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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① 딱정벌레에 미친 청년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① 딱정벌레에 미친 청년

Editor! 2016. 2. 26. 10:11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① 딱정벌레에 미친 청년


친애하는 폭스 형, 

곤충에 대해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야. (…) 케임브리지에서 돌아온 다음 무지무지하게 게으른 생활을 했어. 곤충들을 보면서 휴식을 취했지.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곤충 몇 마리를 잡기는 했어. 누나가 내가 잡은 곤충 중에 세 마리를 대충 그려줬어. 첫 번째 그림에 있는 것은 퀸스 칼리지에 다니는 호어가 버드나무에서 잡았던 그 곤충인 것 같아. 갈란드도 무엇인지 몰랐던 그놈 말이야. 울타리 나무껍질 밑에서 발견했는데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양도 특이하지. 세 마리를 잡았어. 이건 정말로 큰 수확이었어. 두 번째 그림은 쇠똥구리(scarabaeidae) 중에서 아주 흔한 녀석이야. 형은 이름을 알겠어? 세 번째 것은 아주 아름다운 하늘소인데, 아마 북방꽃하늘소(Quadrifasciata)가 맞을 거야. (…) 무당벌레도 세 종류나 잡았어. 하나는 호어가 늪지에서 잡았던 것과 같아. 그때 형이 아주 희귀한 녀석이라고 이야기했었어. 다른 놈은 등껍질에 흰점이 7개 있어. (…) 혼자 좋아서 떠든 것을 용서해 주길 바라. 하지만 나는 형의 제자니까 용서해 줘야 해. (…)


1828년 6월 12일

찰스 다윈, 슈루즈베리


오스트리아의 곤충학자 에드문트 라이터(Edmund Reitter)가 1908년에 펴낸 책에 묘사된 쇠똥구리들 (이미지 출처: wikimedia)


찰스 다윈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을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진화론을 주창한 대학자지만 시작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다윈은 눈에 띄는 식물마다 모두 이름을 알아내려고 했고 조개·도장·서면·동전·돌조각 따위를 모으는 수집벽이 있었다. 과일 서리를 즐기던 장난꾸러기 꼬마 다윈은 사냥·낚시 등에 열중했다. 동네의 기숙학교에 다녔지만 거기서 배운 라틴어를 비롯한 고전 교육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형 에라스머스와 어울려 정원의 공구 창고에 화학실험실을 차려놓고 실험에 열중하는 일이 잦았다. 아니면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책들을 읽고 그 신기함과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의 찰스 다윈과 여동생 에밀리 캐서린 다윈 (이미지 출처: wikimedia)


집안의 기대는 할아버지·아버지·삼촌에 이어 다윈도 의사가 되는 것이다. 별 뜻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의학 공부를 하러 에든버러로 갔다. 

할아버지·아버지·삼촌·형이 모두 그곳 출신이라 입학은 수월했지만 역시 의학은 다윈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마취제로 클로로포름이 사용되기 전이라 고통을 참아야 하는 환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찬 수술실은 끔찍했다. 큰삼촌이 에든버러에서 시체 해부를 하다 얻은 패혈증으로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기억은 아버지와 다윈에게는 악몽이었다. 그들은 피를 극도로 싫어해 생각만 해도 치를 떨었다. 다윈은 고민했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아버지가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남겨 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 (이미지 출처: wikimedia)


그는 두 해 남짓 만에 의학 공부를 그만두었다. 다시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다윈은 그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무엇보다도 딱정벌레에 열중했다.


윌리엄 다윈 폭스 (이미지 출처: wikimedia)


열아홉 다윈을 딱정벌레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네 살 많은 육촌형, 윌리엄 다윈 폭스(1805~1880)였다. 함께 학교를 다닌 폭스와 다윈, 그리고 친구 몇몇은 어울려 다니면서 곤충을 잡았고 그것을 두고 열띤 토론도 했다. 그 시절, 다윈이 얼마나 딱정벌레에 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다윈이 오래된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희귀한 딱정벌레 두 마리를 발견했다. 얼른 양손에 한 마리씩 잡았는데 다른 종류의 딱정벌레가 어슬렁거리며 등장했다. 다윈은 급한 마음에 한 마리를 입에 집어넣고 손을 뻗었는데 입 속의 딱정벌레가 독한 분비물을 내서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세 마리 다 놓쳤다.


북방꽃하늘소 (이미지 출처: wikimedia)


딱정벌레에서 시작한 곤충학적 훈련은 이후 다윈이 자연학자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 열정과 지식이 고스란히 비글호를 타고 여행했던 바다와 대륙에서 보았던 생명체들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윈은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생각을 했고 결국 그 이유를 설명할 방도를 찾아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