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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들이 간직한 창을 열고 『창문 너머로』 본문
1960년 탄자니아 곰베 국립 공원에서 제인 구달 박사님이 시작한 야생 침팬지 연구로 과학계가 침팬지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지능과 행동 면에서도 닮았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 중 하나라고 칭한 야생 침팬지 연구, 보호와 교육 활동의 정수가 담긴 『창문 너머로』를 동물 행동학자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제인 구달의 책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My Life with the Chimpanzees)』을 비롯한 일대기 내지는 위인전이 수없이 많다. 몇 권을 빼고는 대개 다른 저자가 그에 관해 쓴 책들이다. 그 다음은 이른바 ‘희망 시리즈’ 책들이다. 『희망의 이유(Reason for Hope)』로 시작해 『희망의 밥상(Harvest for Hope)』, 『희망의 자연(Hope for Animals and Their World)』, 『희망의 씨앗(Seeds of Hope)』을 거쳐 『희망의 책(The Book of Hope)』으로 그야말로 마침표이자 느낌표를 찍었다. 세 번째는 제인 구달의 연구를 담은 책이다. 나는 평생 동물의 행동을 전공했고 2017년부터는 인도네시아 구눙 할리문 살락 국립 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침팬지의 사회 행동과 정신 세계에 관한 그의 연구 결과를 기술한 책들을 가장 관심 있게 읽는다.
제인 구달은 1960년에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고, 초창기 10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1971년에 『인간의 그늘에서(In the Shadow of Man)』를 집필했다. 나는 일찍이 이상임 박사(현재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DGIST) 교수로 있다.)와 함께 이 책을 번역해 우리 독자들에게 침팬지의 행동과 생태를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책 『창문 너머로: 곰베 침팬지와 함께한 30년(Through a Window: My Thirty Years with the Chimpanzees of Gombe)』은 거기에 20년의 연구를 보태어 1990년에 처음 출간한 책인데, 이번에는 거기에 또 20년을 더해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50년을 정리했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의 그늘에서』를 곁에 두고 군데군데 비교해 가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예민한 독자라면 두 책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제인 구달은 연구 초기부터 굵직굵직한 관찰 결과들을 내놓았다. 제인 구달이 자신을 침팬지 세계로 인도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풀줄기로 흰개미 낚시를 할 뿐 아니라 가지에서 이파리를 떼어내 낚시 도구를 개선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작성한 보고서를 보냈을 때 루이스 리키 박사가 답신으로 보내온 전보는 유명하다. “이제 도구를 재정의하고 인간을 재정의하지 않는다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너무나 함축적이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중요한 관찰에 힘입어 제인 구달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도 취득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서 연구비도 확보해 곰베 연구 센터를 키워낼 수 있었다.
『인간의 그늘에서』는 비록 10년밖에 안 된 연구지만 쾌거에 가까운 대단한 연구 결과들에 고무되어 침팬지의 행동과 사회에 대해 사뭇 따뜻한 시선과 소회가 읽힌다. 채식만 하는 줄 알았던 침팬지가 뜻밖에도 육식을 즐긴다는 발견 역시 충격적이었지만, ‘인간의 비인간성’이라는 소제목에서 보듯이 침팬지와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려 나와 타락의 길을 걸어온 인간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내려졌다. 이에 비하면 『창문 너머로』에서는 인간과 침팬지 모두를 상당히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선 10년간의 초기 연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었다. 일례로 20년의 추가 연구를 통해 침팬지가 원숭이나 멧돼지 같은 다른 동물들을 사냥해서 그 고기를 섭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열이 낮은 암컷의 새끼를 가로채 동족 살해 및 포식마저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대 무리 수컷들의 씨를 말리는 수준의 참혹한 ‘4년 전쟁’을 지켜보며 인간 세계의 전쟁과의 유사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침팬지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인간의 그늘에서』와 『창문 너머로』 사이 제인 구달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19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침팬지 이해하기(Understanding Chimpanzees)’를 주제로 침팬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모인 학회에서 그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 서식지가 파괴되며 침팬지의 수가 무서운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말았다. 제인 구달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학회에 연구자로 참석했다가 활동가가 되어 떠났다.” 그 후 제인 구달은 1977년 설립된 제인 구달 연구소를 기반으로 해 매년 300일 넘도록 80여 나라를 돌며 침팬지와 인간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기껏해야 종이와 연필, 쌍안경, 카메라와 타자기 정도에서 시작해 어느덧 녹음기와 비디오 리코더, 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GPS)과 전 지구 지리 정보 시스템(GIS), 그리고 DNA 분석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야생 침팬지의 현장 연구에도 최첨단 관찰과 분석 기술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런데 드디어 우리의 사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듯싶은데 둘러보니 정작 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인 구달이 시작한 야생 침팬지 연구는 올해 65년째로 접어든다. “산꼭대기나 계곡 물가에 앉아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와 골리앗, 플로와 멜리사를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다가 숲의 세계와 그곳의 매혹적인 주민들에 대해 배워 가던 시절을 기억”할 뿐 제인 구달은 이제 연구는 후학들에게 맡기고, 매년 아주 짧게 곰베로 돌아와 침팬지들을 만난다. 하지만 “나무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거기 누가 있는지 곧바로 알아볼 수 있던 지난날이 그립기 그지없다.”라며 아쉬워할 따름이다. 2003년부터 2023년까지 일곱 차례의 방한 때마다 가까이 수행한 나로서는 구달 박사가 직접 침팬지를 관찰하는 연구자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시카고 학회가 열렸던 바로 그해 1986년 하버드 대학교 벨크냅 프레스에서 출간된 본격적인 학술서 『곰베의 침팬지: 행동 유형(The Chimpanzees of Gombe: Patterns of Behavior)』과 더불어 이 책은 그의 현장 연구를 집대성한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 현장 생태 연구 분야의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과학자 제인 구달의 위대한 족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플로와 피피, 길카와 지지, 멜리사와 그렘린, 골리앗과 마이크, 피건과 고블린, 호메오와 에버레드. 그리고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최재천
이화 여자 대학교 석좌 교수, 생명 다양성 재단 이사장. 국립 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미국 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 국제 환경상, 올해의 여성 운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 백상 출판 문화상 수상작 『개미 제국의 발견』을 비롯해 『다윈 지능』, 『다윈의 사도들』, 『양심』 등을 쓰고 『통섭: 지식의 대통합』,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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