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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 서양 과학, 동양 과학, 그리고 한국 과학 본문

사이언스북스의 책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 서양 과학, 동양 과학, 그리고 한국 과학

Editor! 2013. 4. 10. 17:13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서양 과학, 동양 과학, 그리고 한국 과학


동서양 과학의 비교와 과학의 전파

동아시아 과학사의 거장, 김영식의 논문집


지난 수십 년간 내 주된 학문적 관심은 ‘동아시아 전통 속의 과학’이라는 주제에 향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전통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지적 주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지식과 태도에 관해 주로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서양에서의 과학과 동아시아 과학의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 사회의 과학이 서양에서 유래해서 발전해 온 것이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과학사의 표준적인 훌륭한 업적들이 대부분 서양 역사상의 과학에 대한 것들이었기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의 과학을 비교하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를 빚어 왔다. 가장 널리 퍼지고 심각한 문제는 그 같은 비교의 과정에서 서양의 과학을 동아시아 문화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화의 과학이 본받고 지향해야 할 모범이자 기준으로 가정하는 오류인데, 그 같은 가정은 동아시아의 과학은 물론 서양의 과학에 대한 이해마저 왜곡시켜 왔다. 물론 동아시아와 서양의 과학을 비교함에 있어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 본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구와 성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서구와 일본 사회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근대화, 산업화의 압박 때문에 한국 과학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고도 성장한 지 오래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의 총 연구 개발 투자 비용은 43조 8548억 원(2010년 현재)으로 세계 7위이며, SCI(세계 과학 기술 논문 인용 색인)급 논문의 수는 3만 9843건으로 세계 11위(2010년 현재)이며, 특허 건수는 1993건으로 세계 5위(2010년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새 정부는 과학 기술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창조 경제 구현을 목표로 17조 R&D 예산을 2014년 투입할 구상을 밝히고 있다.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발족으로 시작된 한국 과학 기술 연구는 5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의 과학 기술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급팽창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맹목적인 급팽창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연구 부정과 논문 표절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대한 성찰이 균형감 있게 이뤄지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김영식 서울 대학교 동양사학과 명예 교수의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는 질풍노도의 급팽창 과정을 거쳐 온 한국 과학 기술, 나아가 세계 과학 기술사 전반에 걸쳐 냉철하게 성찰할 수 있는 대학자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서양 과학과 동양 과학의 차이, 서양 과학의 동양으로의 전파와 그 주변 담론을 역사학이라는 메스로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는 김영식 교수의 글들은 오랫동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이래 오랫동안 동아시아 과학 기술 엘리트, 아니 지식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열패감와 추월에 대한 열망을 해독(解毒)하는 해독제 역할을 해 왔다. 이 책은 민족주의적 열망이나 서구 중심주의적 열패감에 흔들리는 법 없이, 비교사적 방법론으로 서양 과학과 동양 과학의 차이를 엄밀하게 분석해 내고,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 전파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발굴해 낸 김영식 교수가 평생 써 온 연구 논문들 중 고갱이들만 묶은 것이다.

서울 대학교 화학 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론 화학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영식 교수는 1977년 서울 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과학사 및 과학 철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왔다. 그리고 1984년 서울대에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을 정식으로 발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불모지와도 같았던 한국 사회의 과학 기술에 대한 성찰적, 반성적 연구에 새로운 기초를 닦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과학 기술학 연구자들을 배출하고 키울 수 있는 요람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의 자연관과 당대 중국 철학자들의 자연관을 서양의 자연 과학자들의 그것을 비교사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지동설과 지구설 같은 서양 천문학의 여러 이론이 중국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 사회에 전파된 과정을 엄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조지프 니덤 등 세계적 석학 역시 버리지 못했던 동아시아 과학에 대한 기존 학계의 선입견을 교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서양 과학 전파에 대한 중국, 한국(조선), 일본의 수용 과정을 세밀하게 비교함으로써 세 나라의 근대화 과정이 달라진 이유를 민족주의적 관점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번에 출간된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는 김영식 교수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에 써 온 연구 논문들을 묶은 것이다. 동양 과학과 서양 과학의 차이, 서양 과학의 전파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반응, 그리고 한국 과학사를 둘러싼 논쟁적 이슈를 주제로 한 11편의 논문이 묶여 있다.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양 과학사에서 시작해, 서양 과학이라는 거울에 비친 동아시아 과학의 허와 실, 유교와 동아시아 과학의 관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적 과학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를 다루는 Why not 문제, 서양 과학의 동양 전파 과정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반응, 근대 일본의 과학 기술사, 한국 과학사에서 중국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말 그대로 비교사적 관점에서, 과학의 전파 측면에서 바라본 동아시아 과학사의 모든 문제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양 과학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처 입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자존심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양 과학의 중국 기원론 문제나, 한국 과학사를 과연 중국 과학사와 분리해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한국 과학사에서 ‘중국의 문제’나, 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나 하는 ‘Why not’ 질문 같은 학계의 논쟁적인 핵심 이슈들에 대한 김영식 교수의 예리한 분석과 해석은, 급성장 과정에서 왜곡되어 온 동아시아의 과학 기술 발전 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바라볼 혜안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다.



서구 과학만이 과학사적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동서양 과학의 비교」는 서구 과학을 비교의 거울로 삼아 동아시아 전통 과학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2부 「과학의 전파」는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 서구 과학이 전래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으며, 3부 「한국의 과학」은 비교와 전파의 관점에서 한국 과학사를 조망하고 있다.

1부 「동서양 과학의 비교」에 실린 네 편의 글은 서양과 중국 두 문화권의 과학을 ‘비교’하는 적절한 태도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利點)에 대해 다룬다. 특히 서양 과학에 비추어 동아시아 과학의 독특함을 탐색하는 김영식 교수의 연구 방법을 잘 보여 준다. 김영식 교수는 서양 과학의 역사를 과학사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연구해 온 동아시아 과학의 관점에서 서구 과학의 특징을 바라본다. 그렇게 해야만 평소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던 서양 과학의 몇몇 특징이 실제로는 서구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특수한 현상임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1부의 글들에서 김영식 교수는 근대 서유럽에서 출현한 현대 과학을 인류의 보편적 성취이자 자연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보편타당한 지식 체계로 간주하고 서구 사회의 과학과 비서구 사회의 과학을 비교하는 방법으로는 비서구 사회,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루어진 과학 기술 발전의 특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오해들만 양산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김영식 교수의 냉철한 메스는 ‘서구적 진리와 비서구적 오류’라는 이분법적 대비를 확대 재생함으로써 서구 과학의 절대성을 강화하는 낡은 담론에 대해서만 가해지는 게 아니다. 중국의 고대 문헌 등에서 서구 과학이 근대에 이룬 성과들의 맹아를 읽어 냄으로써 비서구 과학을 서구 과학에 견주려는 친(親)동아시아적 연구에 대해서도 가해진다. 대표적으로 중국 과학사 학계의 창시자요 거장이라 할 만한 조지프 니덤도 김영식 교수의 냉철한 메스를 피해 가지 못한다.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근대 서구 과학을 예견하는 ‘놀라운’ 업적을 찾아내고, 중국에서 근대 과학이 출현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자 한 조지프 니덤과, 중국의 전통적 음양오행 사상 등에서 현대 물리학의 비결정론적, 비인과율적 성격을 찾으려 한 1970년대 신과학(New Age Science) 논자들의 시도 모두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문헌 해석에 근거한 것이며, 서구 과학을 보편적 기준으로 놓고, 그 기준에 비서구 과학을 갖다 맞추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와 연구들이 중국의 전통 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니덤과 신과학 논자들이 처음 던진 질문이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그에 대한 대답이 지닌 난점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김영식 교수는 중국의 과학을 보는 연구자들의 관점이 좀 더 세련되고 풍부해지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유교가 가진 실용적이고 개별론적인 논의 전통이 아니라 중세 서유럽의 스콜라 학자들이 가졌던 추상적, 이론적 논의 전통에서 귀납적인 근대 과학이 등장한 과학사적 아이러니를 해결할 실마리를 펼쳐 보여 주고 있다.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 전파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2부 「과학의 전파」는 16세기 말 이래 유럽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서구 과학이 동아시아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을 탐구한 네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연구 대상은 17, 18세기의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로 바뀌어 있지만 김영식 교수의 엄정한 비교사적 방법론은 이 글들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다.

서양 과학이라는 이름의 서구에서 전래된 지식 체계를 마주하고, 자신의 문화적, 지적 전통과의 차이를 발견한 17, 18세기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다양한 문헌을 바탕으로 당시의 중국(청), 한국(조선), 일본(도쿠가와 막부)의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며 분석하고 있다. 결국 17, 18세기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 전파 과정은 서세동점의 일방적인 전래 과정도 아니고, 위정척사(衛正斥邪) 같은 맹목적인 반발의 역사도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한마디로 17, 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사상적, 사회적 맥락에서 서양 예수회 신부, 조정의 관료와 사대부 지식인 등 서양 과학의 전래에 관련된 다양한 행위자가 취한 전략과 선택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서양 과학은 더 우수했기 때문에, 또는 더 옳았기 때문에 수용되거나 배척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엘리트에게 ‘유용’한 것으로 비쳐졌으며 바로 그 유용성 때문에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 유용성을 판단한 중국과 한국의 엘리트들이 처한 토착적, 전통적 상황에 대한 세심한 분석 없이 동아시아의 서양 과학 전파 과정(또는 수용 과정)의 독특한 특징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김영식 교수의 요지이다.

김영식 교수는 「‘서학(西學)의 중국 기원론’의 출현과 전개」와 「서양 과학, 우주론적 관념, 그리고 17, 18세기 조선의 역학(易學)」에서 외래 문화, 또는 외래 지식체계와 접한 토착 문화와 그 엘리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두 요소가 어떻게 서로 상호 작용하는지 잘 보여 준다.

김영식 교수는 서양 과학이 고대 중국 성인(聖人)이 만든 것이고, 중국에서는 오래전에 잊혀졌지만 서양 오랑캐들은 잘 보존, 발전시켰다고 여긴 서학중원론(西學中原論)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밝히면서, 자신을 보편적 문화라는 믿음을 가진 사회가 외래의 매력적인 요소를 접했을 때 쉽게 취할 수 있는 태도 또는 전략임을 보여 준다. 또 지구가 둥글며,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지구설과 지전설의 17, 18세기 동아시아 전파 과정을 분석하면서 당대 한국의 지식 사회에서 이 두 가설이 『주역(周易)』이라는 토착 학문과 통합되는 모습도 흥미롭게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의 전래란 토착 요소와 외래 요소 사이의 양자택일의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융합을 포함한 복잡하고 흥미로운 상호 작용의 과정이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또 2부에서는 일본 과학사를 다루면서 서양 과학의 전파 역사에서 중국이나 한국과는 다른 이질적인 길을 걸었던 일본의 과학사를 짚으면서 19세기 후반 일본 근대 과학의 성공을 단순히 서구 과학을 이웃나라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김영식 교수는 일본 근대 과학사에서 서구 과학이 전파된 양상이 앞에서 다룬 중국과 조선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보여 준다. 즉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본은 이웃 중국과 조선처럼 ‘이미 완성된’ 서구의 과학을 수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서구 열강과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하고 있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구 과학이 중국과 조선에 전래된 현상을 ‘서로 다른 문화 사이(inter-cultural)’의 전파라고 한다면, 일본의 경우는 마치 프랑스의 과학이 독일로 전파되는 ‘문화 내적(intra-cultural)’ 전파 현상에 더 가까웠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앞서 실린 글들에서 지은이가 서양 과학에 대한 중국 및 한국 과학의 ‘차이’를 강조했다면, 이 글에서는 일본의 경험이 같은 동아시아 나라인 중국, 한국과는 달랐고 도리어 서양의 나라들과 더 비슷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한국 과학이란 무엇인가?

3부는 한국 과학사에 관한 김영식 교수의 글을 모은 것이다. 화학사와 중국 과학사 연구에서 출발한 김영식 교수의 한국 과학사 연구는 시각과 방법론 측면에서 기존의 한국 과학사 연구와 다른 측면을 보여 준다. 서양 과학사와 중국 과학사에 대한 깊이 있는 비교 연구를 토대로 한국 과학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중국 과학에 대해 한국 과학의 독특함, 또는 독창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한국 과학사 연구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서양 과학과 중국 과학을 나누는 ‘차이’가 중국 과학과 한국 과학 사이에는 없으며, 중국과 한국 사이에 이뤄진 과학의 교류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것이 아니라 ‘한 문화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3부의 글들은 한국 과학사에 대한 이전의 연구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바람직한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글들이다. 한국 전통 과학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강조하는 기존의 한국 과학사 연구 경향은 한국의 과학사 학계가 국제 학계(동아시아 과학사 학계) 및 한국사의 다른 하위 분야로부터 ‘고립’된 상황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중국 및 다른 지역과의 세밀한 비교 연구, 한국사의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특정 유물과 기법에 관한 피상적 관찰을 근거로 그 우수성, 독창성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과학의 압도적 자장 속에 있었던 한국 전통 과학이 과연 얼마나 독창적이었는지 냉철하게 점검하는 김영식 교수의 연구 방법론은 민족주의에 어느 정도 경도될 수밖에 없었던 기존의 한국 과학사 연구를 재고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찾도록 재촉한다.

그리고 마지막 글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을 통해 1970년대 이래 급격히 발전하고 있던 한국의 현대 과학을 과학사 학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한국의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는 한국 전통 과학사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잠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 글에서 김영식 교수는 현대 한국의 과학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의 문화적 유산에 주목한다. 과학 기술을 엘리트 계층이 누리는 고상한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실용적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여겼던 ‘공리주의적’ 과학 기술관, 그리고 그 과학 기술을 양반의 아래에서 정부의 하급 관직을 맡은 ‘중인(中人)’ 기술직에 전담시킨 전통의 영향이 현대 한국의 과학에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한국사에서 근대와 전근대의 단절이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심대한 것이 아니면 지난 50여 년간의 과학 기술 급팽창 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17, 18세기 조선 시대 유학자들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현대 한국의 과학 기술계는 국가의 연구 개발 투자가 17조 원에 이르러 전통 과학 기술의 황금기였던 세종 시대에도 상상하지 못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어떤 선진국의 과학 기술계와도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많은 모순과 아이러니가 풀리지 않은 채 얽혀 있다. 이 문제를 풀 실마리는 과거에 대한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성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차례

머리말

엮은이 서문

1부 동서양 과학의 비교

1장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구 과학 전통

2장 ‘화석’, ‘유기체적 세계관’, ‘땅의 운동’

3장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4장 유교와 동아시아 과학

2부 과학의 전파

5장 동아시아 역사상 과학의 전래와 과학의 변화

6장 ‘서학(西學) 중국 기원론’의 출현과 전개

7장 서양 과학, 우주론적 관념, 그리고 17-18세기 조선의 역학(易學)

8장 동아시아 과학사에서 근대 일본의 문제

3부 한국의 과학

9장 한국 과학사 연구의 문제와 전망

10장 한국 과학사 연구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문제’

11장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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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식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학 물리학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서울대학교에 부임하여 2013년까지 화학과,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을 설립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과학사 교육과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국제 동아시아 과학・기술•의학사 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과학혁명』, 『주희의 자연철학』, 『정약용 사상 속의 과학기술』 등이 있다.

엮은이 임종태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초빙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화학부에 재직하며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에서 한국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17, 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지리학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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