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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을 만나다
과학해서 행복합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운
달이 내려다본다
16년 만에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제자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하셨다. 물리를 전공하셨음에도 생물 수업을 맡으셔야 했다며, 누가 어려운 질문이라도 할까 조마조마했던 순간들도 멋쩍어 하셨다. 그 자리에서 내 입으로 말씀 드리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신 채 열정을 간직하고 계신 우리 선생님께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물론 대학 입시니 취업 관문을 통과하고 난 뒤 갑작스럽게 너그러워진 눈으로 나의 학창 시절을 애써 미화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영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나서 과학 편집자가 된 이유는 책을 사랑하고 과학을 사랑하기 때문이겠고, 무엇보다 그 점을 북돋아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과학 시간은 제일 기다려지는 수업이었는데, 성실하게 진도를 나가시면서도 여러 가지 책이나 역사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 덕분이었다. 내가 그 시절 쓰던 과학 공책들을 보관해 온 것은 물론 완벽한 필기가 수능 시험 복습용으로 안성맞춤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꿈을 꾸던 때의 추억도 간직하기 위함이다. 사실 소장의 융털이니, 생태계의 먹이 그물 그림은 지금 봐도 제법 잘 그렸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칠판에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라고 적으신 다음 사뭇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셨다. 우리는 궁금증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재빨리 그 기대에 부응했다. 선생님의 추천 목록은 서점의 청소년, 문학 서가 앞에서만 맴돌던 내가 다른 서가 쪽으로도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자유사상사, 1993년)라는 책을 찾아 달라며 서점 직원들을 혼란에 빠트린 끝에 손에 넣은 그 책은 역시 선생님의 추천 도서였던 『이야기 파라독스』(사계절출판사, 1990년)와 함께 지금도 나란히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다.
'리처드 파인만을 만나다'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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