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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과학 수다

과학 수다 (6) [아톰부터 커크 선장까지] SF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ditor! 2013. 6. 24. 19:59

과학의 세계로 이끄는 흥미롭고 친절한 안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주최/ 프레시안 공동기획 '과학 수다' 코너를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도 소개합니다. 과학 수다는 매월 첫 째주에 아태이론물리센터 웹진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 books를 통해 소개됩니다. 


우리는 한 때 모두 SF의 팬이었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아톰(1952년)에 마음이 끌렸고, 코난(1978년)의 끝없는 고난에 마음을 졸였습니다. "빔 미 업!(Beam me up!)" 외치며 순간 이동을 하는 커크 선장(1966년)의 활약상에 주목했고, 파충류 외계인 다이애나(1983년)가 쥐를 한입에 삼킬 때 고개를 돌렸죠.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로 재탄생한 <콘택트>의 앨리(1985년/1997년)와 함께 우주 저편에 있는 타자와의 만남을 꿈꿨습니다. 최근에는 할리우드식 히어로의 끝장을 보여주는 아이언맨(2008년)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겼죠. 그러니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SF는 항상 우리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한국에서 SF를 창작하는 작가의 수는 채 20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고료를 받고서 창작 SF를 발표할 곳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가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가 유일합니다. 잊을 만하면 SF 잡지가 등장하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책이요? 당연히 안 팔리죠.

그나마 SF 영화, 만화 혹은 드라마가 가끔씩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넓게 보면 SF로 분류할 만한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도 주목을 받고요. 하지만 딱 그 때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덧 SF는 어릴 때나 읽는 '유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SF의 번역어 '공상 과학 소설'은 그 단적인 증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틈만 나면 입에 올리는 말이 '미래 창조'입니다. 심지어 '미래 창조'를 앞에 붙인 부처까지 등장했습니다. 미래 창조? 생각해 보면, SF의 본질이 바로 '미래 창조' 아닌가요?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래 창조'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정작 미래를 창조하는 장르인 SF는 기를 못 펴는 이유는 뭘까요?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SF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핍니다.

한국 SF의 산증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와 외국의 좋은 SF를 소개하고 또 직접 좋은 SF를 창작하는 김창규 작가가 가이드로 나섰습니다. 과학자를 대표해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이 질문자로 나섰습니다. 수다 정리는 SF 팬을 자처하는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맡았습니다.


SF는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다

강양구 : 오늘의 주제는 '과학과 SF'입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약간 막막합니다만. (웃음)

이명현 : 이럴 때는 '이름'부터 따져보면 얘기가 풀리죠. (웃음) 방금 언급한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과학 소설'인데요. 그런데 정작 일반 독자에게 익숙한 용어는 '공상 과학 소설'입니다. SF 작가는 '과학 소설'을 선호하는 반면에, 여전히 대다수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얘기하는 분위기고요.

김창규 : 개인적으로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용어 자체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과학 소설' 앞에 붙는 '공상'이라는 말에는 SF를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는 것 같아요. 허황되고 심지어는 쓸 데 없는 소설이라는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요. 그래서 SF를 창작하거나 좋아하는 이들은 '공상'이라는 말을 떼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런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보통 사람들 심지어 출판사도 여전히 '공상 과학 소설'을 선호합니다. 심지어 SF 작가나 애독자의 바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만 한 출판사도 '공상 과학 소설'로 광고를 하더군요. 사정을 알아보니, SF를 '과학 소설'이라고 번역하면 사람들이 어려운 것, 생소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강양구 : 그런데 한편으로는 SF 작가 등이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공상'이 나쁜 건가요? (웃음)

김창규 : 제가 아까 SF 작가 입장에서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용어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다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머릿속에서 공상을 하지 않으면 SF를 쓸 수 없으니까요. (웃음) 하지만 SF를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며 폄하하는 분위기가 유쾌하진 않죠.

이명현 : 여기서 처음에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번역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박상준 : 사실 SF의 번역어를 둘러싼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낯 뜨거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1959년에 일본의 하야카와 출판사가 미국의 과학 소설 잡지 <더 매거진 오프 판타지 앤 사이언스 픽션(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과 제휴해 월간 잡지 <S-F 매거진(S-F マガジン)>을 창간합니다.

이때 잡지 표지에 "공상과학소설지(空想科学小説誌)"를 부제로 사용합니다. 당연히 '공상(空想)'은 미국 잡지 이름의 '판타지(Fantasy)'에 '과학'은 '사이언스(Science)'에 대응하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판타지 소설과 과학 소설을 아우르는 용어로 '공상 과학 소설'을 사용했는데, 그게 우리나라에서 들어오면서 과학 소설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죠.

강양구 : 만약 그 때 일본에서 '환상 과학 소설'이라고만 불렀어도 SF의 번역어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은 없었겠군요. (웃음)

박상준 : 맞아요. 일본어 판 중역 SF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공상 과학 소설'이 애초 일본과는 다른 맥락에서 SF를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진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북한과 중국이에요. 북한도 SF를 '과학 환상 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에서는 '과환 소설'이라고 부르고요. 중국의 가장 유명한 SF 잡지도 <과환세계>죠.

이명현 : 그렇다면 어떻게 용어를 정리하는 게 좋을까요?

박상준 : '과학 소설'로 번역하는 게 제일 간단합니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도 SF를 그냥 '사이언스 픽션' 혹은 'SF'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더구나 요즘엔 SF가 소설뿐만 아니라 SF 영화, SF 게임 이렇게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어서 상황이 더 복잡하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SF 소설은 그냥 'SF 소설' 그리고 SF 장르 전체는 'SF'라고 부르죠.

강양구 : SF의 번역어를 둘러싼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 출판 특히 SF 출판의 '어두운 과거'가 나오죠. 그런데 지금이야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SF가 꽤 많이 있지만, 불과 1980년~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SF는 대개 어린이 소설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SF 작품은 대개 일본어 중역본이나 축약본 형태로 어린이를 위한 전집류로 유통되었죠.

이 과정에서 방금 살펴본 것처럼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용어가 SF의 번역어로 굳어지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소설이라도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SF의 팬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아주 평범한 독자입니다만, 최근에 소개되는 중요한 작품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그 소설'이라는 걸 알고서 흥분할 때가 있습니다.

박상준 :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나온 어린이용 SF 전집을 거의 그대로 중역해서 한국에서 출판했던 것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SF의 대부분이었죠. 제목은 물론이고 심지어 표지, 삽화까지 일본 걸 그대로 따온 게 많다 보니,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낯 뜨거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방금 언급했듯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포함해서 30대 중반 이상의 세대는 다들 어릴 적에 한 번씩 그런 어린이용 SF 전집을 접하고 자랐을 거예요.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조악한 SF를 접한 이들 중에서 바로 지금 활동 중인 작가나 열성 독자들이 나왔다는 거예요.

김창규 : 저의 경우에는 그런 전집 말고도 <소년중앙> 같은 잡지를 통해서도 SF 단편을 많이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채울 만한 국내 콘텐츠가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실은 거겠지만, 당시 그런 잡지에는 외국의 단편 SF, 판타지 등이 많았어요. 또 드물긴 했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그린 SF 만화도 있었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SF뿐만 아니라 최신 과학 정보를 기사로 접할 수 있었던 매체도 그런 잡지였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의 과학 시간 말고는 과학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곳이 전무했거든요. 그러니 그런 잡지에 실린 SF와 기사는 거의 유일한 '정보의 원천'이었던 셈이죠.

박상준 : 그 때는 SF 자체도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의 기능도 했을 거예요. 여기 모인 이들보다는 윗세대가 좋아했던 만화가 중에 <라이파이>를 그린 김산호 화백이 있습니다. 1959~62년 사이에 나온 <라이파이>는 전형적인 SF 만화입니다, 그런데 그 만화를 보면 중간에 전면을 할애해서 <라이파이>에 등장하는 과학 설정과 배경 지식을 설명해요.

그러니까 당시에 <라이파이>는 단순한 SF 만화가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과학 지식을 접할 수 있는 드문 통로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SF가 교양 과학 지식의 창구 역할을 하는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본 만화 중에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열두 권으로 나온 <사일런트 뫼뵈우스>가 있어요.

그런데 이 <사일런트 뫼비우스>를 보면 '우주 엘리베이터'가 나와요.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소수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대다수 과학자도 우주 엘리베이터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그 만화를 본 독자들은 이미 1990년대 초에 비교적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겠죠.

SF는 '과학'이 아니다

이명현 : 기왕에 SF와 과학 얘기가 나왔으니 화제를 바꿔보죠. SF를 '과학'을 붙여서 '과학 소설'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뭔가요? 일반 '소설'과 뭐가 다른가요?

박상준 : SF는 산업혁명 이후에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그로 인해 나타난 여러 가지 새로운 상황을 스토리텔링에 녹여낸 새로운 소설 장르입니다. 그럼, 첫 SF는 뭘까요? 대개 룩셈부르크 태생의 미국인 휴고 건스백이 1911년 자신이 펴내는 전기공학 잡지에 실은 <랄프 124C 41+>를 첫 SF로 봅니다.

강양구 : 미국의 권위있는 SF 상인 '휴고 상'의 그 휴고군요.

박상준 : 맞아요. <랄프 124C 41+>는 1925년에 책으로도 나왔죠. 우리나라에는 <27세기 발명왕> 등 여러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죠. 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가벼운 로맨스 스릴러입니다. 건스백은 '사이언티픽션(scientifiction)'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아예 1926년에는 첫 SF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Amazing Stories)>도 창간합니다.

이명현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나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1865년), 허버트 조지 웰즈의 <타임머신>(1895년) 등도 있잖아요.

박상준 : 그런 소설이 애초 발표될 때 SF라는 자각은 없었죠. 베른의 소설은 모험 소설 장르로 창작이 되었죠.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자신의 외연을 넓혀서 장르를 만들어낸 경우고요. 건스백 이후에 주로 시간 때우기 용 소설로 읽히던 SF가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과학기술을 통해서 사회 더 나아가 인간을 탐구하는 식으로 진화합니다.

강양구 :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박상준 : 애초 SF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영감을 받은 소설 장르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처음에는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 활극이 많았어요. 이런 초기 SF의 상당수가 보통 '펄프 픽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시간 때우기 용 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죠. 전쟁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압도적인 힘과 또 그것이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봤죠. 이 과정에서 SF도 단순히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 그 안에 철학적 세계관이나 정치적 입장을 담을 수 있는 장르로 변모합니다.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되는 일화도 몇 개 있었죠. 그 중 하나만 소개하죠.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의 한 소설가가 SF를 발표해요. 그 당시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스가 한창 세를 불리고 있었던 때죠. 미국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컸고요. 그 때 그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게르만 민족의 시조를 죽이는 설정을 합니다.


당연히 그 소설의 논리 속에서는 현실에서 히틀러를 비롯한 게르만 민족이 일시에 사라지죠. 시간 여행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SF의 소재를 활용해서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 셈입니다. 이 일화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SF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소설 장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김창규 : 휴고 건스백 이후에 미국에서 SF 활극이 유행했을 때도 이미 유럽이나 제3세계에서는 SF를 통해서 인간과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시도가 있었어요. 단지 그 소설이 SF 장르라는 자각이 없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전후 미국에서 나타난 SF의 진화는 늦은 감이 있죠.

요즘의 SF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심지어 청소년용 SF에서도 계급 문제에 대한 고민은 필수적이에요. 그러니까 특정한 과학기술과 대응되는 사회의 여러 모습이 어떤지를 그럴듯하게 묘사하지 못하는 소설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SF에서 '과학'에만 방점을 찍으려는 시도는 촌스럽죠.

이명현 : '하드 SF' 장르가 있잖아요?

김창규 : 하드 SF는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거나 혹은 스토리텔링에서 특정 과학 지식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을 일컫는 말이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면, SF 소설 중에는 어려운 과학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그것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작품이 있습니다. (웃음) 바로 그런 소설이 하드 SF입니다.

그런데 하드 SF도 과학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과 관계된 이야기가 엉터리면 결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죠. 영어권에서는 하드 SF 작가 중에 현직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많은데요. 그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내놓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강양구 : 그런데 SF 작가나 혹은 열성 독자 중에서도 'SF가 좀 더 과학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물론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대체 '과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만…. (웃음) 대체로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SF가 현실의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과학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요.

그런데 비록 얕은 수준의 고민이긴 합니다만, 이런 견해를 접할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 게 사실입니다. 설사 이분들의 주장처럼 과학 지식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과학/비과학'이 나뉜다고 하더라도, 그 잣대를 SF에 들이대는 게 과연 정당한가, 이런 의문이 들거든요. SF는 '과학'이 아니라 '소설'인데요. (웃음)

더구나 그런 주장 속에는 지금의 과학을 마치 고정불변의 실체로 간주하는 고약한 편견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과학 지식이라고 떠받드는 것도 결국은 근대 과학 혁명 이후 수백 년간 축적해온 지극히 제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시한부의 과학 지식의 틀에 SF의 상상력을 집어넣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는 거죠.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당대의 시각으로는 얼토당토않았던 SF 속 과학기술이 채 100년도 안 되어 현실이 되는 상황 또 SF가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죠. SF의 상상력은 가능하면 극한까지 밀어붙이도록 하는 게 과학을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김창규 : SF가 현실의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읽고 쓰면 딱 좋을 법한 소재가 있어요. 바로 대전의 과학기술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과학자의 로맨스요. 과학자의 로맨스에 그들의 최신 과학 연구 내용을 적절히 녹여내면 되잖아요. (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소설은 SF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상준 : 흔히 일반인이 SF에 대해서 갖는 세 가지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어요.

'첫째, SF는 유치하다.' '둘째, SF는 어렵다.' '셋째, 과학기술의 최신 성과를 내용 속에 잘 담았거나 혹은 설정이 기존 과학 이론에 부합하는 것이 좋은 SF다.'

첫째 편견에서 SF를 구하려는 이들이 셋째 편견을 조장하고 그것이 둘째 편견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분명하게 말하는데, SF는 당대의 과학으로부터 구속을 받을 필요도 없고, 받아서도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SF 작가나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SF를 '쉽게 풀어 쓴 과학 교양' 정도로 격하시키는 거죠.

SF는 그 자체로 문학입니다. 상상력에 기반을 둔 스토리텔링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제한을 두는 건 옳지 않아요. 예를 들어볼까요. 가끔 할리우드 SF 영화를 놓고서 영화 속 설정이 과학 지식에 비춰 봤을 때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도 여럿 나와 있죠. (웃음)


그런 책의 목적이 SF 영화를 소재로 당대의 과학 지식을 독자에게 쉽게 전하려는 의도라면 오케이, 좋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영화 속 오류를 들이대면서 그 SF 영화를 평가한다면 그건 틀렸습니다. SF 영화는 그 자체의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지 혹은 관객에게 어떤 심미적, 도덕적 충격을 줬는지 등의 기준으로 평가해야죠.

좋은 예가 있습니다. 1956년에 당시 유명한 천문학자였던 리처드 울리가 영국 왕립 천문대 대장으로 취임하면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우주여행은 완전한 헛소리"라고 호언장담했어요. 그런데 바로 1년 뒤인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쐈죠. 그리고 1961년에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도 안 지난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남겼지요. 당대의 과학 지식에 갇힌 상상력이 얼마나 협소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펴냄) 등을 쓴 SF 거장 아서 클라크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클라크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매우 유명하고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가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대부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강양구 : 울리는 불행히도 이 클라크의 법칙을 증명하는 불운한 사나이가 되었네요.(웃음)

이명현 : 그렇다면, 과학 지식의 많고 적음이 SF의 본질이 아니라면 무엇이 SF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창규 : SF에 등장하는 과학은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얼토당토않은 것도 많잖아요. 일단 대다수 과학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어요. 그런데 SF에서 중요한 것은 거기서 등장하는 과학의 실현 가능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과학기술이 등장하는 SF 속의 세계가 얼마나 모순 없이 창조되었느냐는 거예요.

바로 이 점에서 과학자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학자는 특정한 과학 모형을 구상하고 검증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이 있으면 안 되죠. SF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창작한 세계의 여러 가지 요소-과학기술, 사회, 인간 등-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지 않으면, 그 소설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강양구 : 그런 맥락에서 과학은 과학 지식의 유/무가 아니죠. 일종의 합리성이야말로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만….

박상준 : 맞아요. 김창규 작가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작가는 SF 안에서 어떤 것이든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요. 다만 그 작품 안에서는 앞뒤 논리가 딱딱 맞아야죠. 그리고 그런 논리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대로 구현해냈는지에 따라서 독자로부터도 호응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그게 탄탄한 스토리의 기본 조건입니다.

강양구 : 그런 점에서 아까 언급한 두 번째 편견도 문제죠. SF는 어렵다는….

김창규 : 저는 이런 구분은 안 좋아하지만, 일반 문학 작가 중에도 SF 창작을 주저하는 이유를 과학 지식의 부재에서 찾더군요.

실제로 영미권에서 토론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과학 지식을 갖추면 SF를 쓸 수 있는가. SF 작가도 참여한 토론이었고요. 그 토론에서 결론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 견주면, 중학교 3학년 정도의 과학 지식이면 충분하다는 얘기였죠. 다른 말로 하자면 높은 수준의 과학 지식이 SF의 본질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명현 : 방금 중학교 3학년 정도의 과학 지식이라고 언급했지만, 그 얘기를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과학 용어를 읊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중학교 3학년 정도면 습득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 혹은 과학적 방법론 같은 게 정말로 중요하죠.

김창규 : 사실 SF 걸작 중에는 과학 용어가 하나도 안 나오는 것도 많습니다. (웃음)


과학이 SF를 낳았고, SF가 과학을 만들다

이명현 : SF와 과학의 공통점을 따질 때 '경이감(sense of wonder)'도 빼놓을 수 없겠죠. 새로운 발견에 따르는 경이로움을 빼놓고 나면 과학에 뭐가 남을까 싶습니다. SF는 어떤가요?

박상준 : 장르 소설 중에는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 미스터리, 웨스턴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중에서 SF가 다른 장르와 특히 구분되는 독특한 정서가 바로 방금 지적한 '경이감'입니다. 그런데 SF의 경이감은 과학자가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경이감과 한 편으로는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릅니다.

SF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것저것 제시하고, 그것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합니다. 독자는 그렇게 SF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보면서 경이감을 느끼죠. 반면에 과학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경이감에 다가가죠. 그런데 종종 이 둘이 연결될 때가 있어요. SF 작가가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창조한 것을 과학자가 현실로 만드는 겁니다.

이명현 : 실제로 SF에서 받은 영감이 과학 탐구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죠?

박상준 : 굉장히 많았죠. 얼른 생각나는 게 바로 <스타트렉>입니다. 1966년에 <스타트렉>이 미국에서 처음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될 때, 가장 유명한 설정이 순간 이동이잖아요. 유명한 대사도 있죠. "빔 미 업!(Beam me up!)" 하면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로 순간 이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뒷얘기가 재밌어요. 엔터프라이즈호는 엄청나게 크잖아요. 당시의 과학 지식으로도 엔터프라이즈호가 직접 행성 표면에 착륙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었던 거예요. 그럼, 모선과 행성 사이를 이동할 작은 착륙선이 있어야죠. 그런데 착륙선 세트를 만들기에는 제작비가 모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뿅 하고 나타났다 뿅 하고 사라지는 억지 설정을 넣은 거죠. 그런데 1997년에 비록 입자 수준이긴 하지만 텔레포테이션 그러니까 순간 이동에 성공했죠.


강양구 : 1997년에 안톤 차일링거가 처음 성공한 다음에, 2007년에는 그 거리가 144킬로미터로 멀어졌죠. (☞관련 기사 : 국군의 미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게 맡겨!)

박상준 : 그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한 과학자가 <스타트렉>을 언급하더군요. <스타트렉>의 순간 이동을 보면서 '저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게 결국 이런 연구로 이어진 거라고요. 이렇게 SF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는 부지기수입니다.

최고의 로봇 과학기술자에게 주는 '조지프 엥겔버거 상'이 있습니다. 1956년에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로봇 회사 '유니메이션'을 창업한 조지프 엥겔버거의 이름을 딴 상이죠. 이 유니메이션은 산업용 로봇을 처음으로 양산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엥걸버거가 산업용 로봇 회사를 창업한 계기가 바로 대학생 때 읽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연작이었습니다.

지금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그런데 과연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없었더라도 일본이 저렇게 휴머노이드 로봇의 강국이 되었을까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데이터가 하나 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2001년)가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었대요.

강양구 : <A.I.>의 주인공 소년 로봇의 이미지가 아톰의 이미지와 겹치네요.

박상준 : 맞습니다. 지금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가장 극적인 예는 '사이버스페이스'죠. 윌리엄 깁슨이 1984년에 쓴 <뉴로맨서(Neuromancer)>(김창규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의 세계를 가리키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어요. 그런데 정작 깁슨은 당시만 하더라도 퍼스널 컴퓨터도 접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컴맹'이었답니다. (웃음)

이 <뉴로맨서>의 첫 번째 한국어 번역판에서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옮겨놓은 줄 아세요? '전뇌공간'이에요. (웃음) '전기 두뇌 공간'을 가리키는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한 겁니다. 그러다 나중엔 '사이버스페이스'가 번역어로 그대로 굳었죠. 아, 닐 스티븐슨의 <스노크래시>(남명성 옮김, 대교베텔스만 펴냄)도 빠뜨릴 수 없네요.

김창규 : <스노크래시>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영어 소설 100편에 들어갈 정도로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스노크래시>에서 '아바타'가 처음 등장했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딱 그대로입니다. 아바타가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의 제작자가 아예 <스노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을 정도죠.

참,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1997년)의 원작이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9년에 발표한 <스타십 트루퍼스>입니다. 영화에서도 재현되지만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신체 기능을 보호, 강화하는 장갑복이 등장해요. 군인들이 장갑복을 입고서 우주 벌레와 싸우죠. 그런데 그 뒤로 미국 군대에서 장갑복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개발 중이고요.

지금은 그런 장갑복이 대중에게 전혀 낯설지 않죠. 아이언맨이 있잖아요. (웃음)

이명현 : 생각해 보면, 과학자가 SF를 통해서 영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과학도 상상(想像)이 먼저죠. 가설을 세우고, 모형을 만드는 일은 항상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인 그 과학자가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과학사의 많은 연구는 특정 과학자의 연구가 그가 속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걸 보여주죠. 그런 점에서 당대의 집합적 상상력의 재현인 SF가 과학자에게 중요한 자극제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아마도 SF 소설, 영화, 드라마가 과학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클 거예요. 당사자가 그것을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할 뿐이죠.



왜 과학자의 SF는 재미가 없는가?

강양구 : 박상준 선생님, 김창규 작가 같은 경우는 과학자와 소통할 기회가 있잖아요. 어떻습니까? 과학자와 직접 소통하다 보면 SF 작가와 과학자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까?


김창규 : 제작년(2011년)에 초광속 입자가 발견이 되었다고 한창 떠들썩했잖아요. 그 때 포항에서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만화가들과 함께 들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한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청중의 관심사는 딱 하나였어요. '그래서 시간여행은 가능한가요?' (웃음) 그런데 당시 강연자로 나선 과학자의 반응은 단호하더군요.

강양구 : 설사 진짜로 뉴트리노(중성미자)가 초광속 입자로 확인되더라도,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김창규 : 맞습니다. 실망했죠. (웃음) 그 때 그 과학자가 이런 얘기도 했어요.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물리 이론이 나오는 SF는 못 보겠어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과학자와 SF 작가 혹은 SF 독자 사이의 거리감을 확실히 느꼈죠. SF 작가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말이 되게끔 이야기를 만듭니다. 독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에 열광하죠.

반면에 과학자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마주치면, '여기까지' 하고 선을 긋는 것 같아요. 시간여행에 대한 그 과학자의 태도에서도 그런 걸 느꼈죠.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를 좀 더 할까요. 심지어 상당수 과학자는 SF에 대한 아까 얘기했던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도 많습니다.

강양구 : SF는 과학이어야 한다?

김창규 : 맞아요. 그러니까 SF에 등장하는 설정을 두고서 이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는 정도는 일상다반사고요. 가끔 보면 과학자가 직접 SF 창작을 시도하고, 출판도 하잖아요. 그런데 안타까운 얘기지만, SF를 좀 많이 읽어본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재미없는 게 대부분이에요.

이명현 : 과학자가 쓴 SF를 저도 눈여겨보는데요. 동의합니다. (웃음) 재미가 없어요. 결국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자기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을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하거든요. 그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왜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릴까요? 그냥 쉽게 쓰면 되잖아요. (웃음)

사실 저만 해도 그래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습작도 하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했어요. 그래서 천문학자가 되고 나서는 SF를 써볼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아까 김창규 작가가 지적했듯이 과학자로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 같은 게 강박처럼 있어요. 오히려 제 전공 분야가 아닌 생물학 같은 곳에서는 상상의 나래가 펴지는데요.(웃음)

박상준 : 가끔 SF 창작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을 때가 있어요. 일단 당선작을 고른 다음에 나중에 탈락된 작품과 응모자 프로필을 살피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특정 분야에서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자가 출품한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작품의 수준이라는 게 참…. 스토리텔링을 평가해 보면 정말로 함량미달인 거죠. 이런 과학자는 SF 소설을 자기 전문 분야의 설명서를 쓰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창규 : 기왕에 과학자 얘기를 하는 자리니 하나만 더 해보죠. (웃음) 과학자로서 특정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분이, 의외로 다른 분야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단편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일동 웃음) 다들 웃으시니 무슨 말인 줄 바로 아시는 것 같은데요.

과학자와 SF 작가 사이의 공통점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런 일을 겪을 대마다 참으로 난감하죠. 과학자 중에서는 자기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분들이 있거든요. 또 그런 분들이 자기 억지 주장을 SF로 쓰겠다고 나서고. (웃음)


박상준 : 물론 과학적 지식이 탄탄한 과학자가 SF 창작을 시도하는 것 자체는 적극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SF 창작을 하려면 일단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일반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에 버금가는 수련 과정이 필요해요. 가끔 'SF 창작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미국의 SF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SF의 90퍼센트는 쓰레기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죠.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쓰레기다." 그러니까 다른 장르 소설, 또 일반 문학 작품 중에서도 아주 수준이 낮은 것부터 완성도가 높은 것까지 스펙트럼이 있듯이 SF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시간 때우기 용 SF 활극도 잘 쓴 것이라면 그것만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경우도 그 나름의 장인이죠. 아티스트라고 하기에는 함량 미달이지만, 분명히 웰 메이드 라이터예요. 그런데 이런 미덕도 결국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에서 나옵니다.

김창규 : SF 독자들 사이에서는 크라이튼은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웃음)

박상준 : 그러니 과학자든 일반인이든 SF 창작을 시도할 경우에는 일단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창규 : SF 창작 수업을 하다보면 이런 얘기하는 이들이 많아요. "SF는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를 보는 거잖아요?" 단언컨대, 아닙니다.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기승전결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쓴 SF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요. 심지어 SF 작가 중에도 'SF 작가'와 그냥 '작가'를 다르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요. 아닙니다.

이명현 : 작가 중에 SF 작가가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작가가 되지 못하면, 절대로 SF 작가도 될 수 없죠.

강양구 : 저도 과학자가 쓴 SF는 일단 미뤄두죠. 세상에 재미있는 SF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습작에 시간을 낭비하겠어요. (웃음) 그래도 그나마 인상적인 과학자가 쓴 SF가 없나요?

이명현 : 일단 국내에는 없고요.

박상준 : 칼 세이건의 <콘텍트>(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일단은 성공작이라고 봅니다. 1985년에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국내에서도 번역이 되었어요. 뭔가 느낌은 기존의 SF와 달랐지만, 독특한 감동이 있었어요. 그 정도면 스토리텔링 자체도 상당히 완성도가 있었고요. 그리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1997년)도 좋았고요.

강양구 :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일 좋아하는 SF 영화로 꼽곤 합니다. (웃음)

박상준 : 프레드 호일도 빼놓을 수 없죠. 빅뱅 이론에 맞서는 '정상 상태 우주론(steady-state cosmology)'의 대가였던 호일은 SF도 여러 편 썼습니다. 그런데 호일의 SF는 최고의 과학자가 쓴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성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한낙원, 한국 SF의 과거 혹은 미래

강양구 : 이제 화제를 좀 바꿔볼까요? 최근에 SF 독자 또 문학 독자 사이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죠.

이명현 : <한낙원 과학 소설 선집>(김이구 옮김, 현대문학 펴냄)이 나왔어요.

박상준 : 현대문학에서 '한국 문학의 재발견 작고 문인 선집'을 펴내는데 그 선집의 마지막 권으로 <한낙원 과학 소설 선집>을 펴냈어요. 이 선집에는 한국 현대 문학사에 자취를 남긴 문인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과학 소설 작가로 한낙원(1924~2007년) 작가가 들어갔죠. 또 그의 대표작 <금성 탐험대>(1957년)를 창비에서 나오죠.

이 자리에 있는 세 분 중에서 한낙원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나요?

이명현 : 저는 한낙원 작가가 쓴 작품인줄은 몰랐지만, 어렸을 때 <금성 탐험대>는 읽은 기억이 납니다.

박상준 : 저도 <금성 탐험대>, <우주 도시>(1972년) 등을 읽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1990년대 이후에 SF 출판 기획 번역 이런 일을 하면서 사실은 한낙원 작가를 그다지 주목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 그 한 작가는 일관되게 청소년 어린이 대상의 작품만 쭉 집필을 했거든요. 저는 일단 성인용 SF에만 관심을 가졌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한국 SF의 역사를 쭉 살피면서야, 한낙원 작가가 청소년 대상의 작품을 주로 쓰긴 했지만 한국 SF 문학사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창작의 길을 쭉 걸어온 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그래서 2007년에는 한 작가를 뵙고서 구술 녹취를 하려고 연락을 했는데 바로 직전에 작고하셨더군요.

강양구 : 한낙원 작가는 1950년대부터 집필 활동을 했지요. 더 얘기를 하기 전에 한국 SF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어떨까요?


박상준 : 한국어로 된 SF가 처음 나온 것은 1907년입니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가 당시 도쿄에 있는 유학생이 내던 잡지인 <태극학보>에 "해저 여행 기담"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다 말았어요. 그게 제가 확인한 가장 오래된 한글 SF입니다. 이즈음에 번역 또는 번안 SF 작품이 나왔어요.

이해조의 <철세계>(1908년)는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김석희 옮김, 열림원 펴냄)을 번안한 거예요. 김교제의 <비행선>(1912년)은 최근까지 원작이 밝혀지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프레드릭 데이가 1907년 미국의 <뉴 닉 카터 위클리(New Nick Carter Weekly)>에 연재한 주인공 '닉 카터'의 SF 활극을 번안한 사실이 확인되었어요.

강양구 : 불과 5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의 펄프 픽션이 한국에 번안이 되었네요.

박상준 : 아마도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서 들어온 거겠죠. 그 다음에 한국어로 창작된 최초의 과학 소설이 무엇인지를 놓고서 갑론을박 중인데요. 현재는 김동인이 1929년 12월 <신소설>에 발표한 단편 소설 'K 박사의 연구'를 최초의 SF로 보고 있어요. 저도 어렸을 때 <김동인 단편집> 이런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소설인데요.

K 박사가 인분으로 대체 식량을 만들어요. 사람들이 원료를 알고 기겁을 하자 실망해서 낙향합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개가 똥을 먹는 것을 보고서 '에이 더럽다' 하는데, 나중에 집에 가니 보신탕이 나오죠. 아까 똥을 먹던 그 개로 만든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K 박사가 "더럽다" 이러면서 안 먹는 거죠. 인분으로 대체 식량을 개발했던 과학자가…. (웃음)

재미있죠? 대단한 과학기술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으로는 SF가 맞습니다. (웃음) 그러고 나서는 1930~40년대에 창작으로 간주되는 작품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낙원 작가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관되게 한국 과학 소설을 창작한 거죠. 그러니 한국의 SF 역사에 남긴 한낙원 작가의 족적이 큽니다.

이명현 : <금성 탐험대>도 설정이 아주 흥미롭잖아요.

박상준 : 이 소설은 1957년에 발표되었어요. 그런데 주인공 남자 이름이 '고진'이에요. 그리고 이 주인공이 소련 우주선을 탑니다. 예언적이죠? (웃음) 나중에 이소연 씨가 우주선에 최종 탑승하긴 했지만, 고산 씨가 러시아에 가서 우주선을 탈 준비를 했잖아요. 1957년에 어떻게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합니다.

그 때는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년 밖에 안 된 엄혹한 냉전 시기였잖아요. 적성국에 대해서 조금만 호의적인 내용이 포함되면 곧바로 출판 금지 조치가 내려지거나 혹은 작가나 출판사 관계자가 끌려가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그 때 한낙원 작가는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소련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고 또 미국과 소련이 협력하는 모습을 그린 거죠.

강양구 : SF라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박상준 : 그런 측면이 있어요. 사실 우리가 SF의 완성도를 평가할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이 미래에 전개될 사회의 모습의 다양한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낙원 작가의 작품은 탁월한 면이 있어요. 이미 냉전이 한창일 때 냉전의 종언을 예고한 거잖아요. 옛 소련은 없어졌습니다만, 미국과 러시아는 지금 협력 관계니까요.

비슷하게 언급할 수 있는 예가 아까도 나왔던 <스타트렉>입니다. 1966년에 이 드라마가 나왔을 때 미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는 아직도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심하던 때였죠. 그런데 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시청자도 '미래에는 저럴 수도 있겠다' 싶은 거죠.

이건 SF의 또 다른 역할을 보여주는 거죠. 이상형으로서 어떤 사회의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충격을 줄 수 있죠. 한낙원 작가의 <금성 탐험대>는 바로 그런 SF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 한 예입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은 지금 SF를 창작하는 작가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명현 : 대표적으로 어떤 작가가 있을까요?

박상준 : 배명훈 작가가 얼른 떠오르네요. 그의 <타워>(오멜라스 펴냄)는 전 시민이 초고층 빌딩에 사는 도시 국가 '빈스토크'에서 벌어지는 여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요. 당연히 <타워>는 한국 사회의 권력 관계를 풍자하는 소설이죠. 이처럼 요즘 SF 작가들은 당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SF의 형식을 빌려서 굉장히 세게 발언하고 있습니다.


SF가 바로 '미래 창조'다

강양구 :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SF가 인기가 없을까요? 일본만 하더라도 형편이 낫잖아요?

박상준 : 일본의 SF가 성장한 계기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오는 SF 헌 책들이 유통되면서부터예요. 그런데 이런 환경 자체는 우리도 다르지 않죠. 실제로 국내에서도 1960~70년대에 일부 평론가나 작가들이 '한국 SF가 황무지나 다름없다'고 안타까워하는 글을 쓰곤 했죠.

그런데 일본은 그 때 이후로 SF가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죠. 일례로 활동 중인 SF 작가 수가 20명도 안 될 테니까요. (웃음) 이유를 따져 보면, 아무래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사 독재 등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억압적인 지배에 저항하는 문화 운동이 전개가 되었죠. 그 와중에서 이른바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참여 문학이 대세를 이뤘고요. 그 과정에서 작가든 독자든 암묵적으로 이런 공감대가 있었던 듯해요. '현실이 이렇게 엄혹한데 SF가 가당키나 하냐.'

그러다 본격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된 1990년대부터는 활자 매체보다는 영상 매체가 대중을 압도하게 되었죠. 이제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SF를 접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책으로 SF를 읽는 단계를 건너 뛴 거죠. 물론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처럼 예외가 있습니다만….

김창규 : 그들의 작품은 대중들이 SF로 인식을 하지 않죠. (웃음)

박상준 :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은 SF 작가도 1990년대 이전과 비교하면 늘었고, SF 출간 종수도 늘어요. 하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커지지 않고 있죠. 문외한이라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재즈 음악도 그렇대요. 재즈 뮤지션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음반 판매는 늘지 않는다죠. (웃음)

이명현 : 그럼, 얘기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한국 SF가 좀 더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발전하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강양구 : 답이 없는 질문 아닐까요? 그 답을 알면 지금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겠죠. (웃음)

박상준 : 네, 그렇죠. (웃음) 일단 오늘 얘기를 나누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만, SF를 쓰고 싶은 과학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좋겠어요.

이명현 :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방학 때마다 이공계 대학생을 위한 글쓰기 학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호응이 좋은 데요. 앞으로 '과학자를 위한 글쓰기 학교' 혹은 '과학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학교' 등도 시작하면 좋겠어요. 그런 프로그램이 한국 SF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박상준 :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내는 웹진 <크로스로드>는 지금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료를 주면서 SF 발표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또 과학자와 SF 작가를 비롯한 문화 예술인의 교류 프로그램 등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죠.

이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의 노력이 한국 과학 문화 발전에 정말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결국 과학자의 연구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확신해요.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더욱더 많이 추진해주길 바랍니다. (웃음)

강양구 : 사실 과학창의재단이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대통령이 '미래 창조' '미래 창조' 하는데, 사실 미래를 창조하는 장르가 바로 SF인데…. (웃음)

이명현 : 정말로 미래 창조가 SF네. (웃음)

김창규 : SF 작가가 할 일은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일이죠. 그나마 고무적인 일은 기존 작가의 SF 장르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거예요. 한 원로 동화 작가는 제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이런 얘기도 했대요. '앞으로 동화가 살아남는 길은 SF뿐이다.' (웃음)

강양구 : 요즘 어린이 창작 동화나 청소년 창작 동화를 보면 부쩍 SF 장르가 늘었죠.

김창규 : 네, 동화 작가들이 SF 창작 강의도 많이 들으러 옵니다.

강양구 : 한국 SF의 존재감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없는 탓도 있는 것 같아요. 미국도 애초 SF가 존재감을 가지게 된 데는 'SF 활극' 같은 펄프 픽션 때문이었죠. 그렇게 SF가 많아지면 그 중에서 좋은 작품도 등장하고 또 SF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작품을 주목하게 되겠죠.

박상준 : 맞아요. 판타지의 이영도나 호러 스릴러의 이우혁 같은 스타 작가가 SF에는 없죠.

김창규 : 이건 자기반성입니다만, 사실 SF 작가 사이에서도 '엄숙주의'가 있어요. 워낙에 좋은 SF를 많이 접한 데다, 또 그 숫자도 적다 보니 '좋은 SF'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이런 엄숙주의는 버려야 합니다. SF 작가들이 좀 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있는 소설을 써야죠.

박상준 :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SF의 장르의 정체성에 변화가 있습니다. SF, 판타지, 일반 문학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어요. 이런 장르를 '슬립스트림(slip stream)'이라고 합니다. 슬립스트림은 원래 고속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뒤에서 기류가 흐트러지는 걸 말하는데, 장르의 뒤섞임을 이것에 비유한 거죠.

이런 SF 정체성의 변화는 불가피하죠. SF가 자리를 잡은 20세기 때와 과학기술 변화의 속도를 비교할 수조차 없어요. 지금은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과학기술이 삶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죠. 이런 새로운 독자에게 즐겁게 읽힐 수 있는 SF는 20세기의 SF와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강양구 :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과학기술 시대잖아요. 지금 사회 현상 중에서 과학기술과 관계되지 않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죠. 그러니 지금은 문학이 곧 SF가 되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SF가 문학의 하위 장르였지만, 지금은 당대의 문제를 다루는 문학과 SF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니까요.

박상준 : 맞아요. 옛날에는 SF였던 작품이 지금은 그냥 일반 문학이 된 것이 많아요. 50년 전에 휴대전화가 중요한 모티프가 된 소설은 분명히 SF 취급을 받았죠. 휴대전화 때문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관계의 변화가 야기되니까요. 하지만 지금 휴대전화가 소설 속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고 해서 그걸 SF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40년 전에 이런 예언을 했어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SF 자체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한국 SF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면서도 또 대중의 사랑을 받도록 여러 시도를 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이명현 : 그런 어려운 시기야말로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어요.

강양구 : 진짜 미래 창조 문학을 하는 거죠. SF가. (웃음) 여기서 마무리하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