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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③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본문
과학+책+수다 두 번째 이야기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책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밌어지는 이야기! 한 권의 책을 놓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두 번째로 ‘과학+책+수다’에 오른 책은, 2010년 처음 출간된 이후 한국에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오래된 연장통』!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진화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거머쥐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진화 심리학의 뜨거운 이슈들을 전하고 계신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모시고 수다를 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과학+책+수다’는 몇 개월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만 담당 편집자의 갑작스러운 공석으로 정리가 늦어졌습니다. 전중환 교수와 담당 편집자의 오랜 인연으로 시작해 알려지지 않은 전중환 교수의 과거까지 샅샅이 파고드는 ‘수다’에 독자 여러분들도 즐겁게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➂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전중환: 처음 번역된 『욕망의 진화』를 읽어 보라며 던져 주신 것도 최재천 교수님이셨죠.
편집자: 아, 그래요?
전중환: 미시간 대학교에서 함께 재직하던 동료 교수의 책이라며 소개해 주셨어요.
편집자: 선생님께서 제일 처음 진화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시게 된 통로가 매트 리들리나 로버트 라이트 같은 저널리스트들이 쓴 대중 교양서라는 게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전중환: 무엇보다 최재천 교수님이 한국에 안 계셨으면 이런 길을 못 갔겠지요. 그래도 석사 때는 개미를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졸업은 해야 되니까요. (웃음)
편집자: 선생님께서 유학 가셨을 때랑,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이랑 비교해 보면 진화 심리학계 양상은 어떻게 좀 변화가 있나요?
전중환: 학문 자체가 그동안 상당히 성립이 됐지요. 한 예를 들면, 심리학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Psychological Review》나 《Psychological Bulletin》 같은 데서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쓴 논문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데이비드 버스는 진화 심리학계 주류 저널들,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같은 데들뿐만 아니라 일반 심리학 학술지들에도 논문을 많이 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편집자: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겠죠?
전중환: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점점 똑똑한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계로 찾아오고 있고요.
편집자: 우리는 어떤가요?
전중환: 일단 심리학과 학생들이나 대학원생 중에서도 진화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고 개별적으로 연락해 오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편집자: 그런데 국내에서는 진화 심리학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적지 않나요? 아까 『도덕적 동물』이나 『붉은 여왕』 얘기도 나왔지만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 진화 심리학 관련한 책들은 꽤 많이, 꾸준히 번역되고 소개되어 왔던 것 같아요. 진화 심리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계속 커져 왔던 것 같고요. 그런 거에 비하면 학문적으로 봤을 때 아직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진화 심리학을 연구하는 곳들이 늘었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듯해 아쉬워요.
『욕망의 진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이 사실 진화 심리학을 국내에 널리 알리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웃음) 다만 이 책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바래시의 책들이라든지, 아무래도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주제들을 선정해서 번역하다 보니까 진화 심리학 내에서도 남녀의 짝짓기에 관련된 내용들이 주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 듯도 하구요. 데이비드 버스는 거의 인간 짝짓기계의 구루 같은 존재? 그런 느낌이 들게끔 말이죠. (웃음) 해외 과학 기사를 소개하는 국내 언론사 기사를 봐도 그런 부분에 치우쳐 있어서 진화 심리학을 남녀의 짝짓기만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전중환: 외국에서도 그런 오해를 많이 합니다.
편집자: 그런가요?
전중환: 일단 애초에 짝짓기 자체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요. 짝짓기와 관련해서는 진화 심리학자가 아닌 기존 주류 심리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게 사실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 개론서라도 이 부분, 예를 들어, 낭만적 관계를 들추면 진화 심리학을 그다지 크게 취급하지 않은 책이더라도 데이비드 버스의 연구가 나오는 것이지요. 실제로 심리학 개론서를 보면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건 이타성, 협력 같은 것들입니다.
편집자: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오래된 연장통』이 그런 진화 심리학을 짝짓기뿐만이 아니라, 도덕, 정치, 협동, 이런 여러 가지 주제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개괄적으로 잘 소개해 주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시작점이 된 글이 APCTP(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렸던 「버스가 도착했다」였던 것 같은데 기억나시죠? 선생님 스스로도 이 글 제목 참 잘 지었다며 자평하셨는데 말이죠. (웃음)
전중환: 그 글은 《크로스로드》 연재물들을 모은 다른 책에 실렸죠.
편집자: 『과학이 나를 부른다』일거예요. 이 「버스가 도착했다」가 다윈 혁명이 이제 막 도착했으니까 버스에 올라타라 그러면서 데이비드 버스의 ‘버스’와 탈거리 ‘버스’를 중의적으로 쓴 거라며 제목 잘 지었다고 자랑하시던 기억이 나요. 글 제일 마지막 문구가 이거였죠. “다윈 혁명은 왔다. 이제 버스에 올라타자.”
『오래된 연장통』 관련 자료들도 좀 찾아봤는데요, 처음 계약할 당시 기획안 제목은 ‘다윈 씨, 21세기의 인간을 만나다’였더라고요. 최종 책으로 나오기까지 제목 안을 진짜 수백 개는 뽑았었는데.
전중환: ‘마음의 목적’이라는 제목도 있었죠. 출판사에서 절대 안 된다고 했었던. (웃음)
편집자: (웃음) 네. ‘진화, 마음을 읽다’ 이런 것도 있었고요.
전중환: 아, 그 제목은 책 나오고 나중에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강연할 때 써 먹었어요. (웃음)
편집자: 중간 과정에서 나온 게 ‘손때 묻은 연장통’, ‘해골 안의 석기인’, ‘오래된 연장통’도 있었고. ‘공중제비 도는 멧돼지’, 이건 왜 적었는지 모르겠어.(웃음) ‘석기 시대의 마음’, 이런 것도 있고. 나중에 이런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지 않았어요? 21세기 메트로폴리탄에서 표류하는 석기 시대의 마음, 잡식성 영장류의 초상.
전중환: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네요.
편집자: 나중엔 너무 결정이 안 되니까 선생님하고 전화통을 붙들고 두세 시간 제목을 이것저것 던져 보고 그랬었죠.
전중환: 그랬죠. 그리고 제가 툴박스(toolbox)를 ‘연장통’이라고 부르자고 했었지요.
편집자: 네. ‘낡은 공구 상자’, ‘낡은 연장통’, 막 이러다가 결국은 ‘오래된 연장통’이라고 하자, 이렇게 최종적으로 결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표지에다 제목을 앉히고 책이 출간되는 마지막까지도 이 제목으로 나가는 게 맞을지 반신반의하며 조마조마했지만요. (웃음)
얼마 전 『오래된 연장통』 증보판을 출간하면서 ‘증보판에 붙여’에 간략하게 쓰시기도 하셨는데, 최근 진화 심리학계 경향 같은 게 있다면 간략하게 얘기 좀 해 주세요.
전중환: 일단 진화 심리학은 계속 잘 발전해 왔고, 하고 있고, 점점 더 통섭에 나서고 있습니다. 진화 심리학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을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논문을 싣는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같은 학술 저널에도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수학적 모델 같은 것들이 많이 실리고 있고요.
편집자: 학문이 점점 더 정교화되고 있다는 뜻이겠죠?
전중환: 그러니까 점점 더, 그야말로 아주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학자들도 진화 심리학 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예를 들어 스튜어트 웨스트 같은 행동 생태학자들도 원래는 유전학이나 진화론 등에서 굉장히 어려운 이론을 모델링하던 분들인데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논문을 내고 있거든요.
편집자: 그럼 방법적으로 더 정교해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연구 주제는 어떤가요?
전중환: 연구 주제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죠. 마케팅이라던가, 리더십이라던가, 민담이나 동화, 이런 쪽도 다루고 있고. 아니면 정책적인 측면에서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해서라던가.
편집자: 거대 주제들도 많이 다루지 않아요? 정의라던가.
전중환: 도덕도 연구를 많이 하지요. 저도 영향을 받았고요.
편집자: 선생님 연구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주세요. 아, 아직 얘기하면 안 되나요? (웃음) 도덕적 혐오와 관련된 거죠?
전중환: 최근 썼던 논문은 전에 얘기한 것처럼 상하 관계의 위계질서에 관련된 것인데요.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도 사람들은 도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편집자: 그게 조너선 하이트의 다섯 가지 도덕 감정에 포함되는 것인가요?
전중환: 맞습니다. 하이트의 다섯 가지가 첫 번째는 돌봄, 두 번째는 공정, 세 번째가 권위, 네 번째가 집단에 대한 충성, 다섯 번째가 혐오, 순결이죠. 저는 권위, 상하의 우열 관계와 관련된 도덕에도 생리적인 혐오가 관련되어 있다, 그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예를 들어 제가 어디선가 똥을 보고 와서 직장 상사를 봤어요. 그러면 그 생리적인 혐오감이 더 연상이 돼서 상사에게 더 반발을 하게 된다는 건가요?
전중환: 상사의 행동에 대해 더 엄격한 판단을 내린다는 거지요.
편집자: 어떤 행동에 대해서인가요? 예를 들면 상사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 그런데 내가 똥을 보지 않았을 때는 그 행동을 참고 넘어가는데, 똥을 보고 그 행동에 직면했을 때는 못 참는다. 이런 식일까요?
전중환: 네. 그런 식입니다.
편집자: 오. 재밌네요.
전중환: 그런데 보통 권위에 관련된 도덕이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건방지고 불손하게 구는 것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한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잘 이끌고 다독거려 주고 모범을 보이는 것도 권위에 관련된 도덕에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쉽게 말해 갑질을 하고 방관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을 때, 이런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혐오가 개입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랫사람이 불손한 행동을 했을 때에는 혐오가 개입을 하지 않고, 분노가 개입을 하지요. 우리가 비용을 감수하면서 직접적으로 처벌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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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동물』 [도서정보] 바로가기
▶ 『욕망의 진화』 [도서정보] 바로가기
▶ 『과학이 나를 부른다』 [도서정보] 바로가기
과학+책+수다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욕망의 진화』로 시작된 인연 (바로가기)
②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바로가기)
③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④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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