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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② 노예제에 맞서다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② 노예제에 맞서다

Editor! 2016. 3. 11. 09:38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② 노예제에 맞서다


친애하는 그레이, 

(…) 나는 신문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습니다. 미국은 영국이 행했던 정의를 따르지 않고 있더군요. 나는 북부의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나를 포함해서 몇몇은 비록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지라도 북부가 노예제도에 맞서서 성전을 선포하길 바랍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길 신에게 기도할 지경입니다. 길게 보면 백만의 끔찍한 시체들이 인간성의 원천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고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사추세츠는 고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저주라 할 수 있는 노예제가 폐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861년 6월 5일

언제나 당신의, 다윈


에이브러햄 링컨 (이미지 출처: wikimedia)


비글호 항해를 제외하면 변변한 여행조차 하지 않았던 시골 신사 다윈은 의외로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점심 후 30분은 늘 시간을 내서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좇았다. 특히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과격한 반대자였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전면에 내걸고 북부 연방군에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다윈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예제도에 대한 반대는 다윈이 평생 동안 지녔던 신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국의 식민지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모임에 친구들, 누나들과 함께 나갔다. 이러한 생각은 비글호를 타고 남미를 탐험하던 중 목격한 브라질 노예제도의 참상 때문에 더욱 더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노예 해방 법령을 공표하기 두 달 전인 1833년 6월, 다윈은 친구였던 판사 허버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영국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들으니 너무 좋네. 정직한 휘그당 만세! 나는 그들이 곧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에 극악무도한 오점인 식민지의 노예제도를 공격하기 바래. 나는 노예제도와 흑인들을 사고파는 것을 충분히 보았어. 이 문제에 대해서 영국에 알려진 거짓말과 허튼 소리에 심한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남북전쟁 (이미지 출처: wikimedia)


노예제에 반대하는 다윈의 생각은 집안의 전통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가인 웨지우드 가문 모두 휘그당원이었고 노예제도의 폐지를 지지했다. 이들은 또한 수백만 명의 시민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한 1832년 개혁 법안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다윈은 모든 인종이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했다고 믿고 박애주의를 표방한 단체의 명예회원이었다. 이 단체는 야만인들이 열등한 것은 타고난 것이고 고칠 수 없다고 보았던 인류학회와 대립했다. 이들은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야만인들의 점잖지 못한 예절을 조롱하면서 혹독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 대립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최고조에 다다랐다.


브라질 노예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과학적 관찰과 연구도 그의 정치적 신념을 지지했다. 비글호에서 3년간 함께 생활했던 티에라델푸에고 원주민들의 문명화 과정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정신과 기능의 측면에서 영국 문명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종의 기원’ 이론도 개개 인종이 다른 출발을 보인다는 인종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다윈은 인간에 대한 고찰의 결정판인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이 문명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같은 나라의 모두에게 사회적 본능과 동정심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이것을 모든 나라, 모든 인종에게 확대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인위적인 장벽뿐이다. 

200년 전 같은 날, 즉 1809년 2월 12일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영국 슈롭셔의 부유하고 교양 있는 가문에서, 다른 한 아이는 미국 켄터키의 숲속에서 가난한 개척자의 아들로 세상에 나왔다. 켄터키의 아이는 수백만 명을 노예의 상태에서 구했고, 슈롭셔의 아이는 지성의 빛으로 미신의 사슬을 끊었다. 인종주의와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박애주의자 다윈과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링컨이 같은 날 태어났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아사 그레이 (이미지 출처: wikipida)

★ 아사 그레이(1810~1888년)

당대의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학자로 꼽혔던 인물로 1850년대 초반에 조지프 후커의 소개로 다윈과 인사를 한 후 평생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레이는 북미 대륙의 식물 분류와 관련된 지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다윈과 편지로 많은 토론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다윈의 대리자로서 청교도 교리와 다윈의 진화를 조화롭게 통합하려는 시도를 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