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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⑫ 과학자 토머스 헉슬리 본문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⑫ 과학자 토머스 헉슬리
다윈 선생님,
(…) 생각하건대 선생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든 상당히 잘못 사용되거나 표현되어 반감을 일으키거나 성가신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생각이 깊은 이들이 선생님께 변치 않는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왕왕거리고 깽깽대는 성질 나쁜 똥개들도 있을 겁니다. 선생님이 가끔 꾸짖기도 하셨지만 우정을 나눈 친구 몇은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고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저도 발톱과 부리를 갈며 준비하고 있지요. (…)
1859년 11월 23일
토머스 헉슬리
토머스 헉슬리 (이미지 출처: wikimedia)
사람들은 토머스 헉슬리(1825~1895)를 ‘다윈의 불독’이라 부른다. 전해오는 그림을 보면 생김새에서 벌써 용맹한 느낌이 확 풍긴다. 편지에서 보듯이 말도 거칠고 거침이 없다. 그런 그가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세상 통념에 도전했던 다윈의 생각을 옹호했다. 여러모로 어울리는 별명이다.
다윈을 포함해서 신사들이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의견을 주고받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헉슬리의 성정이나 말투는 생경한 것이었다. 생각이 맞지 않거나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에게 헉슬리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시골신사 다윈에게도 헉슬리 태도는 불편했다. 1856년 조지프 후커가 런던의 유명한 문예 클럽에 헉슬리를 추천하는 일을 상의했을 때, 다윈은 헉슬리가 강연에서 경멸하는 어조로 몇몇 저명한 학자를 비난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추천을 보류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다윈은 분명히 헉슬리와 친구였지만 겸양의 태도와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던 신사 규범을 거스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토머스 헉슬리 그림 (이미지 출처: wikimedia)
과학자가 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없었던 19세기 영국에서 과학은 귀족, 신사 혹은 의학이나 법학, 신학을 바탕으로 한 전문직 출신들의 개인적인 모임에 의존했다. 사립학교 교사 아들이었던 헉슬리는 사회적 지위도 미미했고 충분한 재산도 없었다. 열다섯에 의학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2년 배운 것이 공식 교육의 전부였다. 보조외과의사 자격으로 군함 ‘래틀스네이크’에 승선했던 것이 그를 과학자의 길로 이끈다.
헉슬리는 신사들의 예절을 비판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솔직함과 같은 덕목에 충실했다. 과학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관행은 사회적인 장애물이었고 구시대의 잔재였다. 박물관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실험실에서 전문 연구도 수행해야 했던 헉슬리가 다윈처럼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헉슬리 기준으로 보면 다윈은 구시대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골에서 외로이 연구하는 다윈에게서 사교 모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대 과학자의 모습과 태도를 보았다. 그는 항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의 비밀을 다윈과 나누어 가졌고 그것을 널리 알린 다윈을 우상으로 삼았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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