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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과학자'와 함께하는 양자 공부 : 김상욱 편 ③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경계의 과학자'와 함께하는 양자 공부 : 김상욱 편 ③

Editor! 2018.04.02 14:36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바쁜 현대인을 위한 양자 역학 교양서를 펴낸 김상욱 경희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다. 2017년까지 부산 대학교 물리 교육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지만 최근 경희대로 옮겼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연구와 교육의 거점 변동으로 바쁜 김상욱 교수를 모셔 짧지만 깊은 수다를 나눴다. 양자 역학은 골치 아픈 가설이나 대학 상아탑 속 박제화된 이론이 아니다. 양자 역학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고, 현대 문명을 가능케 한 절대 반지 같은 필수 지식이기도 하다. 우리 삶 전체가 양자 역학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수다에서는 김상욱 교수의 글쓰기 비결에서부터 앞으로의 연구 과제까지 그만의 영업 비밀이 공개된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여섯 번째 이야기

'경계의 과학자'와 함께하는 양자 공부,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편 ③



“왜 지금 양자 공부인가?”


SB : 다시 주제를 바꿔 볼까요. 앞으로 많은 일반 독자들이 이 책으로 양자 공부를 시작할 텐데요, 그들이 양자 공부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나 아니면 꼭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상욱 : 사실 언론 인터뷰를 할 때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거든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양자 역학을 알아야 할까요?” 그런 질문을 하기에 저는 “참 마음이 아프다.”라고 답했죠. 그러니까 저는 그 질문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왜 그걸 알아야 하나요?” 사실 이런 질문인데, 이런 질문은 뭔가 실용적인 의미를 내놓으라는 요구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답을 좀 엉뚱하게 했어요. 물론 기사에 나오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이야기했죠. “세상 만물은 원자로 다 되어 있어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다 원자로 되어 있거든요. 이게 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게 왜 이렇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 양자 역학이랍니다.” 


SB : 정말 ‘양자 물리학자스러운’ 답변이었군요. 기자가 썩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웃음)


김상욱 : 그런가요? 저는 그게 이런 질문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인공 지능을 알아야 할까요?” 언론이 원하는 답은 이거겠죠. “알파고를 보세요. 이제 인공 지능이 우리를 대체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인공 지능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는 이게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눈앞의 실용적인 의미에만 집착하는 그런 자세 때문에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2, 3년 전까지만 해도 지식인들이든 일반인이든 아무도 인공 지능에 관심이 없었다가 알파고가 이기는 순간 다 관심이 생긴 거잖아요. 


저는 박사 1년 차 때 뇌 과학 공부를 했어요. 그때 전자 공학과에 가서 신경망 수업도 듣고 그랬죠.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인간의 두뇌를 기계 공학적으로 구현한 게 신경망이잖아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걸 기계로도 구현하고 싶어 인공 지능을 공부해요.” 저는 이게 답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왜 언론은 ‘알파고 때문’이라는 답을 바랄까요? 아마 제게 양자 역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물은 기자 역시 제가 양자 컴퓨터니 양자 정보학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랐던 것 같아요. 저는 전혀 아니었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세상 만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면 양자 역학을 알아야 해요. 원자가 양자 역학이니까요.” 이게 과학의 전부예요.“라는 김상욱 경희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세상 만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면 양자 역학을 알아야 해요. 원자가 양자 역학이니까요.” 이게 과학의 전부예요. 그래서 언론이 던지는 그런 질문들이 항상 좀 불편하죠. 이렇게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왜 우리가 윤동주를 알아야 될까요? 윤동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해서 그럴까요? 아니잖아요. 왜 발해를 알아야 할까요? 중국의 동북 공정 프로젝트 때문에 그런가요? 그게 물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발해를 알고 싶게 되고, 한국 근대시를 읽다 보면 윤동주를 알게 되고, 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럽죠. 공부란 원래 이런 게 아닐까요. 지금 이 시점에 윤동주를 알아야 되는 이유가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했기 때문이라면 얼마나 부박(浮薄)해요. 마음이 아프죠. 양자 정보학이라, 글쎄, 일반 대중도 진작 알아야 했던 것 아닐까요? 아직도 모른다는 걸 오히려 한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SB : 진작 알았어야 하는 것이다.


김상욱 : 사실 인터뷰할 때 이 이야기도 다 했어요. 하지만 다 안 나왔죠. (웃음) 사실 양자 역학이 다루는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요. 서양 철학은 탈레스의 “만물은 물로 되어 있다.”라는 주장에서 시작되었죠.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의 대답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어요. 왜 책상이 이런 모양을 하고 있고, 왜 이 책 표지가 파란색인지 다 설명할 수가 있어요. 하여튼 물질에 대해 묻다 보면 다 양자 역학으로 가게 되죠. 하지만 사람들은 양자 역학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거나 교양 없는 사람 취급받지 않죠. 하지만 탈레스나 사원소설 모르면 무식하다는 소리 듣죠. 물질의 기원과 구성 요소를 이해하고 싶다면 더 이상 철학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그런 점들이 아쉬운 거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 이래로 만물의 기본 단위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라파엘로가 그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들의 거의 대부분이 현대 과학을 통해 해결되었다. “물질의 기원과 구성 요소를 이해하고 싶다면 더 이상 철학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그런 점들이 아쉬운 거죠.”라는 김상욱 교수의 아쉬움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SB : 그것은 책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도 후배 편집자들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죠.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모두 다 책을 사랑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책이 좋아서 그냥 읽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누가 읽으라고 해서, 남이 다 읽으니까 읽는다. 책을 만들어 판다는 것은 그런 책에 대한 저항감을 가진 독자들을 설득하는 일이다.”라고요. 어쩌면 과학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죠. 과학 공부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공부하라니까 남들 다 하니까 공부하는 거죠. 앞에서 말씀하신 기자의 질문 역시 그런 의미이겠죠. 양자 공부 하지 않으면 얼마나 손해 볼까 하는 거죠.


김상욱 : 안타까운 것 같아요. 


SB : 그런 의미에서 양자 공부는 진작 했어야 했던 공부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정말 와닿네요.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김상연 전 《과학동아》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이 책의 모태가 되었던 「양자 역학 좀 아는 척」 연재 진행 시 편집장이셨죠. 처음 기획 목차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가 주장하는 ‘양자 마음’에 대한 꼭지가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특별 기고] 『김상욱의 양자 공부』 ‘더 비기닝’) 하지만 기획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빠졌다고. 이 책에서도 ‘양자 마음’을 다룬 꼭지는 없죠. 선생님은 석, 박사 과정에서 뇌 과학 공부도 하셨으니까 양자 마음 같은 주제를 다룰 법도 한데, 왜 빼셨는지요? 그리고 나중에 이 책의 개정 증보판을 내게 되면 이번 책에는 못 넣었지만 추가하셨으면 하는 주제가 따로 있는지요?


김상욱 : 연재를 기획하던 당시 펜로즈가 이야기하던 양자 마음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 다뤄 볼까 했죠. 그래서 처음 기획 목차에는 넣었죠. 그러나 연재를 하다가 나중에 뺐어요. 처음 그 개념을 듣고 잘 모를 때에는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주제로 글을 쓰려고 공부 좀 해 보고 들여다보니까 별거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사실 책에서도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죠. 


SB : 네. 양자 역학이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의식 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펜로즈의 주장에 대한 학계 반응이 냉랭하다는 말씀을 하셨죠.


김상욱 : 네 한두 쪽만 썼죠. 개인적으로는 깊게 검토할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 학계 분위기도 그렇고요. 펜로즈가 노망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이니까요.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좀 너무 많이 나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그렇게 짧게 언급하고 만 거예요.




정말 중요한 건 ‘물화생지’의 융합!


SB : 그렇다면 혹시 개정 증보판에 추가한다면 어떤 걸 좀 넣어 보고 싶으세요? 


김상욱 : 사실 제가 생각하는 양자 역학의 핵심은 이 책에서 다 이야기한 것 같아요. 좀 더 자세히 부연 설명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뭐 더 할 게 있을까 싶기도 하죠. 만약 있다면 연결을 하는 일이겠죠. 제 책도 그렇지만 양자 역학을 설명하는 대중 과학책들을 보면 양자 역학하고 일상 생활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들이 상당히 많이 부족해요. 양자 역학과 일상 생활을 연결하는 학문이 화학이랑 생명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생화학이죠. 생화학하고 화학까지 오면 좀 더 직관적이고 익숙한 사례들을 더 많이 들 수 있겠죠. 


제가 언젠가 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화학자들 앞에서 콜로키엄을 해 본 적이 있는데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화학하시는 분들은 양자 역학을 우리 물리학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더군요. 화학과 교수님들이 공유 결합이 사실은 중첩이라는 제 말씀을 듣고 놀라시는 거예요. 화학과에서는 ‘혼성 오비탈’ 개념을 사용하잖아요? 전자가 구름처럼 퍼져 동시에 여러 군데 있다는 개념인데, 그게 바로 중첩이에요. 하지만 화학자들은 중첩 개념과 혼성 오비탈 개념을 그렇게 연결하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수소 분자 기술하고 나면 끝이에요. 더 이상의 복잡한 분자를 배워 본 적도 없고, 논의해 본 적도 없어요. 그다음 바로 고체로 가죠. 고체에서 우리가 할 말이 많은데 그런데 사실 제일 중요한 실생활에 있는 것들은 그 고체와 같은 결정 구조나 이런 것, 물론 반도체까지 가면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어요. 양자 역학이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 주려면 양자 역학과 화학의 경계를 조여야 돼요. 


그다음엔 광합성이나 호흡 과정, 세포막에서 일어나는 기묘하지만 중요한 반응들, 그리고 생명의 기원 같은 생명 과학이나 생화학 분야에서 다루는 현상들을 양자 역학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굉장히 심오한 융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비로소 서로 떨어져 있던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을 양자 역학이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겠죠. 생물학자는 양자 역학을 모르고, 물리학자는 생물학을 모르니까요. 사실 지금 그쪽 공부를 좀 하는 중이에요. 《스켑틱》 연재 보셨나요? (스켑틱 홈페이지) 원자에서 시작해서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이번 호에선 원자 2~3개로 이뤄진 조금 큰 분자들 이야기를 했죠. 다음 호에서는 좀 더 큰 생화학 분자를 다뤄 보려고 하죠. 더 나아가 광합성 이야기도 할 거고요. 이제 그런 것들을 생물학자나 생화학자의 시각이 아닌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으면 양자 역학으로 물리, 화학, 생물을 융합하는 게 비로소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다음 단계죠.


양자 역학적으로 해석하는 원자 모형(위)과 광합성 원리(아래). 화학자들이 다루는 혼성 오비탈은 그대로 양자 역학적 중첩이며, 광합성 반응은 이 중첩 현상이 없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물화생지’의 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 (주)사이언스북스. 


SB : 그 단계도 굉장히 재미있겠네요. 


김상욱 : 저 스스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기도 하고, 언제나 궁금했거든요. 생물학자들은 양자 역학을 모르고 잘할 수 있을까? 그게 언제나 궁금했어요. 혹시 그들이 놓치는 게 있지 않을까? 최근에 양자 생물학이라는 분야가 나오잖아요. 사실 그쪽 과학자들은 너무 양자 역학만 봐요. 물리학자들 중심이다 보니 생물학에서 양자 역학으로 설명되는 것만 골라서 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생물학자들이 가장 관심 가진 것을 양자 역학으로 봐야 돼요. 예를 들어 생물학자들이 주로 연구하는 현상에서 전자가 어떻게 뛰어다니는지 하는 것 말이죠. 물론, 아무것도 안 나올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있어요. 잠깐, 이거, 천기누설인데. (웃음) 이게 아마 몇 년 뒤에 책이 될 것 같아요. 


SB : 선생님이 지금 현재 앞으로 하고 계신 연구이기도 하고, 미래의 책이기도 하네요. 그 책도 저희 출판사에서 내시는 걸로. 


김상욱 : 봐서요. (웃음) 사실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융합은 먼저 ‘물화생지’에서 이뤄지는 융합입니다. 그동안 몇 년 동안 예술가들하고도 소통해 보고, 인문학자들하고도 정말 힘든 소통을 많이 해 봤는데, 그럴수록 기초 과학 내부에서의 융합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기초 과학 종사자들끼리 소통이 오히려 더 잘 안 되더군요.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SB : 과학자들 사이에서 소통이 더 잘 안 된다고요? 


김상욱 :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고등학교에서 통합 과학을 가르치고,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융합 교육도 하잖아요. 대폭발에서 문명의 탄생까지 ‘빅 히스토리’도 가르치지요. 그런데 이 빅 히스토리를 과학자들 보고 강의하라고 그러면, 물리학자들은 물리학 파트만 가르치고 가고, 생물학자는 생물학 파트만 가르치고 가지요. 그게 인문학자들 눈에 너무나 잘 보이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겠죠. ‘쟤네들은 자기네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구나.’ 실제로 소통이 잘 안 되죠. 


다른 분야와의 소통을 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죠. 그중 첫 번째 것은, “자신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생물학자들이 하는 식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겠죠. 생물학 자체를 많이 공부해야겠지만, 양자 물리학자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생물학을 봐야겠지요. 당장은 분자 수준의 세계에 관심이 가니, 생화학 공부가 당면 과제죠. 물론, 욕도 먹겠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한다고. 그런데 저는 화학자나 생물학자들이 양자 역학을 자신들의 눈으로 봐 주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요. 욕먹는 건 두려워하면 안 되죠. 에르빈 슈뢰딩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학문 분야를 넘나들 때에는 당연히 욕먹을 각오를 해야” 되죠. 이게 융합 관련해서 제가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이에요. 암튼 지금 생화학, 그리고 화학 쪽 공부가 정말 흥미로워요. 화학자들, 생화학자들, 생물학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그걸 제가 소화를 해서 제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겠죠. 그럴 때 의미가 있더라고요. 


물론, 제가 하고 나면 다른 사람도 하겠지요. 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죠. 저보다 재료 공학이나 고체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좀 더 잘 할 수 있어요.


SB : 그렇지요. 그 분야들은 원래 융합적이니까요. 


김상욱 : 제가 보여 주고 나면 용기를 얻어서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 시작을 해야겠죠.


SB : 선생님의 프로젝트에 저희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미래의 책은 저희가 책을 꼭 내는 걸로. (웃음)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과학자가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올해의 필자로 선정되기도 하시는 등 혜성같이 나타난 새로운 필자로 주목을 받고 있죠. 선생님께서 과학 글쓰기를 하실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계신지 알려 주시면 독자들이나 동료 및 후배 과학자들이 글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거든요.




김상욱의 글쓰기 비결


김상욱 : 이전에《조선일보》 인터뷰(기사 바로가)할 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넣을 내용보다 뺄 내용을 더 찾기, 눈길 닿는 곳에서 시작하기, 말하듯이 쓰기, 고치고 또 고치기, 이 세 가지를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뺄 내용을 더 찾기. 처음 글 쓸 때에는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잖아요. 더 엄밀하게 말해야 할 것 같고. 저도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독자가 이해할 수 있으면, 전체적으로 볼 때 논지에 필요 없는 이야기를 완결성 때문에 넣는 것보다 그것을 다 들어내는 경우가 오히려 이해가 더 쉬워지더라고요.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서 최대한 빼려고 해요. 그다음 이야기를 항상 눈길 닿는 곳에서 시작하기. 저는 글쓸 때 항상 주변을 둘러보면서 시작해요. 과학자들은 언제나 가장 간결한 가정에서 불쑥 시작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 누가 물어보더라도 항상 주변에서 찾은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예를 고르려고 애써요. 예를 들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많은 예, 가장 적절한 예를 만들려고 하는 거죠. 이해웅 교수님의 영향일까요? 그다음 말하듯이 쓰기. 이것은 원래부터 제 스타일이라서.


SB : 네. 선생님 책을 보면 말투가 다 살아 있어요.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글을 우리글로서 써 온 지 얼마 안 되었잖아요. 한글 전용의 역사만 따지면 70년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말하고 글이 심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것이 일치하기 시작했거든요. 


김상욱처럼 글쓰기, 세 가지만 명심하라. ① 넣을 내용보다 뺄 내용을 더 찾기 ② 눈길 닿는 곳에서 시작하기 ③ 고치고 또 고치기. Ⓒ (주)사이언스북스.


김상욱 : 저희 세대는 사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잖아요. 특히 과학고, 과학 대학으로 진학한 저는 더 그렇죠. 저는 제가 글을 잘 쓰는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유일한 방법이 말하는 식으로 쓰는 거죠. 말을 잘못하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잖아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려고 노력하듯이 글을 쓰는 것만이 실수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만연체 같은 거 쓰고 싶어요, 사실은. 시도한 적도 있어요. 《월간 에세이》에서 청탁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일부러 만연체로 썼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전문 작가들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못 하겠어요. 전에 논술 문제 출제하러 갔다가 국문학과 교수에게 들은 것이 있어요. 각 지문마다 각 전문가들이 들어갔거든요. 그때 제 글을 놓고서 국문학과 교수가 제 글을 분해해서 조립하더라고요. 마치 우리가 실험하듯이 제 문장을 레고 블록으로 바꿔 4시간 동안 현란하게 분해했다 조립하더군요. ‘이 사람들은 우리가 실험하듯이 글을 쓰는구나.’ 그런 분들에 제가 비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말하듯 쓰기는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생존 글쓰기예요. 이렇게 해야만 제가 잘 쓸 수 있다고 확신할 수가 있어요. 마지막 고치고 또 고치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SB : 글쓰기 비결까지 이렇게 공개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들도 좋아하시겠죠. 더 여쭤 보고 싶은 게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 두겠습니다. 저희 「과학+책+수다」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학+책+수다: 김상욱 편 끝)



※ 관련 도서 ※

『김상욱의 양자 공부』 [도서정보]



※ <양자 번개> 강연 영상 ※



※ <5분의 과학>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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