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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③ 비글호 항해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③ 비글호 항해

Editor! 2016. 3. 25. 10:58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③ 비글호 항해


사랑하는 아버지께,

(…) 자연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바나나와 커피나무 숲에서, 코코아 열매 아래서 산책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들꽃들을 만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던 곳이었지만 이 섬이 제게 주는 지식과 기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유럽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열대의 풍경을 설명하는 것은 장님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 제가 새로운 세계를 걷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1832년 3월

찰스 다윈 올림


로버트 다윈 (이미지 출처: wikimedia)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선비들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책을 읽으면서 새삼 아버지의 마음이 한결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고하게 앉아 책만 읽을 것 같은 이들이 아들의 건강과 학업을 두고 마음 졸이고 꾸짖는다. 공부가 부족하고 글이 어지러운 아들에게 실망을 표시하고 노력을 당부한다. 스스로 가지 못한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도 한결같다. 학식의 고매함이나 부유함이 아버지의 고민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아들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1766~1848)도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다윈이 사냥에 빠져 지내고, 강아지를 돌보거나 쥐나 잡는 것에만 열중한다고, 그래서는 스스로에게도 집안에도 망신거리밖에는 되지 않겠다고 심하게 꾸짖었다. 집안의 바람에 따라 의사가 되겠다더니 의학공부를 집어치우고, 목사가 되겠다고 해 놓고는 딱정벌레나 쫓아다니던 아들 다윈이 아버지는 미덥지 못했다. 스물 둘의 다윈에게 남아메리카·태평양·동인도제도의 수로를 조사하고, 전 세계 여러 곳의 경도를 측정하는 영국 해군성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돌아왔을 때 로버트 다윈이 반대를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비글호 (이미지 출처: wikimedia)


비글호 항해 지도 (이미지 출처: Darwin Online)


외삼촌의 도움으로 겨우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다윈은 1831년 12월 27일에 비글호를 타고 장도에 올랐다. 자연사 연구를 막 시작한 젊은 다윈의 가슴은 쿵쿵 뛰었다. 아들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이 항해가 세기의 기회가 될 것이라 힘주어 이야기했다.

다윈은 누구도 가지 못했던 길에 자신이 들어섰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그것을 이해해 주길 원했다. 아버지가 원하던 일은 아니지만 자연사가 흥미롭고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비글호 항해에서 다윈이 관찰한 동물들 (이미지 출처: wikimedia)


2년을 기한으로 떠났던 항해는 5년으로 늘어났다. 이 항해를 통해서 다윈은 가문의 망신거리에서 가문의 자랑이 된다. 여행 중에 주고받은 서신이 널리 알려져 당대 학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여행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필생의 업적을 완성했다.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길을 걸은 아들은 아버지의 자랑이 되었다. 비글호의 항해 중에 아버지는 아들의 권유에 따라 바나나 나무를 키웠고, 아들의 은사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헨슬로 교수님, (…) 우리는 찰스의 성공이 선생님의 배려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윈은 자신의 예감대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아버지는 새로운 길을 간 아들에 대한 걱정을 잊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