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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⑭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전 짚어야 할 세 가지 본문
지난 10월 20일 공론화 위원회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정부에 권고했고 23일 오늘 문재인 정부가 이를 수용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탈핵을 둘러싼 찬반 진영의 치열한 공방이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공사 재개 여부와 탈핵 이슈가 결합되면서 복잡하게 진행되었던 이번 공론장의 열기는 그 결과를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며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수십 년간 핵에너지는 안전하다고 학습되었고 또 수천억 원어치의 핵 발전소 홍보가 이뤄진 상황에서 숙의 민주주의는 적절한 해법이었을까요? 이와 같은 결과는 탈핵, 탈석탄을 기조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에너지 전환의 시대를 앞두고 이번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곧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될 『탈핵의 논리(가제)』의 저자 강양구 기자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을 심층 분석하며 에너지 전환의 조건과 방향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핵 발전소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를 결정한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을 놓고서 설왕설래가 많다. 따져 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는 딱 세 가지만 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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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든 ‘숙의’ 민주주의든 ‘대의’ 민주주의든 그 절차 자체가 결과의 ‘최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20대 청년부터 80대 고령”까지 다양한 시민 417명이 나름의 ‘숙의’ 과정을 거쳐서 내린 결론이라고 해서 꼭 최선은 아니다. (설사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결정이 나왔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충분치는 않더라도) 시민이 직접 참여해서 내린 결정이니 “무조건 옳다.”라는 태도는 옳지 않다. 더구나, 이런 태도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이후에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를 말 그대로 ‘공론’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출처: flickr
당장 한때 “어떻게 비전문가가 에너지 정책에 왈가왈부할 수 있느냐?”라고 쌍심지를 켜 온 핵 산업계 인사들이 “이제는 시민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라. 과반수가 핵 발전소 축소를 지지한 정황은 외면하고, 이참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자체를 “(시민의 뜻대로) 재고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공론화 위원회 실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번 과정의 가장 큰 의의는 그동안 전문가가 의사 결정을 독점해 온 에너지 정책에도 시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 지적하듯이, 이것 역시 딱 의의일 뿐이지 충분하지는 않았다.
출처: flickr
둘째, 다시 반복하자면 이번 공론화 위원회의 실험은 ‘숙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충분하지 않다. 합의 회의, 시민 배심원 등 과학 기술 영역에서의 시민 참여 모델이 그간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그런 시민 참여 모델의 의제 대다수가 ‘새로운’ 과학 기술 이슈였다.
왜일까? 유전자 변형(GM) 식품, 이종 간 장기 이식, 전자 주민 카드 등 새로운 과학 기술은 해당 의제에 대한 시민의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그 의제 자체가 ‘공론’이 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소수의 찬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사회 전체에 이해관계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슈에 대한 숙의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시민 참여는 의미가 있다. 시민은 해당 이슈에 대한 이해의 ‘공백’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 식견 등에 바탕을 두고서 습득한 정보를 평가하고, 재구성해서 새로운 이해를 구성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찬반 전문가를 비롯한 소수의 이해관계자도 시민과 상호 작용하면서 공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신고리 5, 6호기의 경우는 어땠을까?
신고리 5, 6호기는 이미 상당 수준 공사가 진행되어 물적 실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여러 이익 집단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핵 마피아’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핵 산업계-학계(서울대, 카이스트 등)-관료(산업통상자원부, 과학 기술정보통신부)-언론-주민 등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강고한 ‘이해관계 연결망’이 존재한다.
시민의 상황도 무관하지 않다. 이번 시민 참여단에 참여한 417명 대다수는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10년 이상 ‘미래 에너지는 핵 발전소’ 같은 얘기를 학교, 언론 또 일상생활을 통해서 들었던 상황이다. 이런 프레임이 말 그대로 ‘뇌리에 박혀 있는’ 시민 다수에게 불과 33일의 짧은 시간 동안 (형식적으로는) 찬반 양쪽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했을까?
출처: flickr
셋째, 이번 공론화 위원회 결과에서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번 신고리 5, 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둘러싼 토론 과정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해관계 연결망’의 중요성이다. 핵 발전소에 ‘밥줄’을 걸고 있는 이들은 이런 토론이 진행되면 마지노선이 없다. 당장 ‘밥줄’이 끊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죽기 살기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자. 지난 수십 년간 정부가 핵에너지에 투자한 만큼 태양, 풍력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했다고 가정해 보자. 원자력 문화 재단이 그랬듯이 연간 수백억 원의 예산을 ‘재생 가능 에너지가 미래 에너지’라면서 그것의 미래 가치를 홍보하는 데 썼다고 생각해 보자. 공중파나 종합 편성 채널을 틀면 그런 광고로 도배가 되었다면?
서울 대학교나 카이스트 안에 재생 가능 에너지를 연구하고, 업계의 인력을 육성하는 전공 과목이 있었다면? 교과서에 재생 가능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취급되고, 현장 학습도 핵 발전소가 아니라 풍력 발전 단지를 가는 식이었다면? 과학 기술 정보 통신부의 국장이 이른바 ‘재생 가능 에너지 특채’ 출신이라면? (현재 원전 업무를 맡고 있는 국장이 바로 ‘원자력 특채’ 출신이다!)
더 나아가서 10대 재벌 가운데 상당수가 태양광 산업이나 풍력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산업의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개미, 기관 투자자가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 또 그런 산업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역 주민의 수도 만만치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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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런 이해관계 연결망이 있었다면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의 결과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아니, 애초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공약을 밀어붙이는 대신 공을 공론화 위원회에 떠넘기는 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재생 가능 에너지의 이해관계 연결망을 어떻게 확대할지 고민과 실천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전 불가능한’ 탈원전 정책이 가능할 유일한 길이다. 한 가지 제안하자면, 일단 산업 통상 자원부 산하의 원자력 문화 재단부터 없애서 ‘재생 가능 에너지 문화 재단’으로 바꿔라. 그리고 내년(2018년도) 예산에서 핵에너지 연구, 육성 관련 항목을 대폭 삭감하라. 당장 ‘원자력 특채’ 출신 고위 관료부터 처리하라.
이번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둘러싼 논란으로 증명되지 않았나? 원자력 산업계는 굳이 그렇게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역량이 충분하다.
강양구(프리랜서 기자 및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6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프레시안》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서 메르스 사태, 황우석 사태, 광우병 사태 등을 보도했고, 앰네스티 언론상(2005년), 녹색 언론인상(2006년)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전2권, 공저) 등이 있다. 지식 큐레이터로서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팟캐스트 「과학 수다 시즌 2」, 「책걸상」을 진행하고, 교통방송(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서 매주 사이언스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지금까지 연재된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바로가기]
2. 석유 시대의 종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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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후 변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바로가기]
5. 원자력 르네상스는 없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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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新)기후 체제를 준비하며: 핵에너지 너머의 세상을 꿈꾸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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