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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응답하라 1977, 추억 속 골든 레코드

Editor! 2016. 9. 26. 15:09

한국 SF전문가 박상준 선생님이 수십 년간 기다림 끝에 출간된 『지구의 속삭임』을 두고 감격과 애정을 담아 보내신 서평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보이저호와 골든 레코드는 40여 년 전에 지구를 떠났지만 ‘외계와의 소통’이라는 꿈은 우주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수많은 SF 작품에 영감을 주었는데요. 보이저호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의 편지를 가슴에 품은 채 코스모스를 항해하는 듯한 즐거움과 낭만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코스모스 키드’였다. 중고생 시절 칼 세이건(Carl Sagan)의 책 『코스모스(Cosmos)를 끼고 살았다. 물론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 개인적 탐사」(1980년)도 애청했다. 당시에 다른 교양 천문학 책들도 있었는데 왜 세이건에게 열광했나 돌이켜 보면, 학문의 경계를 넘어 SF 스토리텔링으로 확장되는 상상력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코스모스’에서 맨 처음 흥미를 끌었던 부분도 가상의 우주선을 타고 여행한다는 설정이었으니까.


『코스모스』 책 표지.


어느 날,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에 갔다가 수입 외서 코너에서 칼 세이건의 책 『The Cosmic Connection』을 봤다. 가상의 외계 문명에 대한 그림이며 우주 탐사선 파이오니어 10호에 실은 지구인 소개 명판 같은 내용들이 잔뜩 있었다. 과학보다는 과학적 상상력을 담은 SF에 더 심취했던 나는 그 책을 쓴 세이건에게 더욱 더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아직까지도 한국어판이 안 나와서 아쉽다.)


대학 신입생 시절, 칼 세이건이 드디어 직접 SF 소설을 쓴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행본 출판에 앞서 『콘택트(Contact) 내용 일부가 과학 잡지인 《디스커버리(Discovery)》에 몇 회에 걸쳐 실렸는데, 친구들 몇몇과 함께 도서관 해외 간행물 열람실에서 그 부분을 복사해 같이 읽으며 영어 공부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보이저호와 골든 레코드(출처: 칼 세이건 외, 『지구의 속삭임』,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그러다가 세이건에 대한 흠모가 한 정점을 찍게 되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지구의 속삭임(Murmurs of Earth) 원서를 발견한 것이다! 보이저 우주선의 ‘골든 레코드’에 대한 모든 자료를 담은 책. 이게 SF가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기에 골든 레코드에 실린 한국말 인사를 들어 볼 방법은 막막했지만, 그래도 한글 필기체 인사말이 실린 페이지를 보며 자못 감격에 겨웠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보이저 우주선조차 이미 태양계를 벗어난 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한국어판이 나온 것이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한국어 인사는 여기서 들을 수 있다. [바로가기])


수십 년 묵은 감회를 느끼며 『지구의 속삭임』을 펼쳐 보니, 이 책 자체가 40여 년 전의 과거 세계가 보낸 타임캡슐 같은 느낌이다. 수록된 사진에 실린 사람들의 의상 스타일, 거리 풍경, 심지어 사진의 색감까지도 60~70년대 과거의 향수가 물씬 풍긴다. 어쩌면 이 골든 레코드는 미래 인간들에게 보내는 20세기 과거인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보이저호와 골든 레코드를 만든 과학자들은 당시의 기술 수준에서 참으로 웅대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진보된 기술로 저비용 고효율의 정보 저장이 가능하지만, 칼 세이건 같은 인물이 없어서인지 골든 레코드와 같은 계획이 또 진행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던 것 같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지구와 인류 문명의 사진들. 골든 레코드에는 총 118장의 사진이 실렸으며 그중 20장이 컬러 사진이다.

(출처: 칼 세이건 외, 『지구의 속삭임』,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보이저의 골든 레코드는 지구라는 한 행성의 지적인 존재가 우주 저편으로 자신들의 정보를 날려 보낸다는 SF 같은 계획의 실제 결과물이다. 당연히 SF 작가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소재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1984년에 나온 영화 「스타맨(Starman)」(1984년)이 있다. 외계인이 보이저의 골든 디스크를 보고는 지구로 찾아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우주선은 미사일에 격추되어 호수에 추락하고, 거기서 나온 외계 존재는 인간의 유전자를 복사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인 과정은 죽은 사람의 모발에서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여 불과 몇 십 분 사이에 갓난아기에서 성인까지의 성장 단계를 순식간에 거치는 것이었는데, 그전까지의 틀에 박힌 외계인 묘사들에 비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스타맨> 포스터


이 외계인은 사람의 육체를 갖게 되었지만 근육을 쓰는 방법 등은 몰랐기에 처음엔 뻣뻣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는 오로지 보이저의 골든 레코드에 실렸던 내용만을 토대로 학습한 것이기에 말을 하다가 중간에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말하고 싶은 문장이 우연히 노래의 가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부분을 말할 때에는 노래처럼 불러야 하는 걸로 잘못 해석한 때문이다. 


「스타맨」의 외계인은 보이저의 골든 레코드가 담고 있는 평화의 메시지에 부응한 때문인지 지구에서도 줄곧 평화와 치유의 행적만을 보이다가 다시 고향별로 돌아간다. 개봉 당시 반응이 좋아 TV 연속극으로 후속편이 만들어졌으며 이 미드는 우리나라 TV에서도 방송했다. 


영화 <스타맨> 스틸컷


이번에 『지구의 속삭임』 책을 보니 골든 레코드에 우리 인간들의 평화로운 모습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기근 같은 부끄러운 장면들도 실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정적인 내용을 제외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미 지적인 외계 존재가 그런 걸 보았다면 지구인이라는 종족이 꽤나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만약 그랬다면 「스타맨」의 외계인은 지구에 와서 뭔가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걸로 묘사되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구성 능력을 지닌 시나리오 작가라면 골든 레코드의 그런 어두운 부분을 틀림없이 스토리에 반영했을 것이다. 


사이언스북스에서 꾸준히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번역 출간하는 것이 무척 고맙다. 오래전에 원서들로 어렵게 접했던 책들이 늦게나마 하나씩 나오는 걸 보면서 나 스스로도 몇 십 년 전 처음 칼 세이건에게 흠뻑 빠졌던 순간이 새롭게 살아오는 경험을 했다. 비록 세이건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보이저의 골든 레코드만큼 오래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지구의 속삭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