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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⑥ 스승 헨슬로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⑥ 스승 헨슬로

Editor! 2016. 5. 20. 18:18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⑥ 스승 헨슬로


헨슬로 선생님, 자연사 분야의 거장이신 선생님께 종(種)에 관한 제 책을 보내드리라고 했습니다. (…) 선생님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찬찬히 읽으시고 빈약한 부분과 잘된 부분을 지적해 주십시오. (…) 선생님께서 ‘종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게 되셨다면, 조금 더 깊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 의문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제 생각이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1859년 11월 11일

찰스 다윈 올림


  

새뮤얼 윌버포스 사진과 그림 (이미지 출처 : 사진 / 그림)


1860년 6월 30일, 옥스퍼드대학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대의 웅변가였던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가 ‘다윈의 불독’이라 불린 토머스 헉슬리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어느 쪽이 원숭이의 후손이냐”고 쏘아붙였다. 헉슬리는 “중요한 과학 토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데 재능을 사용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삼겠다”고 받아쳤다. 다윈주의 진영의 작은 승리로 기록되는 이 자리의 좌장을 맡고 있던 사람은 다윈의 스승이었던 존 스티븐스 헨슬로(1796~1861). 다윈을 자연사 연구로 이끌고 비글호 항해의 기회를 넘겨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던 스승은 사랑하는 제자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토머스 헉슬리 사진과 그림 (이미지 출처: 사진 / 그림)


헨슬로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면서 더불어 지질학·화학·광물학을 공부했다. ‘케임브리지 철학회보’를 창간해서 지질학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고, 스물여섯 이른 나이에 케임브리지대학의 광물학 교수가 되었다. 3년 후엔 식물학 교수가 되었고 동료였던 지질학자 애덤 시지윅과 자연사 연구를 주도했다.


  

존 스티븐스 헨슬로 사진과 그림 (이미지 출처 : 사진 / 그림)


신학을 전공하러 케임브리지에 왔던 다윈은 헨슬로라는 역할 모델을 따라 자연사 연구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다윈은 ‘헨슬로의 산책 친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스승을 따랐고 자신이 읽은 책, 공부한 주제, 관찰한 결과 등을 시시콜콜히 이야기했고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할지, 지질학 연구를 위한 여행은 어디로 떠날지 따위를 끊임없이 물었다. 헨슬로는 언제나 제자의 물음에 기꺼이 응했다. 비단 다윈이 공부의 길에 들어서는 것만을 도와 준 것이 아니라 다윈이 학계에 자리를 잡도록 이끌었고 끊임없이 토론 상대가 되어 주었다. 헨슬로는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하면서 보낸 수집품들을 적절한 전문가를 찾아 분석하도록 했고 보낸 편지를 정리해서 학술지에 실었다. 다윈이 항해에서 돌아오자마자 학계의 유명인사가 된 것은 온전히 헨슬로의 배려 덕이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이 출간도 되기 전에 출판업자에게 책이 나오는 대로 스승에게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편지를 썼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성직에 머무르고 있던 스승이 통상적인 신학적 믿음에 반하는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스승은 제자의 이론을 검증하는 자리의 증인이 되어 그런 바람에 화답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