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다윈의 편지] ⑦ 부족함 없었던 삶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⑦ 부족함 없었던 삶

Editor! 2016. 6. 17. 14:18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⑦ 부족함 없었던 삶


다윈은 의학공부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할 때 아버지의 재산을 염두에 두었다. 자신이 굳이 의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학비나 생활비, 그리고 와인 값이나 다른 취미 생활에 필요한 돈까지 꼼꼼히 챙겨 주었다. 다윈이 직접 책을 써서 인세를 받을 때까지는 한 번도 돈을 벌었다는 기록이 없다.

결혼을 할 때는 장인과 아버지로부터 제법 큰돈을 받았다. 샐롭 카운티의 기록보관소에는 다윈과 부인 엠마의 결혼과 관련해 35쪽에 달하는 재정 보증 문서가 남아 있다. 다윈의 아버지와 장인이 사인한 문서다.

1838년 12월 31일 작성된 이 문서에 따르면 아버지가 1만파운드, 장인이 5000파운드를 신혼부부의 생활을 위해 신탁했다. 자금관리는 다윈의 형 이래즈머즈 다윈과 엠마의 오빠 조시아 웨지우드 3세가 맡았다. 이 돈을 투자해서 얻은 이익은 연간 4%인 600파운드에 달했다.


다윈의 외가이자 처가인 웨지우드 가문은 명품 도자기 ‘웨지우드’로 막대한 부를 일군 집안이다.

다윈의 외할아버지 조시아 웨지우드 1세 (이미지 출처 : wikimedia)


    

웨지우드 도자기 (이미지 출처 : 첫 번째 이미지 / 두 번째 이미지)



친애하는 주치의 선생


(…) 내가 샬럿과 세 아들들에게 그랬듯이 엠마에게 5000파운드를 신탁으로 줄 것이고 내 수입이 허락하는 한 일 년에 400파운드를 줄 생각이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1838년 11월 15일

조시아 웨지우드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 (이미지 출처: wikimedia)


다윈의 장인 조시아 웨지우드 2세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른 시대의 화폐 가치를 비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윈 부부가 평생 걱정 없이 사는데 이 돈 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시 다윈의 집에서 일하던 집사가 1년에 25파운드를 받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수입이 200파운드 남짓했다. 절대 가치로 환산해보면 다윈이 살던 시대의 화폐 가치는 평균적으로 지금의 70배 가량 된다. 다윈이 결혼할 때 받은 종잣돈은 우리 돈으로 20억 원이 넘는다. 그 투자 수익과 다른 수입을 합해 다윈은 이미 1년에 1억5000만 원 이상을 벌었다.

다윈은 재테크에도 소질이 있었다. 아버지가 미리 물려준 유산으로 40만 평에 달하는 농장을 구입해 상당한 임대 수익을 올렸던 ‘링컨셔 시골 지주’였고, 운하와 철도 주식에도 투자했다. 부동산과 주식에 적당히 나누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1848년에는 4만5000파운드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수입이 급격히 늘어나 1년 수입이 우리 돈으로 5억 원에 육박했다. 보통 한 해에 얻은 수입의 절반은 다시 투자했다.

다윈이 『종의 기원』 초판과 재판을 팔아 얻은 인세 수입은 616파운드 13실링 4 페니. 적지 않은 수입이지만 다윈이 저술로만 먹고 살았다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윈과 엠마 사이에는 흥부만큼이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종의 기원』 (이미지 출처: wikipedia)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