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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②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②

Editor! 2018. 8. 18. 09:00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번역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으로 돌아온 이종필 건국 대학교 상허 대학 교수다. 저술 활동과 대중 강연, 학교 수업, 그리고 시사 팟캐스트 「유유상종」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종필 교수를 모셔 그간 나눠 본 적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생애 첫 번역서 『최종 이론의 꿈』(스티븐 와인버그, 2007년), 대표 저서 『물리학 클래식』(2012년), 그리고 최근에 번역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레너드 서스킨드, 2018년)까지 그가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출간한 수많은 책들을 살펴보면 숨은 ‘빅 픽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종필의 빅 픽처 안에서 과학 글쓰기와 세상 읽기, 그리고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공부법을 찾아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에 새로 오픈한 과학책방 ‘갈다’에서 이루어졌으며,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일곱 번째 이야기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②



이종필의 과학 글쓰기에는 빅 픽처가 숨어 있다


SB : 16권을 전체적으로 보고 있으니까 선생님의 빅 픽처(big picture), 그러니까 큰 그림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거시 세계의 중력 이론과 미시 세계의 입자 이론, 이 두 가지에 관한 책들 중에 중요한 책들은 저술도 하시고 번역도 하셨잖아요.


이종필 : 글쎄요. 책을 쓰는 시기마다 어떤 중요한 계기들이 크게 작용을 했지요. 앞서 말한 『최종 이론의 꿈』,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낼 때도 그렇고요. 그때가 우리나라 과학책들이 이제 막 붐이 시작되던 시기였어요. 『엘러건트 유니버스』처럼 좋은 과학책들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죠. 사실 그때 저로서는 『엘러건트 유니버스』 같이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국내서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요.


이런 콘텐츠를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말로 다시 정리해서 잘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어요. 그래서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쓸 때도 그런 부분을 생각했고요. 그리고 이런 책의 기초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다 보니 이것을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도 많아지기 시작했고요. 그중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보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이어져서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도 나오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저를 떠밀다시피한 그 상황들이 제가 책들을 쓰게 된 요인들로 각각 작용했지요. 아직은 저도 뭔가 좀 더 큰 빅 픽처를 고민하고 있어요.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출간 기념 강연. Ⓒ (주)사이언스북스.


SB : 한국 출판계의 과학책 시장이 현재 백가쟁명 시대라고 할 만큼 수많은 과학 저술가들이 등장해서 좋은 책들을 많이 내고 있거든요. 출판계에서 이것들을 잘 끌고 간다면 한국도 좋은 과학책들을 많이 생산해 내고 많이 읽히는 그런 사회가 되겠지요. 수많은 필자들이 존재할 텐데 그중에서도 선생님의 스타일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다루시는 주제들에 대해서 좀 크게 보는, 빅 픽처를 찾으려고 하는 글쓰기를 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어요.


이종필 : 그런가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SB : 10년 전쯤에 『최종 이론의 꿈』을 번역해서 낼 때 선생님께서는 제게 LHC에 관한 이야기나 새로운 우주 배경 복사 사진을 소개해 주셨고, 이런 것들이 어마어마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종필 : 저도 기억나네요.


SB : 그것이 20세기 초반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과학 혁명의 과정 중 하나라고 선언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다른 과학자들은 글쓰기를 할 때 보통 본인들이 가장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의 글쓰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아는 것 밖의 빅 픽처를 말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께서 무조건 일방적으로 빅 픽처를 제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빅 픽처가 있고 그것에 대한 사고를 가져야 우리가 알고자 하는 걸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글쓰기를 항상 하시거든요. 현재 선생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빅 픽쳐가 있으면 한번 말씀해 주세요. 과학계 혹은 작게는 입자 물리학계도 상관없고, 한국 사회도 좋습니다.


이종필 : 사실은 10여 년 전에 예견했던 어떤 혁명적인 상황에는 개인적인 희망이 좀 섞인 거였는데 결국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당장 LHC에서 아주 새로운 게 발견되지는 않았으니까요.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SB : 그래도 힉스 입자는 발견했잖아요.

 

이종필 : 그건 본전을 찾은 거지요. 그거 말고 새로운 게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아직까지는 발견된 게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 20세기의 유산들, 숙제들을 하나씩 풀어 가는 느낌은 들어요. 중력파 발견처럼.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 되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직 본격적인 21세기 과학 혁명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고 조금 유예가 된 상황이라고 낙관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봐요. 그 돌파구가 어디서 열릴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분야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고요. 물론 여전히 암흑 물질의 정체를 찾은 건 아닙니다만.

 

지상과 우주에서 수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는데, 한 번씩 나오는 좋은 결과들이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해요. 그 유력한 계기 중 하나가 이제 암흑 물질 연구가 될 수도 있고요.

 

SB : 물리학자 리사 랜들이 『암흑 물질과 공룡』이라는 책을 내면서 얘기했던 게, 은하계에 암흑 물질이 있고 그것이 전자기력 상호 작용은 하지 않지만 중력 상호 작용을 하는데 우리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네 가지 상호 작용 말고 다섯 번째 상호 작용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을 했잖아요.


이종필 : 그럴 수도 있지요. 


SB : 어떻게 평가를 하세요?


이종필 : 그럴 가능성은 항상 있는 거지요. 그런 흔적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걸 추적을 해야 하니까 가능성은 항상 있지요. 다만 지금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실험의 정밀도를 확 올렸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과학자들이 답답해하면서 계속 도전과 시도를 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SB : 지금 현재 말씀하신 기세나 분위기로 봤을 때는 과학의 발전이 10년 전에 했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거네요. LHC는 본전치기한 정도, 중력파는 20세기에 내놓은 숙제를 이제야 100년만에 한 셈이고요.


이종필 : 지금 당장은 그렇기는 한데 이제 뭔가 큰 것을 위한 사전 포석들이 다 깔린 셈이랄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에 GW170817이라고 부르는 중력파 신호가 있지요. 덕분에 중성자별 2개가 병합되는 과정을 최초로 관측했고요. 저는 이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중성자별은 병합하면서 중력파만 내는 게 아니라 온갖 전자기파도 냅니다. 이 신호들을 보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모든 천문학적 자산들을 통해 며칠 동안 관측을 하고, 그 결과를 전 세계 천문학자의 3분의 1인 4,000명 정도가 각자 연구해 논문을 내고 있잖아요. 그게 21세기 과학의 어떤 전형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력파를 발견한 건 100년 묵은 숙제를 해결한 건데 그걸 발판으로 지금 완전히 새로운 어떤 현상들을 보고 있고, 더 나은 검출기들이 발명되면 놀라운 어떤 현상들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크지요. 암흑 물질 정체도 그런 식으로 밝혀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주론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작년에 발견된 중력파 신호 GW170817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모습. 이 발견과 후속 연구는 21세기 새로운 과학 혁명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SB : 우주론 분야에서.



이제 와서 최종 이론이 없다고?


이종필 : 다중 우주에 대한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번역한 책의 제목 ‘최종 이론의 꿈’에서 ‘최종 이론’은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을 말합니다. 아이작 뉴턴 이래로 모든 과학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죠. 뉴턴이 보편 중력(만유인력) 법칙을 발표를 한 게 1687년인데 그 법칙 이름에 ‘보편(universal)’이라는 말이 들어 있단 말이요. 그 말은 ‘한큐’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자연 법칙은 얼마나 보편성이 크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더 커집니다. 더 가치 있는 자연 법칙을 찾는 게 뉴턴 이래 과학자들의 목표였고요. 그건 20세기의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그가 “이제 나는 신이 이 세상을 만들 때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20세기 말 최종 이론, 또는 궁극의 이론이 있을 것이라고 한 스티븐 와인버그의 책, 즉 『최종 이론의 꿈』이 나왔지요.


SB : 끈 이론처럼 말이지요.


이종필 : 그것도 유력한 후보지요. 끈 이론의 전성기가 1990년대 말이었거든요. 끈 이론의 2차 혁명이 1995년에 일어났고, 그래서 ‘뉴 밀레니엄 시대’로 넘어올 때 끈 이론에 기대를 많이 했지요.


그런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다중 우주 이론이 대두되면서 최종 이론이라는 기획 자체가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거든요. 다중 우주 이론이 대두된 과정에는 2000년대 초반 끈 이론에서 나온 ‘끈 풍경’이라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끈 풍경 개념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물리학자가 레너드 서스킨드였고요. 다중 우주에 대한 모티브는 그 전에도 여러 형태로 있었습니다만 끈 풍경이 나오면서 다시 대두됐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 개념을 점차 많은 과학자들이 공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가 왜 이 모습일까? 왜 이런 우주가 존재할까?’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그냥 이 우주는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왜 1억 5000만 킬로미터일까요? 뭔가 자연의 근본 원리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가 왜 이 모습인가 하는 질문도 앞선 질문과 비슷한 수준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냥 다양한 가능성의 다중 우주만 있을 뿐.


그래서 스티븐 와인버그가 『최종 이론의 꿈』을 쓰면서 가졌던 기획이 결국 잘못됐을 수 있다는 거지요. 아인슈타인, 그리고 뉴턴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들이 찾은 보편 법칙이라는 게 결국은 그저 다중 우주에 존재하는 굉장히 많은 가능성 중에서 이 우주에서만 우연히 적용되는 법칙일 뿐이고, 다른 우주에는 다른 법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바뀌게 되겠지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에 타계한 스티븐 호킹이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도 레너드 서스킨드의 끈 풍경 이론에 동조하고 나섰어요. 이게 단지 다중 우주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니고 과학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거든요. 제 생각에는 인식론적으로도 상당히 논란이 될 수 있는, 과학 자체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SB : 선생님은 최종 이론을 추구하는 궁극적 기획의 대표 저서도 번역을 했잖아요. 그 기획이 끝났다고 선언한 레너드 서스킨트의 책도 번역을 했고요.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 레너드 서스킨드의 『우주의 풍경』은 김남일 교수님이 번역을 하셨지만, 원래는 서스킨드가 『우주의 풍경』보다 『블랙홀 전쟁』을 먼저 썼거든요. 『우주의 풍경』을 설명하려면 『블랙홀 전쟁』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썼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선생님은 최종 이론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인식이 크게 변하던 시기에 스티븐 와인버그와 레너드 서스킨드의 책을 모두 번역하신 거네요?

 

이종필 : 그렇게 된 셈이지요. 


SB : 그러니까 굉장히 빅 픽처를 한 순간에 갖고 계셨던 거지요.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한 레너드 서스킨드의 두 작품 『우주의 풍경』, 『블랙홀 전쟁』. 이종필 교수는 이 중 『블랙홀 전쟁』의 번역을 맡은 바 있다. ⓒ ㈜사이언스북스


이종필 : 『우주의 풍경』은 다중 우주를 다룬 책들 중에 특히 더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가 국내 번역되어 나올 때 언론에서 ‘신은 없다. 호킹이 신을 분석했다.’ 이렇게만 보도했는데 제가 봤을 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호킹이 서스킨드의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점이거든요. 호킹이 이 책에서 “우리가 지금 과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있다.”라는 말을 해요. 과학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된다는 엄청난 선언을 한 거예요.


스티븐 호킹과 레너드 서스킨드. ‘블랙홀 전쟁’의 호적수였던 이들은 다중 우주 이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과학자들이기도 하다.

『블랙홀 전쟁』에서. ⓒ ㈜사이언스북스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자들은 되게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럼 과학을 뭐하러 하냐고 되묻는 거지요. 아마 현재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면 끈 풍경, 또는 우주의 풍경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렇게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중에서 뭔가 ‘초선택 규칙(superselection rule)’을 결국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통상적인 과학의 입장입니다. 서스킨드 같은 경우는 그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 입장이니까.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건 예전에 생각했던 과학 혁명과는 다른 모습의 과학 혁명, 과학 방법론적 혁명입니다. 과학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저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우주를 많이 관측하고 여러 사실 알게 되겠지만 다중 우주나 끈 풍경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다면 그때 바로 새로운 과학 혁명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단지 새로운 우주를 찾았다는 것이 아니고요.



민주주의 원리는 우주에서도 통할까?


이종필 :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쓴 1543년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인식의 전환점을 맞이한 해로 보잖아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은 지구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민주주의 원리’라고도 합니다. 과학의 발전사는 그런 원리가 확장되어 온 역사라고도 볼 수 있어요.


또 대표적 사례로 1857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장한 바는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민주주의 원리를 받아들여서 지금은 생명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하고 있잖아요.


20세기에도 사례가 있었어요. 우리 우주에는 우리 은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은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 전까지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에 속한 성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에드윈 허블이 망원경으로 변광성을 관측하면서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새로운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낸 게 1923년이에요. 그러니까 100년도 안 된 거지요. 그 발견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은하가 더 이상 특별한 은하가 아니라는 거고요. 은하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성립이 된 거고 그게 더 확장이 되면 ‘아, 우리 우주도 특별한 우주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 은하가 더 이상 특별한 은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20세기 위대한 천체 물리학자 에드윈 허블.


2003년 레너드 서스킨드가 제안한 끈 풍경 이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어요. 단지 우주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과 물리량이 우주마다 다를 수 있어서, 우리 우주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수 있고, 우주를 지배하는 어떤 과학 법칙이란 것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 또는 민주주의 원리가 우리 우주라는 가장 큰 영역에서 실현이 되는 셈이거든요. ‘WHY NOT?’이라는 거지요. 이건 왜 안 그러겠어? 이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요.


(다음 편에 계속)



이종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 연세 대학교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재직했다. 현재 건국 대학교 상허 교양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물리학 클래식』,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신의 입자를 찾아서』 등이 있고, 번역서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최종 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등이 있다.



◆ 관련 도서 ◆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학 클래식』 [도서정보]


『블랙홀 전쟁』 [도서정보]


『최종 이론의 꿈』 [도서정보]




◆ 관련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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