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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④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본문
과학+책+수다 두 번째 이야기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
책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밌어지는 이야기! 한 권의 책을 놓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두 번째로 ‘과학+책+수다’에 오른 책은, 2010년 처음 출간된 이후 한국에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오래된 연장통』!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진화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거머쥐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진화 심리학의 뜨거운 이슈들을 전하고 계신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모시고 수다를 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과학+책+수다’는 몇 개월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만 담당 편집자의 갑작스러운 공석으로 정리가 늦어졌습니다. 전중환 교수와 담당 편집자의 오랜 인연으로 시작해 알려지지 않은 전중환 교수의 과거까지 샅샅이 파고드는 ‘수다’에 독자 여러분들도 즐겁게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④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편집자: 이제 거의 마지막 질문에 접어드는데요, 저는 『오래된 연장통』 보면서 재밌었던 게, 선생님께서 진화 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의 대가들에 대해서 굉장히 해박하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혹시 그중에 진화 생물학자든, 진화 심리학자든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닮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으신지요?
전중환: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윌리엄 해밀턴이 있죠.
편집자: 어떤 점에서요?
전중환: 저도 약간 하나에 파묻히면 다른 건 생각 안 하고 거기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인데요. 리처드 도킨스가 해밀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같이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 있을 때, 과에 무슨 재밌는 세미나가 있으니까 같이 보러 가자, 며칠 몇 시다, 이런 건 해밀턴한테는 알려줘 봤자 소용없다는 얘길 해요.
편집자: 왜요?
전중환: 그냥 자기 오피스에 파묻혀서 연구를 하느라, 신경을 안 쓰는 거지요.
편집자: 아, 연구실에서 안 나오는군요.
전중환: 그러니까 미리 과에서 이메일을 보내거나, 도킨스가 며칠 전에 같이 보러 가자고 얘기를 해 둔다거나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도킨스는 10분 전에 가서 방문을 두드리고는 “가자!” 그랬답니다. 그러면 해밀턴이 “왜?”라고 묻고 그때 이런저런 세미나가 있다고 얘기를 해 주면 해밀턴이 그제야 빙긋 웃으며 따라 나온다는 거지요.
해밀턴 스스로도 ‘나는 영화도 모르고, 연예인이 뭔지도 모르고, 인간 사회를 사는 데는 그야말로 나는 젬병이다. 그러나 ’자연 세계에 대한 것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 이렇게 말했어요.
편집자: 그렇군요.
전중환: 딴 건 다 내팽개치고 하나에만 몰두를 하는 그런 게 저도 좀 있어서……. 좋은 의미만이 아니라. (웃음) 그런 거 때문에 가끔 아내나 장모님한테 한소리 듣기도 하죠. 예를 들어 제 처가는 현관문을 꽉 닫아야 자동으로 잠금이 되는데, 그런 걸 신경 안 쓰고 그냥 제가 나가 버려서 문이 안 잠긴 상태로 있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말이죠. (웃음)
편집자: 안타깝게도 해밀턴은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까, 실제로 뵌 분 중에 좋아하는 학자는 누가 있으신가요?
전중환: 실제로 본 사람 중에서는 사실, 원래 좋아했던 사람이기도 했지만, 리처드 알렉산더가 좋았습니다.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알렉산더는 기본적으로 제자를 무척 잘 키우는 사람이거든요. 따뜻하고, 예를 들어 학생이 뭔가를 물어보면 잘 대해 주고, 본인 생각을 얘기해 주고.
편집자: 선생님으로서 되게 좋은 표본이네요. 학생을 가르치고 키우는. 그냥 학자로서 좋은 사람이 있고, 선생으로서 좋은 사람이 있는데, 알렉산더는 둘 다 가진 거네요.
전중환: 그렇죠. 아무리 젊은 제자라고 해도, 그야말로 토론을 격의 없이 하고 그러거든요.
편집자: 데이비드 버스는요?
전중환: 최재천 선생님과 데이비드 버스는 당연히 제일 존경하는 분들이죠. 데이비드에 대해서는 대학원에 있을 때 전혀 그 어떤 불만도 없었습니다.
(위) 최재천 교수, (아래) 데이비드 버스
편집자: 정말로요?
전중환: 약간 미국인다운 그런 건 있지요. 미국인답게 합리적인 면이 약간은 거슬리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데이비드는 방학 때가 되면 외국을 간다거나 학교에 안 나오는데, 만약에 학교에 나왔는데, 대학원생들이 같이 연구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그러면, “난 방학 때는 안 가르쳐 준다.” 이렇게 말하죠. (웃음)
편집자: (웃음) 미국은 방학 때는 월급을 안 주잖아요.
전중환: 연봉 자체를 9개월인가, 10개월인가로 상정해서 주죠. 그렇다고 실제로 안 가르쳐 주고 그런 건 아니에요. 방학 때도 필요하다고 그러면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방학 때는 페이를 받지 않으니까라는.
편집자: 합리적이네요.
전중환: 저도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데이비드는 따뜻한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되게 깔끔하게 합리적이라고 할까요? 특히 공적인 일은 원칙대로 딱 처리를 하면 끝이고 전혀 뭐 어떤 사적인 정에 얽매이고 그런 게 없으니까요. 딴 데 가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실제로 대할 때도 편합니다. 그냥 제 할 일 하면 되고요. 물론 그러면서도 같이 저녁 먹거나 할 때 어울리면 데이비드가 먼저 망가지기도 하고 그러죠. (웃음)
편집자: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데이비드 버스를 인터뷰한 적 있잖아요. 그때 인터뷰 사진을 찍어 주실 사진작가를 저희 쪽에서 섭외를 했었는데 미리 작가이게 대충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얘길 했었어요. 그런데 그걸 작가가 선생님한테 얘기를 했나 봐요. 재밌는 건 선생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대로 자세를 취해서 사진을 다 찍어 주신 거예요. 선생님 책 한국어판을 들고 찍어 주십사 했는데 다 들고 찍어 주시고. (웃음)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 사실 귀찮아 할 수도 있거든요. ‘뭘 그렇게 찍어?’ 하고. 완전 호감형이 되셨어요, 그때. (웃음)
전중환: 굉장히 성실하고 똑똑하죠. 저는 운명의 장난인지 그야말로 석사, 박사 모두 자유방임주의 교수님을 만났어요. (웃음) 데이비드 버스도 기본적으로는 자유방임이에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질 않고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타입.
편집자: 그러면 연구 주제 잡는 것도 굉장히 편하게 하셨겠어요?
전중환: 그랬죠.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도 교수의 지도나 도서관에 대한 접근이라든지, 아니면 과 세미나에 학자들을 불러온다든지, 그야말로 모든 형태의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고 그 자원을 획득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는 마인드. 자원은 이렇게 펼쳐져 있으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가라. 필요하면 다른 학과, 가령 생물학과 교수들에게 찾아가서 공동 연구를 해도 좋다는 식이죠.
편집자: 마지막 질문인데요,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저는 선생님께서 진화 심리학이나 진화 이론의 역사에 대해 갖고 계신 해박한 지식을 잘 엮고 풀어서 써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전중환: 저도 그런 생각은 있어요.
편집자: 그렇죠? 역시. 해밀턴 빠돌이이시니 해밀턴은 당연히 넣고. (웃음)
전중환: 해밀턴이나 아까 얘기했던 조지 윌리엄스 같은 인물들도 넣고요. 윌리엄스 책은 제가 번역을 했지만 아무래도 학술서다 보니 사람들이 어렵다고 잘 안 보더라고요.
편집자: 그러니까요. 과학 책은 완전 대중서라도 보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학술적인 내용이라면 보기가 쉽지 않죠. 그러니까 국내물이 필요한 거예요. 선생님만큼 진화 이론과 거기 엮인 인물들 자체에 대해서 빠삭하게 아시는 분도 없으니 꼭 책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전중환: 한 번 봅시다.
편집자: 오늘 감사했습니다.
과학+책+수다 전중환 편 (끝)
▶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바로가기
▶ 『이웃집 살인마』 [도서정보] 바로가기
▶ 『욕망의 진화』 [도서정보] 바로가기
▶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도서정보] 바로가기
과학+책+수다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욕망의 진화』로 시작된 인연 (바로가기)
② 진화 심리학, 응답하라 1994! (바로가기)
③ 『오래된 연장통』의 오래된 뒷이야기 (바로가기)
④ 진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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