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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을 찾는 『RNA 특강』 본문
역사상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mRNA 백신 성공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 재유행과 맞물려 RNA의 잠재력에 대한 각계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태초의 물질, 생명 현상의 조절자, 미래의 분자 RNA가 성큼 다가온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서 『RNA 특강』에 담긴 송기원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 교수님의 핵심 강의로 RNA가 간직한 비밀의 실마리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DNA 시대에서 RNA 시대로,
생명의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우리는 코로나19바이러스 세계적 대유행의 긴 터널을 지났다. 그간 많은 이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던 생명 과학은 갑자기 모두의 관심 영역이 되었다. 생명 과학 관련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PCR, 항원 항체 반응 같은 용어도 코로나19바이러스 검사가 일상화되면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익숙해진 단어 중에 RNA가 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RNA를 유전 정보로 갖는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에 대항하기 위한 백신으로 RNA 백신이 짧은 시간 내에 개발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RNA 백신이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RNA 바이러스의 특징이나 증상, 특히 RNA 백신 개발 과정이나 작동 기전을 접할 수 있었다.
배경 지식이나 개발 성공 여부와 별개로 코로나19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과 생산 가능성에 따라 여러 생명 공학 관련 회사들의 주식 가격은 격하게 오르내렸다. 최초로 코로나19바이러스 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생명 공학 벤처 기업 모더나의 주식은 수십 배가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한 RNA 백신의 성공으로 과학계와 의료계는 독감, 후천성 면역 결핍증 등 다른 바이러스 질환이나 암에 대한 백신 혹은 치료법으로서 RNA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주로 사용해 왔던 백신은 단백질 백신으로, 일반적으로 개발과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비해 코로나19 RNA 백신은 개발 기간이 아주 짧았고 안전성 검증이 급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백신을 확보한 각국 정부는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자 반강제적인 접종 정책을 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사회의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정보와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T. S. 엘리엇의 시구가 떠올랐다.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유행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훨씬 전인 1934년에 이미 “난무하는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 있는가?”라고 질문했던 시인의 통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분자 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해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실 대부분은 RNA를 취급하지만 RNA가 내 전문 연구 분야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RNA 연구 추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우리 실험실에서 계속 연구해 온 세포 생장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RNA와 응집체를 형성해 기능을 수행한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RNA가 갑자기 모든 이 의 관심사가 되는 일련의 복잡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RNA에 대해, 그리고 RNA와 관련된 다양한 생명 현상과 RNA를 이용한 백신의 작동 기전에 대해 차근차근 정확한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21세기 생물학의 핵심
혁명의 분자 RNA
생명 과학 분야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RNA를 이용해 유전자 발현을 막음으로써 치명적 유전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고, 근래에는 여러 치료제가 미국 식품 의약국과 유럽 의약품 기구의 승인을 받고 시판되고 있다. 임상 시험 중인 RNA 치료제는 하루하루 늘어 가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많은 벤처와 제약 기업에서 개발하는 신약 정보 사이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RN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이 RNA 연구와 응용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설명하고자,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을 찾아가는 『RNA 특강』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느라 잃어버린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T. S. 엘리엇, 「바위(The Rock)」
20세기 중반 시작된 분자 생물학은 DNA라는 분자로 구성된 유전 정보와, 이 DNA 정보를 이용해 만들어진 단백질의 기능을 가지고 생명 현상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했다. 그러나 DNA와 단백질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훨씬 더 다양하게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RNA의 기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RNA가 그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DNA 유전 정보 발현 과정의 여러 단계부터 단백질의 기능, 외부 자극에 대한 생리적 반응 등 다양한 층위에서 생명 현상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물질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RNA에 대한 현재까지의 지식을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50년이 DNA의 시대였다면 다가올 30년은 RNA의 시대가 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RNA의 여러 가지 응용 가능성에 더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RNA의 다양한 생체 내 조절 기능들이 알려지면 생명체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훨씬 더 깊어지고 정교해질 것이다.
과학에 대한 글을 가능하면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노력이 결과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란 기본 지식을 기반으로 그 위에 쌓이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또 쉽게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내 글쓰기의 한계일 수도 있다. 분자 생물학에 대한 자세한 부분을 따라가기 쉽지 않더라도 계속 읽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다 보면 머릿속에 RNA에 대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논어』 「위정편」 글귀처럼 『RNA 특강』을 마칠 즈음에는 나 자신도, 독자들도 RNA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안다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한 지식의 기반이 생명 과학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RNA 바이러스, RNA 백신, RNA 치료제를 다루는 업계 다양한 분야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송기원
연세 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생화학과 교수.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제5기 위원과 국가 지식재산권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재단 법인 지구와사람 이사장을 맡고 있다. 80여 편의 SCI 논문을 게재했으며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송기원의 생명 공부』, 『생명 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공저), 『과학은 논쟁이다』(공저), 『시민의 교양 과학』(공저), 『현대 과학과 철학의 대화』(공저), 『차이나는 클라스: 과학 문화 미래 편』(공저), 『의학과 문학』(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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