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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본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명한 해부학 책을 둘러싼 미스터리
「그레이 해부학」 속에 감춰진 역사를 추적한 의학 논픽션
남자라면 모름지기 해부학을 공부하고,
나아가 여자 한 명을 해부해 본 다음에 결혼해야 마땅하다.
-오노레 드 발자크, 『결혼의 생리학』(1829년)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라는 제목의 인기 미국 드라마가 있다. 시애틀 소재의 가상 병원인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미국 ABC 방송사를 통해 2005년 처음 방송된 이래 2012년 3월 현재 8시즌까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2011년에 종영된 7시즌까지 미국 내에서만 1억 명 이상이 시청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1858년에 처음 출판되어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이 수백만 독자에게 읽히고 있는 또 하나의 『그레이 아나토미』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미국 드라마와 단 한 글자만 다른 그 『그레이 아나토미』는 바로 영국의 젊은 해부학자 헨리 그레이(Henry Gray, 1827~1861년)가 만든 백과사전식 해부학 교과서인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이다. (현재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 출간되고 있으며, 『그레이 해부학』 출간 150주년인 2008년에 40판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빌 헤이스(Bill Hayes)의 신작 『해부학자: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THE ANATOMIST: A True Story of Gray’s Anatomy)』는 바로 이 『그레이 해부학』의 이야기,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저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명한 해부학 책의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사람의 몸속에 있는 피를 인류가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다룬 「5리터: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Five Quarts: A Personal and Natural History of Blood)」와 불면증에 괴로워하는 자신의 개인사와 수면 연구의 역사를 버무린 기묘한 논픽션 「불면증과의 동침: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Sleep Demons: An Insomniac's Memoir)」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빌 헤이스는 의학과 과학의 역사 속에서 너무 익숙하다 못해 잊혀진 이야기들을 발굴해 내 개인적인 삶과 엮어 내는 매력적인 논픽션 작가로 유명하다. 빌 헤이스는 이번 책에서도 많은 이들이 무심하게 넘어간 헨리 그레이의 삶에 천착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해부학 책 중 하나인 『그레이 해부학』의 탄생 비화를 파헤쳐 나간다.
수수께끼의 해부학자, 헨리 그레이
교묘한 구성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레이 해부학##에 대한 해부를 시도한 작품이다. 빌 헤이스는 인체의 비밀을,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친 19세기의 위대한 두 탐험가들의 삶을, 나아가 자신의 강박관념 가운데 일부까지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멋진 책이다.
― 앤드리아 바레트(Andrea Barett), 『발진 티푸스』의 저자
빌 헤이스는 자서전인 동시에, 헨리 그레이의 전기인 동시에, 인체 해부 구조에 관한 과학 에세이인 동시에, 가슴이 무너지는 비가이기도 한 놀라운 책을 써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책이다.
― 리처드 로드리게즈(Richard Rodriguez), 『기억의 허기』의 저자
헨리 그레이는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의 해부학자이다. 1825년 또는 1827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48년에 의학 박사 자격을 땄고 1852년에는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이작 뉴턴 등이 회원으로 있었던 당대 최고의 과학자 단체인 영국 왕립 협회의 회원이 될 정도로 촉망받는 의학자이자 해부학자였다.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검시관, 해부학 박물관 학예관, 해부학 강사 등을 역임한 그는 1858년 『외과 해부학 정해(精解)(Anatomy, Descriptive and Surgical)』이라는 제목의 해부학 교과서를 펴냈다. 이 책이 바로 오늘날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이라고 불리는 책의 초판이다. 이 책은 의학 학계와 교육계에서 탁월한 저서라는 호평을 받았고 중쇄를 출간 직후 바로 하고, 미국판이 이듬해인 1859년에 출간되는 등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연구와 출판 모두에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경력을 탄탄하게 구축해 가던 이 젊은 해부학자는 아쉽게도 1861년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간병하다 본인도 천연두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의학자로서, 해부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저술가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헨리 그레이였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현재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얼굴이 나온 몇 장의 흐릿한 사진과, 그가 세인트 조지 병원 해부학 박물관 학예관 시절 만든 몇 개의 해부학 표본, 그리고 그의 사망 진단서와 묘비만이 남아 있다. 일기나 그가 동료들과 주고받은 서한은 물론이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있던 『그레이 해부학』 개정판의 원고와 『그레이 해부학』을 화력하게 장식했던 삽화들의 목판 원고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왜 없어졌을까?
빌 헤이스는 『그레이 해부학』을 뒤적이던 중 이런 의문을 떠올리고 헨리 그레이의 미스터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헨리 그레이의 미스터리를 풀어 줄 열쇠로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려 준 또 한 사람의 헨리라는 이름의 해부학자에 주목한다.
또 한 사람의 헨리, 헨리 밴다이크 카터
헤이스는 두 가지 걸작품에 관해 설득력 있는 찬사를 바치고 있다. 하나는 인체이며, 또 하나는 인체를 자세히 묘사한 책이다. …… 그는 전기적 내용 사이사이에 자신이 직접 겪은 해부학 실습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 넣었다. 시체를 절개하고, 매번 새로운 발견 앞에서 경탄하는 모습을 매우 명쾌한, 또한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운 산문으로 묘사해서 말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헨리 밴다이크 카터(Henry Vandyke Carter), 『그레이 해부학』의 성공은 그 아름다운 삽화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 삽화가의 이름은 헨리 그레이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31년 화가였던 헨리 발로 카터(Henry Barlow Carter)의 아들로 태어난 헨리 밴다이크 카터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한다. 의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학업의 시기인 1852년부터 1856년까지 헨리 그레이와의 공동 작업을 병행하며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린다. 그리고 1858년 인도 의무대에 입대하여 인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건너가 그랜트 의무 대학에서 교수로 교편을 잡는다. 인도에서 카터는 당시 인도인들을 괴롭히던 ‘마두라 발 질환’의 정체를 규명하고 인도인 한센병 환자 8200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센병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개척한다. 그리고 1888년 군의 준장으로 예편한 뒤, 빅토리아 여왕의 명예 시의로 임명된다. 그리고 1897년 66세의 생일을 보름가량 앞두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헨리 밴다이크 카터의 인생에서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가라는 경력은 빌 헤이스의 말마따나 그의 삶의 작은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요절한 헨리 그레이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살며 헨리 그레이가 거두지 못했던 의학적, 과학적 업적을 거두었다. 카터에게 있어 헨리 그레이는 존경했던 대학 선배, 함께 작업했던 공저자였을 뿐이다. 그러나 빌 헤이스가 카터에게 주목한 것은 이유가 있다. 카터는 10대부터 매일 일기를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일기와 그가 가족과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고스란히 ‘카터 문서’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웰컴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빌 헤이스는 카터가 깨알같이, 자기만의 암호로 적어 놓은 일기를 마이크로필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가며, 『그레이 해부학』의 탄생 비화를 추적한다. 카터가 의학 공부를 하면서 가진 개인적 야심과 초조함, 당시 대두되던 진화론이 야기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본인의 신앙상의 갈등, 당시 영국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던 성공회 신앙과 다른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 등을 카터가 남긴 일기 속에서 하나하나 읽어 낸다. 그리고 카터의 개인적 고민과 갈등, 욕망, 그리고 희망 사이사이 흩어져 있는 헨리 그레이와의 만남의 흔적을 찾아 헨리 그레이라는 그 모든 흔적이 사라진 한 해부학자의 실상을 재구성해 간다.
해부학이 드러내는 인간 존재의 실상
『해부학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집약된 책이다. 생명이 떠나간 인체에 관한 연구이며, 그 분야에 열광한 과학자들의 연대기이며, 가슴이 무너지는 내용을 담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질병에 관해 얼마나 아는 바가 없었는지에 관한 반성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는 의학의 역사를 바꿔놓은 과거 한 시대의 열정적이고, 신경증적이고, 극도로 인정 많은 젊은 해부학자에 관한 전기이기도 하다. 훌륭하다.
―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M. Sapolsky), 『스트레스』의 저자
이 책은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라는 두 사람의 해부학자의 삶을 재구성하는 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부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역사를 소개하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빌 헤이스는 『그레이 해부학』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해부학 실습 과정을 청강해 실제로 인체 해부를 학습한다. 빌 헤이스는 약대생, 물리 치료학 전공 학생, 미대생, 의대생 들과 1년 가까이 해부학 실습을 하며 실제로 인체의 이곳저곳을 직접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가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알기 위해서. 이 책 속에는 그가 해부학 실습에 참가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해부 절차며,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는 물론이고, 해부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해부학의 전반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개괄하고 있다.
사람 머리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갠 편측 머리를 들고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고, 방금 시체에서 도려낸 심장을 만지며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느끼고, 손을 한 번 뒤집을 때마다 화려한 결합 동작을 펼쳐 보이는 손과 팔의 뻐와 관절을 보며 찬탄하는 저자와 해부학도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섬뜩한 느낌과 동시에 인체에 대한 경이감을 일깨워 준다.
중세까지 서양 의학계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잘못된 의학 지식 체계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을 통해 어떻게 전복되고 재편되는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밀리에 작성한 해부학 노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시 등장했는지, 뼈대의 구조에서 대뇌의 구조까지 인체와 질병의 신비에 대해 인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소개되어 있다. 빌 헤이스는 그레이와 카터의 행적을 추적하는 중간중간 도서관과 해부학 교실을 오가며 항상 시체를 마주하며 죽음을 생각하는 해부학이라고 하는 차가운 학문 속에 숨겨진 뜨거운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해부학과 해부학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시체를 기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력적인 문장으로 엮어 놓은 빌 헤이스의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른 책에서는 맞볼 수 없는 독특하고 기묘한 독서 경험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차례
인터넷 서점 링크 : 서점에 등록되는 대로 링크 추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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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헤이스 (Bill Hayes)
빌 헤이스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고 스포켄에서 자랐다. 샌타 클래라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1983년 영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프리랜서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주로 에이즈 정책, 불면증, 그리고 다이앤 아버스 등에 대한 칼럼과 기사들을 썼다.
저술로는, 불면증에 고통 받아 온 개인적인 기억과 잠과 불면증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연구를 한데 엮은 「불면증과의 동침: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Sleep Demons: An Insomniac's Memoir)」(2001년), 피를 주제로 한 「5리터: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Five Quarts: A Personal and Natural History of Blood)」(2005년) 등이 있다. 그의 책과 글은 여러 언론과 평론가들에 의해 새로운 과학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 주는 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빌 헤이스는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등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 샌프란시스코 공립 도서관이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도서관 월계관을 받기도 했다.
옮긴이 박중서
출판 기획가 및 번역가이다. 번역서로는 『선택의 과학』, 『5리터』,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모뉴먼츠 맨』, 『식량의 세계사』,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해바라기』,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젠틀 매드니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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