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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⑪ 평생의 친구 후커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⑪ 평생의 친구 후커

Editor! 2016. 8. 12. 09:57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⑪ 평생의 친구 후커


후커 선생 (…) 항해에서 돌아온 이후 남반구 섬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말고도 두서없이 이 일 저 일에 몰두하고 있다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은 일이라 수군대리라는 것도 알고 있소. 갈라파고스에 있는 생명체들의 분포, 내가 가능하면 가리지 않고 수집하려했던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포유류 화석의 특징들에 푹 빠져 있다오. 어쩌면 이것들이 종(種)이 무엇인가를 밝힐 방법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소. 

나는 농학과 원예학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으면서 끊임없이 사실들을 수집하고 있소. 마침내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오. 출발점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나는 종이 변화한다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소. 이 이야기를 하자니 마치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이오. ‘진보의 경향’이라든지 ‘동물들의 의지에 따른 적응’과 같은 라마르크의 이야기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소. 변화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전혀 다르지만 종이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라마르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소. 내가 생각하기에 종들이 절묘한 적응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하게 되는 간단한 방법을 찾은 것 같소.(…)

1844년 1월 11일

찰스 다윈



조지프 후커 (이미지 출처: wikimedia)


다윈만 새로운 세상을 볼 행운을 잡았던 것은 아니다. 다윈보다 여덟 살 어린 조지프 후커(1817~1911)도 이레버스호를 타고 1839년부터 4년간 남극·뉴질랜드·태즈메이니아를 탐험할 기회를 얻었다. 보조 의사이자 자연학자로 승선했던 후커의 임무는 다윈과 비슷했다. 배가 닿는 곳의 자연사를 연구했다. 비글호 항해기를 읽고 다윈을 역할모델로 삼았던 후커는 항해 중에 갈라파고스에서 수집한 표본들을 연구해 달라는 다윈의 부탁에 기꺼이 응한다. 자신의 관찰과 다윈이 수집한 것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 후커는 섬마다 다양한 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종이 중심에서 퍼져나간다는 선입견을 뒤집을 정도로 기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이레버스호 (이미지 출처: wikimedia)


다윈은 후커가 항해에서 돌아오자마자 편지를 보냈다. 스치듯 한번 본 적밖에 없는 사이였지만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종이 변화한다는 천기를 누설했다. 다윈이 간직해 왔던 비밀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고백할 대상으로 후커를 고른 것은 그가 자신처럼 세상 밖의 세상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히말라야 탐사 중 조지프 후커 (이미지 출처: wikimedia)


세상의 지식을 모아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열정과 세상을 신의 손길이 아닌 자연적인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근대적 이성의 아들들인 다윈과 후커는 비밀을 나누었고 평생지기가 된다. 후커는 세상에 맞선 다윈의 생각을 진심으로 옹호했다. 이어진 편지에서 후커는 다윈에게 종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물었고 그 대답은 당연히 ‘자연선택’이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