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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학올림피아드 2회 홍콩의 잠 못 이루는 수학자들 본문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는 수학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학생들과 수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성대한 축제입니다. 올해 홍콩에서 열린 올림피아드에서는 한국 대표팀이 세계 2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서, 국제 수학계에서 한국 수학의 저력을 널리 알렸죠. 최근 출간된 카이스트 명강 3 『세상 모든 비밀을 푸는 수학』의 저자 중 한분이신 엄상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님께서는 이번 홍콩 IMO의 한국 대표팀 부단장 중 한 명으로 참가하셨습니다.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 앞으로 3회에 걸쳐 엄상일 교수님의 IMO 원정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미래 수학을 책임질 전 세계 수학 영재들의 경연장인 올림피아드 시험, 각국의 수학자들이 학생들의 해법과 정답을 두고 열띤 논의를 펼치는 채점 협상,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시상 기준과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최종 단장 협상에 이르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흥미진진한 세계를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세계 수학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생생한 현장을 만나보세요.
2회 홍콩의 잠 못 이루는 수학자들
(7월 13~14일, 채점 협상)
글쓴이 : 엄상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IMO에 참가한 학생들이 이틀 간의 긴 시험을 마치고, 7월 13일부터는 이 자리에 모인 각국 수학자들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채점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먼저 IMO에 따라간 수학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살펴볼까요? 학생들이 시험을 보기 전에는 마지막 조언을 주며 그들을 챙기고, 시험을 보는 동안에는 주최국이 주선한 단체 관광도 다녀옵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은 관광을 다니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친교의 시간을 가지는 반면에, 수학자들은 정신없이 바빠집니다. 이틀간 열리는 채점 협상인 코디네이션(Coordination) 전에, 학생들의 답안지를 모두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죠. 주최국에서는 매 시험일마다 모든 학생들의 답안지를 전부 스캔한 후에, 원본을 단장에게 전달합니다.
단장들은 시험이 끝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는 곳에 합류합니다. 이번에는 둘째 날 시험이 있었던 7월 12일 오후에 홍콩과기대학으로 IMO의 각국 단장들이 도착했습니다. 학생들의 11일에 본 답안지를 이미 그날 밤에 받은 단장들은 한국 학생들의 1~3번 문제 답안지를 검토했는데 그때부터 좋은 성적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죠. 이번에는 주최국인 홍콩의 일처리가 조금 늦어서 12일 저녁 식사 이후에야 학생들이 당일에 푼 답안지의 원본을 받았습니다. 바로 13일 오전부터 채점 협상이 예정되었기에 늦은 밤까지 한국 대표 팀의 여섯 학생들이 각각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파악하고, 틀린 경우에도 채점 기준에 따라 얼마나 감점되어야 적정한지 파악하느라 분주했습니다.
한국 팀의 채점 협상 일정표. 하지만 분량이 많아서 제 시간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잦아서 재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드디어 13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IMO의 채점은 코디네이터(coordinator)라고 불리는 채점 위원들과 함께합니다. 각 문제별로 2인 1조의 채점 위원으로 구성된 채점조가 4~6개 정도 있습니다. 각 국가에는 문제에 따라 채점할 시간과 테이블을 지정해 주는 연락이 옵니다. 그곳에서 채점 위원과 점수를 논의합니다. 채점 위원 역시 자신이 맡은 전 세계 학생들의 답안지를 미리 검토해서, 0~7점 사이에 적절한 점수를 준비합니다. 이때 채점은 시험이 열리기 전에, 단장 회의에서 투표로 승인한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보통 채점장에 가서 우리가 생각하는 점수를 먼저 제시하면 채점 위원이 학생들의 답안지를 보면서 궁금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번역을 요청합니다. 이번에 저는 전공을 살려서 2번과 6번의 조합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는데, 꼼꼼한 채점 위원들 덕분에 6명 학생들의 답안지를 일일이 말로 설명하느라 상당히 고생을 했죠.
문제별 국가별로 채점 협상의 진행 상황이 표시되는 모니터.
한 번 채점 협상에 가서 학생들 답안지를 놓고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서 협상을 이어 갑니다. 이런 식으로 채점 일정이 계속 밀리다 보니 한국 팀은 7월 13일에 1번 문제만 채점이 끝났고 14일에는 5문제나 채점 협상을 해야 하는 일정이 되고 말았죠. 14일 아침에 일정표를 보니 11시에 5번, 12시에 3번, 1시에 4번, 1시 30분에 6번, 2시 30분에 2번 문제를 협상하는 일정이어서 계속 채점 협상장만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습니다. 끼니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햄버거로 때웠죠. 채점장에 가서도 협상이 덜 끝나면 일정이 재조정되기 때문에 결국 오후 4시가 되어서야 2번 문제 채점을 끝으로 채점 협상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채점이 진행되면 점수가 일부 공개됩니다. 채점장 밖에 설치된 모니터에 각 국가의 현재 점수가 나오는데 학생별로 1문제의 점수는 가려서 공개하기 때문에, 정확한 순위는 알 수 없게 해 둡니다. 채점장을 들락날락 하는 중간에도 중국, 미국, 북한 등 다른 나라 팀의 성적이 궁금해서 근처의 모니터를 보러 가게 됩니다. 100여 개 나라나 참가하고 있으니 한참을 기다려야 원하는 나라 성적을 볼 수 있죠.
점수 상황판. PRK라고 표시된 북한 팀 학생들의 점수가 일부 보인다.
모든 채점이 끝나면 최종 단장 회의(Final Jury Meeting)가 열립니다. 이 회의에서는 IMO와 관련한 여러 안건을 처리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이번 IMO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수여 기준을 정합니다. IMO에서는 참가자의 수에 따라 참가자의 절반까지 메달을 주고, 그중 1:2:3의 비율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동점자가 많이 나오므로 실제 커트라인을 몇 점으로 할지는 논의를 해야 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IMO의 경우 금메달은 29점 이상, 은메달은 22점 이상, 동메달은 16점 이상으로 정해졌습니다. 마지막 단장 회의에서 커트라인이 정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홈페이지에 점수를 입력해 마우스로 버튼을 클릭하면 IMO 홈페이지인 imo-official.org에 점수와 메달이 바로 공개됩니다. 참고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은 1문제라도 정확하게 풀어서 7점을 받은 참가자에게 수여됩니다.
이번 IMO의 점수 분포. x축은 점수, y축은 학생 수.
이번 IMO에서는 6번보다 3번 문제가 더 어려웠습니다. 3번에서 7점을 받은 학생은 10명밖에 안 되지만 6번은 37명이나 7점을 받았습니다. 3번 문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문제 3. 평면에 볼록 다각형 P = A1A2 ...Ak가 있다. 각 꼭지점 A1,A2, ... ,Ak의 좌표는 모두 정수이고, 이 점들은 모두 한 원 위에 있다. P의 넓이를 S라 하자. 홀수인 양의 정수 n에 대하여, P의 각각의 변의 길이의 제곱이 n의 배수이다. 2S가 n의 배수인 정수임을 보여라.
최종 단장 회의에서 우리나라 학생의 답안지를 보여 주며 설명하고 있는 한국 대표 팀 단장 송용진 교수.
보통은 채점 협상장에서 모든 문제 채점을 하고 결과에 합의하지만, 간혹 점수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는 단장 회의에 가져와서 심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단장 회의에서는 학생의 답안지를 보면서 채점 위원 중 해당 문제 책임자(Problem Captain)가 먼저 그 답안지에 대해 설명하고 채점 위원이 생각하는 적절한 점수를 말하며, 그 후 학생이 소속된 국가의 단장이 나와서 왜 다른 점수를 줘야 하는지 설명을 합니다. 몇 차례 질의응답이 이어진 후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점수를 정합니다. 이제까지 3번의 IMO에서 최종 단장 회의에 참석했지만 한번도 단장이 원하는 점수가 승인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변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 중 1명의 2번 답안 점수를 합의하지 못해서 단장 회의까지 갔습니다. 표 안에 1, 3, 2라고 쓰면 되는데 1, 2, 3이라고 자리를 바꿔 쓰는 오타 하나로 1점 감점을 당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취지로 하소연을 했는데 많은 나라 단장들이 호응을 해 줘서 그 학생은 2번 문제에서 7점을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41점이 아닌 만점을 받았습니다.
(3화에 계속)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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