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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 ⑦ 팬심으로 움직이는 과학 전문 번역가 본문
과학+책+수다 첫 번째 이야기
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
책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밌어지는 이야기! 한 권의 책을 놓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첫 번째로 ‘과학+책+수다’에 오른 책은, 어마무시한 두께로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그리고 이 어마무시하고도 아름다운 책을 번역한 과학 전문 번역가 김명남과 담당 편집자가 출간에 쫓겨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수다로 풀기로 했습니다.
➆ 팬심으로 움직이는 과학 전문 번역가
편집자: 선생님께 묻고 싶었던 질문 중의 하나가, 전문 번역가로서 일을 시작하신 지 꽤 오래되셨잖아요. 그런데 처음에 어떻게 해서 과학책을 번역하시게 되셨는지?
김명남: 처음 번역한 책이 진화 심리학 쪽 책이었어요. 그게 벌써 10년 전이니까, 진화 심리학이라는 용어도 되게 낯설던 때죠. 그때는 인터넷 서점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KAIST를 나왔잖아요. KAIST 선배 중에 출판사에 계신 분이 있었어요. 그 선배가 과학책 번역할 사람이 하도 없으니까, 제가 아무 경력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한 번 시켜 보신 거예요. 그런데 저는 원래 번역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편집자: 아, 그럼 제안이 왔을 때 “옳다구나.” 하셨겠네요?
김명남: 그렇죠. 그래서 그때 막 번역자 자격증도 따고 그랬었거든요.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지만. 그래도 막연하게 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보면, 마흔 살쯤에는 뭔가 번역을 할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번역일이 들어온 거죠.
그래서 시작을 하긴 했는데 막상 회사 다니면서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낮에는 회사 다니고, 주말이랑 저녁에는 집에서 번역을 하고. 결국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저는 애초에 번역이 꿈이었기 때문에, 아무 망설임 없이 번역을 택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출판 시장이 이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죠. (웃음) 그때만 해도. 2006년에 전업으로 하기 시작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저는 집에 인터넷이 안 깔려 있어서 종이 사전 넘겨 가면서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예전에 번역을 잘하신 분들은, 지금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요? 비교도 안 되게 잘하시지만, 그래서 오류도 되게 많은 거죠. 상상력도 굉장히 많이 기르게 되어 있고.
‘ego shelf’라 부르는 번역가 김명남의 책장.
지금까지 번역한 책들의 원서와 번역본을 번갈아 꽂아 두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김명남이 번역해서 출간한 60번째 책.
편집자: 그렇겠네요. 그거 다 찾다보면 언제 번역하겠어요.
김명남: 그렇죠. 그런데 요즘은 아예 인터넷이 연결이 안 되면 번역을 못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이제 사전도 종이 사전 쓰는 분은 아무도 없으니까.
편집자: 사전 얘기하니까 갑자기 또 슬퍼지네요.
김명남: 그때만 해도 사전 여러 개, 인명사전 같은 것도 있어야 됐어요. 외래어 표기법 같은 것도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없었기 때문에, 모조리 갖다 놓고 일일이 찾아서 했었죠.
편집자: 이것도 뻔한 질문이긴 한데, 그동안 작업하시면서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같은 거 있으세요?
김명남: 글쎄요. 하나는 없어요. 왜 하나가 없냐면, 전 작업을 할 때 팬심으로 선택을 하거든요.
편집자: 다 좋은 거네요, 그럼.
김명남: 그렇죠. 그래서 경력이 늘수록 제일 좋은 건, 제가 하고 싶은 책을 골라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뭐, 돈이야 어차피 안 되는 거니까. 제가 독자로서 정말 좋아했던 과학책 저술가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저한테는 가장 흥분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핑커 책(『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차기작 『Sense of Style』)도 내용이야 어쨌든 간에 해 보고 싶었고,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거라면 그 전부터 팬이었던 사람들의 책을 작업한 거겠죠. 도킨스도 그랬고, 도킨스를 하고 나니까 스티븐 제이 굴드도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돌아가신 분은 책이 한정되어 있잖아요. 다행히 한 권을 번역할 수 있어서 그것도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핑커도 그렇지만 글 잘 쓰는 작가들은 번역을 해 보면 이유가 있어요.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잘 팔리고, 대표적인 작가가 된 게 다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게 독자로서 읽었을 때랑 번역자로서 읽었을 때는 또 정말 달라요! 독자로서, 특히 과학책은 읽었을 때 솔직히 지식만 알면 되잖아요. 하지만 번역할 때는 문장이 정말 중요해지거든요.
그래서 그냥 읽었을 때 좀 신선하고 좋은 거랑, 제가 번역가로서 인정하게 되는 작가는 따로 있어요. 핑커나 굴드나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죠. 정말로 작업이 잘되고, 신도 나고. 그래서 하면서 계속 팬심이 유지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팬심이 깨지는 경우도 있어요. (웃음) 제가 누구라고 얘기는 안 하겠지만.
편집자: 내년 이후로도 계속 계획이 많으신 거 같은데, 혹시 과학에서도 다뤄 보지 않은 분야가 있다던가, 요 작가, 요 작품 해 보고 싶다 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김명남: 그게, 좀 난감한데, 과학책이 우리나라만 이렇게 출판 시장이 작아지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외국에서도 그렇게 화제가 되는 과학책이 많이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전 늘 안 하고 싶은 분야를 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후성 유전학 책을 번역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신생 분야를 하면 문제가, 이건 또 한 10년만 지나면 ‘뻥’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 어떤 책을 골라야 이게 과학적이면서도 재밌을까?’ 늘 그게 고민이 돼요.
결국은 저는 팬심으로 번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로버트 새폴스키 같은 사람 책이 진짜 많이 번역됐으면 좋겠고. 또 『한낮의 우울』을 쓴 앤드루 솔로몬도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런 사람들 책이 나오면, 그걸 번역을 해서 누군가가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 그게 전문 번역자의 보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장수하셔서 글을 많이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는데, 다들 안 팔리는 분들이네요.
편집자: 좀 얇은 책을 써 주셨으면 좋겠는데.
김명남: 그러니까요, 좀 재밌고 얇고. 그런데 외국도 이미 그렇게 돼서, 앞으로는 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핑커도 앞으로는 이렇게 두꺼운 책은 더는 쓰지 못할 것 같고, 앤드루 솔로몬도 그럴 것 같고.
편집자: 저는 신생 분야가 되었건 설인이 되었건 10년이 지나서 뻥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나름으로 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웃음) “어머, 설인이 뻥이었대!” “설인이 알고 보니 개털 뭉치더래.” 설인을 집요하게 쫒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발견을 이룰 수도 있고, 나중에 그 뻥쟁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고요.
김명남: 과학책 말고 다른 책 편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편집자: 간혹 있죠. 중간에 좀 지루하다 싶었을 때 과학과 다른 경계에 있는 책들을 기획했어요. 과학과 경제학이라던가, 심리학이라던가. 그런데 경계에 있는 책들 중에서도 저쪽 입장에서 과학을 끌어다 쓰는 건 잘 팔리는 데, 과학적인 입장에서 저쪽 얘기를 하면 안 팔리더라고요.
김명남: (웃음) 어떻게 해야 되지?
편집자: 그래서 한동안은 그런 책들을 막 열심히 기획을 했는데, 시간이 또 지나면서 지금은 오히려 국내 과학 교양서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도 사실 과학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라서, 출판사 들어와서 책을 한 권 한 권 만들고 천천히 읽으면서 과학이라는 콘텐츠를 더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는 주로 제가 하던 진화 이론이나 생물학, 심리학 쪽 책을 만들다가 나중에는 물리학이나 다른 과학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렇게 된 데에는 중간에 국내 작가의 글이 있었고요. 레너드 서스킨드 책이나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 같은 책은 꼭 읽어 보고 싶은데 어렵더라고요.
김명남: 정말 어렵죠.
편집자: 선생님께서 써 주신 서평이나, 아니면 다른 과학자분들이 여기저기 쓰신 서평이나 글이 제가 낯선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매개체 역할을 해 줬던 것 같아요.
김명남: 사실 저도, 저는 번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번역서를 사람들이 많이 읽어야 제 일이 많아지고 그렇기는 하지만 그냥 독자로서 생각을 하면 좋은 국내물이 있어야 하고, 좋은 국내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번역서도 찾고 그러더라고요.
편집자: 네! 맞아요!
김명남: 저는 친구들한테 진화 심리학책을 권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전중환 교수님 책 『오래된 연장통』을 권하거든요. 그걸 읽어서 재밌는 사람은 다른 책들도 다 읽어 보라고 해도 되고, 그게 재미가 없다고 하면 솔직히 가망이 없는 거고요.
그리고 저는 장대익 교수님 책 『다윈의 식탁』도 좋아하는데 그 책은 거꾸로 다른 번역서를 다 읽은 사람이 봐도 너무 재미있잖아요. 진짜 우리말로 한 수다만이 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도 그렇겠죠.
얼마 전에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짐바르도가 유명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야, 이제 이런 게 영화로도 만들어지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 보면, 최근 한 10~20년 동안 심리학이 우리 일상에 미친 변화가 엄청난 거 같아요.
사실 20세기, 21세기는 과학의 세기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은 내 곁에 정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거죠, 과학이. 그래서 아, 언젠가는 과학책이라고 해도, 모르겠어요, 안 팔려도 아무튼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날 생각하다 보니까 별 생각이 다. (웃음)
편집자: 과학책이 다양하게, 많이, 팔리는 그날을 기원하며, 앞으로 시즌제로 선생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드네요. (웃음)
김명남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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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연장통』 도서 정보 (클릭)
과학+책+수다 [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보기만큼 대단한 책! (연재) 바로가기
② 핑커의 핑크?! (연재) 바로가기
③ 글 잘 쓰고 솔직한 과학자 (연재) 바로가기
④ 불규칙 동사로 엮인 영혼의 동반자 (연재) 바로가기
⑤ 과학 그루피의 세계로! (연재) 바로가기
⑥ 과학 콘텐츠의 유통자 (연재) 바로가기
⑦ 팬심으로 움직이는 과학 전문 번역자 (연재)
※ [과학+책+수다]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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