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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⑨ 못 이룬 첫사랑 패니 본문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⑨ 못 이룬 첫사랑 패니
사랑하는 찰스,
(…) 결정된 내 운명은 움직일 수 없어. 주사위는 던져졌어. 사랑하는 찰스, 너보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친구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너야말로 내 선택과 내 앞날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유일한 사람이야. 나는 비둘프 씨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무척 좋아한단다. 그이는 온화하고 좋은 품성을 지닌 남자야. (…) 이름이나 상황이 바뀐다고 여러 해 동안 내가 네게 주었던 진심과 애정이 줄어들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야. 네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첫 번째로 찾지 않는다면 상심이 클거야. (…) 이젠 안녕. 하늘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너를 보살피길 바라.
1832년 3월 1일
패니 오웬
사랑하는 캐롤라인,
(…) 패니가 비둘프 부인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 잠이 들 때까지 패니의 이름을 되뇌고 있지. 이 상황을 냉철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무엇을 생각하고 말해야 할지 침침한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이야. 사랑하는 패니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서 울부짖고 있어. 내 생각, 감정, 쓰고 있는 글들이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울음을 터뜨리다 너털웃음을 짓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해.
1832년 4월 6일
찰스 다윈
찰스 다윈 (이미지 출처: wikimedia)
가장 많이 알려진 다윈의 초상화를 보면 얼굴이 절반쯤 턱수염에 묻혀 있다. 40대 중반부터 기르기 시작한 수염은 어찌 보면 가면 같은 것이었다. 시원찮은 건강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뜻에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인이 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팬 다윈의 초상화를 보면서 떠나는 첫사랑에 애를 태우던 청년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윈의 일생에서 부인 엠마 이외에 등장하는 여자는 단 한 명, 동네 친구였던 패니 오웬이다. 서너 해 동안 사귀었지만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떠나자마자 패니는 유망한 젊은 국회의원 비둘프와 결혼해 척크 성(城)에 정착했다. 패니는 다윈에게 좋은 친구로 남아달라고 했지만 다윈의 심정은 괴롭기 그지없다. 다윈이 패니에게 보낸 편지는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누나 캐롤라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인을 잃은 다윈의 열정과 슬픔을 짐작할 수 있다. 평범하든 비범하든 사람이 살면서 비슷한 일들을 모두 겪는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엠마 다윈 (이미지 출처: darwin-online)
캐롤라인 다윈 (이미지 출처: peterboyd)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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