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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를 옮기고 나서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세 3부작> 옮긴이 후기

『지구의 정복자』를 옮기고 나서

Editor! 2018. 2. 28. 09:50

이한음 선생님의 특별 SF, 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인류세 3부작」을 읽으며 인류, 인류가 만든 세계를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들여다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셨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으셨거나, 혹은 “「인류세 3부작」이 뭔가요?”라고 궁금증을 품으신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런 당신을 위해 맛보기를 준비했습니다. 『지구의 정복자』와 『인간 존재의 의미』, 『지구의 절반』을 함께 번역하신 이한음 선생님의 후기를 순차적으로 여러분께 살짝 들려드립니다.


ⓒ Claude Valette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노학자(老學者)가 쓸 법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정리할 나이쯤 되면, 전체를 한번 아우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닌가. 곤충 연구에서 시작하여 인간사 쪽으로 조금씩 진출해 왔으니, 이제 윌슨도 인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살펴볼 때가 되지 않았나?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변죽만 울리다가, 10여 년 뒤에야 『인간의 유래』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듯이 말이다.


그런데 중반쯤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에 다윈의 사례를 떠올린 것이 너무나 적절한 비유임을 알아차렸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를 설명한 것이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깜박 잊고 있었다. 그 책은 자신이 원래 세웠던 원대한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왜 놓치고 왜곡시켜 해석하고 있었던 것일까?


옮긴이가 어쭙잖은 태도를 보이든 말든 간에, 윌슨은 이 책에서 다시 한번 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있던 혈연 선택 개념이 틀린 것이라고 과감하게 내치고 있었다.


물론 정설로 자리를 잡도록 하는 데 자신이 큰 기여를 한 개념을 훗날 철저히 내던진다는 것이 진정한 연구자임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 대가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정한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설령 우리가 혈연 선택이 옳은지 오랜 세월 과학자들이 틀렸다고 내쳤던 집단 선택이 옳은지 판단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연구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자신이 지지했던 개념도 버려야 한다고 굳게 믿는 진실한 과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이 책은 감명을 준다.


옮긴이는 사실상 윌슨의 책을 통해 번역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 뒤로 윌슨의 책과는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제야 비로소 다시 그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연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책이겠지 했던 지레짐작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세상에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는 정신의 소유자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2013년 가을

이한음




※ 인류세 3부작 ※


『지구의 정복자』 [도서정보]


『인간 존재의 의미』 [도서정보]


『지구의 절반』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