를 조작하는’ 불법적 왜곡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박한슬: 그게 참 어렵기는 한데요. 말씀처럼 이것은 숫자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악의적 왜곡의 문제니까 결국은 직접 사실을 찾아볼 방법, 그게 맞는지 확인할 방법을 아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런 AI 기반 도구가 많아졌으니까요. 오히려 AI 쪽이 편향 없이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제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AI를 활용한 팩트 체크를 습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고요.
제가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가 세대 간의 구분이라고 할까요? 그 기준을 연령대로 끊어야 한다는 분도 있고, 특정 연도를 기점으로 끊어야 한다는 분도 있고, 습관이나 태도 같은 것으로 나눠야 한다는 분이 있고 다양한데, 제 생각에 장년층과 청년층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술자리 같은 곳에서 논쟁이 붙을 때 장년층은 “내 말이 맞아”, “아니야, 내 말이 맞아.” 하며 계속 말로만 싸우세요. 그런데 청년층으로 오면 스마트폰을 들고 검색하더라고요. 과거에 그러지 않은 이유는 사실 검색할 방법이 없었기에 누구 말에 설득력이 있는지, 목소리가 큰지가 중요했던 건데 이제는 검색하는 습관 자체가 사실 확인의 시작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검색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유튜브도 알고리듬을 타고 이상한 것들을 많이 추천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대놓고 거의 가짜 뉴스에 가까운 것을 자기 이름을 달고 내보내는 블로그나 언론사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피하려고 미디어 문해력(media literacy)을 갖추는 게 한동안 화두였고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현실적으로 좀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래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모델이라도 좋으니 AI에 물어보세요. 그편이 미디어 문해력을 갖추기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함정에 빠져 버린, 즉 잘못된 정보나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걸 논박하는 방법으로는 마음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솝 우화에도 있죠.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고 세차게 불자 오히려 더 외투를 꽁꽁 여몄지만,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니 나그네가 스스로 외투를 벗더라. 사람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세계관을 굳건하게 해 주는 것들을 스스로 믿고 싶어서 믿는 사람한테 “왜 그런 바보 같은 걸 믿어?”라고 하면 더 마음을 닫겠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AI가 이런 걸 정말 잘 설명해 주던데?” 하면서 한 번씩 검색시켜 보세요. 신뢰를 얻은 다음 이런 것도 검색해 보면 어떻겠냐고 유도하는 거죠. 본인이 직접 확인한 정보는 받아들이기 조금 더 쉽잖아요. 공격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검색을 통해 왜곡 자료를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편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SB: 책에서 “사람이 AI에게 지배받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지배까지는 아니더라도 AI가 사람의 스승이 되는 일은 오는 거군요. 어디에서 그런 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인간은 최초로 자신의 스승을 창조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박한슬: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체스 분야를 예로 들어 볼게요. AI가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분야가 바로 체스였죠. 딥 블루 같은 체스 인공 지능이 세계 챔피언을 꺾었을 때, 많은 사람이 이제 체스는 끝났다고 예견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프로 기사들이 AI를 파트너 삼아 훈련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전략을 배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AI와의 대국을 통해 프로들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AI를 단순한 위협으로 보기보다, 보조자이자 스승으로 여기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초월해 아는 존재일 필요는 없죠.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은 기꺼이 AI의 보조를 받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SB: 인터뷰 제목을 “AI가 음모론을 쳐부수리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인터뷰가 마무리되어 가는데요. 책 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주의 깊게 보신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책 맨 앞 헌사나 본문에서 “곧 세상과 만날 꿈틀이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태어난 해인 1993년” 같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간까지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최근 정치 사회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를 포함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한슬: 제가 2024년 9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원래는 자녀 계획을 조금 미루려 했는데, 그만 신혼 여행에서 아이가 덜컥 생겼어요. 딸아이 태명은 “꿈틀이”라고 지었고 올해 세상에 나올 예정입니다. 아이를 기다리며 삶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총각 시절에는 홀몸이니까 나 혼자 건사하다 훌쩍 가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미래 세대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제는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생기니까 이 아이는 결국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출간 계약을 한 지는 사실 조금 오래되었고 집필에도 1년 넘게 걸렸습니다만, 그동안 그런 생각이 점점 강해져서 단순히 사회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내 딸이 태어났을 때 더 좋은 세상을 주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를 계속 되뇌며 작업했습니다.
SB: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 책을 다 출간하시고 인터뷰를 하고 계시는데,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기를 바라시나요? 특히 지금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앞둔 시기입니다. 만약 차기 대권 후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누구에게 어떤 대목을, 왜 추천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세요.
박한슬: 먼저 이재명 대표님께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중도층 공략을 위해 전보다 보수적인 정책을 많이 언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사회에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이 사회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일자리가 없어서 좌절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말씀하셨던 진보적 정책들을 너무 포기하지 않고 청년층을 보듬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으로 AI 시대를 맞아서 우리한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많은 기업이 AI 알고리듬에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를 통해 협의할 수 있는 취업 규칙과 달리 알고리듬에 대해서는 아직 단체 협약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참고해서 그런 목소리를 더 진보적으로 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수 후보 진영의 후보께는, 지금은 누가 후보가 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구 감소 시대의 노동 가치 변화입니다. 우리 보수 정치권에서는 사람의 값어치를 낮게 보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에서 사람을 싼값에 쓰기를 바라는 여론에 편승해 주 52시간 폐지 같은 정책도 사실 청년층이 그렇게 바라지 않는 것인데도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세계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음을 이 책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젊고 경제 활동이 가능한 인구 자체가 줄어들수록 사람은 귀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처럼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아.”라는 태도로 접근하면 청년층이 호응해 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결국 지금처럼 노년층에 집중된 정당으로 쇠락해 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런 점을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한슬
글 짓는 약사. 숫자가 담긴 글 쓰는 일을 한다. 약학 대학 졸업 후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외국계 제약 회사에서 메디컬 라이터로 일한다. 《중앙일보》 「박한슬의 숫자읽기」와 《월간조선》 「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을 연재하고 있으며, KBS 1라디오에서 매주 의료 서비스와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약의 작용 원리를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와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제약 산업 개론서인 『바이오 투자의 정석』,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살핀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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