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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이강영 교수의 ‘베스트 앨범’ 『불멸의 원자』를 읽고

Editor! 2016. 8. 17. 15:38

이강영 교수의 ‘베스트 앨범’ 

『불멸의 원자』를 읽고


서울백북스라는 독서 모임이 있습니다. “학습 독서, 균형 독서, 평생 학습, 친목의 가치를 추구하는” 독서 모임, ‘학습 독서 공동체 100BOOKS’의 서울 지역 모임입니다. (주)사이언스북스가 서울백북스와 함께 이강영 경상대 교수의 신작 『불멸의 원자』를 함께 읽는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8월 19일 오후 7시 30분 템플스테이 3층 교육관에서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라며 서울백북스의 간사이자 열혈 과학책 마니아인 박용태 선생님의 리뷰를 싣습니다. 이런 과학책 팬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원자와 우주, 리얼리티(실재)의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누가 뭐래도 원자의 세계 탐구는 어렵지만 재미있다. 더욱이 원자가 발견되고 100여 년의 연구를 통해 물리학자들은 수많은 이론과 실험, 시행착오와 검증을 거쳐 원자와 원자의 내부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쓰고, 하버드 대학교의 이론 물리학자 리사 랜들의 『이것이 힉스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번역하며 원자와 그것보다 작은 기본 입자를 쫓는 물리학자들의 세계를 소개한 이강영 경상대 교수의 책들을 읽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서 이 교수의 책을 함께 읽고, 저자 본인을 몇 번 모셔 강연도 들어 왔다. 그러던 차에 이강영 교수의 신작 『불멸의 원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내용으로 쓰여졌을까, 궁금해 급히 사서 읽어 내려갔다.

한마디로 하자면 이강영 교수의 ‘베스트 앨범’이다. 이 교수가 지금까지 써 온 책들의 핵심 내용을, 아니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압축 정리했다고나 할까? 원자와 입자 전쟁, 그리고 물리학자들의 분투와 이론을 낳은 시대 상황이라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입자들에 얽힌 물리학의 역사와 물리학을 낳은 물리학자들의 인간 드라마가 교차 편집되며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은 모두 4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학사는 불멸의 원자와 필멸의 물리학자가 뒤엉킨 인간 드라마

1부 「불멸의 원자」는 원자와 원자의 내부 세계에 관한 소개이다. 아무리 원자가 불멸한다 해도 원자는 근원적인 입자가 아니라 내부 세계로 들어가면 쿼크와 전자의 세계도 있다는 것, 원자와 전자, 원자핵의 보이지 않는 세계 연구를 통해서 본다는 개념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원자의 내부 세계와 그 탐색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본다’는 것과 입자의 관계를 물리학적으로 고찰한 부분이다. 이것은 저자가 전작인 『보이지 않는 세계』 때부터 집중적으로 다루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강영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자와 전자기장을 따로 따로 보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전자기장 없는 ‘전자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진짜 전자란 맨물리량과 양자 역학적 효과를 모두 합친, 그러니까 ‘재규격화된’ 전자이며,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전자다. 이것이 양자 전기 역학(QED)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일이다. 본문에서

그렇다. 우리는 입자 그 자체를 볼 수 없다. 양자 역학적으로 “재규격화된” 입자만을 볼 수 있다. 양자 역학 같은 과학 이론의 도움이 없으면 입자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자’의 개념이 성립되기까지의 파인만을 비롯한 천재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도 같이 소개하면서 저자는 전자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원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양자 역학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양자 역학을 통해서 보는 원자 속 풍경이란 원자핵을 중심으로 가벼운 전자가 마치 구름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 지식으로 우리는 원자와 물질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를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트랜지스터, 레이저,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모두 양자론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본문에서

양자 역학 같은 기초 과학이 현대 문명에 어떻게 공헌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케이스다. 이강영 교수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쿼크라는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와 쿼크의 세계를 기술하는 양자 색역학(QCD) 이론의 성립 과정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쿼크는 원자처럼 물리적인 실재인가? 아니면 추상적인 대칭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인가? 쿼크를 본다는 것과 원자를 본다는 것은 같은 것일까? 비전문가의 머릿속에 온갖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도 이강영 교수 같은 전문가가 저 앞에서 등불을 들고 서 있으니 안심이 된다. 그 등불이란, 바로 이강영 교수의 책들이다.  

양자 역학에서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루는 대상의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가리킨다. 아무것도 없다 해도 이 상태는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다.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장의 값이 0이라고 하더라도 장의 양자 역학적 요동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며, 이 양자 요동을 통해 소위 ‘가상의’ 입자-반입자 쌍이 만들어졌다가 소멸하는 일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공은 사실 텅 빈 공간이나 공허가 아니라, 입자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본문에서

진공과 입자의 관계에 대한 어떤 설명보다 명쾌한 설명이다. 데모크리토스는 2500년 전 세상만물은 진공과 입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얘기했다. 그가 얘기했던 진공과 원자의 관계는 어느새 양자 요동으로 입자와 반입자가 쌍생성됐다고 쌍소멸되는 “역동적인” 것으로 진화했다. 내 머릿속에서도 물리학 지식이 다른 지식들과 만나 충돌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는다. 지적 흥분으로 충만한 책이다. 




진정한 천재와 망가진 천재 사이, 물리학자는 어디로 가는가

2부 「쉬운 듯 우아하게」는 필멸하는 물리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다른 물리학 책을 포함해서 저자의 물리학 책에는 물리학 이론과 함께 그 이론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물리학자들의 연구 과정이 다른 어느 책보다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어 편하게 읽힌다. 이 챕터의 제목은 페르미에게서 따왔다. 세상의 천재들만 모인 물리학자 집단에서도 돋보였던 천재, 이론에서 실험까지 모든 면에서 쉬운 듯 우아하게 일을 처리했던 페르미의 삶과 업적을 이강영 교수는 이 한마디에 응축해 냈다.


엔리코 페르미 1940년대 후반 모습. (출처: 『불멸의 원자』)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을 카스틸리오네는 “의도적인 행동이란 티가 나지 않게 해서, 말과 행위 모두를 전혀 수고하지 않고 하는 것처럼, 미처 생각지도 않고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즉 어려운 일을 전혀 힘을 안 들이는 것처럼 쉽게 하면서도 세심하고 뛰어나게 해 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스프레차투라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아마도 큰소리 치는 것, 대놓고 잘난 척하는 것이겠다. 물리학자 중에서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역시 이탈리아 사람인 엔리코 페르미일 것이다. 본문에서

원래 이탈리아 어에는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강영 교수가 만든 번역어일 “쉬운 듯 우아하게”가 더 입에 붙는다. 번역이라면 정말 우아한 번역이다. 이번 『불멸의 원자』에는 페르미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은 엔리코 페르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강영 교수의 페르소나도 페르미일지 모른다.

물론 이 책에는 페르미 말고도, 폰 노이만을 비롯한 천재 과학자들의 연구와 인간적인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고, 연구와 교육의 모범을 제시한 에렌페스트의 불운한 말년, 과학자로서의 리더십의 모범을 보인 이시도어 라비 등 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비록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자기 충족적인 물리학 연구를 통해 다음 연구의 디딤돌이 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들의 모습도 소개하고 있다. 

입자 물리학자의 책이라 입자 물리학자나 핵물리학자들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고체 물리학자 얘기도 나온다.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존 바딘과 쇼클리 얘기가 나오는데, 이강영 교수는 함께 노벨상을 받았지만 가족, 친구, 동료들의 축복 속에서 생을 마감한 “진정한 천재” 존 바딘과, 노벨상 수상 후 만인을 적으로 돌리며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망가진 천재” 쇼클리을 대비시키며 과학자들의 인간적 고뇌를 깊이 탐구한다. 




어떤 전쟁보다 더 뜨거웠던 ‘입자 전쟁’

3부 「입자 전쟁」은 다시 입자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주선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입자를 찾기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원자의 내부 구조를 탐색하기 위한 입자 가속기가 등장했다. 우주선 채집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입자를 만들어 내는 일로 바뀌었고 입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멈춰 있는 양성자에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으로 시작되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입자와 입자를 충돌시키는 양성자 충돌 실험이 등장했고, 입자 전쟁은 가속화되었다. 결정적으로 루비아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 실험은 유럽이 가속기 전쟁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입자 전쟁이란 표현으로 가속기의 세계와 입자 발견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가속기에 왜 액체 헬륨이 필요한지 궁금했는데 오네스의 극저온 세계 소개를 통해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러면서 LHC를 통해서 힉스 입자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표준 모형에 대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이강영 교수가 직접 쓴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과, 리사 랜들의 책을 번역한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도 이 챕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두 책이 너무 두꺼워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이 챕터의 압축적인 글들만 읽어도 입자 물리학, 그중에서도 실험 파트에서 벌어진 우여곡절을 십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과 우주를 보아야

“자연과 우주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모습이 어떠한지, 자연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의 맨 첫걸음이다.”라고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는 4부 「자연이 건네는 말」에서 이야기한다.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과 우주를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 깊이 동의한다. 

불멸의 원자를 좇는 필멸의 물리학자들의 모험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반드시 “자연의 관점에서”라는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수많은 개념과 수식의 미로를 헤매지만 ‘자연의 관점에서’라는 제1원리가 있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이 한마디를 얻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박용태(서울백북스 회원)

  

『불멸의 원자』 [도서정보]


* 이강영 교수님 강연

8/19 [서울백북스] 저자 강연회 ▶ http://goo.gl/DSQC1Y

8/29 [인터파크과학살롱] 저자 강연회 ▶ http://goo.gl/ggJk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