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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범 서울대 교수가 먼저 읽은 『꽃을 공부합니다』 본문
우리나라 온라인 문화에서는 매년 5월 14일이 되면 ‘오늘은 로즈 데이(Rose Day)!’ 운운하는 포스팅이 대량 생산됩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장미를 주고받는 날이라고 정의되어 있지요. 그렇지만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이 날짜를 지정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화훼 산업의 이해 관계자 중 하나가 ‘발렌타인 데이’의 상업적 성공을 보고 흉내 내 만든 수많은 ‘데이’ 중 하나라는 설이 온라인에서 떠돌 뿐입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 날짜를 장미를 주고받는 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확산된다면, 이 정체불명의 ‘상술 데이’는 사람들과 그 사연들이 얽힌 역사성을 가지게 되겠지요. 지금 우리가 만나는 꽃들에는 누가, 언제, 어떻게 붙였을지 모를 역사성, 스토리텔링이 붙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한번 공부해 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국립 세종 수목원의 가드너 박원순의 『꽃을 공부합니다』는 그 좋은 출발점이 될 겁니다. 이 책을 다른 독자들보다 먼저 읽은 배우, 학자,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의 인기 연재 「사이언스-오픈-북」으로 공개합니다.
꽃을 매개로 과학, 예술, 문화를 이어 주는 책
물건을 구매할 때 상품의 상세한 정보는 구매자로 하여금 상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신뢰감을 제공합니다. 정원에 심는 꽃들 하나하나를 정원가의 상품으로 본다면 왜 우리가 꽃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생활 원예를 주제로 교양 강의를 진행하며, ‘정원은 조성하고 향유하는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되는 공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원가가 본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꽃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꽃을 연구하다 보면 꽃의 그 특별함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꽃의 생태적 중요성, 농업에서의 역할, 의약적 활용, 미적, 문화적 가치 등등 참 다양하게도 꽃만이 주는 그 특별함이 있지만 연구자로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지요. 저자는 이 책의 키워드로 ‘꽃’, ‘문화’, 그리고 ‘과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책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은 더 나아가 꽃을 매개로 과학, 예술, 문화를 이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스물아홉 가지 식물 저마다의 특징을 문화적, 과학적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꽃과 정원의 의미를 깊이 고찰해 보길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저에게 큰 해답 같은 존재이며, 꽃을 공부하는 전공생들에게도 꼭 한 번 읽어 봐야 하는 필독서가 되리라고 봅니다.
꽃의 가치는 꽃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이 책은 꽃을 즐기는 방법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꽃을 공부하자고 말하지만, 사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 ‘꽃을 느끼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이 책은 그 의도에 가장 충실한 책일 것입니다.
이효범
서울 대학교 원예 생명 공학 전공 교수. 화훼 및 조경 식물학을 연구한다. 서울 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22년부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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