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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예수와 다윈의 동행」

Editor! 2013. 8. 16. 10:40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예수와 다윈의 동행


* 홈페이지에서는 마우스를 위로 가져가면 말풍선이 표시됩니다만, 블로그에서는 텍스트로 이렇게 다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네요. ^^


동행 1 우리는 다윈을 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다윈의 진화론과 신앙이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위협하는 공포의 괴물이나 진배없습니다. 과연 진화론이 공포의 대상일까요? 혹시 그것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면 우리가 그것을 한번도 정면으로 직시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행 2 조화의 그리스도 상이 꾸는 꿈

그리스도교 쪽이 이렇게 인식론적 차원에서 종교 담론과 과학 담론의 균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통일된 진리 체계를 추구해 왔던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궤적의 관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과 체계에 익숙해져서, 그래서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리스도교의 관성이 여전히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행 3 종교와 과학의 전쟁터에서 들리는 소문들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충분히 시선을 끌 만한 화젯거리입니다. 인류 문화의 두 거인, 종교와 과학이 치고 박고 싸운다니 얼마나 흥미진진하겠습니까. 구경거리 중에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최고라는데, 종교와 과학의 전쟁이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문제는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으로 장식된 언론의 종교와 과학의 갈등 관련 보도는 포장지만 화려한 실속 없는 상품처럼 제대로 된 알맹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나 평가, 깊이 있는 분석을 언론이나 대중 매체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일까요?


동행 4 최초의 근대인, 갈릴레오의 길

갈릴레오는 ‘성서’와 ‘자연’ 모두 성스러운 말씀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전자는 성령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고, 후자는 신의 명령을 가장 충실하게 집행한 결과물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신의 말씀’은 성서 속에서 읽힐 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도 읽힌다고 주장합니다.


동행 5 세 얼굴의 뉴턴

내가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나라는 존재는 눈앞에 펼쳐진 진리의 바닷가에서 놀면서 이따금 좀 더 매끄러운 자갈이나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내면 즐거워하는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작 뉴턴


동행 6 종교와 과학을 통일하는 길

뉴턴은 이렇게 종교와 과학과 연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하나의 인식론적 담론으로 아우르면서, 세계와 역사에 대한 비밀을 해명하고 세계를 통치하는 신에 대한 진리를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뉴턴은 최초의 근대 과학자이며 동시에 최후의 마술사라고 할 수 있는 야누스의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뉴턴 자신은 어쩌면 아무런 정체성 혼란 없이 스스로를 신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마지막 남은 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동행 7 인간과 종교에 관한 ‘새로운’ 설명

뉴턴의 후예였던 흄은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뉴턴주의 자연 신학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 나타난 설계 논증 비판을 통해 오히려 뉴턴의 자연 철학이 가지고 있던 종교성을 탈색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행 8 신을 위한 생물학

자연 신학의 발전은 17세기 후반 근대 자연 과학의 발전과 궤적을 함께합니다. 자연 신학은 근대 자연 과학처럼 자연적 증거에 대한 경험적인 접근 방식과,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모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험주의나 기계론 그 어느 것도 종교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페일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동행 9 』종의 기원』의 사실과 소문

『종의 기원』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의 하나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종의 기원』은 출판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히는 살아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진화 생물학의 제단 위에 놓여 있는 경전입니다. 도킨스나 굴드 같은 현대 진화론자들도 여전히 떠받드는 진화 생물학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동행 10 페일리와 다윈의 동행과 이별

그렇다면 다윈 이후의 시대에 신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이제 신의 흔적이나 신 그 자체를 찾아볼 수 있는 자리가 없어져 버리고 만 것일까요? 도킨스의 주장처럼 다윈으로 인해 완전한 무신론이 가능해져서 그리스도교의 신 담론을 전개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걸까요? 종교의 시대는 가고 진정한 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요? 이렇게 예단하고 선언하기 전에 ‘진화론’에 대해 좀 더 꼼꼼히 짚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행 11 다윈 진화론의 다섯 기둥

사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야말로 그의 이론 가운데 가장 혁신적이고 대담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그 어떤 생물학자나 철학자도 점진적 자연 선택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결국 자연 신학의 목적론적 설명을 완전히 대체해 버렸습니다.


동행 12 여보, 이 이론이 사실이 아니기를 기도해요

저는 당신의 책을 읽으며 마음이 기쁘기보다는 고통스러웠습니다. 목적인인 물질과 도덕을 연결시키는 것이 생명 과학의 명예와 영광일진데, 당신은 그런 연결 고리를 무시했습니다. -애덤 세지윅, 『종의 기원』을 읽고


동행 13 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에서 시작된 생물 진화론이 이제는 물리 화학, 생화학, 세포학, 유전학, 생리학, 생태학까지 포함하는 통합 생물학으로 나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은 더 나아가 통합 생물학을 기반으로 인문학과 사회 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의 통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동행 14 종교 역시 자연 현상?!

종교가 생물 진화의 산물이라니!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도 결국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말이냐? 이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전통적인 종교 이해와 종교 자체에 엄청난 도전입니다. 그렇지만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일단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지요.


동행 15 창조 과학, 성서에 과학을 맞추다

저는 창조 과학 운동이, 과학 혁명과 성서 역사 비평학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서 그리스도교가 선택한 보수적 대안 중의 하나이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자연 과학의 도전 앞에서 신앙을 방어하고자 한 그 순수한 신앙적 태도를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적절한 최선의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습니다.


동행 16 지적 설계론이라는 쐐기

그렇다면 이제 지적 설계론의 과학적 측면은 실제로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지적 설계론 운동이 미국 사회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주류 과학계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과학 단체인 미국 과학 진흥 협회(AAAS) 회장은 “지적 설계론에는 과학이 없으며, 과학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조차 없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동행 17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교차로

진화론적 유신론에 근거한 신학은 진화를 그리스도교 신학이 변증해야 하는 도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신 이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것은 진화 과학이 우주와 생명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틀이 된 시대에 이를 성찰하고 반영하려는 신앙적이며 신학적 대응인 것입니다.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은 배제해야 할 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벗입니다. 그리고 진화론적 유신론은 길벗에 대한 작은 인사인 것입니다.


동행 18 종교와 과학, 생명 세계를 동행하는 벗

결국 생명 세계를 걸어가야 하는 존재는 지도도 가이드도 아니고, 나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경험한 생명 세계의 지도를 새로운 정보를 담아 스스로 그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종교와 과학이 어우러진 지도를 그려 봅시다.

그동안의 동행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